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 발사 성공의 기쁨과 감격이 여전합니다. 이 놀라운 여정에 첫 발자국을 남긴 사람으로서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관련 칼럼이 조선일보에 실려 공유합니다.
양상훈 칼럼
1년여 전 한국형 우주발사체 1단 로켓 연소시험이 성공하고 한국형전투기(KF-21) 시제기가 공개됐을 때 이 두 거대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이끌어준 역대 대통령에게 고맙다는 글을 썼다. 확인해보니 1999년 과학기술부조차 별 관심이 없던 우주 개발 사업의 타당성 조사 예산 10억원을 김형오 전 국회의장(당시 의원)이 반영했다고 한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한 번의 실패를 거쳐 그제 마침내 우리 우주발사체가 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우주 선진국보다 50년 이상 뒤처지긴 했지만 어쨌든 우리도 우주를 향한 첫 발걸음을 떼었다. 이는 역사적 이정표다.
KF-21 전투기 시제기도 모습을 드러낸 지 1년여 만인 7월 말 드디어 활주로 활주부터 시작해 첫 시험비행에 나선다. 수 많은 지상 시험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비행기는 바퀴가 실제로 모두 공중에 뜰 때까지는 비행기가 아니라고 한다. 그런 말이 있을 정도로 시험비행이 중요한 고비다.
두 사업 모두 회의론이 적지 않았다. 엄청난 돈이 드는데 성공 여부가 확실하지 않았다. 아직도 난관이 많다. 우주로켓은 추진력을 훨씬 더 키워야 한다. 일본 로켓은 우리보다 10배 이상 무거운 물체를 우주로 보낼 수 있다. 미국의 규정도 장애 요인이다. 미국은 자국 부품이 들어간 위성을 다른 나라 로켓으로 쏘아 올리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유럽 일본 등 극소수 국가만 예외인데 우주 개발이 늦은 우리는 거기에 끼지 못했다. 현재 우리 기술만으로는 위성을 만들 수 없다.
어렵다, 안 된다, 못 한다는 이유를 찾으면 몇백개가 넘을 것이다. 하지만 가능성이 ‘0′이 아니면 시도해보는 모험을 해온 것이 우리 역사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얼마 전 고체연료 로켓의 연소 시험에 성공했다. 이는 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지만 우주로켓에 붙이면 추진력을 높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선진국들도 대형 우주로켓은 이렇게 발사한다.
중국을 겨냥해 경제와 기술, 공급망 동맹을 확대하려는 미국 입장에서 한국의 위상은 과거에 비해 높아졌다. 우리가 우주로켓 발사에 성공한 이상 미국도 합리적이지 않은 위성 제한 규정을 마냥 고집하지는 않을 수 있다.
KF-21 전투기가 공군에 전력화되는 2020년대 후반엔 선진국의 인공지능 6세대 전투기가 하늘을 날아다닐 가능성이 높다. 4.5세대인 KF-21은 나오자마자 구식 전투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 못지않게 구세대 전투기들도 긴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방한한 폴란드 국방장관 일행이 우리 FA-50 전투공격기 48대 구매 의사를 밝힌 것도 그런 현실을 보여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안보 위협을 크게 느끼고 있는 폴란드 측은 우리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빨리 만들 수 없으면 한국 공군이 쓰고 있는 FA-50이라도 먼저 좀 줄 수 없느냐’고 타진했다고 한다. FA-50에 대해서도 조그만 전투기 만들어 뭐하느냐는 비판이 많았지만 결국 효용성을 인정받고 있다. 전투기만이 아니다. K2 전차, K9 자주포도 유럽에서 대박 조짐까지 있다고 한다. 6·25 침략을 당했을 때 총 한 자루 못 만들던 우리가 다른 나라도 아닌 유럽에 전투기, 탱크, 자주포를 팔게 됐다. 안 된다고 시작도 하지 않았으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기적이다.
중국의 달 탐사 계획 총책임자는 “갈 수 있을 때 가지 않으면 미래 세대가 고통받는다”고 했다고 한다. 중국은 소련이 1949년 핵실험에 성공하자마자 핵 개발에 나섰고, 소련이 1957년 인류 최초로 인공위성을 발사한 직후 우주개발에 착수했다. 그때 중국은 가난하고 후진적인 나라였지만 가야 할 길을 갔다. 그 결과 핵 보유국이 됐고, 이제 우주 경쟁에선 미국도 못 한 달 뒷면 착륙에 성공하는 등 미국을 추월할 것 같다는 평가마저 받고 있다. 중국의 우주 인력은 30만명으로 미국의 15배가 넘는다고 한다.
갈 길은 너무나 멀다. 우리 우주로켓은 미국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 등 선진국 로켓에 비해 경제성과 기술력이 크게 떨어져 비교조차 힘들 정도다. 전투기도 선진국들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발전하고 있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갈 수 있을 때 가지 않으면 영원히 가지 못한다. 그로 인한 낙후와 고통은 미래 세대가 져야 한다. 다른 얘기이지만 창의성 교육으로의 개혁, 경직적인 노동 제도에 대한 개혁, 지속 가능하지 않은 연금 개혁, 방만한 공공 개혁도 마찬가지다. 갈 수 있을 때 가지 않으면 후세에 죄를 짓는다. 우주발사체 개발에 성공한 연구 개발진에게 감사를 보낸다.
양상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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