[4·13 총선 후폭풍] "국민의 명령은 경청과 타협…정치를 혁명하자"
어느 당에도 주도권 안 줘
이세돌 '78번 수'처럼 절묘
포용과 희생의 리더십 요구
선거는 끝났다. 아침에 목욕탕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입을 벌렸다. 뜬눈으로 새웠는지 충혈된 사람들도 보였다. 간간이 나오는 소리가 “국민 무서운 줄 알아야지”,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 등이었다.
그렇다,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는 무서운 경고를 담은 국민의 심판이었다. 여소야대(與小野大)도 충격이지만 제1당 지위까지 빼앗긴 여당의 명실상부한 참패였다. 새누리당의 아성인 영남과 서울 강남에 균열이 생기고, 더불어민주당의 근거인 호남은 국민의당이 차지했다. 대권 후보로까지 거명되던 기라성 같은 후보들이 패배의 쓴잔을 들고 기대에 찬 새 인물들이 반짝인다.
한국의 정치 지형이 일거에 바뀌어 버렸다. 오만하고 편협한 양당제에 식상한 국민의 분노가 묻어난 투표였다. 3당 체제가 국민 여망에 어떻게 맞출지 그 시험대이기도 하다.
참 특이한 선거였다. 공약도, 정책도, 비전도, 이슈 대결도 없었다. 진정성을 잃은 사과와 사죄, 엄살과 읍소, 은근한 협박만이 선거판을 지배했다. 용서를 빌며 무릎 꿇고 엎드렸지만, 정작 무엇을 잘못했으며 어떻게 시정할 것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늉만 내면 이번에도 통할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냉엄했다. 무섭도록 현명했다. 속 보이는 정치쇼, 거짓 눈물은 먹혀들지 않았다.
이런 선거가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북핵을 비롯한 안보 문제도, 안팎으로 몰아닥치는 경제 위기도, 심해지는 양극화 해소책도, 청년들의 절망과 실업대란도, 고령화·저출산도, 복지 논쟁도 증발해 버렸다.
"세상은 팽팽 돌아가는데 정치, 언제까지 구태에 젖어 있을 참인가"
선거를 주도하는 인물 그 누구도 차기 대권을 말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대권 후보가 아직 없다고 고백(?)하는 답답한 선거였다. 각양각색의 정당 무늬는 봄꽃보다 요란했고, 신명나는 로고송과 프로급의 춤사위는 현란하기 그지없었지만 가슴은 비고 마음은 스산했다. 내용(콘텐츠)은 없고 껍데기(하드웨어)만 화려한 이 맹탕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이 4년간 국정을 잘 이끌어주기를 얼마만큼 기대해야 할까.
그 견고한 진영 논리도 선거 앞에서는 허물어졌다. 어제의 적이 오늘은 동지가 돼 간판을 바꿔 달았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당선시킨 일등공신은 더불어민주당의 주인이 되고, 야당 출신은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이 돼 공약을 주도했다. 이분들은 애초부터 그 당 출신인 것처럼 당을 잘 이끌고 그럴듯한 정책도 내놓았다.
민심의 무서움 보여준 선거
여야의 벽을 이렇게나 쉽고 자연스럽게 넘나드는데 왜 한국 정치는 그동안 대화와 타협을 하지 못하고 극한 상황까지 대치해온 걸까. 정당들의 한 치 양보 없는 죽기 살기식 싸움도 명분과 실리만 조절되면 얼마든지 타협 가능함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선거는 심판이다. 선거일 한 달 전에야 겨우 선거구를 획정하고 엉터리 공천을 하면서도 ‘국민 공천’ ‘전략 공천’으로 포장한 기득권 정치를 국민은 심판했다. 대통령은 일하지 않는 국회를 심판해 달라 했지만 국민은 국회와 싸우는 청와대를 심판했다. 여당은 국정의 발목을 잡는 야당을 심판해 달라 했지만 유권자는 야당을 국정 동반자로 끌어들이지 못한 여당을 오히려 심판했다. 경제를 망친 정부 여당을 심판해 달라 했지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제1야당에 경고성 지지를 보냈다. 새로운 정치로 심판받겠다는 국민의당은 비례대표에서 참신성을 인정받지 못했더라면 새 인물을 영입하지 못해 호남 지역 당으로 전락할 뻔했다.
선거는 민심이다. 후보가 누구며 정책 공약이 뭔지 도통 알 수 없는 묻지마 투표를 독려하는 뻔뻔스러움에 분노한 민심이 줄을 섰다. 58%라는 비교적 높은 투표율이었다. 그러나 민심은 여전히 유동적이다. 투표장에 오지 않은 42%의 민심을 헤아리지 못하면 또 다른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오죽하면 기표용지에 ‘지지 후보 없음’ 난을 새로 만들어 그 난에 가장 많은 표가 몰린 지역은 국회의원을 공석으로 두자는 제안까지 있었을까. 정말로 그 아이디어가 실행됐더라면 투표율이 껑충 높아지고 국회의원을 내지 못한 지역이 속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똑똑히 보여준 심판의 선거였다.
청와대부터 변해야 한다. 이번 선거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적 성격이었다. 얼마나 많은 여당 후보가 박 대통령을 팔고 다녔던가. 그런 후보와 여당이 참패했다. 박 대통령의 남은 임기 2년의 기반이 크게 약해졌다. 대통령과 정부는 겸허히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국회는 대결과 질책의 대상이 아니다. 권력 중추로서의 국회를 존중하고 경청하며 참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국회의 협조와 협력 없이는 어떤 법률도 예산도 처리할 수 없다.
20개월 후의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국회 권력이 행정 권력을 압도하게 생겼다. 권력 누수(레임덕) 현상은 불가피하다. 대통령이 국회를 국민의 대표 기관으로 깍듯이 인정하는데도 국회가 제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국민이 회초리를 들 것이다. 대통령이 나설 일이 아니다.
이제 통치가 아니라 정치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윗선이나 외부 세력의 눈치나 보면서 염치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입으로는 국민을 말하면서 국민은 안중에 없었다. 오직 자기 지지자만 바라보는 ‘비정상의 정치’만 있었다. 어느 당에도 과반 의석을 주지 않은 3당 체제를 출범시킨 의미를 잘 새겨야 한다. 일방통행이나 흑백논리는 안 된다는 경고다.
오만하거나 과욕을 부려서도 안 된다. 나를 지지하는 국민보다 그렇지 않은 국민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엄숙히 받아들여야 한다. 한두 번 헌정사의 여소야대 경험은 오히려 치열한 상호 대결로 인해 실패했다. 이제야말로 대화와 타협이 무엇인지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20대 국회의 존재 이유다. 이것을 국민의 엄숙한 명령이라고 여기며 실행에 옮겨야 한국 정치에 새 희망이 있다.
올 가을 정기국회부터 차기 대선의 전초전이 될 공산이 크다. 정책과 능력으로 심판받아야지 또다시 선전과 선동, 포퓰리즘에 기댄다면 나라가 크게 위험하다. 국내외적 엄혹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최후의 애국심을 발휘해야 한다.
대화·타협·설득의 정치 필요
이번 선거에서 국민은 정당보다 훨씬 깨어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대화와 타협, 경청과 설득의 지도자와 정당을 현명한 우리 국민은 다음 대통령감으로 선택할 것이다. 정치를 복원하라는 국민의 엄숙한 명령을 받드는 정치가 진짜 정치다.
이제 판은 바뀌었다. 기존의 모든 공식이 깨졌다. 지역 구도는 무너지고 고정 지지층도 이탈했다. 차제에 정치권은, 특히 패자인 여당은 새 판을 짜야 한다. 껍데기보다 알맹이를 바꿔야 한다. 이번처럼 안이하고 무성의한 당 지도부의 대처도 드물 것이다. 상대방은 기존 의석을 유지하지 못하면 정계 은퇴를 하겠다 하고 의원직도 던지겠다는데, 상투적 제스처와 오버 액션만으로는 감동을 줄 수 없었다.
세상은 팽팽 도는데 언제까지 구태에 젖어 있을 참인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이 대세인 초연결사회다. 어떤 정치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거나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 굼뜨고 오만한 정당과 국회가 있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당선된 의원들과 국회가 스스로 존재 이유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정당 해산론이나 국회 무용론에 봉착할지도 모른다. AI나 빅데이터가 아직은 할 수 없는 가치와 영역을 하루빨리 우리 국회가 찾아내야 한다.
책임질 사람은 마땅히 책임져야 한다. 빠를수록 좋다. 자기를 버리고 던져야 다시 살 기회가 오는 것이 정치다. 책임은 사퇴로 끝나지 않는다. 실수와 실책을 되풀이하지 않을 제도와 태도를 확고히 마련해야 한다.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잃은 첫 번째 요인은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 때문이었다. 그 무책임의 정점에 정당이 군림하고 있다.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를 받는 19대 국회의원도 개인으로 보면 괜찮고 훌륭한 사람이 넘쳐났다. 새로 구성될 20대 국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수준급 국회의원들이 국회를 국회답게 만들지 못한 이유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정당 때문이었다. 지금처럼 정당의 권한은 그대로 둔 채 국회를 개혁하겠다는 것은 연목구어다.
각당은 곧바로 전당대회를 열어 새로운 지도 체제를 구성할 것이다. 이번 전당대회야말로 당을 죽이고 국회를 살릴 사람을 뽑아야 한다. “당을 살리겠다”, “당 중심의 개혁을 하겠다”는 구태를 반복하는 한 국회는 민의의 전당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당의 힘을 빼야 한다. 무절제한 당론 정치도, 강경파 주도의 당론 채택도 모두 반민주적이다. 이제는 국회 중심의 정치, 상임위원회 주도의 문제 해결 능력을 보일 때가 됐다. 이것만이 국회가 국정의 중심에 설 수 있고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국민 신뢰받는 국회 모습 요구
이제 어느 당에도 국정 주도권을 주지 않는 3당 체제다. 절묘한 정치 구도다. 이 체제가 ‘이세돌의 78번 수(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네 번째 바둑 대국에서 보여준 묘수)’처럼 신의 한 수가 되려면 인공지능이 갖지 못한 정치인만의 그 무엇이 함께 있어야 한다. 포용과 자기희생의 리더십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에 실패한 사람 중 상당수는 그런 덕목이 부족했다. 반면 승자 가운데는 그런 리더십을 보인 사람이 많이 눈에 띄었다. 사지(死地)에 뛰어들어가 살아온 사람들 말이다. 유권자는 혁명적 정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위기에 영웅이 나오는 법이다. 새로운 지도자로 우뚝 설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무산시킨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려운 구도 속에서 스스로 산화(散華)한 사람도 있다.
국회의원에 떨어졌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한 지도자, 계파 이익과 기득권에 안주하는 지도자라면 퇴출이 마땅하다. 민심은 정확하고 정직한 법이다. 이번 선거는 많은 아쉬움과 더 많은 교훈을 남겼다.
[2016-04-15 한국경제] 1면 기사 ☞바로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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