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철 도둑 기승~!"
최근 뉴스에서 맨홀 뚜껑, 교통 표지판, 현관문 등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으실 겁니다.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시중에 철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공장'이 된 이웃나라 중국이 원자재를 대량 매입하다보니, 자연스레 가격이 올라가고 철도 귀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밖으로 수출 경쟁력 하락, 안으로 물가 상승의 이중고를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안팎의 분위기 속에 생계난까지 겹치게 되자,
철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무엇이든 훔치고 보자는 신종범죄가 늘고 있다고 하네요.
철(철강)에 대한 국가적 고민은 비단 요즘 일만은 아닌 것 같더군요.
우리들이 즐겨보는 드라마에서도 철에 대한 고민은 나타나고 있습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 나오는 이 대목 기억나시나요?
덕만공주가 대장간에서 부하들에게 준엄하게 명령하던 바로 이 대목 말이죠.
"당분간 무기 만드는 것을 멈추시고 고급 철을 농기구 만드는데 쓰세요."
▲ 가야의 철기 농기구인데, 이웃 나라인 신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겠죠? (출처 : 복천박물관 팜플렛)
당시에 무기와 농기구는 국력을 신장시키는 양대 산맥이었습니다.
▷ 농기구는 내치에 필요한 생활 수단
덕만공주(미래의 선덕여왕)는 이 둘을 한꺼번에 성취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철 활용의 '힘조절'을 명한 것라고 볼 수 있겠죠. 당시로서는 모험이랄 수 있는 무기의 생산 비율을 낮춘 과감한 결정을 내린 것은 농업 생산성 향상을 통해 국력을 증대시키고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그만큼 당시에도 철은 엄청나게 중요한 자원이었다는 것이죠.
철을 통해 선정을 베풀었고, 여성 리더로서의 내적 강인함까지 품고 있었으니
선덕여왕을 철의 여인(?)이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출처 : 복천박물관 팜플렛)
그리고 드라마에서 덕만공주(선덕여왕)와 러브라인을 이루는 남자가 있죠?
김유신 말입니다.
바로 그 김유신의 선조인 김수로왕이 세운 가야는 '철의 나라'였습니다.
김해 인근에 철광산이 발달되었기 때문에 철을 제련했던 흔적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됐다고 합니다.
당시 가야의 주요 수출품이 철로 만든 물건들이었다고 하네요.
복천박물관을 들러,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의 허구성이 가야의 철을 통해 드러났다고 전해들었습니다.
5세기 이전까지 일본은 철을 생산할 능력이 없어 가야에서 철을 수입했다고 하네요.
당시 '철을 얼마나 잘 다루냐?'라는 건 그 나라의 국력과 국위를 상징하는 것이니까요.
문화의 전파는 수준이 높은 나라에서 낮은 나라로 향하는 걸 보면,
가야는 일본에 비해 분명히 선진국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은 문명의 어머니"라고 하는 것이겠죠.
심지어는 4대 발명품 중 종이를 제외한 나머지 나침반, 금속활자, 화약도 모두 철과 연관성이 있었죠.
나침반의 원료는 자철석이고, 금속활자의 주 함유물 혹은 부 함유물 역시 철입니다.
화약의 경우도 그 화약을 담아낼 포나 총의 몸체가 바로 철이기도 합니다.
철의 재질과 강도, 연마도에 따라 무기의 정확도가 결정됐으니까요.
우리 경제 성장의 바탕에도 철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인 10월 26일이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0주기였는데,
포항제철(현 포스코)을 세울 당시 박대통령이 박태준 회장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임자. 철은 산업의 쌀이야. 쌀이 있어야 밥을 해먹지 않겠나?"
실제로 제철 분야는 건설, 조선, 자동차 등 여러 산업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말 그대로 근대화의 초석이 된 것이 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과거에 비해 철에 대한 의존도가 조금은 다를 수 있지만,
여전히 철이란 존재를 빼고서는 문화와 문명을 이야기하기 힘들지 않겠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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