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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동창회보 제138호] 한국 정치, 정치인의 헌신과 협치로써 올바른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출신이라는 내적 자부심에서 비롯되는 맑은 힘이 있다. 모교의 모과 정치인이 국가에 대한 적극적인 희생과 헌신, 봉사의 정신을 가지길 바란다.


김형오(외교 67) 동문은 5선의 국회의원(제14,15,16,17,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원내대표, 제18대 국회 전반기 의장 등을 역임하였다. 또 술탄과 황제,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 등 역 작을 다수 집필했다.
6월 15일 개최된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총동창회 송강포럼 연단에서 “윤석열의 시대,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해야 할 7가지, 하지 말아야 할 7가지”를 주제로 한국 정치에 대한 통찰과 새롭게 출범한 윤석열 정부에 대한 자문을 강연했다.
지난 6월 16일 국회도서관에서 김형오 동문의 정치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올해 대선과 지선이 치러지며 정치적 자문과 고견을 여쭙는 곳이 많은데, 근황에 대한 말씀 부탁드린다.
새 정부가 시작된 시기이므로 무엇보다 ‘나라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강연과 인터뷰에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하려 한다. 특히 지금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민감한 시점인 만큼 항상 신중하게 생각하고 삼사일언(三思一言)의 마 음을 가지고 있다. 또 국회의원을 지냈던 지역구인 부산에 가서 후배들의 생각을 경청하고, 덕담도 건네주곤 한다.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회고한다면 어떤가.
겉으로 보기에 대단히 화려한 정치경력이지만 굳은 신념을 유지하며 어려운 과정들을 거쳐 얻은 자리이므로 국가와 국민 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는 겸손한 마음과 무한한 경애를 가지고 있다.
우리 지역구인 부산 영도구는 선거가 매우 어려운 지역이지만, 5선의 국회의원을 거쳐 국회의장 자리에 오르며 단 한번도 낙선하지 않았다. 영도구는 부산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서민층이 많이 거주하며, 외지에서 집값·땅값 싼 곳을 찾아온 경제적 약자가 많다. 또 주민 중 부산·경남 출신의 비율이 50%가 채 되지 않는다. 이처럼 삶이 각박하고 지역적 구심점이 없으며, 정치에 대한 신뢰와 존경보다 생사의 문제 앞에서의 불평과 불 만이 많은 지역구이기에 종래 3선 연속 국회의원 당선자가 없었다. 이러한 지역구에서 5회 연속 당선을 이루어나가며 국민에 대한 존경과 국민의 표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국민의 판단을 항상 존중하고 경애하며 겸손한 정치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국가와 국민께 입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공천 또한 어렵게 받았다. 정당 내에서 안정적으로 공천을 받으려면 계보 정치, 계파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계보와 계파 조직에 속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이러한 자금은 비정상적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계보·계파에 속하지 않은, 공정하고 꼿꼿한 정치인의 길을 걸어왔다. 필연적 으로 정당 내 공천을 어렵게 받았다. 그러나 이처럼 어려운 공천과 선거 과정을 거치면서도 ‘최연소 국회의장’이 될 수 있었 던 것은 청렴의 가치와 국민에 대한 경애를 마음에 굳게 새긴 것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출신 정치인으로서의 정치 철학은 무엇인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출신이라는 ‘내적 자부심’에서 비롯된 ‘맑은 힘’이다. 정치인, 특히 모교의 모과 출신 정치인은 국가에 대한 적극적인 희생과 헌신, 봉사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사실
서울대 정외과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학업적으로 우수하고 국가의 지도자가 될 인물이라는 기대의 이면에는 좋은 것을 먼저 취하고 싫은 것은 남에게 미루는 개인주의자라는 편견이 있기에 100명 중 1명이라도 그렇게 행동한다면, 그 잘못은 더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지적되어 서울대 동 문의 명예를 흐린다. 따라서 모교 모과 출신으로서 공동체의 건전한 발전과 성장을 위해 매사에 헌신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져왔다. 서울대는 국가와 사회에 의해 선택된 자들이 가는 학교이므로 그에 걸맞은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자부심은 외적으로 표출되는 자만심이 아니라 국가 엘리트로서 가져야 하는 내적 책임감과 높은 수준의 자기 규율이다. 지역구였던 영도구에서 주민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며 ‘정치하며 집 한 채, 땅 한 칸 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지켜냈다는 점에서 나 자신의 이익이 아닌 공동체를 위한 맑은 정치를 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2022년은 연이은 대선과 지선으로 대한민국 선거 민주주의에 핵심적인 한 획이 그어졌다. 제18대 국회의장으로서 두 선거 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가의 지도자와 정치인은 국가 존멸 위기의 중심에서 가장 깊이 고뇌하고 나라의 부흥을 위해 절실히 노력하는 주체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출범한 새 정부와 새롭게 선출된 정치인들이 이전 정권에서 겪었던 한국 정치의 위기를 해결할 기회가 생겼 다는 점에서 희망을 보고 있다.
지난 수년간 우리나라 정치가 정치인의 자세, 국민의 분열, 국제정세 등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음을 느끼고, 나라가 이 위기를 극복하고 잘 되기를 하루도 빠짐없이 간절히 기도했 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가 가진 책임의 무게, 국가에 대한 헌신과 희생의 태도에 대해 고민하며 책도 펴내었다. 《술탄과 황제》에서는 세기의 정복자로 인정받는 술탄과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를 동등한 위치에 세워 천년 제국이 몰락하는 순간 최고 지휘봉을 지닌 국가 지도자의 고뇌와 회한을 다루었다.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그 치열한 투쟁과 백성의 애환을 지켜보는 자의 고심은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컸을 것이다.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에서는 청년 백성 김구가 애국과 우국의 심정을 어떻게 토로했는가를 담고자 했다. 나라를 잃고 절규하며 목숨 건 항쟁을 이어나간 김구의 마음을 헤아리며 정치인으로서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라가 망하거나 나라를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절실함을 느꼈다.
이번 선거를 통해 국가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정치적 움직임의 희망을 보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인과 국민의 정성과 노력, 힘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 정치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진단하는가.
첫째, 정치인에 의한 국론 분열이다. 현재 한국은 ‘갈등 공화국’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국민 간 분열이 심각하다. 그 이유는 정치인들이 정치권력을 얻기 위해 임의적으로 갈등 구조를 만들기 때문이다. 여야 진영 논리가 극적인 우리나라는 자기 편 표는 정의·선이고 상대편 표는 부정의·악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선거에서의 승리라는 결과적 목표를 위해 정치인들은 국민을 분열시키고 양극화한다. 전 국민이 통합해도 국 내외의 정치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힘든 상황에서 국가를 위해
헌신해야 하는 정치인들이 도리어 분파주의적 태도를 바탕으로 표심을 얻으려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분열된 국민을 통합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만큼 정치인들은 전력을 다해 국민 재통합을 위해 노력하고 솔선수범해야 한다.
둘째, 현재 한국 사회에는 포퓰리즘(populism)이 만연하다. 세금은 국민의 땀과 노력으로 거두어진 국가 재산이다. 하지만 세금을 신중하게 사용하지 않고 불필요한 수당이나 혜택에 남용하는 것은 무노동 무임금의 원리를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졌으며, 세금을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해 민심을 얻으려는 표퓰리즘적 매표 행위가 일어나고 있다. 사회 질서가 왜곡되고 사 회 정의에 어긋나는 목소리가 커질 때 우리 사회는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질 수 없다. 특히 한국은 현재 여소야대의 형국 속에서 야당이 정권에 대해 비협조적인 구도로 정치가 진행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악화된 세계 경제의 영향을 받아 국내외적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정치의 안정을 되찾기 위해서는 한국 정치의 문제를 직시하고 여야 협치, 그리고 진영 대립을 떠난 정치인의 국가에 대한 헌신과 봉사의 자세가 필요하다.

가장 가까이에서 정치를 지켜본 사람으로서 한국 정치와 정치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가.
정치학은 ‘결과의 학문’이다. 그러나 정치는 ‘과정의 예술’이다. 민주정치는 과정과 절차를 중시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 정치는 정치권력 획득에 대한 목표 지향적 태도를 바탕으로 결과가 좋다면 과정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에 기반해 있다. 자유 민주주의와 인민 민주주의는 엄연히 다르다. 인민 민주주의는 이름만 민주주의일 뿐 진정한 민주적 정치라고 할 수 없다. 한국은 현재 이 두 체제 사이에 있다.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중시되어야 하는 ‘과정’은 사회와 공동체를 위한 정치인들의 헌신적이고 봉사하는 자세다. 현실정치에 발을 딛기 시작하면 정치적 가치에 대해 긴 시간동안 사색하고 연구할 시간이 부족하다. 국회의원의 경우에도 지역구 민원 관리, 전체적 정치 조율, 대여 투쟁 또는 대야 설득 등 현장에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인이 되기 전에 오랜 시간 동안 충분히 자기 연마를 하고 자질을 함양해야 한다. 정치를 한다는 것은 엄숙하고 사명감 깊으며 헌신적인 행위다. 그만큼 정치인은 자신이 짊어진 책임의 무게를 인지하고 우리 사회 공동체를 위해 어떻게 봉사할 것인가 항상 고민해야 한다. ‘비록 나 한 사람 이름 없이 사라지더라도 자유 민주주의와 국가를 지켜나가기 위해 내 모든 것을 쏟으리라’라는 각오와 투철한 자세로 정치에 임해야 할 것이다.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학생들과 동문들이 한국 정치에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인가.
포르투나(Fortuna, 기회·운명의 여신)의 노크 소리는 준비 되지 않는 자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오직 철저히 준비된 사람 만이 그 기회를 붙잡을 수 있다.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학생들은 모교 모과 출신이라는 것에서 큰 사명감을 지니고 나라의 올바른 정치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서로 토론하며 끊임없 는 자기 계발에 힘써야 한다. 그리고 국가에 대한 적극적인 헌신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자세를 가져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민영선 기자 mysunny@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