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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나라’ 만들어…지향점 몰라 불안”

 

■ 김형오 전 국회의장

 

▲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지난 25일 서울 마포구 개인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단풍이 든 가로수 길을 걸으며 가을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신창섭 기자

 

 

文, 진영의 시각으로 사태보니
집권 반환점 눈앞인데도
아직도 국정철학·방향 불분명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최악
안보, 6·25이후 가장 불안한데
국론분열은 정부수립후 가장 심각

제대로 땀흘린적 없는 86세대
경륜·지혜 부족한데 기득권세력화
시대고민 풀지못해 외면당해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오는 11월 9일 집권 반환점을 도는 문재인 정부를 평가하며 “미지수 정부”라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경제는 외환위기(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가장 안 좋고, 외교·안보는 6·25전쟁 이후 가장 불안하며 국론 분열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가장 심각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 전 의장은 “집권 기간 절반이 지났지만, 문재인 정부의 국정 철학이 무엇인지, 나라를 어디로 어떻게 이끌어갈지 지향점이 불분명하다”며 “그래서 국민은 불안하고, 자각 있는 사람들은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는 “소득주도성장, 임금인상 정책으로 경제 체질이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졌다”며 “기업을 도둑놈 취급하며 적대시하는 바람에 기업의 활력과 의욕이 다 사라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 법안 등 검찰개혁에 대해서는 “지난 2년 반 동안 ‘적폐청산’의 앞잡이로 삼다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가 터지자 검찰을 개혁하자고 나오는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며 “공수처는 옥상옥이자, 대통령 직할 부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전 의장은 “보수 정당이 대통합을 하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그러나 보수 대통합이 성공하려면 유권자의 강한 압력이 작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 총선 이슈는 누가 더 공정하고 정의롭고 공평하며 도덕적이냐는 싸움이 될 것”이라며 “이는 조 전 장관 사태가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라고 설명했다.

김 전 의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실패하지 않으려면 “5년 단임제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권력을 국회와 당, 정부에 넘겨야 한다”며 “청와대가 강할수록 더 불행해진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25일 김 전 의장의 마포 개인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11월 9일이면 문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을 돕니다. 문 대통령의 지난 2년 반을 평가한다면.

“이 나라가 어떤 나라이고 이 나라를 맡아서 어떤 책무를 하고 가겠다든지, 맡은 동안 이 나라를 어떤 식으로 향상시키겠다든지, 이런 걸 찾아보기 힘든 정부입니다. 역대 어느 정부와 정말 다릅니다. 딱히 내세우는 것도 없고, ‘국민이 주인인 나라’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 등 이런 레토릭(수사적) 차원의 얘기만 하고 있습니다. 정말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나라’ ‘미지수 정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경제를 비롯해 외교·안보, 사회, 정치 등 국정 전반에 걸쳐 총체적 위기가 확산하고 있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외교·안보 분야는 6·25전쟁 이후 가장 심각한 상황이라고 봅니다. 경제도 외환위기 이후 가장 좋지 않습니다. 그럼 사회는 어떠냐. 4·19혁명이나 6·10항쟁 때처럼 국민적 분노와 불안, 불평이 들끓고 있습니다. 정치는 해방 이후 좌우가 극렬하게 대립했던 것처럼 국론 분열이 극에 달한 상황입니다. 현 정권은 적을 만들어 공격해 지지층을 결집하고, 적을 눌러 희열감을 느끼는 식의 정치를 해 왔습니다. 순간순간 단기전에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라가 파편 조각처럼 부서지고 있습니다. 국민이 나라 걱정을 어느 때보다 많이 합니다.”

―공정 요구와 함께 사회 주류층을 형성한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를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셉니다.

“86세대는 완전 기득권 세력이 됐습니다. 86세대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성공하면서 4·19세대나 6·3세대 등 다른 어떤 세대보다 투쟁에 비해 많은 수확을 얻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고민하고 고뇌하며, 연구하고 고통스러워한 기간이 짧다보니 시대 정신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경험, 경륜, 지혜가 부족하다 보니 시대의 고민과 문제를 풀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권력핵심 86세대의 특징은 제대로 땀을 흘려본 적이 없다, 제대로 된 전문가가 없다, 확고한 국가관이 없다는 겁니다. 나라의 중심에 이런 사람들이 앉아 있으니 교체론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올 경제 성장률이 2%를 넘기 힘들다는 전망이 많을 정도로 경제 상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이 지난 22일 국회 시정 연설에서 ‘우리가 지금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머지않은 미래에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지금 대비하지 않으면 엄청난 국가적 재난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재정 확대가 현금 살포식 정책과 근로시간 단축, 임금인상, 고용 경직성으로 흘러 근로의욕이 상실되고 국가 경쟁력은 떨어지며 결국 미래를 잃게 됩니다. 일자리가 창출되는 게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없어지게 되는 겁니다. 외환위기보다 더 큰,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경제 위기가 도래할 수 있습니다.”


文대통령, 공정 앞세워 대입제도 개편 요구
정시확대?… 백년대계 교육정책 호떡처럼 만들어
임기동안 뭔가 하려 하지 말고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기업을 도둑놈 취급…기업활력·투자의욕 사라져
의장시절 3분마다 의사봉… 지금 국회, 너무 일 안해
보수 대통합? 유권자 압력 작용해야 가능

 

 

▲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지난 25일 서울 마포구 개인 연구실 창가에 서서 차를 마시며  “핵무기를 가진 북한에 더 이상 조롱을 당해선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정부는 경제 위기를 정책 실패보다는 미·중 무역 분쟁 등 외부의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경제적 입장에서 보면 이 정부의 경제 정책은 ‘4무(無) 정책’입니다. 첫째, 모든 면에서 그렇지만 특히 중장기적인 방향이 없습니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 시대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경제가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이냐에 대한 중장기 경제 방향이 없습니다. 둘째는 기업의 활력이 없습니다. 셋째는 시장이 활성화할 수 있는 여건이 전혀 없습니다. 넷째는 노사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없습니다.”

―기업들이 국내를 버리고 해외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습니다.

“경제 체질이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졌습니다. 경기는 정부가 일으키는 게 아니라 기업이 일으켜야 합니다. 정부가 기업의 활력을 잃게 만들고 기업을 적대시했습니다. 한마디로 도둑놈 취급을 했다고 봅니다. 정부가 규제를 통해 기업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훼손하면서 기업 의욕이 떨어졌고, 관(官) 주도 경제가 강화됐습니다. 관 주도, 관치 경제도 경제 관료가 하는 게 아니라 청와대 오더로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 청와대 경제사령탑들이 민간 경제를 이끌 만한 능력이나 경험, 경륜이 있느냐. 그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그 사람들이 반(反)시장주의 성향을 띠는 것 같은 위기감을 느낍니다.”

―문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공정’을 언급하며 대입 제도 개편을 주문했지만,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습니다.

“문 대통령이 교육전문가란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교육부 장관이 국회에서 ‘정시 확대는 답이 아니다’라고 말한 지 24시간도 안 돼 대통령이 정반대 주문을 하는 것은 교육부가 교육정책에서 ‘왕따’라는 얘기입니다. 교육은 백년대계입니다. 백년대계를 하루아침에 호떡 장수가 호떡 만들듯 이런 식으로 해선 안 됩니다. 교육 정책이야말로 정권에 관계없이 만들어야 합니다. 문 대통령은 남은 임기 2년 반 동안 무엇을 하려 하지 말고, 대통령 직속으로 교육위원회를 만들고 여야 정치권과 교수, 초·중등 교사, 전문가들을 모아 국가 교육 대계를 바로 세우는 논의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만든 교육 정책을 적어도 5년간 그대로 유지한 뒤 보완 작업을 하고 10년 단위로 큰 방향을 바꾸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책의 일관성, 신뢰성, 공정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조 전 장관 사태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고 있습니다.

“조 전 장관 임명 전에 문 대통령에게 임명은 절대 안 된다는 간곡한 요청을 했습니다. 조 전 장관을 임명하면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에 들어간다고 했는데, 그걸 듣지 않았습니다. 문 대통령은 ‘합법적 불공정’을 없애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조국 사태는 합법적 불공정 문제가 아니라 권력을 이용한 불법, 부정, 치부요 사취입니다. 공직자는 깨끗해야 한다, 공정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 대한민국의 상식을 뒤집고 엄청난 실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실망을 넘어 절망을 준 거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 대통령의 인식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문 대통령이 저런 분이었나 하는, 신뢰에 의문을 들게 하는 실언을 한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진영의 시각으로 사태나 사물을 보기 때문입니다. 나와 뜻이 다르면 가혹하고 엄정하게 대하고, 내 편이면 무조건 감싸는 것입니다.”

김 전 의장은 문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대입제도 개편을 꺼낸 것에 대해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조 전 장관의 자녀들이 ‘부모 찬스’를 이용, 탄탄한 스펙을 쌓아 명문대에 입학한 것에 대한 젊은층의 분노가 폭발하자 조국 사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입 ‘정시확대=공정’이란 카드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교육을 백년대계라고 한 번이라도 생각했으면 이런 졸속, 아니 졸속이라는 표현조차 어울리지 않는 정책을 내놓을 수 없다”며 “교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질타했다.

―그럼, 문 대통령이 실패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문 대통령과 청와대 핵심 측근들은 5년 단임제 정권임을 빨리 인정해야 합니다. 1987년 단임제 개헌 이후 웃으며 청와대를 나온 대통령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문 대통령도 자신 임기는 이제부터 지는 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왜 실패했느냐 하면 자기 임기가 5년 단임제임을 잊고, 마지막까지 권력을 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 20년 정권론, 100년 집권론 이런 얘기가 나오는데 나라와 대통령을 망치는 허황된 얘기입니다. 간신배들이나 하는 망상에 불과합니다. 내년 4월 총선이 끝나면 당이 대통령 말을 안 듣기 시작할 겁니다. 그 전에 대통령이 서운하다 생각하지 말고 당과 정부, 국회에 권한을 넘겨야 합니다. 청와대 힘이 세질수록 더 불행해집니다.”

―국회가 일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그런 국회에 권한을 넘겨도 될까요.

“국회에서 왜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느냐 하면, 일을 안 해도 공천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여당 의원은 일로 평가받지 않고 청와대에 얼마나 잘 보이느냐로 평가받습니다. 야당은 당 대표 등 실세와 연결된 동아줄을 잡고 있느냐, 없느냐로 공천이 좌지우지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국회에서 일 잘하는 것과 공천하곤 상관없으니까, 일을 안 하는 겁니다. 여야 간 대화가 사라지고 협상 정치가 실종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일하는 국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법률안 통과 건수로 따지면 우리 국회가 선진국 국회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국회의장 때 100개가 넘는 법안을 3분마다 하나씩 처리하느라 의사봉을 쉴 새 없이 두드려 팔이 아픈 적도 있었습니다. 법안 처리 건수가 아니라 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인 심의와 토론, 토의 등 이런 과정이 생략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과정과 절차가 철저하게 진행돼야 일하는 국회가 됩니다. 제헌의회에선 법률안을 놓고 읽으면서 토론과 심의를 하는 ‘독해(讀解)’ 절차가 1독해, 2독해, 3독해, 4독해까지 할 정도로 철저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독해 절차가 없어진 것 같습니다. 법률안을 소위원회에서 적당히 합의한 뒤 전체 회의에 올려 통과시키고 있으니 법률안 처리 이후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 대통합이 가능할 것으로 보십니까.

“유권자인 국민이 원하고, 국민적 압박이 있어야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만약 보수 대통합이 된다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하지만 두 가지 장애물을 넘어야 합니다. 보수 대통합이 이뤄지면 총선에서 질 것으로 생각하는 여당에서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온갖 방해 책동을 할 겁니다. 둘째는 보수 정당 간 주도권 싸움입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합의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라를 살리겠다는 대의명분에 입각하면 보수 대통합이 될 것이고, 소리(小利)에 따르면 통합은 물 건너갈 것입니다. 늦어도 내년 1월 중 대통합 원칙에 합의해야 합니다. 대통합이 안 되면 보수 정당에선 선거 연대론이나 연합론이 차선책으로 나오겠지요.”

―내년 총선 이슈는 무엇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십니까.

“저는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누가 더 공정하고 정의로우며, 공평하고 도덕적이냐는 싸움이 될 것입니다. 조국 사태가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이기도 합니다. 가식과 진실의 대결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안보가 될 것으로 봅니다. 대통령의 첫 번째 임무이자 마지막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국토를 보전하는 것입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대며 대통령을 조롱해도 말 한마디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 자존심이 엄청 상해 있습니다. 우리땅인 서해의 함박도에 북한이 레이더를 설치하는데 왜 가만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치 땅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습니까. 안보가 무너지면 끝장나는 겁니다. 하지만 그런 심각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 전 의장은 “지역구 활동만 열심히 하는 의원은 내년 총선에서 떨어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는 “지역구 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의 시민의식이 성숙해서 지역을 대표해 중앙 정치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는 자기들 대표를 뽑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총선을 앞두고 기승을 부리는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공수처법 등 검찰개혁 법안을 놓고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격돌하고 있습니다.

“검찰 개혁은 현 정부 출범과 동시에 내건 공약 사항입니다. 지난 2년 반 동안 왜 안 했느냐 하면 검찰이 권력의 충견 역할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조국 사태가 터지고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려니까, 검찰 개혁을 들고나온 것 자체가 불순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방증입니다. 공수처는 옥상옥 기관이고, 대통령 직할 부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습니다. 대통령 측근 및 친·인척 비리를 조사하는 특별감찰관을 2년 반 동안 임명하지 않으면서 공수처 신설을 주장하는 것은 말 안 듣는 판·검사와 국회의원을 손아귀에 넣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현 정부 들어 한·미 동맹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미국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자주국방을 하는 나라가 있나요. 우리보다 국방력과 경제력이 훨씬 높은 독일, 영국도 전부 동맹을 맺고 있습니다. 선진국이라 해도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하지 않는 나라는 없습니다. 한·미 동맹 강화는 민족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존하는 길입니다. 국방비를 지금보다 두세 배 올리고 10년간 투자를 해도 자주국방은 힘듭니다. 강한 한·미 동맹이 있기에 북한이 함부로 못 하는 것입니다. 한·미 동맹을 자랑스레 생각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것이 한국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기본 축이라고 생각합니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기술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그런 지엽적인 문제로 한·미 동맹이 흔들려선 안 됩니다.”

―한·일 관계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일본에 ‘배상을 받지 않겠다’ ‘우리 정부 돈으로 다 배상해 주겠다’고 하면서 ‘지난 과거 행동을 우리는 잊지 않는다’고 했으면 합니다. 당당하게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침략을 당해서 피해를 봤다는 얘기만 하는데, 그게 100년 됐습니다. 다시는 외세에 침략당하지 않겠다는 결기를 다져야 합니다. ‘계속 나쁜 놈이다’, 이 말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현 정부가 이런 걸 못해서 답답합니다.”

―북한을 대하는 자세가 답답하다는 지적이 많이 나옵니다.

“북한에 대해서도 당당해야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독재적인 국가인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고 나니, 하루아침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정도로 대우가 달라졌습니다. 그런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계속 저자세를 취할 경우, 북한은 갈수록 우리를 우습게 볼 것입니다. 문 대통령은 ‘그럼 전쟁을 하자는 거냐’며 ‘평화냐 전쟁이냐’ 택일하라고 합니다. 이런 억지가 어디 있습니까. 굴종은 평화가 아닙니다. 평화를 지켜낼 힘과 각오가 평화를 지킵니다. 우리가 가진 많은 장점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 유병권 정치부장 ybk@munhwa.com

 

 

 

“백범의 정치이념은 자유… 옳고 그름만 따졌던 이상주의자”

 

 

■ 백범 김구와 김형오

 

‘백범의 정치 이념은 자유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지난 2015년부터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백범(白凡) 김구 선생은 김 전 의장에게 어떤 사람일까. 김 전 의장은 지난해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백범 선생은 ‘옳은 것이냐 옳지 않은 것이냐’부터 생각했지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를 생각하지 않은 이상주의자”라고 평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평생 일관된 삶을 살아온 김구 선생의 삶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이 나라가 어떻게 해서 탄생한 나라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백범 사상의 정수는 무엇입니까.

“희생, 헌신, 책임입니다. 백범은 살기 위해 산 것이 아닙니다. 그의 곁에는 항상 죽음이 있었어요. 백범이 1945년 귀국한 뒤 기독교 잡지 ‘활천(活泉)’이란 데에 글을 썼는데, ‘내가 만일 어떤 자의 총에 맞아 죽는다면 그것은 밀 한 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 같이 내가 죽은 후 나 이상의 애국자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위대한 애국자와 정치가 중에서 생각과 말, 행동이 일치된 삶을 살았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분이 백범입니다.”


―우남(雩南) 이승만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어땠나요.

“이승만 박사와 개인적 관계는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형, 아우 하는 사이로, 1살 차인데 항상 백범이 우남을 형으로 대했어요. 두 사람은 같은 황해도 출신으로, 사이가 안 좋은 건 딱 1년간이었습니다. 백범은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했고, 우남은 굉장히 현실주의자이고 현실정치나 국제정치에 밝았습니다. 공산주의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남북 분단이 오래갈 것으로 읽었습니다. 반면 백범은 이상주의자로, 온몸 던져 독립된 조국인 대한민국만 생각한 사람입니다. 백범은 남과 북의 단독정부를 모두 반대했습니다. 백범을 자기 편의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이승만 단독정부만 반대했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에요.”

 

―백범은 어떤 사람인가요.

“백범은 옳은 것이냐 옳지 않은 것이냐를 생각했지,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백범이에요. 백범은 ‘나의 소원’에서 자신의 정치 이념은 한마디로 자유라고 선언했습니다. 백범은 17살에 동학에 가담했는데, 그는 상민 출신이었습니다. 양반 귀족과 토호들의 멸시를 많이 봐 와서 백범의 의식 속에는 평등 의식이 깔려 있었어요. 다른 말로 하면 계급주의에 반대한 것이죠. 양반·귀족 계급, 나중에 프롤레타리아 계급도 반대했어요. 백범은 공산주의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munhwa.com

 

 

 

‘술탄과 황제’ 쓰려 정계은퇴… 이젠 베스트셀러 작가

 

 

 

김형오 前 국회의장은

18대 국회 전반기를 이끈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청와대, 총리실, 국회를 모두 경험한 보수 정치권의 대표적 원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이던 시절 사무총장을 지냈지만, 이명박 정권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낼 정도로 계파색이 옅고 중립적인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국회의장직을 지내고, 현역 정치를 마감할 때 나이가 정치인으로 한창 일할 때인 63세였다. 당 대표 출마와 국회의원 총선거 출마 얘기가 나왔지만, 선을 딱 긋고 국회를 떠날 정도로 강단이 있는 정치인이다.

국회의장을 지낸 뒤 김 전 의장은 작가로 나섰다. 오스만 제국과 동로마 간 역사적인 전쟁인 ‘콘스탄티노플 함락’ 사건을 다룬 ‘술탄과 황제’란 책 저술에 매진했다. 김 전 의장은 “2009년 1월 의장직 수행 과정에서 터키의 한 박물관을 방문하게 됐는데, 그곳에서 배를 끌고 산으로 올라간 사나이 ‘술탄’의 얘기를 듣고 전율을 느꼈다”며 “국회의원 선거에 한 번 더 출마하는 것보다 책을 쓰는 것이 더 의미 있고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터키를 수차례 방문하고 장기간 체류하며 현장을 방문했고, 100여 권의 관련 저서를 탐독하며 책을 집필했다. 2012년 처음 출간된 그의 책은 초판 38쇄, 개정판 9쇄를 찍을 만큼 사랑을 받으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김 전 의장은 국회의장직을 수행하면서 여러 나라의 지도자로부터 받았던 178점의 선물 일체를 지난 9월 국회에 기증했다. 소장해온 2000여 권의 책과 5000여 점의 기록물도 국회도서관에 맡겼다. 김 전 의장은 “이번 기부를 계기로 우리나라에도 국회의장이 관련 기록물을 남기는 관행이 자리 잡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에서 5선을 기록했다. 지역보다 국가 전체의 이익을 우선하는 큰 정치인으로서 의정 활동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47년 경남 고성 출생 △경남고,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동아일보 기자 △14∼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원내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 △18대 전반기 국회의장 △부산대 석좌교수

손고운 기자 songon11@munhwa.com

 

 

[2019-10-30 문화일보] 인터넷판 기사가 세 개로 나뉘어져 있어 URL 대신 문화일보 지면 원본을 그대로 실었습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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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연합뉴스(2019-06-26)


“내 양심은 내 죽음을 초월하고 나라를 사랑했습니다.
내가 만일 어떤 자의 총에 맞아 죽는다면
그것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듯
이 나라에 많은 애국자를 일으킬 것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께서 돌아가시기 3년 전인 1946년 7월
기독교 잡지 「활천(活泉)」에 유언처럼 남기신 글입니다.
자신의 최후를 예견이라도 한 걸까요?
백범이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진 지
어느덧 70 성상(星霜)을 헤아립니다.
그사이 강산이 일곱 번 바뀌었습니다.

1949년 7월 5일 영결식 때 백범과 평생 한길을 걸었던
엄항섭 선생이 바친 추도사는 지금도 심금을 울립니다.
“몸은 무상해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늘의 낙원에 가셨을 것이로되
그 뜻과 정신은 이 민족과 역사 위에 길이길이 계실 것입니다.”

당신께선 독립선언서 공약 3장에 담긴 표현처럼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마지막 사람이었습니다.
해방 후에는 민족의 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막기 위해
그토록 노심초사하고 분투하셨습니다.

올해 우리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백범 선생님 서거 70주기를 맞은 오늘
특별히 뜻과 정성을 모아 두 권의 책을 영전에 바칩니다.
한국과 중국 열한 명의 학자·전문가가 함께 이뤄낸
중국 대륙 답사기입니다.
선생과 임시정부 애국지사들이 걸어간
그 멀고 험난한 노정을 되밟으며
독립을 위한 처절한 투쟁의 흔적과 발길을 복원한 책입니다.
그러나 27년에 걸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기나긴 역정과
백범을 비롯한 수많은 의사 열사 지사들의 피땀 어린 족적을
이 두 권의 책에 어찌 다 담을 수 있겠습니까.
부족한 점도 많고 사실 확인이 어려운 부분도 많아
혹시나 백범 선생께 누를 끼치지는 않을까 두려운 마음입니다.
그래도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이만한 저작,
이만한 성과도 드물지 않을까 외람되이 자부해 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뜻깊은 날에
광활한 중국 대륙에서 오로지 조국 광복과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신 분들을 생각하며 옷깃을 여밉니다.
임시정부 27년은 백범의 표현대로
‘죽자꾸나’ 시대와 ‘죽어가는’ 시대였습니다.
피 끓는 청년 동지들이 죽기 위해 선생을 찾아와
기꺼이, 또한 장렬히 목숨을 초개같이 던졌습니다.
그런 분들을 선생께선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존재라고
우러러보며 눈물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일본군의 공습과 폭격으로 천신만고의 피란길을 헤쳐 간
임시정부 대가족들의 눈물겨운 사연도
1만 리 여정만큼이나 기다랗게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광복된 조국은 선생의 염원과는 정반대로
남북으로 나눠지고 이념으로 대립하였습니다.
선생께선 그 대결의 희생이 되셨고,
그로부터 꼭 1년 후 선생께서 그렇게나 염려하셨던
동족상잔의 대참사 6·25 전쟁이 일어납니다.

떠나신 지 70년을 맞는 오늘 이 시점에도
우리 내부의 갈등과 대립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세계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나가며
인류 문명의 획기적인 전환기를 맞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지난 시대의 원망과 회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생께선 오늘 우리의 이런 못난 모습을 알고 계셨을까요.
후손들에게 특별히 당부하신 말씀이
죽비처럼 어깨를 내리칩니다.

“우리의 적이 우리를 누르고 있을 때에는
미워하고 분해하는 살벌 투쟁의 정신을 길렀었거니와,
적은 이미 물러갔으니 우리는 증오의 투쟁을 버리고
화합의 건설을 일삼을 때다.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
동포간의 증오와 투쟁은 망조다.”
「나의 소원」 중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우리가 화합과 협력은커녕 서로 갈려서 싸운다면
김구 선생을 비롯한 선열들을 무슨 낯으로 보겠습니까.
남남갈등은 이대로 둔 채 어찌 남북 평화통일을 이룬다 하겠습니까.

그토록 숱한 피와 땀과 눈물로 되찾고 지켜낸 이 나라입니다.
조국 대한민국을 위하여
새로운 땀과 눈물을 흘려야 할 때가 아닌가요.
이 가열한 세계 경쟁과 한반도를 둘러싼 격랑의 파도를
헤쳐 나가기 위해선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격려하고 협력해도 모자랄 지경이 아닌가요.

선생께서 간절히 바라고 구하셨던 나라는
‘높은 문화의 힘’을 발휘하는 문화국가입니다.
BTS와 같은 한류문화가 세계인의 큰 사랑을 받는 모습을
김구 선생께서 보신다면 얼마나 흐뭇해하실까요.
우리 기성세대들은 세계로 나아가려는 한류세대들의
본보기 역할을 하고 있는가요.
‘높은 문화의 힘’은 기성적 고정관념이나
경직된 사고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끼리 싸우고 분열하고 서로 미워하라고
선열들이 고귀한 헌신과 희생을 하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윤 동지, 훗날 지하에서 만납시다!”
거사 당일 윤봉길 의사를 사지(死地)로 보내며
당신께서 목이 메어 하신 말씀이 우리 가슴을 적십니다.
그 마지막 작별 인사처럼 선생과 동지들은
효창원 지하에서 다시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죽어서도 죽지 않은 당신을
여기 이 지상에서 이처럼 새롭게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애국 애족 애민의 투철한 자세를 놓지 않으셨던
백범 선생님의 큰 뜻을 면면히 기리고 이어나가겠습니다.

100주년, 그리고 70주년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
우리는 그 새로운 시작의 출발선에 섰습니다.

백범이시여, 영원히 꺼지지 않는 겨레의 혼불이시여!
언제까지나 빛나고 타오르며
조국의 앞길과 앞날을 환히 비추고 밝히소서.
과거로, 뒤로 가는 나라가 아니라
앞으로, 미래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이 되게 하소서.
당신께서 그토록 염원하셨던 완전한 독립,
통일 대한민국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는
용기와 지혜를 저희들에게 주소서. 

- 2019년 6월 26일,
사단법인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
김형오 삼가 올립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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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도 "물가폭등에 초과지출" 걱정…임정 마지막 예산서
연합뉴스 | 2019-05-25 


1944년 세입 98%는 中 지원금·세출 72%는 군비…의원은 무급 명예직

(세종=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여느 정부와 다를 바 없이 재정을 챙기며 꼼꼼한 세입세출 예산서를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세출은 광복을 위해 대부분 군비에 집중됐지만, 임시정부 수립을 기리는 임헌기념일 비용이나 의회 예비비도 세세하게 책정됐다.

 

활짝 웃는 백범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광복 70주년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광주 동구 학2동 백화마을 내에 자리잡은 광주백범기념관이 9월 개관을 앞두고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은 기념관 입구에 전시된 백범 김구 선생의 모습. 2015.8.14 pch80@yna.co.kr

 

25일 국회예산정책처 예산춘추에 실린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의 예산'에 따르면 1944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세입세출 총액은 5천332만2천620 위안이었다.


충칭에 안착하기 전까지 긴 피란길에 올라야 했던 6년 전(57만8천868 위안)보다 92배 늘어난 액수다. 하지만 당시 전쟁 탓에 물가가 뛰었던 것을 고려하면 여력이 늘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백범 김구 선생도 전년도 예산설명서에 "물가폭등으로 인한 막대한 초과지출이 예상된다"고 언급했다.

1944년 임시정부의 세입 중 대부분은 중국 정부가 지원한 '특종수입'으로, 총세입의 98.3%(5천240만 위안)를 차지했다.

세출의 72.0%(3천839만 위안)는 군비였다. 오늘날 국회에 해당하는 임시의정원에는 63만8천900위안이 배정됐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기념사진
(서울=연합뉴스) 국립광주박물관이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아 오는 28일부터 12월 15일까지 선보이는 기념전시 '대한민국 100년, 역사를 바꾼 10장면'에 전시되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기념사진. 2019.2.27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photo@yna.co.kr

 

임시의정원 지출 가운데 3분의 1은 회의 진행비에 해당하는 의회비(22만7천500위안)였고 의원 거마비(21.3%), 예비비(17.0%), 비서국비(11.7%), 신수금(10.5%) 등으로 구성됐다.

또 임시정부 수립을 기리는 임헌기념일 기념비로 소액이지만 1천 위안을 책정한 것이 눈에 띈다.

당시 임시의정원은 의장 1명과 부의장 1명, 의원 55명, 비서국 직원 6명으로 구성됐다.

의원은 명예직이라 급여를 별도로 받지 않고 매달 200위안의 거마비만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장은 급여로 월 1천 위안, 부의장은 800 위안, 비서장과 비서, 경위는 각각 750 위안, 650 위안, 550 위안을 받았다.

당시 회계연도가 9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라는 점을 고려하면 임시정부의 1944년 예산서는 광복 이전 임시정부의 마지막 예산서다.

권순영 예정처 정책총괄담당관은 보고서에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가 오늘날과 같은 예·결산 체계와 기록을 남겼다"며 "각목체계와 산출내역 설명, 예비비 제도를 갖췄고 예산안 심의·확정·추인 체계도 지금과 똑같았다"고 설명했다.

 

 

heeva@yna.co.kr

 

 

[연합뉴스 기사원문]  ☞ 바로가기 ☜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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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쯤 <술탄과 황제>를 꼼꼼하게 읽고 서평을 써 준 블로거 bookworm님은 작가와 독자로서 인연을 맺은 소중한 분입니다. 그 때에도 받은 편지를 블로그에 실었습니다. 제가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를 출간한 사실을 알고 책을 읽은 후 편지를 다시 보내왔습니다.

너무 반갑고, 정치인이 아닌 작가 김형오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제 책을 기다려 주었다는 사실이 감사했습니다. bookworm님의 양해를 얻어 받은 편지 전문을 아래에 싣습니다.

 

안녕하세요. ^^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2년전 <술탄과 황제>를 읽고 감동해 글을 올렸던 bookworm입니다. 의장님께서 그 글을 보시고 저에게 친필 사인하신 책을 보내주셨었지요.

 

그 책은 저의 책장에 항상 소중히 꽂혀 있습니다. ^^

 

얼마전 혹시 새책을 쓰셨을까 궁금해 검색해보니 작년에 책을 내셨네요! 제목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습니다. 인물의 내면 깊이깊이 들어가 철저히 탐구한 후 스스로 술탄이 되어, 그리고 황제가 되어 쓰신 <술탄과 황제>처럼 스스로 완전한 김구가 되어 글을 쓰셨으리라는 것을요. 또 어떤 진정성으로 저에게 크나큰 감동을 주실까, 기대가 됐지요.

 

부끄럽지만 저는 <백범일지>를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여러 판본이 있고, 후대의 사람들이 수정을 많이 가했다는 것을 알기에 원전에 집착(?)하는 저로서는 내키지가 않았지요. 원저자의 뜻에서 혹시나 토씨 하나라도 어긋날까봐 신경이 쓰였으면 다른 평전을 읽었으면 될텐데 그마저도 하지 않았으니... 그래서 지금까지 백범에 대한 책은 어릴 때 읽은 위인전이 전부였었네요.

 

이번에 처음으로 읽은, 백범에 대한 제대로 된 책은 정말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책날개에 쓰신,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날 때마다 '이럴 때 김구 선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가늠하며 답을 찾았다고 하신 내용을 처음에는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읽으면서 몇번이나 눈물을 쏟을 것 같았고, 의장님께서 하신 말씀을 감히 알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들이 다 가능했을까요? 아무리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는 하지만, 백범은 어떻게 평생을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요? 보통 사람들은 감히 따라할 엄두도 못 냈을 위대한 삶과 행적...

 

어렸을 때 읽었던 위인전에 묘사된 백범의 어린 시절은 다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었을 때의 일은 일본인을 죽인 것 말고는 희미하고, 나머지는 우리나라 사람이면 백범에 대해 읽고 들어서 당연히 알고 있는 내용 정도입니다. 그러다보니 백범은 제 기억에 박제화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독립투사들을 뒤에서 조용히 지휘했던, 인자하게 웃는 검은 두루마기의 노인, 정도로요. 보지는 않았지만 작년인가 개봉했던 영화 <대장 김창수>가 누구에 관련된 내용인지 알고서야 개명전 백범의 이름을 떠올렸고, 위인전에서 읽었던 투쟁적인 면모가 얼핏 떠올랐었지요.

 

저는 1974년생입니다. 저에게는 뇌리에 남는 기억이 있는데, 중고등학교 때인 80년대 말 혹은 90년대 초쯤 읽은 명랑소설이 있어요. 제 세대의 책은 아니었는데 조흔파의 명랑소설 부류 비슷한 학원물이었지요. 아마 60년대나 70년대에 출판된 오래된 책을 읽었던 것 같아요. 중학생인 주인공들이 길거리에서 자기네들끼리 사요나라~하고 장난삼아 인사했는데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나타나 아이들의 따귀를 때립니다. 그 아저씨는 자신이 독립운동가였다며, 한국어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고 고초를 겪었는지 아냐고 호통을 치면서 옷을 벗어 고문흉터를 보여주지요.

 

그 장면이 약간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저에게 독립운동가란, 위인전에 나오는 머나먼 인물이었습니다. 내 옆에 살아 숨 쉬는 누군가가 아닌, 범접할 수 없는 어떤 이미지 같은 존재였죠. 그런데 6, 70년대에 출간된 그 책에서 독립운동가가 나이든 노인도 아닌, 길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장년의 아저씨로 묘사가 됐네요. 그때 처음으로 시간의 흐름에 필수적으로 따를 수 밖에 없는 관념의 차이... 같은 걸 인식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나마 나이가 들면서 수 십 년의 세월을 경험하며, 백범이 그리 먼 세대의 인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게 됐지요.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과연 백범은 어떤 의미일지... 2, 30년 전의 시대가 아득하게 느껴졌던 저의 어린 시절을 돌아봤을 때, 지금 젊은이들은 제가 생각했던 간극보다도 훨씬 더 멀어졌겠지요. 그리고 그들이 앞으로 수 십 년의 세월을 살면 살수록 더 멀어지겠지요. 우리 조상들이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기 위해 피흘렸던 기억들이 지금 젊은이들이나 후세 사람들에게는 한산대첩이나 행주대첩 정도의 막연한 느낌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제가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를 읽으면서 더 감격했던 것은 위인전에 박제된 인물이 아닌, 가까운 시대의 살아 숨쉬는 영웅을 직접 접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영웅이 사라지고 없는 요즘 시대 최후의 영웅을 만나는 것 같았지요. 이런 위대한 인물이 사람들 마음속에 오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이렇게 생생한 저작을 또 내놓으시다니, 감사하고 또 감사해서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상해 임시정부 건물에 갔을 때 그분들이 어떻게 지냈을지 눈에 보여 처연해지고 숙연해졌는데 굳이 상해까지 가지 않아도 이 책 한권으로 그 이상의 생생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인간 역사와 함께 해온 펜의 크나큰 힘인 것 같습니다.

 

의장님께서 하시듯 '이럴 때 김구 선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저를 포함한 우리 국민의 백분의 일이라도 고민해본다면, 많은 문제들이 저절로 풀리고 사라질텐데, 하는 생각을 합니다. 국민들이 아닌 정치인들만이라도 그렇게 고민한다면 지금같이 편이 갈려 증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텐데요. 우리 시대의 영웅이 너무나 간절합니다.

 

사람들의 뇌리에 불러들여 충격과 감동을 주신 술탄, 황제, 그리고 김구... 앞으로는 어떤 깨달음과 감동을 주실까요? 기대와 함께 기다립니다.

 

늘 사회의 추상같은 원로로 남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존경을 담아

 

bookworm 드림

 

 

 

"bookworm의 서재"

: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 서평 ☞ 바로가기 ☜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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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작은책방 2019.04.10 09: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와 독자의 아름다운 만남, 소중한 인연이 정말 보기 좋습니다.

    Bookworm님의 서재를 방문하렵니다.

  2. BlogIcon bookworm 2019.04.26 17: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
    친히 사인해서 보내주신 귀한 책 감사히 잘 받았다고 인사드리려 했으나 어찌어찌 시기를 놓쳤습니다. 이제야 늦게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얼마전 엄마들과의 독서모임에서 이 책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책을 추천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뀐 일정때문에 참석을 못해 다른 참석자가 정리한 내용을 일부 올려드립니다.

    "이 책은 이제까지의 백범일지와는 전혀 다른 형식의 책입니다.
    백범에게 애정을 가지고 그를 다년간 연구한 작가가 문답형식으로 백범의 일대기를 조명할 수 있게 써 내려간 책입니다.

    혈기가 넘치고 거칠것 없었던 젊은날의 백범, 그를 변화시켰던 사상들과 사건들, 그리고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 임시정부 기간동안의 외롭고 고단했던 여정과 나라를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그를 거쳐간 젊은 영웅들, 독립 후 열강들에 의해 국치가 좌지우지 되던 현실을 슬퍼하며 진정한 독립을 외쳤던 그의 마지막까지...

    읽는 내내 마음이 좋지 않으면서도 꼭 읽어야 하는 책 임에 모두들 공감했습니다.

    독립투사들..그들은 어떻게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수 있었을까요?
    현재의 우리의 여러 현실과 교육 아래에서는 백범과 같은 위정자는 더이상 나오지 못하는 것인가요?
    여러 씁쓸한 질문들을 던지며 대화는 이어져 갔습니다.

    백범의 위대함은 그가 가진 능력보다는 항상 민초들을 위한 마음에서 왔던게 아닌가 합니다. 문화와 교육을 통해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 따뜻한 마음에서..."

    한 권의 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늘 감사드립니다.

특강 | 우리가 몰랐던 백범 김구

치하포 의거로 발현된 청년 김구의 피 끓는 애국심

 

 

227일 오전 8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청년 김구에 대해 특강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227일 오전 8시 서울 용산구 효창동에 위치한 백범김구기념관에서는 시민 250명이 대회의실을 가득 메운 가운데 특강이 진행됐다. 주제는 우리가 몰랐던 백범 김구, 그 두 번째 이야기로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장을 맡고 있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강사로 나섰다.

 

100년 전 나라를 되찾고자 온 국민이 떨쳐 일어섰던 3·1운동이 일어났다. 10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이날 특강에서 김 전 의장은 평생을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해 살아온 백범의 우국지사로서 면모를 생생하게 되짚어 설명했다. 지난해 6월 김 전 의장은 백범일지를 문답식으로 정리한 책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를 펴냈다. 특강과 책에 담긴 내용을 통해 3·1운동 이전까지 청년 김구의 뜨겁고도 치열했던 애국적 삶을 되돌아본다.

 

 

백범 인생의 터닝 포인트

 


18962월 제2차 청국 기행에 나선 김구는 평안도 안주에서 다시 발길을 돌린다. 을미사변에 분개해 1월부터 전국 곳곳에서 을미의병이 봉기한 데다 아관파천, 단발령 정지(2) 같은 소식을 듣고 국내에서 할 일을 찾아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김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고 그를 일약 전국적인 유명 인사로 만든 치하포 의거는 이때 일어났다. 189639, 21세의 김구는 18958월 일어난 명성황후 시해사건(을미사변)의 원수를 갚고자 황해도 치하포에서 일본 육군 중위 스치다 조스케를 처단한다. 이른바 치하포 의거다. 김구는 나루터 여관 주인 이화보에게 왜놈의 시체는 바다에 던져 물고기 밥으로 주라고 이른 뒤 다음의 포고문을 써 벽에 붙였다.

 

국모(민비)를 시해한 원수를 갚기 위해(國母報讐) 이 왜놈을 죽였노라. 해주 백운방 텃골 김창수.’ 

 

그러고는 이화보에게 이렇게 명령한다.

 

네가 이 동네 동장이라 하니 안악군수에게 사건 전말을 알려라. 나는 집으로 돌아가 연락을 기다리겠다. 왜놈의 칼은 내가 가져간다.”

 

김 전 의장은 치하포 의거는 을미사변에 따른 순간적 의분으로 벌어진 돌발 행동이었지만 김구의 일생에서 훈장과도 같은 상징적 사건이 됐다고 평가했다. 실제 김구는 백범일지에도 어떤 장면보다 치하포 의거를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사람의 일은 모름지기 밝고 떳떳해야 하오. 세상을 속이고 구차히 사는 것은 사나이 대장부가 할 일이 못 됩니다.’

 

스치다를 죽인 김구는 본가로 가지 말고 다른 곳으로 피신하라는 동학당 동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또한 그는 집으로 돌아가 그동안 있었던 일을 부모에게 낱낱이 전했고, 부모 역시 피신을 권하지만 듣지 않았다.

 

이 한 몸 희생해 만인에게 교훈을 줄 수 있다면 죽더라도 영광된 일입니다

 

치하포 의거는 피 끓는 애국 청년의 처절한 절규였다. 조선인이 살아 있음을 내외에 과시한 의거였다. 나라의 왕비(명성황후)를 무참히 시해한 일본인에게 복수하지 않으면 이는 국가적 수치이고 민족 자존심에 먹칠을 하는 일이었다. 유교의 윤리관, 동학혁명의 영향, 조선인으로 태어난 자의 의무와 사명감이 백범을 행동하게 했다.-‘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중에서치하포 의거 이후 김구는 해주 감옥에 갇혔다. 죄목은 세 가지. 첫째는 동학농민 봉기 때 동산평의 일본인 미곡 탈취 사건, 둘째는 장연에서의 산포수 거사 사건, 셋째는 치하포 사건이었다. 김구는 18967월 초 인천 감옥으로 이감됐다. 갑오개혁 이후 외국인 관련 사건을 다루는 특별 재판소가 인천에 생겼기 때문이다. 8월 마지막 날 인천 감옥에서 첫 신문이 있었다. 경무관 김윤정이 물었다.

 

치하포에서 39일 일본인을 살해했느냐.”

 

김구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날 내가 그곳에서 국모의 원수를 갚고자 왜구 한 명을 때려죽인 사실은 있소.”

 

법정 안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자 옆 의자에 앉아 신문 과정을 지켜보던 일본 순사 와타나베가 통역에게 까닭을 물었다. 김구는 죽을힘을 다해 이렇게 외쳤다.

 

지금 이른바 만국공법이나 국제공법 어디에 국가 간 통상 화친조약을 맺어놓고 그 나라 임금을 시해하라는 조문이 있더냐. 이 개 같은 왜놈아, 너희는 어찌하여 우리 국모를 시해했느냐. 내가 죽으면 귀신이 되어, 또 살면 온몸으로 네 임금을 죽이고 왜놈을 씨도 안 남기고 모조리 죽여버려 우리나라의 치욕을 씻으리라.”

 

와타나베는 치쿠쇼, 치쿠쇼”(본뜻은 짐승이지만 주로 욕으로 쓰는 일본어) 하며 대청 뒤쪽으로 도망쳤다.

 

김구는 재판소 관리들에게 따지듯 물었다.

 

나는 시골의 일개 천민이지만 백성의 의리로 국가가 치욕스러운 일을 당한 것이 부끄러워 왜구 한 명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 동포가 왜인들의 왕을 죽여 복수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지금 당신들은 몽백(국상을 당해 소복을 입고 백립을 쓰는 것)을 하고 있는데, 춘추대의에서 나라님의 원수를 갚기 전까지는 몽백을 아니한다는 구절도 읽어보지 못했습니까. 한갓 헛된 부귀영화와 국록을 도적질하는 더러운 마음으로 어찌 임금을 섬긴단 말입니까.”

 

김구의 당찬 꾸짖음에 관리 수십 명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창수 말을 들으니 충의와 용기가 실로 놀라워 당혹스럽고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날 이후 김구는 감옥에서 대장이 됐다. 수백 명의 관원이 만나는 사람마다 제물포가 개항하고 감리서가 문을 연 이래 처음 보는 희귀한 사건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벌렸기 때문이다. 김구를 보려고 면회를 청하는 이들도 날이 갈수록 늘었다. 952차 신문일에는 경무청 주변이 인파로 뒤덮였다. 담장과 지붕 위까지, 경무청 뜰이 보이는 곳 어디든 구경꾼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올라가 있었다.

 

육신은 가두어도 정신은, 영혼은 가둘 수 없었다. 일제의 국권 침탈로 이미 속국이나 마찬가지가 된 나라에서 감옥은 백범에게 감옥 안의 감옥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아니, 오히려 김구는 감옥 안에서 나름대로 독립을 쟁취했다. 목숨에 연연하지 않았다. 죄수뿐 아니라 간수, 뭇 백성들에게까지 공감대를 넓혀갔다. 어느 순간 백범은 감옥 안에서 대장이 돼 있었고, 그의 명성은 감옥 담장을 훌쩍 뛰어넘어 바깥세상 멀리까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육신보다 정신이 먼저 탈옥해 있었다. (중략) 국난에 임해 영웅이 등장하고 위기에 지도자가 나온다. 이 한 몸 나라 위해 던지기로 한 청년 지사 김창수(백범)(치하포 의거를 계기로) 어엿한 지도자로 영글어간다. -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중에서

 

 

사형 직전 일어난 두 번의 기적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장을 맡고 있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 [박해윤 기자]


1896117일자 독립신문에는 중죄인 5명과 함께 살인강도 김창수(김구)를 교수형에 처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신문이 배포된 뒤 김구가 갇혀 있는 감리서가 들썩였다. 죽기 전 그를 보려는 면회객 행렬이 옥문 밖까지 길게 이어졌던 것. 그러나 두 번의 행운이 겹치면서 김구에 대한 사형 집행은 이뤄지지 않았다. 첫 번째 행운은 고종이 사형을 중지하라는 어명을 내린 것이었다. 당시 사형은 임금의 재가를 받은 뒤 집행됐는데, 임금이 교수형 집행을 재가한 상태에서 뒤늦게 대궐 안에 있던 승지 가운데 하나가 명부에 적힌 김구의 죄명 국모보수를 우연히 보고 임금에게 안건을 다시 올렸고, “이 사안은 국제관계와도 맞닿아 있으니 일단 사형 집행을 중지시키라는 어명이 내려온 것이다. 두 번째 행운은 시간과 결부됐다. 사형 집행 중지 어명은 내려졌지만 인천 감리서까지 어명이 전달되기에 시간이 촉박했던 것. 그러나 천만다행히도 사형 집행을 사흘 앞두고 서울과 인천 사이에 장거리 전화가 개설돼 임금의 지시가 감리사 이재정에게 극적으로 하달됐다. 김구는 만약 서울-인천의 전화 개통이 사흘만 지체됐어도 나는 스물한 살 나이로 형장의 이슬이 돼 사라지고 말았을 운명이었다백범일지에서 회고했다.

 

이와 관련해 학계 일각에서는 이견을 내놓고 있다. ‘고종이 직접 걸어온 구명 전화이야기는 서울과 인천 사이에 장거리 전화가 놓이기 전이므로 고종의 구명은 전화가 아닌 전보로 전달됐을 것이라는 얘기다.

 

죽음을 각오하고 결행한 치하포 의거를 계기로 청년 김구는 모진 고초를 겪으면서도 일평생을 나라를 되찾는 데 앞장서게 됐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백범 김구에 대한 이야기는 독립과 자유를 향한 그의 혁명가의 삶을 되짚어보는 두 번의 특강을 통해 소개될 예정이다.

 

 

남북관계 잘되려면 주변국 지지 필수적


우리가 몰랐던 백범 김구, 그 두 번째 이야기특강 이후 김형오 전 국회의장을 따로 만났다. 김 전 의장은 “100년 전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는 선조의 치열한 몸부림이었다면, 2019년을 사는 우리에게는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각성의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대한제국 망국의 교훈은 지도자와 국민이 국제정세에 어둡고 투철한 애국심으로 무장돼 있지 않으면 나라를 잃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100년 역사를 교훈 삼아 앞으로 미래 100년을 준비하는 각성의 계기로 삼아야겠죠.”

 

대한민국 미래 100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세계 정세 흐름을 분석하고, 우리를 지켜낼 힘을 키워야 합니다. 그래야 남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그러자면 내부적으로 화합하고 단결해야죠. 김구 선생은 세계 평화의 중심이 되는 나라를 만들자고 말씀하셨어요. 최근 남북을 포함한 동북아가 세계 평화의 중심축으로 작동할 기회를 잡고 있습니다.”

남북평화와 남북공존공영을 위한 방법론을 두고 우리 내부에서 이견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끼리가 틀렸다는 게 아닙니다. 남북이 손잡고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우리 민족이 자존감을 갖고 국제정세에 대응하는 것은 옳지만, 세계적 흐름 속에서 작동하도록 하려면 폭넓은 외교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우리의 국제정세 기본 축은 한미관계입니다. 한미안보동맹이 흔들리면 나라의 중심축이 흐트러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일관계도 지금처럼 어긋나 있게 방치해선 안 됩니다. 남북평화와 남북공존공영을 위해서는 한 나라라도 더 우리의 입장을 지지하도록 당겨 와야 합니다.”

 

한일 간에는 위안부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한일 외교관계가 파탄 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국익을 위한 외교는 냉혹하면서도 고차원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한중관계도 기로에 서 있는 모습입니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대한민국이 그들에게 어떤 존재로 인식되느냐가 중요합니다. 한국이 미국에게 중요한 존재인가, 중국에게 필요한 존재인가에 양국관계가 달려 있습니다. 국제관계는 투자 대비 효율이 떨어지면 언제든 포기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국이 북한 눈치를 보면서 한국을 우습게 여기도록 방치해선 안 됩니다. 중국이 남북한을 균형 있게 대하도록 하는 게 1단계이고, 남북이 뜻을 모아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는 것이 중국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설득하는 게 2단계 목표입니다. 남북관계가 잘되려면 무엇보다 주변국의 지지가 필수입니다.”

 

 

  

주간동아 2019.03.01 1178(p24~27)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19-03-04 주간동아]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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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주의 맛있는 인터뷰] 백범 사상 선양에 앞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

백범의 솔선수범·희생·헌신, 한국 정치인들이 가져야 할 덕목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백범 좌상 앞에서 백범은 솔선수범, 희생, 헌신을 체화한 분이라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kimjh@


대한민국 정치 풍토에서 무계파·무계보이면서 큰돈도 없이 국회의장 자리에 오른 사람은 흔치 않다. 김형오(71) 전 의장은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합리적 보수주의자, ‘여의도의 신사등으로 불릴 만큼 정치인 중에서 비교적 괜찮은 이미지를 남겼다.

 

그는 정계 은퇴 후 왕성한 저작 활동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3년 전부터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회장을 맡아 백범 사상을 선양하는 데 앞장서 오고 있기도 하다.

 

3·1운동 100주년과 백범 서거 70주기를 맞아 그를 만났다. 인터뷰는 서울 용산구 임정로 26 백범기념관 안의 회장실에서 이뤄졌다. 그는 예의 논리정연함으로 기자의 질문에 막힘 없이 답했으며, 대한민국 정치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 국가 비전 등을 풍부한 경험과 식견으로 풀어냈다.


  •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 맡아

  • 상하이~충칭 임시정부 역정 펴낼 예정

  • 백범일지풀어 쓴 백범 묻다인기

  • 정치 지도자들이 배워야 할 덕목 강조

  • 일제 잔재 청산 대승적 견지에서 봐야

  • 현 정부 외교안보 중요성 등한시 염려

  • 국민 친화력 탁월, 정책 유연성 떨어져

  • 개헌의 참뜻, 핵심은 권력구조의 재편

  •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 분산시켜야

  • 한국당, 돈 들여 연 전당대회 자승자박

  • 여당, 경남지사 판결 불복 전략적 실수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기념사업회회장은 어떻게 맡게 됐나?

“2015년 김구 선생 아들인 김신(작고) 장군께서 강권해 맡게 됐다. 마지막 봉사라는 소명의식으로 임하고 있다.” 


-올해가 백범 서거 70주기인데, 기념사업회 차원의 특별한 계획은?

올해는 백범 서거 70주기일 뿐만 아니라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이다. 서거일인 626일에 뜻깊은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상하이~충칭까지 임시정부 역정을 담은 답사기가 곧 나온다. 지난해 한·중 학자 11명으로 전문가 팀을 꾸려 답사하고 당시의 모습과 현재 변화된 모습, 임시정부와 김구 선생의 역할, 임정 요인들의 고난의 삶을 엮은 책이다. 역사에 남을 역저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


-지난해 출간한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가 화제인데, 어떤 책인가?

백범과 관련해서는 수많은 책들이 나와 있다. 백범일지는 우리 국민들의 교양서 아닌가. 하지만 백범일지를 제대로 읽고 백범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백범 묻다…〉백범일지를 쉽게 풀어 쓴 책이다. 60개 항목의 문답을 싣고 항목마다 나 자신의 해설을 달았다.”


- 백범 묻다…〉는 곧 6쇄가 나올 정도로 많이 읽히고 있다. 백범의 리더십에서 오늘날 정치 지도자들이 배워야 할 덕목은 뭔가?

백범은 말과 생각과 행동이 초지일관된 삶을 산 보기 드문 분이다. 그리고 솔선수범과 희생과 헌신이 몸에 배어 있는 위인이다. 솔선수범과 희생과 헌신, 21세기 한국 정치 지도자들이 가져야 할 덕목이 아닐까.”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데, 그 역사적 의미는?

국내적으로 근현대사를 이등분하라면 3·1운동 이전과 이후로 나눌 만큼 중요한 사건이다. 국민·민중 같은 의식이 발현된 상징적 사건이다. 전 국민·전 계층이, 종파를 초월한 전 종교인들이, 전 지역 주민들이 장기간에 걸쳐 독립이란 하나의 목표를 위해 총궐기하고 단결하고 단합한 사건이다. 백범은 1946년 귀국 후 처음 맞은 3·1전날 경축사를 통해 ‘3·1절의 본질은 통일성에 있다고 규정했다.”

김 전 의장은 백범일지를 바탕으로 3.1운동과 관련한 비화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풍부한 지식과 탁견이 예사롭지 않았다


-3·1절의 교훈은?

우리는 아직도 일제의 잔학하고 가혹한 통치를 들먹이면서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데 대해 애석해 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대승적 견지에서 바라봐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말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무장하고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이게 3·1절이 주는 교훈일 것이다.”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일로인데?

그 부분이 안타깝다. 그런데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국가가 존립하고 번영하려면 가장 중요한 게 외교안보이다. 이거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 외교안보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하고 국민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 정부가 외교안보의 중요성을 등한시하고 있지 않나 싶어 걱정스럽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2년이 다 돼 간다. 전반적으로 평가한다면?

박근혜정부 시절 보여주지 못한 대국민 접근성과 접촉, 친화력은 아주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남북 긴장완화에도 상당한 역할과 기여를 했다. 반면 경제 분야에 있어선 확고한 방침이 안 보이는 것 같다. 정치를 너무 청와대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대국민 친화력은 있지만 정책을 유연하게 집행하는 능력은 떨어지는 것 같다. 자기들 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성공 가능성이 없고 피해 보는 사람도 많고 나라 경제나 위상이 구겨지는 정책이라도 끝까지 밀고 가는, 상당히 경직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가지 꼭 첨부하고 싶은 것은 지금은 증오의 정치가 돼선 안 되고 편협한 정의가 작동돼서도 안 된다. 적이냐 아군이냐, 선이냐 악이냐 식의 단칼로 자르는 정치는 더 이상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 대통령은 같은 부산 사람이고 고교 후배이다. 나는 10년을 정부에서 공무원을 하면서 역대 정권의 명멸을 너무 많이 봤다. 대통령이 웃으며 청와대를 나가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게 개헌이라고 생각한다. 5년 단임제를 하다 보니, 정치적 단절을 초래하고 초반엔 제왕적 대통령에서 후반엔 식물형 대통령으로 전락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정권의 충견이었던 검찰·경찰·국세청이 후반이 되면 싹 등을 돌려 대통령에 칼끝을 겨누는 행태가 계속되고 있다.” 


-권력기관의 독립을 위한 개헌을 말하나?

그렇다. 검찰·경찰·국세청뿐만 아니라 국정원과 방송통신 등 5대 권력기관을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는 기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도 살고 나라도 사는 길이다.”


-이 정부 들어서도 개헌은 물 건너간 것 아닌가?

그럴 것 같다. 개헌의 참뜻을 최고 지도자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개헌하자는 것은 대통령께 집중된 권력을 합리적으로 배분하자는 것이 원취지다. 개헌의 핵심은 권력구조의 재편이다. 그런데 결국 대통령에 집중된 과도한 권한을 가져올 기관이 국회밖에 더 있나. 그래서 국회 개혁을 강조하는 거다. 대통령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국회에 일부 가져오고, 일부는 독립된 기관을 둬 분산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런 핵심 사항을 놓치고 다른 것을 자꾸 얘기하니까 개헌의 뜻이 없다고 봐야지.

개헌과 관련해 한 마디만 더 하자. 이 나라가 언제부터 미래 비전을 잃어버린 나라가 됐어. 5년 단임제 하다 보니 중장기 정책이 없는 거야. 5년 단임제의 약점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하는 생각들을 안 하기 때문이야. 그런데 5년 단임제가 가지고 있는 권한을 그대로 두고 중임제를 택하면 8년 단임제가 되는 거야. 이건 더 나쁜 개헌이다. 그래서 나는 순수 대통령제로 하든지, 그렇잖으면 이원집정부제로 가든지 해야지 중임 여부는 중요하지 않아. 핵심은 대통령 권한을 줄이는 돼야지.”


-국회 정치개혁특위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월 국회가 문을 닫는 바람에 선거제도 개혁이 지지부진한데.

현 소선거구제에 문제가 많다. 당연히 개선돼야 하지만 국민들이 국회의원 정수 늘리는 데는 고개를 갸웃한다. 국회 정수 늘려도 되겠다고 국민들이 인정해줄 만큼 국회 개혁부터 먼저 하라는 게 내 입장이다. 국회부터 바뀌어야 한다. 그럴려면 2가지가 국회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하나는 선거제도개혁위원회이고 또 하나는 윤리위원회이다. 이 두 가지가 국회의원 입김과 영향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이 두 가지가 국회의원들의 명줄을 딱 쥐면 국회는 확 달라지게 돼 있다.”

김 전 의장은 이런 게 진짜 개혁인데, 보수건 진보건 들으려 하지 않는다며 안타까워 했다.


-국회가 제대로 일하게 할 방법이 없을까?

철학을 가진 정치 지도자가 필요하다. 상대방 설득보다 우리 편에게 양보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것이 이 시대 리더의 조건이다. 항상 진영 내에는 강경파와 원칙주의자가 있기 마련이다.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게 진정한 용기고 능력이다. 지금 힘 있는 대통령이 참모들을 설득해 양보를 받아 내야지. 그걸 보여준 사람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노무현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내부 양보 받아내는 게 정말 쉽지 않다. 아마 부산일보도 그렇지 않나. (웃음). 2019년 대한민국 정치의 첫 번째 과제는 내부 양보를 받아낼 수 있는 리더십 확보다.” 


2009년 제18대 국회의장 당시 모습


-1야당인 자유 한국당을 어떻게 평가하나?

문재인 정부가 참 만만한 야당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현 정부는 취임 초기에는 여론이 안 좋으면 장관으로 지명했다가 취소도 시키고 했는데, 야당이 워낙 제 역할을 못하니까 이후에는 여론이 안 좋은 사람도 장관으로 밀어붙이고 있어. 국민들은 정부 여당은 독선적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야당에 대해선 희망이 없다고 말하고 있어. 그러니 국민들이 정치에 점점 더 거리를 두고 있지 않나.

야당이 건강하고 제대로 견제하면 여당도 함부로 못한다. 이런 점에서 야당은 참으로 반성해야 한다는 게 내 기본 전제이다. 돈 들여가며 전당대회를 하면서 왜 스스로 인기를 까먹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극기부대는 대한민국 국민의 극히 일부이고 이것이 자유한국당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비록 상처가 나긴 했지만, 한국당이 전당대회 이후에는 새로운 모습을 보이길 희망하지만, 그 희망의 강도가 점점 약해지고 있어. 그래서 걱정스러워.” 


-한국당이 수권정당의 모습을 보이려면 무엇을 보완해야 하나?

한국당의 상황이 굉장히 안 좋아. 구체적인 것보다 기본적인 자세를 고쳐야 한다. 당의 최고 책임을 맡은 사람은 당을 위해 불쏘시개가 돼야 한다. ‘내가 죽어야 당이 산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런데 노력의 결실을 차지하겠다는 욕심을 속에 가지고 있는 한 한국당은 안 된다. 죽었다가 사는 게 정치거든. 죽겠다는 사람은 없고 살겠다는 사람밖에 없으니 결국 다 죽는 거지. 거듭 말하지만 (당 지도부는) 자기를 던져버려야 해.” 


-김경수 경남지사 판결에 대한 민주당의 판결 불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 마디로 여당답지 못하다. 김경수 개인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할 수는 있지만 당과 정권의 안위와 직결되는 문제로 스스로 몰고 가는 것 같다. 전략적으로도 잘못하고 있다. 만약 항소심 재판이 민주당이 원하는 대로 됐다고 치자. 집권당이 저렇게 떠드니 사법부가 겁먹고 눈치보고 저렇게 판결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겠나. 이건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서도 정말 잘못하는 거다.” 


-내년 총선을 어떻게 전망하나?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라 시시각각 변한다. 예측하기가 어렵다. 다만 현재 상태로 본다면 자유한국당은 원하는 의석을 얻기가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은 과반을 얻을지 모르겠어. 워낙 야당이 취약해서 지지율은 높지 않겠지만 (의석을) 휩쓸지 않을까. ”


2006년 한나라당 원내대표 당시 모습

 

-좀 언짢은 질문 하나 하겠다. 당신은 화려한 정치 이력에도 불구하고 소위 '김형오 계()'를 만들지 못했다. 너무 깨끗한 물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개인주의자여서 그런가?

다 해당이 될 거야. 그땐 부산에서 YS(고 김영삼 대통령)계가 아니면 힘을 쓸 수 없었으니까. 내가 아무리 YS계라 해도 민주계는 나를 YS계 취급을 안 해주고 민정계라 하고, 민정당에서는 내가 YS에게서 공천을 받았다는 이유로 민주계라 하고, 민주 민정 양 계파로부터 버림을 받은 거지. (웃음) 그렇다고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술을 잘 마시는 것도 아니고, 노래나 춤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시장 바닥에 가서 막 어울리는 체질도 아니고. 돈과 조직과 세력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는 거야. 그래서 나는 내 혼자 갈 길을 간 거야. 나를 살린 건 언론이었어. 그때 국정감사 스타로 자주 신문 1면을 장식했으니까.

나는 딱 한 번 빼고 공천을 쉽게 받아 본 적이 없어. 당선도 마찬가지고. 줄서기 할 줄을 모르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후회는 안 해. 계파·계보 이런 것과 거리가 있으니 부정·부패 스캔들에 한 번도 연루되지 않았잖아. 원내대표, 국회의장 다 원내 경선을 했는데, 압승했어. 그 비결이 무계보·무계파 덕분이었지. 이제 정치판에서 친박이니 비박이니 하는 계보·계파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김 전 의장은 인터뷰 말미에 정치인들의 자질과 품성과 시민의식을 함양하기 위한 정치 아카데미를 여는 게 남은 소망이라고 밝혔다. 재정적 뒷받침을 할 독지가나 자선가가 나타나기를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다.



윤현주 선임기자 hohoy@busan.com

  

 

 

<작가가 된 김형오 >


         2012년 역저 출판기념회를 여는 김 전 의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14대부터 18대까지 내리 5선의 국회의원을 지내고 정계를 은퇴한 후 작가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2012년 비잔티움 제국의 최후와 리더십을 다룬 황제와 술탄을 출간해 스테디셀러 작가로 등극했다. 2016년엔 황제와 술탄의 발행을 돌연 중단한 뒤 전면 개정판인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를 펴내는 결단을 내렸다


김 전 의장은 지난해에 백범일지의 해설서격인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를 출간, 다시 한 번 출판업계의 이목을 받았다


길 위에서 띄운 희망 편지, 이 아름다운 나라, 돌담집 파도소리등 에세이와 칼럼집도 다수이다. 20년간의 정치 경험과 폭넓은 독서로 인한 박람강기, 그리고 뛰어난 집중력이 그의 글쓰기 자산이다. “책을 쓸 때는 15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있은 적도 있다는 그는 현재 중앙아시아의 한 영웅에 대한 책을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2019-02-27 부산일보]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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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9일 청주에 있는 공군사관학교에 다녀왔습니다.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대회의 입상자들에게 시상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조국의 하늘을 지키는 늠름한 공군사관학교 생도들을 마주하고 있노라니, 김신 장군님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김구 선생의 아드님으로 험한 세월을 견디셨고, 또 대한민국 공군을 창설하는 데 큰 역할을 하신 분으로 이런 후배들을 보셨으면 얼마나 가슴 뿌듯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 시상식 인사말과 사진을 같이 올립니다.




[공군사관학교 시상식 인사말]

  조국의 하늘을 지키며 공군의 미래를 이끌어갈 자랑스러운 공군사관학교 생도 및 장병과 군무원 여러분!


  먼저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주신 황성진 학교장님을 비롯한 교직원 여러분과 대회에 참가한 생도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는 지난 2005년도에 시작, 이번 대회까지 총 481회에 걸쳐 국군 장병과 국내외 중‧고‧대학생 65만여 명이 참여했습니다. 김구 선생의 삶과 사상이 진솔하게 기록된 이 책을 읽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나라 사랑 정신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선열들의 땀과 피로 되찾아 다시 세운 대한민국이 얼마나 소중하며, 우리가 몸과 마음을 바쳐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조국인가를 『백범일지』는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백범일지』는 사랑하는 두 아들에게 유서를 대신해 남긴 회고록입니다. 그 두 아들 중 차남은 바로 여러분도 잘 아는 김신 장군님이십니다. 6‧25 전쟁 당시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의 주역으로 제6대 공군 참모총장을 지낸 우리 공군의 살아 있는 전설이지요. 아드님(김양)과 손자(김용만)는 물론 사위(김호연)와 외손자(김동만)까지 3대가 공군 장교로 복무한 병역 명문가, 여러분의 대선배이기도 합니다.



  김신 장군께서 쓰신 회고록 『조국의 하늘을 날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내가 중국 공군에서 훈련받다가 광복을 맞이해 귀국하려 했을 때, 아버지는 계속 훈련받을 것을 명하셨다. 그 결과 나는 당시로서는 미 공군에서 정식 비행 훈련을 마친 사실상 유일한 한국인이 될 수 있었다. 항공 전력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항공 분야의 가능성을 이해하신 아버지의 혜안 덕분이었다.”

  다시 찾은 조국의 진정한 독립과 굳건한 안보를 위해서는 공군력이 필수불가결함을 백범 선생께서는 예견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입상자들에게는 내가 쓴 졸저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를 부상으로 드립니다. “어떻게 하면 김구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쉽고 깊게 전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밤잠을 줄여가며 쓴 책입니다. 『백범일지』와 나란히 여러분 서가에, 또 머리맡에 놓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다시 한 번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와 오늘 이 시상식 자리를 마련해주신 황성진 학교장님과 수고하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영광의 입상자뿐만 아니라 대회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께 진심어린 축하와 격려를 드립니다.



  공군사관학교의 교훈은 “배우고 익혀서 몸과 마음을 조국과 하늘에 바친다.”입니다. 이 교훈의 깊은 뜻을 가슴에 새기고 조국의 하늘을 지켜나갈 여러분의 건승과 공군사관학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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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빨간마후라 2018.11.16 1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만 보아도 정말 늠름한 보라매의 기상이 느껴집니다. 백범 가문과 공군이 이런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는 줄 처음 알았네요.

[월요인터뷰] 김형오 前 국회의장 


"동포에 대한 헌신·희생이 白凡정신… 정치인들에게 이게 안 보여요"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 펴낸 김형오 前 국회의장

만난 사람=홍영식 논설위원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인터뷰 장소로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을 선택했다. 그는 “정치지도자들은 생각과 말, 행동이 일치하는 백범의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백범 김구 선생은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헌신, 솔선수범, 희생의 리더십을 실천한 위대한 혁명가입니다. 평생 생각과 말,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산 백범의 정신을 오늘날 우리 정치지도자들이 본받아야 합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백범의 차남 김신 전 교통부 장관(1922~2016)의 요청으로 2015년 7월부터 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이후 3년간 오롯이 백범의 일생을 좇아 그 정신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 주력했다. 그는 “애국 열정의 휴머니스트를 좀 더 깊이 있게 알고 인간적인 매력에 빠져든 날들”이라고 했다. 김 전 의장이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白凡逸志)’를 재구성해 펴낸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는 그 결과물이다. 김 전 의장이 ‘백범(白凡·평범한 사람)’을 대표해 물으면 김구 선생이 답하고, 김 전 의장이 추가 설명을 붙였다. 김 전 의장을 만나 엄혹한 시대에 맞서 몸을 던진 독립투쟁가의 정신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들어봤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출판사에서 백범에 관한 책을 펴내자고 제안했을 때는 좀 언짢게 생각했어요. 《술탄과 황제》(김 전 의장이 2012년 쓴 책)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니 나를 이용해 책 장사를 하려나 생각했습니다. 나는 봉사로 여기고 이 자리(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협회 회장)에 왔어요.(김 전 의장은 월급과 판공비 등을 일절 받지 않고 있다) 출판사 관계자를 야단쳤습니다. 그런데 그가 나가면서 혼잣말로 ‘요즘 젊은이들이 백범을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이후 이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고민이 컸습니다. 내가 책을 쓸 능력이 있는지, 이미 수많은 연구자가 백범 연구 결과물을 내놨는데 어떻게 차별화할지 고뇌의 시간을 보냈죠. 결국 ‘이 시대에 백범의 정신이 필요하겠구나, 한 번 해보자’고 결심하고 3년간 매달렸습니다.”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이 책이 제 마지막 작품이 될지 모릅니다. 탈고한 뒤 긴장이 풀렸는지 한 달 반을 편도선·기관지염으로 고생했어요. ‘제발 더 이상 책상에 앉아서 고생하지 말라’는 아내의 잔소리를 견뎌내고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책 제목이 독특합니다.

“백범일지를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제대로 읽어본 사람도 드물 겁니다. 백범이 살던 시대와 환경은 다르지만, 어느 시대나 젊은이들은 고뇌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죠.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와 투지가 필요합니다. 백범일지를 제대로 읽으면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기성세대도 백범일지를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봉건적 세계관을 가졌던 백범이 혁명가로 변신한 정신적 배경은 무엇입니까.

“백범은 ‘상놈’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과거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하면서까지 입신양명을 꾀하기도 했습니다. 시대와 환경이 보통사람을 위대한 인생, 위대한 혁명가로 만들었어요. 백범의 올곧은 자세가 사상과 지향점을 키운 원동력입니다. 19세에 동학 접주가 돼 수천 명을 이끌기도 했지요. 그러나 준비 안 된 리더가 얼마나 무참하게 끝나는지 깨달았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 전후로 교육계몽운동을 하다가 나라를 빼앗기자 감옥에 가고, 온갖 고초를 겪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더 영글어지고 단단해졌습니다. ‘양반도 깨어라, 상놈도 깨어라’라고 외치면서 통합과 개화를 강조했습니다. ‘상놈 콤플렉스’에만 머물지 않고 성숙한 평등주의자로, 독립투쟁가로 나아갔습니다.”


▶백범 리더십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솔선수범입니다. 책임정신과 헌신, 이게 아주 남달랐던 거죠. 역경에 좌절하거나 온전히 타협해 주저앉는 스타일이 아니고, 극복하고 돌파해 나가면서 바르게 끌고 가려는 정신과 자세를 지녔습니다.”


▶백범은 치부조차 솔직하게 드러냈습니다.

“성공하면 자기를 미화하는 게 보통인데, 백범은 그러지 않았어요. 감옥에서 고초를 당할 때 ‘젊은 아내가 몸이라도 팔아서 맛있는 사식을 넣어주면 좋겠다는 더러운 생각까지 했다’는 내용까지 일지에 썼어요. 일지는 아들들이 보라고 쓴 일종의 유서입니다. 이런 것까지 글로 남긴다는 것은 그만큼 순수하다는 것이지요. 험난한 도망자 생활을 할 때 도와준 처녀 뱃사공과의 러브 스토리를 일지에 남긴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백범은 분열된 임시정부를 끝까지 지켰습니다.

“백범 리더십 중 가장 위대한 것은 투철한 애국심입니다. 동포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바탕에 흐르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게 임정을 끝까지 지킨 힘입니다.”


▶백범이 윤봉길·이봉창 의사의 의거를 주도했습니다. 두 의거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국내외 동포의 독립 투쟁을 가열시킨 촉매가 됐습니다. 중국 장제스(蔣介石)도 ‘한국과 합작해 대(對)일본 공동전선을 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백범은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광복군이 참전하기 직전에 일본이 항복하면서 우리 스스로 광복에 힘을 보태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죠. 광복군이 참전했다면 광복 후 우리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갈 힘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체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참전 여부는 곧 광복 후 외세 의존이냐, 탈피냐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걸 안 거죠.” 


▶백범 리더십이 오늘날 우리 정치권과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백범은 생각과 말, 행동이 일치된 삶을 살았습니다. 공인으로서 깨끗했습니다. 돌아가실 때 돈 한푼 남기지 않았습니다. 어떤 자리도 노린 적이 없습니다. 나라를 위한다면 서슴지 않고 몸을 던졌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요즘 정치권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요.

“자유한국당은 희생과 헌신의 자세가 보이지 않고, 백범이 가지고 있던 애국심 같은 것도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여당도 문재인 대통령 개인 인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국정을 주도하고 여당은 심부름하는 역할만 했습니다.”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합니까.

“지지율은 뜬구름 같은 겁니다. 높은 지지율이 계속 유지될지는 장담 못 합니다. 걱정되는 것은 경제입니다. 경제 정책이 즉흥적으로 나오는 게 문제입니다. 근로시간 단축도, 최저임금 인상도 우리가 처한 경제상황과 따로 놉니다. 기업 및 노동자와 우리 생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심도 있게 연구한 끝에 나온 것이 아닌 것 같아요. 꼭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규제 문제입니다. 정부 자체가 규제 덩어리입니다. 규제 권한이 강화되면 관료는 옷 벗은 뒤 갈 수 있는 자리가 생기죠. 국회의 규제 입법도 심각합니다. 규제 입법하는 의원 이름을 공개해야 합니다. 세계에서 공공 규제가 가장 강한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이래서 어떻게 기업이 투자를 하고 고용을 하겠습니까.” 


▶국회의원 20년 경력 중 10년 이상을 과학기술과 정보통신 관련 상임위에서 활동해 원자력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나라가 경쟁력이 있는 이유 중 하나가 값싼 전기료로 생산성을 보장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원자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탈(脫)원전 정책으로 전기료가 오르면 생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바보 같은 짓입니다.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춘 1등 산업을 밟아버리는 겁니다. 신재생에너지로 감당하기는 아직 어림없습니다. 국가재앙 시대를 자초하고 있어요. 국가의 미래가 망가지고 있는 것 같아 처연한 심정이 듭니다.”



김형오 前 국회의장은…

 

언론인 출신 14~18대 국회의원… 정계 은퇴 뒤 '역사 소설' 작가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언론인 출신으로 14~18대 국회의원(5선)과 국회의장(18대)을 지낸 정계 원로다.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다 1978년 외교안보연구원에 들어가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주자유당 공천으로 부산 영도구에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2012년 정계에서 은퇴한 뒤 작가로 변신해 《술탄과 황제》라는 역사 소설을 펴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정치인 시절부터 통찰력 있는 식견과 균형된 시각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시쓰는 술탄과 황제》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등도 펴내며 작가로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1947년 경남 고성 출생 △1966년 경남고 졸업 △1971년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1975년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1975~1978년 동아일보 기자 △1992~2012년 14~18대 국회의원 △2006~2007년 한나라당 원내대표 △2007~2008년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 △2008~2010년 국회의장 △2013년~ 부산대 석좌교수 △2015년~ 한국경제신문 객원대기자 △2015년~ 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협회 회장 


정리=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



[2018-07-16 한국경제]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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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의 위기는 爭頭때문…백범 爭足에서 답 찾아야”






자신을 버리면 어떤 연정도 가능

상대를 품는 백범 리더십 배워야

 

정치판 개혁을 넘어 근본틀 바꿔야
정치문화도 시민의식도 혁신대상 


“백범 김구 선생은 우파인가, 좌파인가. 보수 정치 위기의 상황에서 백범 선생에게 무얼 배워야 하나.”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란 책을 쓴 김형오 전 국회의장에게 두 가지를 물었다. 첫 질문에 ‘둘 다 틀렸다’고 말했고, 두 번째 질문에는 ‘쟁족(爭足)’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가진 것 모두 버렸다면 해답 냈을것  


“온존(溫存)하고 쟁두(爭頭)하니까” 위기다. 자리를 지키고 모두 머리가 되려고만 하니 위기가 시작된다는 설명이다.  


김 전 의장은 “앉자마자 비대위원장 진짜 안 하느냐고 물었잖느냐. 왜 그런 질문이 나왔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정치인들은 다 ‘미 퍼스트(Me first)’한다. 그걸 기자도 알고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백범 선생은 임시정부 처음 들어가서 문지기를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도산 안창호 선생이 더 높은 자리를 줬다. 그러자 화를 냈다”며 “평생을 발이 되고자 했다. 쟁족의 마음가짐으로 살았다. 내 후배들 다 똑똑하다. 가진 것 모두 다 버렸다면 왜 위기에 대한 해답이 안 나왔겠느냐”고 설명했다. 


쟁족 정신이 없으니 생긴 폐단이 계파다. 계파가 없으면 힘이 없고 흔들린다. 쟁두하려 하니 날 받쳐줄 계파를 만든다. 이걸 바꿔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백범 선생은 상해에서 공산주의적 사고에 물든 사람과 대립각을 세웠으면서도 이후 과감하게 그들과 연정을 했다”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는 포용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 많은 파벌과 계파를 엮어 연합했다. 그릇이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대의를 위한 일을 한 것”이라고 되짚었다. 


“그래서 백범 선생에게 그때 다들 ‘낭만적’이라고 비판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근데 백범 선생은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를 따지지 않았다. 30여년간 일제와 투쟁할 때 많은 사람이 전향했다. 계파주의가 판을 쳤다. 공산파, 민족파가 다퉜다. 그래도 백범은 끝까지 임시정부를 품었다”고 강조했다. 


김 전 의장은 책에서 백범 선생을 ‘우익세력’에 가깝게 표현했다. 그럼에도, 백범 선생이 공산계와 연정한 이유를 김 전 의장은 ‘독립’이란 대의를 위해서라고 했다. 보수가 계파다툼으로 위기에 빠졌기에, 대의를 생각한다면 상대를 품고 가는 백범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는 소리다. 


김 전 의장은 “말은 쉽지만, 쟁족이 힘들다는 것은 나도 안다. ‘희생하겠다, 헌신하겠다’ 말하지만 속으론 챙긴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나를 버리면 길은 생긴다. 일본강점기 때 백범 선생도 버렸다”며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지금은 천당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복당ㆍ잔류파든, 새누리당에서 분화됐던 한국당ㆍ바른정당이든 야권의 차이점이 일본강점기 좌ㆍ우익의 그것보다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계파로 말미암아 머리 되려는 사심을 접으면 포용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그는 “되풀이되는 온존이고 쟁두다. 비대위원장 안 한다 했으면서도 이런 말을 하는 이유기도 하다”며 “어떤 후배든 혁신하고자 할 때에 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인 ‘법안·제도’에 대한 숙고 없어 


정치판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으로 끝나는 개혁이 아니라, 근본을 바꿔야 한다는 소신이다.  


김 전 의장은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물갈이하라고 했더니, 다 물고기만 갈아버려선 안 된다. 물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인물이 들어와도 정치판이 그대로면 결국 과거의 문제만 되풀이한다는 교훈이다.  


바꿔야 할 세가지 판도 제시했다. 헌법으로 상징되는 제도와 정치문화, 시민의식이다.

정치 제도의 개선을 위해서는 개헌을 필수이자 시작점으로 꼽았다. 김 전 의장은 “지금 헌법에는 권위주의적 장치가 있다. 민주헌법아니다”며 “제왕적 대통령제 같은 유신의 잔재가 있다. 이하 국회법, 정당법 모두 이를 따랐다”고 정치 제도와 시스템의 개선을 촉구했다.


이를 따라줄 문화도 정착돼야 한다. 정치인들의 사고방식 개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전 의장은 “엉뚱한 것으로 의사진행발언을 이어가는 형식논리가 계속된다. 그러니 연말만 되면 의장은 방망이 치느라 바쁘다”며 “정치권엔 지금 심의란 기능이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 후배 의원이 법안을 찬성했기에 왜 찬성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기권이나 반대하면 기자들이 물어볼까 봐 그랬다고 했더라”며 정치 본연의 역활에 충실할 수 있는 문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단순한 법안 통과율, 또 각 정파간 기싸움이 전부인 지금의 정치 문화를, 법안과 제도에 대한 숙고와 심사 기능이라는 정치와 국회의 원 뜻으로 바꾸자는 조언이다. 


마지막으로 국민, 즉 유권자들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좋은 정치도 표가 오지 않으면 도루묵이다. ‘왼쪽 아니면 오른쪽’이라는 오래된 폐단에 대해 김 전의장은 “역사로 말미암은 교육체계 때문에 그렇다”고 해석했다. 그는 “성리학 전통이 이어졌다. 이념은 목숨을 내놓고 지킬 신념이었다”며 “이후 한세기도 안 되는 기간에 가장 빈곤했던 나라가 잘사는 나라가 됐고, 장기집권 시대에서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졌지만, 그 사이 시민교육이 안 이뤄졌다. 급성장과 민주적 제도라는 양면이 순식간에 공존하니 중간이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민주정치의 필수인 타협 없이, 정반(正反)만 있고, 이는 결국 유권자와 국민들의 낡은 인식과 관습이 만든 결과라는 비판이다. 그는 “목표 중심, 성향 중심이다. 지금 입시제도도 그렇지 않느냐”며 “나도 후배들에게 이를 가르치거나 바꾸지 못했다. 우리 세대도 다 잘못”이라고 반성했다.  


백범 ‘사상적 관점’서만 봐선 안돼 


계파가 없다고 하면 선명성을 의심받는다. 그래서 일부는 우파로 일부는 좌파로 파악한다. 내년 서거 70주년이 되는 백범 김구 선생과 관련된 지금의 논쟁이 그렇다.

 

김 전 의장은 “백범 선생을 사상적으로 보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결국 한국정치의 병폐인 계파, 진영논리가 작동하는 것이다”며 “백범 선생은 정확히 말하면 우익도 좌익도 아니다. 우에선 좌로, 좌에선 우로 본다. 어느 쪽에서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이는 백범 선생의 그릇을 한쪽 면에서만 보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백범의 민족 ‘우리끼리 민족’ 아니다 


“오로지 독립이란 대의였다. 그 아래에서 파벌이나 계파는 없었다. 대한민국 정치도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의장은 “백범 선생은 희생을 각오했기에 대통령이 될 생각도 없었다”고 전했다. 우두머리가 되려 하지 않으니, 계파에 묻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전 의장은 “백범 선생의 민족주의를 서양의 내셔널리즘과 비교해선 안 된다”며 “선생이 말한 ‘민족’은 변질한 ‘우리 민족끼리’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미군 철수는 외치는 것과는 개념이 다르다. 그것은 민족에 사상을 붙인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의 소원’에서 가닥이 잡힌 민족주의는 개방형 민족주의였다”며 “민족만 뭉치자는 것이 아니라 민족으로 세계평화에 이바지하자는 것이다. 소위 ‘우리 민족끼리’와는 다른 것”이라고 오해를 바로잡았다.


“그때도 계파싸움이 잦았다. 밥 굶기를 밥 먹는 것처럼 했다. 그래서 싸웠던 것이다. 찢어지게 가난한데 10만원 떨어졌다면 다투는 건 당연했다”며 “그러나 잘 먹게 되면 10만원을 ‘네 것이다. 아니다, 네 것이다’로 해야 한다. 그때는 힘들어서 싸웠지만, 지금 그럴 필요는 없다”며 정치 문화의 바로잡기를 다시한 번 강조했다.  


최정호ㆍ홍태화 기자/th5@heraldcorp.com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2018-07-13 한국일보]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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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초대석] 김형오 국회의장 


한국당, 물갈이 하랬더니 물은 안 갈고 고기만 바꾸려 해



 


백범 김구 선생의 살신성인의 자세와 희생·책임의 정신이 아쉽습니다.”

 

김형오(71) 전 국회의장은 지난 9자유한국당이 정말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했다는 각오로 임할 때 필사즉생의 여지도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 전 의장은 이날 서울 마포구 개인연구실에서 가진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백범이 평생 마음에 새긴 경구 중 하나가 벼랑에서 나뭇가지를 잡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며 그 잡은 손마저 놓아버려야 장부라는 말이라며 지금 선거하면 한국당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될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하는 처절한 각오와 심정으로 혁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9일 서울 마포구 개인연구실에서 가진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6·13 지방선거 참패 이후 자유한국당의 수습 움직임과 관련해 한국 정치사는 물갈이를 하라는 민심의 심판에 물은 안 갈고 고기만 바꾼 사례가 허다하다제도와 정치문화(행태), 행위자 모두 바꿔야 정치판을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서상배 선임기자

 

김 전 의장은 6·13 지방선거 직후 한 토론회에서 한국당 참패 이유로 새로운 인물을 키우지 못한 죄 권력의 사유화에 침묵한 죄 계파 이익 챙기느라 국민 전체의 이익을 돌보지 않은 죄 집권여당에 제대로 싸우지도, 대안 제시도 못한 죄 교만과 오만, 막말과 품격 없는 행동으로 국민을 짜증 나게 한 죄 반성하지 않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죄 희망과 비전을 등한시한 죄 7가지를 꼽았다. 촌철살인 같은 정리에 지방선거에서 한국당 후보를 찍은 지지자는 물론 등을 돌린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당 한국당의 혁신을 바라는 많은 이들이 김 전 의장을 찾아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만큼의 식견과 경륜, 리더십, 무엇보다 망해가는 보수정당에 대한 애정을 갖춘 인사가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매번 나는 아니다며 에둘러 고사의 뜻을 나타냈다고 했다. 왜일까. ‘정치 현안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싶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하는 김 전 의장을 백범(18791949) 서거 69주기에 맞춰 펴낸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아르테)를 핑계로 만났다.

 

김 전 의장은 백범 선생의 차남 김신 장군(19222016)의 요청으로 20157월부터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의 부제는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백범 김구의 생애와 사상이다. 백범이 1947년 펴낸 회고록·자서전 백범일지를 토대로 백범(白凡·평범한 사람)이 질문(Q)하면 김구 선생이 답(A)하고 김 전 의장이 추가 설명을 보태는(+) 형식이다. 기념사업협회 회장을 맡은 직후 요즘 같은 세상이야말로 백범 정신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대 아닌가요?”라는 출판사 대표 말에 용기를 내 내리 3년을 집필에 매달렸다.



 

김 전 의장은 백범일지가 피로 쓰여진 책이라고 부를 만큼 김구 선생의 삶이 여느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라고 강조했다. 김구 선생이 엄혹한 시대상황에 맞서 온몸을 던지며 조국과 민족을 위해 희생한 초지일관된 삶을 산 분이라고 소개했다. 김 전 의장은 백범의 사상에 대해선 투철한 국가관과 불타는 동포애, 민족 중심의 평화주의라며 백범만큼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관된 분은 없다고 단언했다.

 

20세기 독립투사의 삶과 정신, 자세가 21세기 한국 사회에 던지는 화두는 무엇일까. 김 전 의장은 혼돈·혼미의 시대, 그 어느 때보다 영웅을 그리워하지만 더 이상의 영웅은 나올 수 없다고 운을 뗐다. 이어 개개인 모두가 스스로 영웅이 돼야 하는 시대, 특정 지도자가 끌어가는 게 아닌 우리 모두가 영웅적 자질과 품성을 갖고 영웅적 행동을 해야 하는 시대라며 김구 선생의 책임감과 희생, 헌신이 21세기 현대사회 영웅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 전 의장과의 일문일답.

 

대개 보수진영은 해방 이후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진보진영은 김구 선생을 꼽는다.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전신) 출신 국회의장으로서 백범기념사업협회장을 맡고 이번에 책까지 낸 까닭은.

 

김구 선생 같은 분을 보수, 진보와 같은 이분법적인 개념으로 바라보는 것은 좀 시정이 돼야 할 것 같다. 백범이라는 사람의 일생일대 올곧은 삶을 당시와 오늘날 상황에 비춰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지가 기본이 돼야 한다. 내가 김구 선생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 엄혹한 상황 속에서 당신은 어떻게 온몸을 던져가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초지일관된 삶을 사셨을까 하는 점이다. 김구 선생의 삶과 정신을 무슨 이념이나 사상에 따라 세분화하는 것은 조금 사치스럽고 한가하다는 느낌이 든다.”

  



기자 출신으로 그간 술탄과 황제’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등 많은 책을 냈다. 이번 책도 술술 쓰셨겠다.

 

기념사업협회장 직을 맡고 난 뒤 얼마 안 있어 술탄과 황제를 펴낸 출판사 대표가 김구 선생에 관한 기획안을 갖고 찾아왔다. 그런데 내가 백범 전문가도 아니고, 명색이 백범기념사업협회장인데 당신에게 누를 끼치는 것 같아 단칼에 거절했다. 그런데 대표가 요즘 같은 시대에 김구 선생을 제대로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더라. 마음이 흔들려 틈만 나면 선생 묘소를 찾아가고 백범일지를 들춰가며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지 되물었다. 결국 선생의 민족사랑이나 리더십을 제대로 알리고 싶어 책을 쓰게 됐다.”

 

예비독자들, 특히 젊은세대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대목이 있다면.

 

안중근 의사 집안과의 극적인 만남, 김구 선생의 멘토고능선과의 교유, 애절한 가족사 등 많고 많다. 그중 백미는 백범과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관계를 묘사한 부분이다. 이 나라가 거저 생긴 나라가 아니라 우리 선열들의 피로 이뤄진 나라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당신들의 뜨거운 애국혼에 나 스스로 글을 쓰면서 울기도 했다. 오늘날 고뇌하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자세, 힘과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자유한국당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그래도 해방 이후 한국 정치사를 이끌어온 한 축인데 요즘 보면 비판을 넘어 조롱거리로 전락한 느낌이다. 의장도 한국당의 7가지 죄로 알려진 강연도 하시고 한국당 비대위원장 제안도 받으신 걸로 알고 있다.

 

그날 강연의 핵심은 한국당 비판이라기보다는 이 나라 정치판을 바꾸자는 것이었다. 사실 더 (세게) 이야기하려다가 그래도 전에 몸담았던 곳인데, 너무 짓밟으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차마 더 하지 못했다. 이번에 기념사업협회장 맡으면서 다시는 정치에 복귀하지 않는다고 다짐을 했다. 이런 전제하에 한국당을 중심으로 보자면 요즘은 정치가 사라진 것 같다. 정치라는 게 없다. 가만히 보면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자기들 선거(총선)까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래선 안 된다. 물갈이를 하랬더니 물은 안 갈고 고기만 바꾸려는 꼴이다.”



 

정치판을 갈아야 한다고 했는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나 다른 야당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여야 하나씩만 지적하자면 여당한테서는 국정주도 정당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 민주당이 지금까지 앞장서 문제를 제기하고 (정책을) 이끌어나간 게 뭐가 있으며 청와대의 무리한 정책추진에 대해 제동을 걸어본 적이 있는지를 묻고 싶다. 야당은 제발 국회 보이콧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슨 틈만 나면 (요즘은 국회 본청 앞 계단인 것 같지만) 국회 바깥으로 뛰쳐나가는데 가관이다. 국회에서 36개월 치열하게 싸우고 토론한 적 있는가. ‘일하는 국회 좀 만들어달라는 대통령·정부 비판에 일하는 국회는 정부 입맛대로 법률안을 통과시켜주는 게 아니다고 자신있게 반박할 수 있는 야당 모습을 봤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정치권에 몸담은 지 30년이 넘었다. 나이로는 종심(從心·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이다. 정치권이나 인생 후배들에게 건네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조선 세종대왕이 재위 7년 어전회의에서 했던 말을 소개하고 싶다. ‘위국지도(爲國之道) 막여시신(莫如示信)’. 나라를 다스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먼저 국민의 신뢰를 얻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민들께 우리를 믿어달라고 호소하기에 앞서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나이 얘긴데, 일흔이 되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건 공자 같은 성인군자뿐이다. 나 같은 사람은 70이 아니라 80이 되어도 법도에 어긋날지, 괜찮을지 항상 경계하고 삼가며 살아가야 한다. 됐제?”

 

대담=송민섭 정치부 차장

 

정리=이우중 기자 stsong@segye.com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경남 고성(71) 부산 경남고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서울대 정치학 석사, 경남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기자 국회의원 5(14~18) 한나라당 사무총장, 원내대표 18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국민훈장 무궁화장 부산대 석좌교수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




[2018-07-11 세계일보]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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