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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02 e대한경제] 통합 리더십만이 국가 위기 극복…진짜 공정·정의 회복해야

[창간기념 인터뷰]

“개헌, 임기 2년 안에 해야 한다”…“ 측근 참모들 발호 막아야 환영 받는다”

정계원로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지난달 21일 서울 마포구 개인 사무실에서 <e대한경제>와 창간 기념 인터뷰를 갖고 대선 시대정신, 개헌론, 권력구조, 국민통합 등 주요 정치 현안에 대한 본인의 견해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박정배 기자

[e대한경제=박정배 기자] “개헌의 핵심은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는 겁니다. 대통령 권한 일부는 국회에 주고 일부는 독립된 기관에 준다는 식의 논의를 먼저 해야 합니다. 그런 뒤에 ‘4년 중임제’든 ‘의원내각제’든 ‘분권형대통령제’든 이런 것을 논의해야 합니다.”

정계원로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지난달 21일 서울 마포구 개인사무실에서 <e대한경제>와 창간 기념 인터뷰를 갖고 정치권의 개헌론에 대해 이같이 말한 뒤 “야당 후보가 당선되면 그때부터 개헌 절차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것도 2년 안에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가 듣고 있는 ‘청와대정부’ 주장에 대해선 “청와대가 세지면 안 된다”고 지적한 뒤 “측근 참모들 발호를 막는다면 국민 전체는 아니더라도 다수 국민의 지지와 환영을 받는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의 ‘청와대 해체’ 공약에 대해 “청와대 축소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대통령에 당선된 바로 그 다음날 “집무실을 광화문에 마련하라”고 지시를 내려야 한다”면서 “경호상의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를 제압하려면 처음에 바로 해버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새 정권의 ‘국민통합’ 방안으로는 “국민통합을 위해선 절대 정치보복이 없어야 한다”면서 “보수야당에 표를 안 주거나 표를 적게 준 곳부터 찾아가는 자세를 보이는 것도 필요하다. 이것이 통합의 리더십이고 헌신의 리더십이고 겸손의 리더십이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 전 의장과 가진 일문일답.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이 무엇이라고 보나.

문재인 정부에서 정의를 많이 주장했는데 그 정의는 너무 주관적이고 감정적으로 흘러버렸다. “나의 정의”이지 “모두의 정의”가 아닌 것이다. 상대를 치기 위한 방편이 되면 안된다. 그러므로 이번 대선을 계기로 정치적 수단이 아닌 진짜 ‘공정’과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면 ‘미래’다. 지금 한국은 미래를 잃어버린 나라다. 젊은이들이 요즘 부동산 대란으로 ‘영끌’이란 말을 하는데 그래도 집을 못 산다고 한다. 희망을 잃어버린 젊은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메인다. 앞으로 5년이나 10년 후에 이 나라가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성장동력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원자력이 있지 않습니까?” “반도체 있지 않습니까?” 했는데 원자력만 해도 탈원전정책으로 산업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대통령 5년 단임제의 치명적 약점이 정권이 바뀌면, 설사 같은 당으로 정권이 바뀐다 해도 전임 대통령 5년 동안 한 건 전부 허사가 된다. 지난 정부의 계속 과제들은 싹 지우고 새로 시작하는 거다. 이렇게 중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나라가 어떻게 미래에 계속 발전을 할 수 있겠나? 지금 이 나라가 간절히 필요한 건 그동안 쌓인 정의롭지 못한 것과 불공정한 것을 바로 잡아야 하며 더 나아가서 미래를 찾아와야 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우리 젊은이들에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그리하여 공동체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공동체 정신이 사라졌다. 사회 곳곳에서 정의도 공정도 미래도 없다 보니 우리가 몸담은 공동체를 사랑하고 지키고 이어간다는 애착과 애정이 사라졌다. 슬픈 현실이다. 이것을 새로이 가다듬는 대선이 되고, 새 정권 5년이 돼야 한다.

국회의장 재임 시절 개헌 필요성을 강하게 역설했는데 이번 대선에선 개헌이 큰 쟁점은 아니다. 흔히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하는데, 대통령과 국회 관계를 어떻게 보나.

좋은 질문이다. 김형오만큼 ‘개헌’, ‘개헌’한 사람 없다. 나는 국회의장 취임 일성이 개헌이었다. 그랬더니 당시 대통령(MB)으로부터도 “내가 청와대 취임하자마자 개헌하자면 어떻게 하나”라고 좋지 않은 말도 들었다. 5년 단임제 헌법을 근간으로 하는 ‘87체제’가 35년 흘렀으니 이제는 공과를 평가하고 바꿀 때가 됐다. 장기집권과 독재를 방지하는 데는 역할을 했지만 우리나라 미래를 담보하기 위한 제도로는 더는 아니다. 그래서 개헌을 해야 한다. 2008년 국회의장 자리에 처음 앉으면서 공식 제안했지만 10여년 세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안 되고 있다. 이유는 대통령과 대통령 주변을 둘러싼 핵심 측근들의 권력욕 때문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대통령제만큼 좋은 게 없거든. 모든 권력을 한손에 쥐고 있으니까. 그런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그런 것이다.

나는 대통령 집권 초에 개헌을 하자는 입장이었고 집권 후반기 개헌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집권 후반기 개헌을 하면 차기 대권 주자들의 눈치를 보는 개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헌법이란 최고법이 현실 정치의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집권 초반에 해야 한다. 이번에 야당 후보가 당선되면 그때부터 개헌 절차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것도 2년 안에 해야 한다. 반대로 여당 후보가 승리하면 개헌 작업은 신중해야 한다. 국회에서 여당 의석이 180석 가까이 된다.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200석 만드는 건 문제도 아니다. 국회 의석 3분의 2가 찬성하면 개헌안은 통과한다. 소수 야당이 반대한다고 해도 소용 없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과 국회 다수당이 같은 당, 같은 계열이면 개헌을 통해 대한민국 최고 기본법의 가치가 일방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특히 민주당 정권이 개헌에 나서면 개인의 자유와 인권, 시장경제 등 자유민주주의와 국가 안보가 위축되거나 위협받을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소속 대통령이 탄생하면 차라리 현행 헌법으로 가는 게 낫다고 본다. 하지만 만약에 민주당 대통령이 권력을 분산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면 그땐 내 생각이 달라지겠지만 쉽지 않을 거다.

여당 후보는 제왕적 대통령제 완화 방안으로 ‘4년 중임제’ 공약을 내걸었는데, 대통령 권한 축소에 도움이 된다고 보나.

개헌의 핵심은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는 것이다. 지금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하는데 이렇게 권한이 막강한 대통령은 선진국 정치에서는 유례가 없다. 권한은 큰데 책임은 없다. 따라서 대통령 권한을 축소ㆍ분산하고 책임도 확실히 부여해야 한다. 대통령 권한 일부는 국회에 주고 일부는 독립된 기관에 준다는 식의 논의를 먼저 해야 한다. “권한 있는 곳에 책임이 있다”는 금언을 되새겨 반드시 모든 권력기관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그런 뒤에 ‘4년 중임제’든 ‘의원내각제’든 ‘분권형대통령제’든 이런 것을 논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4년 중임제부터 먼저 거론하는 것은 국민을 현혹하는 것이다. 권력구조는 바꾸지 않고 4년 중임제 하자는 것은 ‘8년 단임제’ 하자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현실적으로 들어가서 만약 여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권력구도는 일당 지배 형태가 될 것이다. 국회와 청와대 모두 여당이 장악한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껍데기는 민주주의지만 실제는 일당 독재다. 반대로 야당 후보가 당선되면 여소야대 형식이 되는데 자칫 잘못하면 사사건건 새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국회가 제동을 걸 수 있다. 야당이 절대 과반의석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대통령은 아무 것도 못한다. 그런 식으로 가버리면 이 나라는 굉장히 힘든 여정을 보낼 것이다. 한 가지 희망을 갖는다면, 야당 대통령 임기 초기에는 힘들 것이지만 2년 후에는 국회의원 총선이 있다. 거대 야당이 사사건건 정부에 협조하지 않고 비판하고 반대하고 발목만 잡는다면 총선에서 국민이 표를 안 줄 것이란 판단에서 선거에 가까운 1년은 거대 야당도 정책 정당 모습을 갖춰 정책 대결에 임하는 보기 좋은 모습을 기대할 수 있다. 어쨌든 야당 대통령이 탄생하면 2년 안에 개헌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야당 후보는 ‘청와대 해체’를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내가 대통령직인수위에 관여를 많이 했는데 청와대를 옮기란 게 내 주장이었다. 내 주장이 받아들여질 것 같다가도 결국에는 안 받아들여졌는데 그 이유는 경호 때문이다. 경호실, 경호하는 사람들 반대론이 대통령 귀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올스톱이다. 모든 게 경호 중심이다. 새 정부는 그걸 떨쳐야 한다. 사회주의 국가인 러시아에서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전은 유명한 관광지다. 관광객이 득시글한데 그 안에 푸틴 대통령 집무실이 있다. 물론 보안 구역이지만. 서울과 평양은 최고지도자가 구중궁궐 안에 있으니 국민의 소리를 못 듣는 점에서 묘하게 공통점이 있다. 대통령은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러나 경호실은 절대 안 된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광화문으로 이전하려고 생각했다는데 경호실이 반대해 안 됐다고 한다.

만약 청와대 축소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대통령에 당선된 바로 그 다음날 “집무실을 광화문에 마련하라”고 지시를 내려야 한다. 경호상의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를 제압하려면 처음에 바로 해버려야 한다. 대통령 당선자가 3월10일 발표될 텐데 그날 바로 “집무실을 광화문 근처에 알아보라”고 해야 한다. 5월9일 취임식 끝나고 곧바로 업무를 볼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해야 한다.

청와대를 축소하면 역대 대통령들이 겪었던 불행한 결말을 피할 수 있다고 보나.

대통령 당선자는 취임할 적엔 누구든 국민의 많은 지지를 받고 여론이 좋은 대통령, 모든 사람들로부터 환영받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한다. 그건 누구든 마찬가지다. 근데 물러날 때는 역대 대통령들이 좋지 않았다. 한 마디로 웃고 청와대 들어가서 울고 나오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첫째는 대통령중심제라서 권력이 너무 커서 그렇다. 미국 대통령에 비하더라도 한국 대통령은 권한이 훨씬 크고 많다. 그러니 처음엔 제왕적으로 시작해서 후반엔 식물 대통령으로 급락한다.

둘째는 권력이 크니 측근 참모들 입김이 세진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고 헌법에 있는데 대한민국은 ‘청와대 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이번에 야당 후보가 청와대 수석실을 폐지한다고 공약했는데, 정말 탁견이다. 청와대가 세지면 안 된다. 지금도 공무원들이 자기 모시는 장관의 지시나 방침보다는 청와대 눈치를 먼저 살피고 있다. 국정운영이 제대로 될 수 없다. 장관들은 힘들게 인사청문회 하고, 국회에서는 야당 의원들한테 날선 추궁당하고 그러는데 청와대 참모들은 그런 게 없다. 대통령 측근이라는 이유로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부처에 간섭하고 지시한다. 그러므로 측근 참모들 발호를 막는다면 국민 전체는 아니더라도 다수 국민의 지지와 환영을 받는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다.

측근을 완전 배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측근이 없을 순 없지만 경계해야 한다. 측근의 말에만 귀를 귀울이면 안 되고 공식 참모, 즉 장관이나 해당 책임자들과 수시로 대화하고 의논해야 한다. 국정 현안에 대해서는 장관과 먼저 논의해야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그 옆에 배석하면 되는 것이다. 대통령이 국무위원과 1대1 또는 여러 국무위원과 심층적으로 논의하는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 국무회의가 지금처럼 형식적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국론을 결정하는 최고 최후의 장이 된다면 대통령제라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다.

지역갈등, 이념갈등, 세대갈등, 젠더갈등 등으로 우리 사회에 국민 분열상이 만연한데, 국민통합을 위해 새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은.

차기 대통령이 해야 할 중대과제 중 하나가 국민통합이다. 국민통합을 한다고 해놓고, 촛불정신을 계승한다면서 역대 대통령들 잡아 넣거나 적폐청산 미명으로 정치보복을 하는 건 없어져야 한다. 국민통합을 위해선 절대 정치보복이 없어야 한다. 그렇다고 명명백백한 범죄까지 봐주란 건 아니다. 진정한 국민통합을 위해선 우선 전직 대통령에 대해 사면복권하고, 정치적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사람들도 모두 사면복권하고 국민 통합의 길로 나서야 한다.

또 국민통합을 위해선 대통령은 첫 방문 장소를 잘 선정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일 처음 간 곳이 인천국제공항이다. 거기 가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든다고 하면서 부둥켜안고 울고 그랬는데, 우리 사회의 가치 체계가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비정규직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품에 안는 걸 나무랄 사람은 없다. 비정규직을 전부 정규직으로 하려면 인국공에 시험을 쳐서 정규직으로 입사하는 제도부터 먼저 없애야 할 것이다. 정규직으로 들어오기 위해 나름대로 고생했는데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과 결과가 같다면 누가 열심히 하겠는가. 적절한 경쟁과 성취와 성과에 따라 보상해주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다. 동시에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에게 기회를 다시 주고 구제하는 제도는 반드시 필요하고 이것이 자유민주주의를 건강하게 만든다. 이런 걸 논의하지 않고 무조건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그러면 기업이 무슨 수로 감당할 수 있겠나? 사회가 건강해질 수 없다.

예컨대 보수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정치적으로 가장 먼저 찾아가야 할 장소는 원내 1당이다. 국정 동반자로서 선의의 경쟁과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어 정의당 등 다른 야당도 찾아가야 한다. 여소야대에서 그들과 적대관계를 형성해선 안된다. 민노총, 전교조 등 보수야당에 표를 안 주거나 표를 적게 준 곳부터 찾아가는 자세를 보이는 것도 필요하다. 지역도 자기에게 표를 적게 준 지역부터 가서 주민들 손을 잡고 “여러분 마음을 이해한다. 여러분을 뜻을 잘 헤아려 국정에 반영하겠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것이 통합의 리더십이고 헌신의 리더십이고 겸손의 리더십이다. 이런 모습과 각오로 임한다면 임기 5년 동안 좋은 대통령으로 국민 마음에 남을 것이다.

대담: 권혁식 정치부장(부국장) / 정리 : 박정배기자 pj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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