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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헤드라인

[헌정 5월호] 권력은 오만으로 무너지고 겸손으로 살아난다


나는 대선 전부터 새 정부에 대한 바람이 세 가지였다. “나라를 튼튼히 지키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정부, 국민의 자존심을 살리는 정부, 나라의 미래를 책임지는 정부.” 최근 몇 년 사이에 이 평범하지만 근본적인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은 더욱 절실해졌다.  
  
5월 10일 윤석열 정부가 5년 임기를 시작한다. 기대도 크지만 우려되는 점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0.73%의 아슬아슬한 선거 결과가 임기 내내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것 같다. 정치적·심리적 큰 장벽이 될 수도 있다. 절대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과의 정국 주도권 싸움은 취임 전부터 시작되었다. 코앞의 지방선거가 중요 변수로 도사리고 있다. 현실적으로 차기 총선이 있는 2024년 봄까지 야당이 된 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5년 만의 정권교체지만 국회와 지방정부는 물론 공적 기관, 사회 조직·단체는 여전히 친민주당 계열이다. 자칫 식물 대통령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전임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나라 성적표는 초라하지만 남탓할 수도 없는 처지다. 상황은 엄정하고 긴박하다. 엄청나게 불어난 나라빚과 부동산 폭등, 물가고로 국민들의 우려가 크다. 소주성 경제기조와 탈원전 정책은 기회와 활력의 불을 꺼뜨렸고, 규제와 압박으로 기업은 의욕을 잃고 있다. 국민이 나라 안보를 대신 걱정하고, 성장 동력은 꺼져가는데 청년은 꿈을 잃어간다. 정책과 인사는 진영논리로 밀어붙여 민심을 갈라놓았다. ‘개혁’을 강조하면서 과정·절차·목적은 비민주적으로 치달았다. 국제환경과 대외관계도 불안정하고 요동친다. 
 
권력은 오만함 속에서 무너지고 겸손함 속에서 살아난다. 선거 결과는 늘 이것을 반영했다. 지난 5년간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 문재인 정부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이유다. “청와대 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이었지만 국민을 이길 수는 없었다. 
 
이런 점에서 윤석열 당선인은 제대로 방향을 잡았다. 접근 방법이 다소 서툴렀지만 그동안 권위와 불통의 상징이었던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드리고 대통령 비서실을 축소하겠다는 의지는 역대 정권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은 결단이다. 총리와 장관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개선·보완책이다. 비록 새로운 도전과 시련이 닥치겠지만 스스로 권력을 줄이겠다는 진짜 개혁적 모습이다. 
 
서두에 밝힌 국가 존재 이유와 이를 담보할 정부를 운영하려면 다음 세 가지 사항을 잊지 말아야 한다. 먼저 공약대로 상식과 정상의 회복에 힘써야 한다. 국가 정책은 이념이나 진영논리에서 완전 탈피해야 한다. 국론을 분열시켰던 소주성, 임대차 3법, 탈원전, 검찰 탄압, 언론 손보기, 적폐 청산, 반일 감정 등 정치성 정책은 원상회복 시키는 것이 순리다. 이후 복지 정책과 연금 개혁 등은 물론이고 국민들 눈치 보다가 유보한 정책도 설득과 이해를 구해 추진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통합의 정치다. 대통령은 국민 전체의 대통령이지 지지자들의 대통령이 아니다. 좁은 국토에서 이렇게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증오와 적개심으로 사는 건 실로 부끄러운 일이다. 선거 때만 되면 더하다. 지역(동과 서, 도시와 농촌, 수도권과 지방), 계층, 노사, 세대 등 크고 작은 갈등이 확장되고 있지 않은가. 갈라치기와 편가르기를 그렇게 비난하던 국민의힘이 이대남·이대녀 하면서 남녀갈등을 부추기는 바람에 대선에서 질뻔했다. 일반 국민의 양식과 상식보다도 못한 선거 캠페인을 하고도 반성조차 안 하니 당에 대한 기대치가 낮을 수밖에 없다. 새 정부는 이것만큼은 앞장서 고쳐야 한다. 통합을 해치는 근본 원인은 인사와 정책에 있다. 대통령이 모든 마음의 문을 열어야 성공할 수 있는 쉽지 않은 과제다. 
   
셋째는 소통의 문제다. 정치가 경색되고 국론이 분열되는 요인은 본질적인 문제보다 소통이 막혀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통만 잘 되면 오해와 왜곡이 풀릴 텐데 여야 모두 이 점이 서툴다. 대화와 타협보다는 대립하고 강경해야 ‘우리편’이 박수친다. 국민은 나눠지고 나라는 또 분열한다. 이런 악순환의 구조를 역대 정권마다 반복해왔다. 윤석열 정부는 달라야 한다. 여소야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소통은 필수적이다. 대화·경청·설득 없이는 거대 야당에 이길 수 없고 국민지지를 받을 수 없다. 민주주의는 인내(忍耐)를 먹고 자란다. 
  
“통합과 소통”의 정치는 열세와 위기를 기회와 성공으로 바꾸는 민심의 마술이다. 윤석열 정부가 초심으로 지켜나간다면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끝) 

김형오(전 국회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