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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함대 방문 마지막 방문 코스는 윤영하함이었습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윤영하함에 승선해 "그대의 눈물, 겨레의 혼불되다."라는
감명 깊은 문구를 방명록에 남겼습니다.

제 2 연평해전 전적비에서 헌화식을 마친 후여서
다소 무겁고 진중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그 때, 단체촬영을 하던 중 분위기를 급반전시키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덩치 좋은 한 장병이 갑자기 추켜든 푯말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웃지 않는다면 사람도 아니라고나 할까요 ^^

사진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왜 사람들은 푯말의 앞 부분을 보고 웃을 수 밖에 없었을까요?  다음 사진 보시죠. 짠~

다름 아닌 '참치~!'  클로즈업 해보겠습니다.

ㅎㅎㅎ 가까이서 보니 더 웃기네요.

어디서 이런 걸 만들었는지~ 이 푯말을 만든 2함대 장병, 당신을 '센스쟁이'로 임명합니다.



이런 좋은 분위기에 한층 밝아진 의장님, 장병들과 악수하는 모습에서도 여유가 묻어납니다.


여러 면에서 도움을 주신 2함대 장병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필승~!"
 

                                                 Posted by 칸타타
(국회의장 비서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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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국회의장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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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콩콩 2009/10/12 16: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엄숙한 군대지만 국회의장을 상대로 저런 푯말을 만들기도 하는군요.
    재밌네요.

  2. 사과과즙 2009/10/12 16: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군이라 참치인가요?
    육군은 김치?
    공군은 날치?

  3. 분식점 2009/10/12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치김치찌개 먹고 싶다.

    • 포도봉봉 2009/10/12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참치김치찌개 정말 맛있게 하는데 있는데... 오늘 저녁 메뉴는 참치김치찌개 먹어야 겠습니다.

    • 맹태 2009/10/12 1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참치김치찌개에 날치 넣고 치즈를 얹어주시면 한미연합사 분위기로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4. 칸타타~ 2009/10/14 1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5. 악랄가츠 2009/11/17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앜ㅋㅋㅋㅋㅋㅋㅋㅋ
    저거 만든 장병은 포상휴가 받았겠지요? >.<
    훈훈한 이야기네요 ㅎㅎ

    • 포도봉봉 2009/11/18 08:53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ㅋ 정말 대박이었어요^^
      순간 다들 '빵' 터졌거든요.
      이렇게 유머있는 장병들한테는 군대에서 포상휴가를 줘야 하는데 ^^

제가 있던 군대 훈련소에서는 유급제도가 있었습니다.
0점에서 시작해서 100점의 과실점수를 받으면 유급이 되어 훈련소 생활을 한 번 더 받는 구조였습니다.
과실점수를 주는 유형은 다양했습니다.

1. 수류탄 투척

수류탄 훈련에 앞서 귀가 닳도록 주의사항을 교육받고,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훈련용 수류탄을 전방으로 투척하는 훈련이 진행됐습니다.
훈련용이라서 인명을 살상할 만큼의 위력은 없지만, 폭발은 하기 때문에 꽤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풍채 좋고 사람 좋아 보이는 해병대 원사(계급)님께서 교육을 담당하시고 훈련을 진행하였습니다.
훈련이 중간쯤 진행되고 있을 무렵 교관이 한 명의 훈련병을 가리키며 소리를 쳤습니다.

"야! 너! 던져! 던져! 빨리 던져!"

당황한 그 동기는 짧은 시간 동안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교관을 향해 (훈련용) 수류탄을 던졌습니다.

!

연기가 자욱하게 퍼지고,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정적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교관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멀쩡한 모습으로 연기 속에서 스르르 나타났습니다.
(훈련용이기 때문에 놀라긴 했지만 다치진 않았습니다.)


"전부 대가리 박아!"

우리는 실제 수류탄은 던져보지도 못한 채, 철모에 머리를 박고 그날 하루를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과실점수 5점을 받았습니다.

 


2. 이함훈련

배에서 탈출하는 훈련을 이함훈련이라고 합니다.
높은 다이빙대에서 물속으로 뛰어내리는 훈련인데요,
덩치가 커다란 동기 한 명이 자신은 죽어도 못 뛰겠다고 했습니다.

한참 동안 얼차려를 받고 온 그 동기는 무척이나 해맑은 표정으로 대열로 돌아왔습니다.


그 동기는 과실점수 20점을 받았습니다.

 

3. 기타 등등

그 밖에도 청소불량 10점, 지나가다 경례 안 하면 10점, 이런 식으로 과실점수는 쌓여만 갔습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과실점수의 명확한 기준이 없어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이었습니다.
과실점수를 기록지에 표기하여 주말에 과실자 훈련을 받았는데, 과실점수가 없으면 그 시간을 이용해 편지를 쓸 수 있었기 때문에 과실점수를 받지 않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습니다.

과실을 만회하기 위한 양호라는 것도 있었는데요, 양호점수는 과실점수보다 매우 뜸하게 주었습니다.
과실제도를 통해 실제 유급이 되는 경우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옥 같은 훈련소에서 훈련병들이 느끼는 유급에 대한 공포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영혼이라도 팔겠어!"



4. 상관 모독

시간이 흘러~ 수료를 얼마 앞두지 않은 어느 날,
정식 군복도 지급받고, 교관들도 우리를 어느 정도 편하게 대우해주며,
훈련소에 갓 들어온 한기수 후임들의 부러움 가득한 눈빛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해가 져서 어두워진 연병장에 정렬하여 앉아 무엇인가 교육을 받던 중에 날카로운 교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너 이 자식! 상관모독! 과실보고 해! 과실 50점!"

무슨 잘못을 했기에 수료를 코앞에 두고 과실 50점이라니요.

"아닙니다! 교관님, 잘못했습니다!"
"넌 상관을 모독했어!"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교관은 단단히 화가 나 있었고, 그 친구는 무릎까지 꿇었습니다.

"교관님! 50점이면 저 유급입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교관은 너무나 냉혹한 태도를 보이며 급기야 그 동기의 짐까지 싸서 들고 나왔습니다.
1,000여 명의 동기들이 모두 쳐다보는 앞에서 그 친구는 다시 한번 무릎을 꿇고 교관에게 매달렸습니다.

"교관님! 잘못했습니다!"

 


코 파다가 교관과 눈이 마주쳤답니다.

사실 훈련소 마친다고 끝이 아닌데, 인생 다 산 듯 행동하는 이등병들이 얼마나 우스웠을까요?
그런 이등병들이 기강이 해이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교관님의 극약처방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게 하필 코 파다가 걸린 것이라니, 그 친구도 참 운이 없었지요.

결국, 그 친구는 다시 양호점수를 받아 유급은 면했다고 들었는데,
두 번 다시 함부로(?) 코를 파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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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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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라누리 2009/11/16 0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니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그래도 훈련 잘 마치고 군대생활도 잘 마치셨잖아요.
    잘보고 갑니다.

    • 맹태 2009/11/16 0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_^
      당시 교관들이 지금의 제 나이쯤 되었던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참 골치 아팠을거 같아요. 어린 친구들 모아놓고 코 판다고 혼내는 것도 참 쑥쓰러운 일인거 같은데 말이죠.ㅎㅎ

      감사합니다~

  2. 달콤시민 2009/11/16 0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헉헉헉 ㅋㅋㅋ
    코파다가 눈 마주쳤는데 상관모독 ㅋㅋㅋㅋㅋㅋ
    이런 과실들은 상관 기분에 따라 결정되는...거..가봐요 하하하

    • 맹태 2009/11/16 0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금은 어떤 기준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군복무기간도 짧아져서 훈련소 기간도 좀 줄었다고 하는데..

      ㅋㅋ전 죽어라 뛰어다니고 코도 안파서 과실 0점이었음..

  3. 커피믹스 2009/11/16 1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 코파다가가 제일 웃겨요.
    ㅎㅎㅎㅎㅎ

  4. 김한준 2009/11/25 0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군출신이십니까??
    과실/양호와 이함훈련은 해군/해병대 밖에 없는줄로 아는데
    약 3년 전 부터 훈련소 기간도 4주로 줄고
    제한배식도 폐지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긴 저도 인터넷서 해군 정보 보지 않았음
    빵빠레 = 야간비상훈련 인걸 몰랐을테니 말입니다.
    저희때만 해도 야간비상훈련은 취침 직후나 길어봐야 취침 30분 후에 했으니까요.
    새벽에 갑자기 하는 것 보단 나았지요.
    이젠 교관/소대장도 빨간 모자가 아닌 파란모자 쓰고요.
    나름 힘들고 불평 많이했던 군생활이지만
    해군 출신들 보면 반갑네요.

    • 맹태 2009/11/25 08:09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김한준님.
      음...비밀입니다...ㅋ
      그저 내용으로 짐작해 주시면...^_^

      블로그 방문해보니 한준님 해군출신이신가보네요.
      반갑습니다~

군대 훈련소에서의 일입니다.

화장실 청소가 시작되는 시각부터 점호 종료 시까지 화장실 사용을 할 수 없었습니다.
화장실은 물기 하나 없이 깨끗해야만 하는 일종의 거룩하고 신성한 곳이었습니다.

처음에 훈련소에 가면 긴장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변비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은데
시간이 흐르다 보면 신호가 왔을 때 바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 놓치면 언제 다시 기회가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소대에서 키가 가장 큰 친구(1번)를 화장실 오장이라고 불렀습니다.
화장실 오장은 소대장 훈병/향도훈병과 더불어 소대 내에서 교관들이 아는 척 해주는 권력(그것을 권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마는)을 갖고 있어서 경외의 대상이었죠.

화장실 당번은 키가 큰 순서로 구성되어서 좀 무섭게 느껴졌는데,
청소시간에 화장실 사용을 못 하도록 위압감을 줘야 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봅니다.

어쨌거나 전 다급한 신호를 받았고,
화장실로 달려가 그나마 좀 친하다고 생각되는 화장실 당번에게 사용을 요청했습니다.

화장실 청소가 말끔하게 다 끝났다고 난색을 보이는 화장실 당번에게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겠다고 당부하고서
키가 큰 화장실 오장의 눈을 피해 한 칸을 자리 잡고 앉았습니다.

일을 마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럴 수가!
너무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여서였을까요.

휴지가 섞이지 않은 100% 순수함만으로 변기가 막혀버린 것입니다.


게다가 당시 제가 있던 신병교육대에는 우습게도 변기를 뚫는 압축기도 없었습니다.
화장실이 막히면 소화전의 소화호스를 사용해 변기를 뚫었는데, 그 엄청난 수압으로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방식이었지요.

소화호스를 사용하면 물기 한 점 없이 말끔히 청소된 이 거룩한 공간을 나의 순수함으로 더럽히게 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시각은 8시 50분. 동기들은 이미 점호대형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습니다.
소화호스를 사용할 시간도, 그 뒷정리를 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나 하나 때문에 화장실 당번은 물론이고, 화장실 오장과 소대장 훈병, 아니 나아가 우리 소대 전체,
아니 우리 중대 전체, 아니 동기 전체가 잠을 못 잘 수도 있는 위기일발의 상황이었습니다.

(정말 이랬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저를 믿고 화장실 오장의 눈을 피해 자리를 마련해준 동기를 곤경에 빠트릴 수 없었습니다.
곧이어 문밖에서 나를 기다리는 화장실 당번이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다 안 쌌나? 빨리 나온나."

"응? 좀 기다려라. 다 쌌다."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이라고 하지만, 저에겐 아무런 도구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머리를 쓰자. 생각해라. 생각해라. 이 난관을 헤쳐나가야 해..!'

팔을 걷고 변기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습니다.

샘이 깊은 물이란 이럴때 쓰라고 생긴 표현일까요?
활동복이 젖지 않도록 소매를 어깨까지 끌어올려 민소매 옷처럼 만들었지만,
제 순수함이 더해져 넘칠 듯이 불어난 물은 어깨까지 적셨습니다.

간절한 기도를 드리며 손끝에 모든 감각을 집중했습니다.

(후비적 후비적..)



홍해를 가르던 모세의 심정이 이러했을까요?
꿀렁꿀렁~ 서서히 내려가는 변기를 바라보며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동기들아, 기뻐해 줘! 너희는 인지하지 못했겠지만, 지금 우리는 큰 위기를 넘겼다!'

어깨까지 젖은 물기를 다른 한 손으로 모두 털어내고, 활동복 소매를 내리고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문을 나섰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문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당번이 화장실 상태를 확인하러 들어가고,
전 쓴웃음을 지으며 세면대에서 손을 씻었습니다.

"야! 세면대도 쓰면 안된다!"

뒤따라 나온 화장실 당번이 걸레 한 장을 들고 황급히 제 뒤를 따라와 세면대의 물기를 닦아냈습니다.

"꼭 써야 된다.."

물기를 닦는 동기를 앞에 두고 차마 어깨까지 닦을 수는 없었습니다. 손을 닦고 점호를 받았지요.
다행히 그날 점호에서 화장실 청소상태에 대한 지적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

자세한 묘사는 생략했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저와 같은 경험을 할 누군가를 위해 조언하자면

"더럽혀진 손은 씻으면 됩니다."

단, 깨.끗.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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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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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투아비 2009/11/11 09: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점심 다 먹었당 ㅋㅋ

  2. 동전이 2009/11/11 0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흠흠... 그래도 수세식 화장실을 썼구나... 난 푸세식의 그 알싸한 냄새에 고생했었는데... ㅋㅋ

    • 맹태 2009/11/11 0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푸세식이면 뚫을 필요도 없었을텐데 말입니다..흠흠

      너무 많이 쌓여서 힘들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은 있어요..
      아, 생각만해도 끔찍하네요. 거긴 정말 손 못넣어요..아무리 씻으면 된다고 하지만...;;;;

  3. 유성이 2009/11/11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겨울철 똥 깨보신분..ㅋㅋ 얼음똥 녹을때 캬~~

  4. 'ㅁ' 2009/11/11 1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엥.. 여기가 김형오 국회의장님 블로그인가요?
    개인적으로 국회의장님 팬인데.. 언제나 화이팅입니다.!

    • 맹태 2009/11/11 1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김형오 국회의장님 블로그입니다.
      팀블로그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5. 29년전 논산 2009/11/11 1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옛날엔 똥장이라고 했는데....
    그때는 쪼그리고 앉는 수세식이었고 막혔을 때,
    그 때 똥장인 나도 손으로 뚫은 적이 있었죠.
    목표 의식이 강하고, 당위성이 확립되고나면
    손으로 막힌 똥을 뚫는 것에는 아무러한 거침이 없습니다.
    더럽다는 생각도 안들죠.

  6. FA신청선수 2009/11/11 13: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장님께서 변기를 손으로 뚫은 사병처럼 막혀있는 우리정치를 시원하게 뚫어주시면 좋겠습니다.

  7. 심퉁이 2009/11/11 1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구.참별희안한추억도다있습니다.똥얘기하면 참으로잊지못할일이있죠 37녀전에안동역에매점옆에선물상자에 똥을싸서 포장해논분찾습니다. 전지금도그때를잊지못하고있습니다 아무도보는이도없고시간도
    많이지니고 아,누가잊어버리고간게틀림없구나싶어 조심히풀었드니 꽝꽝얼은 똥덩어리였습니다.
    지금41된 조카가저달라고 우는바람에 풀었다가 일생에 잊지못할가슴에똥덩어리 추억을갖게됬습니다.

    • 맹태 2009/11/11 1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하...;; 웃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똥도 포장하면 그럴싸하다는 교훈.
      깜짝 놀라셨겠어요. 조카님께서도 상처 받으셨을듯..(당시 4살이셨을텐데...ㅠㅠ)

  8. 한영희 2009/11/11 1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비를 잘헤쳐 나갔네요
    그런데 군대에선 알고보면 그것보다 더 심한 것도 무수히 많다고 들었어요
    제 아들은 부모님 면회때 화장실 청소를 맨손으로 암모니아가 덕지덕지 붙은 것을 동전으로 긁으라고 해 그렇게 했답니다 군대의 고생을 생각해 집에서도 일을 좀 거들면 좋겠는데 힘드나봅니다

    • 맹태 2009/11/11 1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소변기 찌든 때 제거하는 것을 스켈링 작업한다고 했었는데, 그것도 종종 하는 일이죠.

      집에서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
      저도 이등병때는 '왜 내가 부모님께 하는 것보다 선임들에게 더 잘하고 있는걸까?'라는 생각에 사회에서의 모습을 반성했는데..

      막상 전역하고 보니 또..그게 잘 안되더라구요.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군대에서 더욱 강하게(!) 청소를 시키는 것 같아요.
      안그러면 사회에서 하듯이 '안할테니까'요..

      (흠흠..씁쓸~하네요.ㅋ)

  9. ㅋㅋ 2009/11/11 1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중부전선 철책에서 있었던 일인데용...
    왜 화장실을 언덕빼기에 만들어 놔가지고...
    똥지게 메고 옮기다가 자뿌라지는 선임병을 봤었음...
    제가 이등병 때라...웃지도 못하고...어찌나 당혹지럽던지...
    똥지게 메고 언덕에서 나자뿌라지는 거 안봤으면 말을 마삼...ㅋ

    • 맹태 2009/11/11 14:20  댓글주소  수정/삭제

      으악! '어깨'까지는 말도 못 꺼내겠네요.
      정말 이등병때 웃음 터질거 같은데 참는 것도...정말 난처하셨겠어요.ㅋㅋ
      넘어지셨던 선임분도 두고두고 향기나는(?) 추억이겠네요.ㅋ

  10. 능수 2009/11/11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랫만에 정겨운 글을 봅니다.
    30여년전....논산훈련소....훈련병 시절...그 당시는 푸세식 화장실이었는데.....
    나참.........화장실을 못들어가게 지키고있느 동료 훈련병
    정말 대단한 끗발이었어요...그 친구들....
    사정사정해야 화장실 한번 쓰던 시절이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던 시절 이었지요.
    글쎄...한번은
    화장실에갖는데....옆 화장실에서..
    두녀석이 두런두런하기에 궁금해서
    살며시 보니까.....이런 참..............
    화장실에 밥 수저를 빠트리고 건져보려고..
    두런거리고 있지 뭡니까???
    그 시절에는 수저를 고무줄에 끼워서 주머니에 매달고 다녔는데....
    지금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울껄요...아마
    밥 수저 잃어버리면 밥도 못먹고....얼차려하던 시절이었으니....
    그래도 그 시절은 정감이 흐르던 시절이었지요//
    다시올수 없는 그 시절이 그립네요...

  11. 달콤시민 2009/11/11 15: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다행이네요.. 제가 이 포스팅을 식후에 봐서..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정말 천만다행이에요 기억력이 3초라서 이 블로그를 덮는 순간 잊을 거라서... 아아악

    정말 군대란 곳은...뜨아아아 ㅜㅜ

  12. ㅋㅋㅋ 2009/11/11 16: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대 배치 받아서도 손바닥만한 걸레 하나가지고 화장실 광내던 기억 나네요...

    요새도 그렇게 시킵니까?

    • 맹태 2009/11/11 16: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저도 이게 시간이 좀 지난 이야기이긴 한데-
      전역할즈음엔 화장실 물기제거를 제대로 안하더라구욧!
      ㅋㅋㅋ군대 이야기의 특징이지만 '나때는 안그랬다~'하는 부분 있잖아요.

      정말 저 이등병때는..물기제거가 생명이었는데..
      요즘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참고로 '다쓴 칫솔'과 '빗자루'를 걸레와 함께 사용했습니다. 청소도구의 비약적인 발전이군요~

  13. 장은근 2009/11/11 17: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활동복이란 말 정말 오래간만에 들어보네요 ㅋㅋ

    DI 와 활동복 색깔을 보니 해군인거 같네요 ^^

    저도 해군훈련소에서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공감이 마구마구 갑니다 ㅋㅋㅋ

  14. 기억난다.. 2009/11/11 1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대에서 풍선 없다고 풍선 만들라고 하더니
    콘돔 주더라.. 휘밤바..

  15. 근데 2009/11/11 1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 뭐하는 블로그죠? 군대 얘기하고 국회의장하고 뭔 상관? 기분좋게 볼려고하다가
    괜히 찝찝해지네요..

    • 맹태 2009/11/11 19:12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근데님.
      김형오 국회의장 블로그입니다.
      팀블로그로 운영되고 있구요, 이 이야기는 블로그 운영진의 개인경험담입니다.

      기분 좋게 방문하셨는데, 찝찝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내용 자체가 좀 찝찝하다보니...)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_^

  16. 씨제이 2009/11/11 1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손을 넣어서 뚫어 보았죠 ..맞아요 훈련소에서는 훈련을 강하게하기 때문에 변이 압축되어서 보통 더욱이 첨에는 변비가 많아서 잘 막혀요 제가 한번 논산훈련소에서 화장실 청소 당번이었는데 얼기도 하고 몇개가 막혀있더군요 조금 녹아도 있고 ㅡㅡㅡ저는 내임무에 그걸안뚫으면 지는것같아서 뚫다가 안되어서 개량식이었는데 손을 넣어서 하다보니까 어찌하다가 끝까지 잘안뚫리던것을 뚫은 기억이 납니다 .



    그때 3월 말이었는데도 가끔 얼었던거 같은데 변이 딱딱해서 열개중 4개에서 5,6개는 막혔던것 같아요 제가 한 3,4,5개는 뚫었던거 같아요 ㅋ 참 그런 기억도 있네요 .참 그땐 보초 연습때 누구말대로 혹시 간첩잡아서 포상휴가 갈지도 누가 알아 ,,,하는 좀 이상한 (가능성 없는 ㅡㅡㅡ)그런 상상도 하며 보초연습섯던 기억도 나네요 .,,,,행복하시길 ㅡㅡㅡ

    • 맹태 2009/11/11 1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씨제이님.

      훈련소 화장실이 잘막히는 이유에 대해 상당히 논리적인 분석을 해주셨네요. 설득력 있는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ㅋㅋ

      씨제이님은...동기들에게 참 소중한 존재이셨을 것 같습니다...^_^

  17. 저는 아줌만데 2009/11/11 2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손으로 뜷습니다. 집에서, 간혹 도구로 옷걸이철사도 쓰지만, 고무장갑끼고 하지요. ㅎㅎ 근데
    그게 제일 빨라요.

    • 맹태 2009/11/12 0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전 압축기가 더 낫다고 생각했는데..
      으..근데 제가 너무 더러운 이야기를 쓴거 같아요;;

  18. 해상병 491기 2009/11/11 2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는 느낌이 해군 출신인가봐요... 화장실 오장, DI, 시퍼런 활동복 모두 해군훈련병의 상징들이죠..

    님이 느꼈을 감정 십분 이해 합니다..

    전..키가 작아..스머프 부대 즉, 식당 식가이고정 차출이었죠..^^

    • 맹태 2009/11/12 07:31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저는..44X기입니다.
      480기까지 보고 전역했던 것 같네요..(맞나??)

      반갑습니다..^^

  19. 커피믹스 2009/11/12 1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웁~~~.
    팔에서 냄새가 며칠동안 사라지질 않았겠군요.
    그러고 보면 인간의 신체부위만큼 훌륭한 도구는 없습니다ㅋㅋ

    • 맹태 2009/11/12 1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아무도 눈치 못챘던거 같아요..

      으~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점심시간이 다가오니까..!!

      ^_^

  20. 이상한 2009/11/12 1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동기들은 이야기 한다는거 너 내옆으로 오지마
    냄새나 꺼져 이런 반응 일껄요 ^^

    • 맹태 2009/11/12 15: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동기들에게 이걸 어떻게 말했겠어요..
      당연히 그런 반응일텐데..ㅋㅋ

      말 안하고 그냥 잤습니다.

  21. 사토자키 2009/11/14 0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양반 완죠니 작가네. 아까 달마도 웃기더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완죤 웃겨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서해교전이 7년만에 다시 발발했습니다.

■ 서해교전 상보 (2009년 11월 10일)

군관계자에 따르면 북한 경비정이  NLL을 남하하자
우리 해군 경비정이 경고방송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남하하자 경고사격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북한이 사격을 했고, 남한 해군도 대응사격을 했다고 합니다.

남한 해군의 사상자는 없지만 북한 경비정은 피해가 있었다고 하네요. 
북한 경비정은 이후 북측으로 돌아갔으며, 현재 교전상황은 종료된 상태입니다.


오늘 일을 보니, 잊혀져가던 과거 연평해전의 악몽이 떠오르는군요.


다만 이런 슬픈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제 2 연평해전'입니다.

참극으로 기억되는 제2연평해전은 제1연평해전(1999년)이 벌어진 3년 뒤에 일어났습니다.

■ 제 2차 연평해전 피해 상황 (2002년 6월 29일 10시 25분 ~ 56분)

▷ 남한 : 고속정 1척 침몰, 전사 6명, 18명 부상
▷ 북한 : 경비정 1척 대파, 30여명 사상

대부분의 국민들이 2002년 월드컵에 취해 있었지만,
이런 무관심 속에 누군가는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청춘을 희생해야 했습니다.


▲ 당시 참수리-357에서 가장 먼저 전사한 故 윤영하 소령입니다. 북한 공격 첫 번째 타겟이 함교였으니까요.

▲ 교전 당시 후갑판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전사한 故 서후원 중사, 故 박동혁 병장입니다.


■ 제 2차 연평해전 발발 원인 및 배경

▷ 제 1차 연평해전의 패배에 대한 보복
▷ 대내외적으로 어려워진 북한의 정치적 탈출구
▷ 북한 영해 확보와 NLL(북방한계선) 무실화


그러면 왜 이렇게 남한 해군의 사상자가 많았을까요?

1차 서해교전에서 패한 북한 측이 악의적인 기습 선제공격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워낙 치밀하게 집중공격을 펼쳤던 지라 남한 해군은 손쓸 틈 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죠.
우리 해군이 즉각 대응하여 북한 해군을 물리치긴 했지만 많은 사상자를 내고 말았습니다
.

아래는 당시 북한측 공격에 희생당해야 했던 참수리-357의 참혹한 모습입니다.

▲ 제 2차 연평해전에서 타격을 입었던 참수리-357입니다.

▲ 참수리-357의 측면입니다. 붉은 페인트로 칠해진 곳이 모두 총, 포의 공격을 받은 흔적들입니다. 쩝~

▲ 故 조천형 중사가 담당했던 21포(20mm 발칸)입니다. 집중 포화를 당했을 당시에는 전면 유리가 없었겠죠?

▲ 참수리-357의 내부인데 구멍이 엄청 크네요.

▲ 이 곳은 조타실로 故 한상국 중사가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아~ 여러 군데 붉은 자국들이 보이네요.

▲ 이 부분도 참수리-357 안에 있는 측면부인데요. 북한군이 비 오듯 쏴댔을 것을 생각하니 끔찍하군요.

▲ 이 곳 역시 북한군의 기습공격에서 자유롭지 못했군요.

▲ 가까이서 구멍을 찍어보니 헉~


■ 제 1차 연평해전 (1999년 6월 15일)

▷ 9시 28분경 북한 경비정이 우리 고속정에 대해 소형기관포로 선제공격
이후 우리 해군의 즉각적인 대응으로 남북한 함정이 각각 10척씩 대치
▷ 남한 해군은 경미한 피해, 북한 해군은 경비정 1척 침몰, 5척 대파
▷ 당시 북한 해군은 밀어내기 작전에 온갖 것을 집어던졌는데 각종 채소도 날아들었다고 함.





남북이 서로 화해-협력해야 할 시점에 군사적 충돌로 인한 유혈사태가 더 이상 나와선 안 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제 2차 연평해전에서 청춘을 바친 이들의 넋을 기립니다.

Posted by 칸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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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군출신 2009/11/10 14: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명피해가 없어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2함대 다녀오셨나보네요...사진 잘 봤습니다. ```

    • 칸타타~ 2009/11/10 15: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인명피해가 없어야죠.
      그리고 지난 희망탐방에서 2함대를 방문했었거든요.
      그 자리에서 제 1~2차 연평해전에 관해 설명도 들었습니다.
      돌아가신 영령들에 대해 추모의 자리도 있었구요.

  2. 촌철살인 2009/11/10 17: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장님 홈피가 거의 생중계 뉴스수준이네요. 빠르다 빠라 ㅋㅋ.

  3. 너무 빨리 잊혀져 가서 .. 2009/11/10 2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타까운거같아요...ㅇㅇ

  4. 김한준 2009/11/10 2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훈련소때 식당서 배식 기다릴 때 마다
    서해교전 6분들 사진 보면서
    아 제발 저렇게 가지 않았으면 했는데
    군 생활 하면서
    부끄럽게 느꼈습니다.

  5. 최부람 2009/11/10 23: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측의 과잉대응이 아닌가'라는 글이 인터넷 어딘가에 떠다니더군요..말은 좋지만, 제발 상황을 좀 냉철하게 파악하고 그런 이야기를 했으면 합니다. 무조건 안티를 고집하는 것도 일종의 정신병입니다.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반성해야함다. 맹목적인 종북주의는 시대착오라는 걸 명심하시길...반면,,이 글은 차분해서 좋네요...잘 읽었슴다.

  6. 남가좌 2009/11/11 0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NLL에 관해선 갑론을박이긴 하나 1999년 이전까지는 북한도 사실상 인정하던 영해 아니었나요?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돈 달라는 소리 같아서 이젠 정말 싫네요.

  7. 잊지말자 2009/11/11 1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월드컵의 함성속에 너무 쉽게 가려지고... 잊혀진것 같습니다.
    당시 해군에서 군 복무중이었습니다.
    토요일로 기억하고..제가 속했던 부대에서 밤부터 새벽까지 전사자 합동분향소를
    만들었기에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군요.
    정치적인 이야기를 굳이 꺼내고 싶지 않지만 당시 정부의 대응과 유가족에 대한 보상등
    지켜보는 입장에서 너무 아쉬웠습니다.
    하여간 영면하시길 바랍니다.

  8. 준영 2009/11/11 14: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 전에 2함대를 방문하여 김형오 의장님과 함께 상흔으로 여기저기 찟겨 나간 참수리호에 올랐습니다. 그 긴박했을 순간을 상상하니 숨이 막히더군요. 조국을 지키기 위해 초개처럼 목숨을 바친 이들의 정신을 기리고 그 가족들을 잘 보살펴 주는 것이 바로 또 다른 애국자를 기르고,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하는 초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형오 의장님이 6명의 희생자의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도와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우리 군이 자랑스럽습니다. 대한민국 예비역 공군 장교 올림

    • 칸타타~ 2009/11/11 15:2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참수리정에서의 모습을 보니 전투 순간의 참혹함이 떠올랐습니다.
      의장님 말씀처럼 나라를 위해 몸 바친 분들, 그 유가족들을 위해
      충분한 보상과 대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9. pennpenn 2009/11/12 1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에 완전히 북쪽 배를 침몰시켜야 하는건데
    아쉽습니다.

  10. 드자이너김군 2009/11/12 1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렇게 두꺼운 철판을 뚫고 들어올 정도의 총탄이면.. ㄷㄷㄷ
    정말 잊지 말아야 하는데.. 점점 잊혀져 가는군요.
    다시한번 상기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한 하루 되세요~

    • 칸타타~ 2009/11/12 18:17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당시 직접 총탄, 포탄 자국을 봤지만 후덜덜하더군요.
      더 이상 이런 비극은 없어야죠.
      좋은 하루 되세요.

  11. The Blue. 2009/11/13 1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2함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참수리호에 올라갔는데 너무나 처참하더군요.

    이번 사태는 인명피해없이 잘 마무리 되서 다행입니다. 항상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할듯 합니다.

  12. 시림,김재덕 2009/12/07 2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l^*........
    그리워했던 그리움이
    너 였나봐...

    그 기억을 잊으면 안 되고
    국력은 화력이기에
    모든 전력이 빔틈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행복은 곁에 있어요
    사랑으로...
    기다림에

    • 칸타타~ 2009/12/08 0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말씀하신대로 균형있고 수준높은 국방력은 필요합니다.
      다만 서로 피 흘리는 일이 없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13. a 2010/02/03 1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필 그것도 2002년에 그 기쁜날에 않됬군요

군대 다녀온 남성분들은 다들 똑같을 것 같네요.
거리에서 마주치는 군인들의 군복에 줄이 어떻게 잡혀있는지 유심히 보게 되는 습관...

'와- 3줄 잡았네', '쟤네들은 무슨 줄을 저렇게 많이 잡아?', '줄 잡느라 고생했겠다'

그 날카로운 각을 세우는 열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주름잡힌 군복일 뿐이지만,
그 각을 세우기까지 열심히 디자인(?)하고 다림질하던 당시에는 어찌나 자랑스럽던지..!
(전 훈련소에서 바지 주름을 잘못 잡는 바람에 동기들 앞에서 바지 벗고 서 있었어요!! ㅠㅠ
 같은 남자들끼리인데도 어찌나 창피하던지)

# 군복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의 군복 특징은 무엇일까요?

육군은 가장 대중화된(?) 얼룩무늬 전투복.
해군은 세일러복.
공군은 도시 남자의 세련된 모습.
해병대는 붉은 명찰과 상륙돌격형 헤어스타일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인함.

각 군마다 각자의 특징을 잘 살린 군복을 갖고 있는데요, 오늘은 해군 장교 정복의 수장을 관찰해 보려고 합니다.

지난 10월 15일,해군사관학교를 방문한 의장님께서
영접을 나온 해군 관계자분들의 복장을 보며 궁금해하셨던 부분인데요-
해군 장교 정복에는 '수장(章)'이라는 계급 표시가 있습니다.



영접을 나오신 해군사관학교 교장 선생님(?)
수장을 보니...

음, 계급이 어떻게 되시는지 아시겠어요?
쓰리스타(☆☆☆)! 해군중장이십니다.


방명록을 쓰고 계신 의장님.
이 자리에서 해군사관학교 관계자 분들께 수장을 비롯한 해군복제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맞은편에 앉은 분들의 수장을 살펴 볼까요?
왼쪽부터 대령(4줄), 대령(4줄), 준장(☆,두꺼운 한줄), 중장(☆☆☆, 두꺼운 한줄 + 2줄), 대령(4줄)이시네요.




이동 중에 해병대 장교 한 분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하시며 수장에 관심을 표하시는 의장님.

"어디보자. 수장을 보니...음? 이 분은 계급이 어떻게 되는거죠?"

그런데 해병대 수장은 해군과는 다르다고 하네요.
설명해 주실 분 안계신가요?



사관생도들과의 기념촬영을 마치고-
생도들의 소매에는 장교들보다 조금 더 얇은 선으로 학년을 표시하는 것 같습니다.

군복에는 작은 표시 하나에도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해병대의 팔각모에도, 해군의 넥타이에도-
혹시 그 밖에도 알고 계신것 있으신가요?

** 보다 자세한 내용이 해군에서 운영 중인 블로그에 자세한 내용이 나와있네요. ^_^
 ☞ "해군의 꽃, 해군복을 파헤쳐보자! (2) 장교 / 부사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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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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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새우덮밥 2009/10/19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군만의 이런 계급표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인데요?

    이걸 보니 생각나는 게 있어서 댓글 답니다.

    오래 전에 고등학교 소매 표기를 보고 고등학교를 알 수 있었대요.

    소매에 선 1개 = 경기고
    소매에 선 2개 = 평양고
    소매에 선 3개 = 경북고

    이랬다고 합니다.

  2. 매운쌀국수 2009/10/19 1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처음 휴가 나온날,
    영관급 장교들 모자에서나 볼 수 있는 황금빛 월계수(?)로 장식된 모자를 쓰고있던 아파트 경비 아저씨께 우렁차게 경례를 했었어요..ㅋㅋㅋ

    "피~일 씅!"

    너무 창피했는데 재미있었던 것은 아저씨께서 제 경례를 똑같이 거수경례로 받아주셨다는 거~ㅋㅋㅋㅋ

  3. 2009/10/19 2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 맹태 2009/10/20 07: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비밀댓글에 비밀답글을 달 수가 없어서..
      열심히 답글을 달았다가 지웠습니다.

      문의하신 내용은 결코 그렇지 않다라는 사실을 말씀드리며,
      사실 좀 더 재밌게 답글을 달고 싶었지만
      비밀을 지킬 수 없어서 이렇게 무미건조한 답글을 남겨드립니다. 관심있게 지켜봐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2009/10/20 08: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비밀댓글 입니다

    • 맹태 2009/10/20 09: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되던데...

■(13)"믿음으로 세계를 잇는 초일류 기업" - 태광(2009.10.16) 

■(14)"부산기업의 원초, 부산산업의 원동력" - 대한제강(기중기반)(2009.10.16)

■(13)"부산의 자부심으로 당당히 일군 기업" - 대한제강(2009.10.16)    

■(12)"부산 도약의 새  발판으로!" - 신평장림산업단지 관리공단(2009.10.16)
      

■(11) "가야의 신비 1500년만에 숨쉬다" - 복천 박물관(2009. 10.16)


■(10) "국민의 발이며 민족의 방패입니다. 이제 세계를 향하여 달립니다." - 현대로템(2009.10.15)

■(9) "푸른 바다는 조국의 희망, 해사는 희망의 요람' - 해군사관학교(2009.10. 15) 

■(8) "반구대 암각화를 보고 - 민족의 고동소리, 위대한 문화유산" - 반구대 암각화(2009.10.13)


■(7) "전통의 맛, 예술적 맛" - 신정시장 칼국수집(2009.10. 13)

■(6) "정밀화학 그 이름에 자부심을
                           연구진에 영광을" - 울산 정밀 화학센터(2009. 10. 13)


■(5) "울산의 현재, 그리고 미래는 여러분과 함께" - 울산 테크노파크(2009. 10. 13)

■(4) 
"인천의 미래가 한국의 미래입니다. 세계도시의 중심 인천" - 인천세계도시축전
        "녹색성장의 기수"  - 인천세계도시축전 녹색성장관(2009. 10. 9)


■(3)
 평택 제2함대방문, 연평해전 전적비 참배,윤영하함시찰 등이 이어졌습니다
    "그대의 눈물, 겨레의 혼불되다"  故 윤영하 소령 등 참수리호 용사들을 기리며
    썼습니다. 진즉 오려했는데 이제 왔습니다.고 한상국 중사 부인일 등 생각하니
   눈물이 나려 합니다.(2009. 10. 9)


(2)White "마한문화 1천년비밀의 한꺼풀을 벗기다" - 전주박물관 (2009. 10. 6)
    "세계와 경쟁하는 우리농산물"  - 농산무역 (2009.10. 6)

    "서해의 명경 부안 적벽 채석강" -부안숙소 (2009.10. 7)
    "울돌목언덕에서 충무공을 기리며" -울돌목 식당(2009.10. 7)
    "선비가 어부되고 어부가 시인되는 녹향지본" - 윤선도 녹우당(2009. 10. 7)
    
  영산강 가는 흔들리는버스안에서 방명록서명 때 남긴 말입니다. 하나 빠졌군요.
 
  "야성본능과 첨단과학이 힘차게 달리는곳"  F1 경기장 성공을 기원하면서 남긴
   말입니다. 울돌목에서 글 못남긴 게 좀 애석하네요. (2009. 10. 7)

■ (1) White희망탐방 첫날 전주로 갑니다. 박물관서 마한문화를, 도청에서 현황청취 기자
   간담회, 경기전, 전북대특강, 농산무역, 내소사 방문 등으로 이어짐. 부안서 1박
   하고 내일은 전남지역으로!  희망을 말하고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관심
   바랍니다.♥♥ (2009.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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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국회의장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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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변인 2009/10/11 2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의장님이 쓴 방명록 글귀중에서 윤영하함에 올라 남긴 "그대의 눈물"이라는 문구가 가장 좋습니다.

    김훈이 새로 낸 '공무도하'라는 소설책을 교보문고에서 사와서 저녁에 쉬지않고 다 읽고나자, 가슴속으로 찌르르 삶의 눈물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윤영하함과 공무도하가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눈물이라는 단어에 감정이 팍 꽂힙니다.

  2. 대변인 2009/10/15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금 해군사관학교에서 한감동 먹고 나오는 길. "해사는 희망의 요람"이란 의장님 말씀에 찡한 공감! (버스안에서 핸드폰으로 인터넷 연결해 씁니다)

  3. 2009/10/16 1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4. 2009/10/16 1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2009 희망탐방 중 해군사관학교에서 생긴 에피소드입니다.

거북선의 선장은?
충무공 이순신? (해군사관학교, 충무공 이순신 표준영정)

해군사관학교에 있는 거북선.
실제 운행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거북선 안에서 만난 조선시대 수군!


북을 치는 이 수군은 앳된 얼굴을 보니, 이등병의 포쓰가!!!


노를 잡고 있는 이 분이 이 거북선을 관리하는 거북선 선장님!!!!


의장님도 노를 저어 봅니다.
조선 수군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


거북선을 둘러보고 기념사진!
"어이! 자네도 이리와서 같이 찍지!" - 북치는 소년을 부르시는 의장님.


해군 이병으로 보이는 북치는 소년도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는 군 생활을 하면서 당시 참모총장님과 악수를 하고 4박 5일의 휴가를 받았었는데,
이 북치는 소년은 휴가를 얻었을지 궁금하네요.
(만약 휴가 얻었다면 앞으로 거북선 북치는 수병 지원율이 엄청 올라가겠네요.^_^)

조선 수군의 복장을 갖춰 입고 노 젓는 모습까지 재현해 주신 거북선 선장, 부선장님과
모두가 DSLR 카메라를 바라볼 때, 당당히 제 똑딱이 카메라를 응시해 준 북치는 소년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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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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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rk 2009/10/16 07: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똑딱이나 dsrl이나 사진 나오는데는 문제가 없잖습니까? 북치는 수병은 의장님을 많이 좋아 한 것 같네요.ㅎㅎㅎ

  2. 달콤시민 2009/10/16 1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똑딱이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ㅋㅋ
    한손으로 걸어가면서도 금방금방 찍을 수 있어욧! ㅎㅎ

  3. 대변인 2009/10/16 17: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의장님 모시고 거북선 앞에 있었죠. 블로그 사진에 DSLR이 무슨 소용? 글이 잼있고 감동적이면 그만. 요즘 잘보고 있습니다.

  4. 이민우 2009/10/17 07: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변인이 뭐요? 어디 대변인?

우리는 종종 동전의 앞뒤면을 맞추는 놀이를 하곤 합니다.
50%의 승률이 보장된 게임이라는 거죠.

이 게임에서 6연속 같은 면이 나올 확률은 불과 1%대입니다.
하물며 승률 5할의 게임을 가지고 23번 연속 승리한다면
그 확률은 희박하다 못해 불가능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죠?
아니면 아주 주도면밀하게 사기를 친 경우이던가요.

지난 번 찬 바다에 잠긴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에
언제 다시 뵐 수 있을까 싶었는데,
공교롭게도 머지 않아 김형오 의장과 함께 하는 '우리 땅 희망탐방'을 통해 기회가 생겼습니다.
해군사관학교를 방문하며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23전 23전승의 신화를 떠올릴수록 불가능을 뚫어냈다는 그 묘한 느낌에 취했습니다.
충무공 신화의 비결을 정리해 보고자 하는 욕심도 생겼습니다.
해사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몄습니다.

▲ 충무공의 영정입니다. 의복에서 광해군 때 영의정으로 추증된 걸 반영하여 그려진 것이 보이네요.
(즉,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시고 나서 그려진 그림입니다.)


[ 충무공 이순신의 조선 수군의 무적 신화 비법 정리 ]

1. 뛰어난 조선술

조선 수군의 대표 함선은 판옥선이고
일본 수군의 대표 함선은 아다케였죠.

조선의 남해와 서해는 물살이 거칠고 조석 간만의 차이가 커서 평저형 배가 어울렸죠.
먼 바다까지 나갈 이유가 없으니 더욱 평저형인 판옥선은 지극히 조선에 걸맞는 배였고.
노략질 등 먼 바다로 나가야 했던 일본으로선 첨저형 배가 필요했을 겁니다.

▲ 조선 수군의 주력 함선인 판옥선은 평저선의 이점을 살려 함포술에 이용했습니다.

여기에서 전술적인 면을 좀 더 가미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오래 전 해군 전술은 크게 3가지였습니다.

(1) 배와 배를 충돌시켜서 적선에 피해를 입힌다.
(2) 도선을 해서 백병전을 치른다
(3) 화살 등을 이용해서 적군에 위해를 가한다.

배를 만드는 재료에서도 판옥선은 참나무나 소나무를 이용했고
아다케는 삼나무, 편백나무 등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내구성에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못도 조선 해군은 나무못을 사용한 반면에 왜군은 쇠못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판옥선의 나무못은 한 번 박힌 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숙히 박혀서
부품들 간의 이음새를 더욱 단단하게 조여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다케의 쇠못은 나무와 쇠의 내구성 차이로 인해
충격이 갈수록 오히려 틈을 만들어서 나무를 갈라지게 한다고 하네요.

그러니 (1)의 전술에서는 왜군이 이길 방법이 없었습니다.
왜선이 조선의 판옥선을 들이받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었으니까요.

훗날 원균이 패하고 조선의 화포 중 상당 부분이 왜군으로 넘어간 뒤
왜군도 아다케에 화포를 장착하려 했으나 내구성이 약해서 실효성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나마 장착한 것 역시 얼마 안 되는 수의 화포였죠.

▲ 왜군의 주력 함선인 아다케는 첨저선이어서 빠른 속도에도 불구하고 내구성이 약했습니다.

또 (2)의 전술에서도 왜군은 수월치 않았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판옥선은 2층으로 되어 있어서 아다케에 비해 높이가 좀 더 높았습니다.
때문에 왜군이 도선하는데 있어 더 높은 위치로 올라야 했던 어려움이 있었죠.

이런 것만 봐도 조선 수군은 조선술에서부터 왜군에 앞서 있었습니다.
지금도 선현들의 대를 이어 조선강국을 유지하고 있죠.


2. 우수한 화력

임진왜란이 일어날 당시, 조선 수군은 판옥선에 화포를 장착했습니다.
그런데 왜군은 발사형 무기라고는 조총이나 활이 전부였습니다.
포와 총-화살이 싸우는 것부터가 이미 게임이 안 되는 것이었죠.

일본군이 도선을 하든 조총 공격을 하든 비교적 근접하기까지
큰 희생이 따랐습니다.

▲ 현자총통입니다. 총통은 크기에 따라 천자문 순으로 천, 지, 현, 황으로 이어집니다.

더구나 평저선은 제자리에서 돌 수 있었기 때문에
화포를 쏘고 장전하는 동안 반대편의 화포를 발사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이렇듯 화력의 집중도를 높이는데 평저선의 기능은 화포와 찰떡 궁합이었죠.

▲ 미사일 같이 생긴 이것은 대장군전입니다. 약 300m 정도 날아갔다고 하더군요.

또한 당시 테크놀로지의 결정체인 거북선은
돌격선으로서 철갑이란 신개념을 장착했는데요.
도선이 주특기인 왜군에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드는 괴물이었을 겁니다.

거북선의 함장은 지금으로 치면 소령급이었다고 하더군요.
훗날 정조 때 거북선은 45척까지 생산되었다고 합니다.


3. 철저한 훈련

이미 종영한 '불멸의 이순신'이란 드라마에서도 언급됐었지만
학익진, 일자진, 장사진과 더불어서 한 번씩 선보였던 것이 바로 '첨자진'입니다.

▲ 이것이 첨자진입니다. 큰 大 형상의 가운데에 있는 큰 배가 제독이 타는 배라고 합니다.

위가 작을 小, 아래가 큰 大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 두 글자를 합치면 뾰족할 尖(첨)이 됩니다.

이 첨자진은 당시 해군의 진법 중 구사하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충무공 휘하의 조선 함대는 이 진법을 능수능란하게 펼쳤다고 하니
얼마만큼 철저한 준비와 훈련이 뒷받침 됐는지 짐작케 합니다.

또한 조선의 궁수들은 수년 혹은 10년 이상의 숙련도를 갖췄는데 비해
일본의 조총수들 중에는 급조된 병사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정확성 면에서도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죠.

옛 말에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地利)는 인화(人和)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충무공이 구심점이 되어 일치단결한 것.
바로 그것이 23전 전승의 비결 아니겠습니까?


4. 완벽한 전술

23전 전승 모두 완벽한 전술의 승리였고 한산대첩이 가장 빛났지만
당시 전세나 아군의 규모를 봐서 역전승의 짜릿함은 명량대첩에 비할 바는 아니죠.

충무공하면 늘 등장하는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란 말은
원래 오자병법에 나온다고 하네요.
어쨌건 명량해전에 임하는 충무공의 의지를 알 수 있는 어구죠
.

▲ 장검명(長劍銘)입니다. 명량해전을 앞두고 충무공께서 장계한 내용이라고 합니다.
(내용인 즉,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이도다.")

그런데 충무공께선 12척의 배로 133척의 배와 싸워서 물리칠 계책을 갖고 계셨습니다.

흔히 필사즉생, 필생즉사 뒤에 무슨 어구가 뒤따르는지 모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바로 일부당경 족구천부(一夫當逕 足懼千夫)이죠.
즉, 죽기로 싸우고자 한다면, 한 사람이 지켜도 천 사람을 당해낸다는 뜻입니다.

삼국지에서 장비가 조조의 100만 대군에 맞서 다리 하나를 두고 홀로 장판파를 지키며
호통으로 물리쳤다고 하는데 명랑해전이 딱 그 격이죠

불과 12척 밖에 안 되는 쇠해진 전함으로 10배가 넘는 왜군과 맞상대하는 것은
실로 무모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왜선을 울돌목까지 유인을 한 뒤
강강술래를 통해 기만전술을 펼쳤습니다.

이후 병목현상이 일어날 울돌목에 이르자 불규칙하고 거친 물살에
아다케가 주력인 왜선들은 자중지란에 빠지게 되죠.
더구나 첨저형인 아다케는 이런 거친 물살에 중심을 잡기 힘든 단점이 있었죠.
그래서 조선 수군의 공격 못지 않게 왜군 배들 간의 충돌도 상당했다고 합니다.

이 때를 놓치지 않은 조선 함대는 쇠사슬을 쳐서 왜선을 교란시키고
곧바로 화포 등을 통해 반격을 가해서 대승을 일궈냅니다.
이런 만화 같은 형국이 벌어진 건 그만큼 완벽한 전략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죠.


이상 정리를 마칩니다.

그리고 한 가지 퀴즈를 내보겠습니다.
이런 천재적인 제독 이순신의 과거 급제 성적은어땠을까요?

정답은 아래 그림이 대신 답해줄 겁니다.



▲ 충무공의 과거 합격 성적입니다. 합격자 27명 중에 14등 정도였다고 하네요.

 Posted by 칸타타~
     (국회의장 비서실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칸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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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rk 2009/10/16 07: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순신장군의 지혜로운 전술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과영 성웅 칭호를 받을만 하네요. 좋은 하루되시기를..

    • 포도봉봉 2009/10/16 0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마크님~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자세한 전술 이야기는 저도 처음 듣는 것인데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2. leecsd2 2009/10/16 0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번에 기사를 쓰기에는 너무 부족합니다 쓰리즈 부탁드려여

  3. 시리즈를 부탁해 2009/10/16 0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리즈로 더 자세한 내용을 보여 달라는데 한표 더 추가요... 너무 흥미 진진 한데... 시리즈를 부탁해~~~!!

  4. 이민우 2009/10/16 1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웃~~ 재밌네요...

  5. pennpenn 2009/10/16 1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순신 장군을 타짜에 비유했군요~
    그분의 얼과 넋을 존경하고 기립니다.

  6. 미사리 2009/10/18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리가 잘 되어 보기 좋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좀 더 많은 내용이 있으면 하는 2%의 아쉬움이 잇습니다.


[뉴시스] 김형오 국회의장, 해군사관학교 방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포도봉봉 커피향 가득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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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신 적 있나요?

북한 병사가 지뢰를 밟은 남한 병사를 구해준 것을 계기로 싹튼 인연은
초코파이를 나눠먹고 김광석 노래를 공유할 만큼 남북을 초월한 형제애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우정은 오래 가지 못하고 분단이란 현실에 부딪혀 슬픈 종지부를 찍고 말죠.

영화 속에서마저 짧은 낭만을 즐길 틈조차 허락되지 않는 분단의 현실이 가슴 아픕니다.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어쩌면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냉엄하고 서슬퍼런 현실.
그것을 고스란히 담은 역사의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 2함대 도착~!

우선 의장님과 저희 일행은 연평해전의 기억을 담은 2함대 사령부로 향했습니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안팎으로 달리자 2함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의장님께서는 2함대 관계자측의 안내를 통해 지휘통제실에서 간단히 보고를 받으신 뒤
곧바로 제 1 연평해전 전승비로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 바로 이 곳이 2함대 사령부 건물입니다.


# 제 1 연평해전 전승비 방문~

우선 1차 연평해전을 간략히 설명하겠습니다.

1차 연평해전은 1999년 6월 15일에 발발했으며, 교전은 약 14분간 이뤄졌습니다.
대내외적으로 어려워진 북한이 정세 돌파를 위해 무모하게 시도한 교전이었습니다.
한 편으로는 북한 영해와 NLL(북방한계선) 무실화의 목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9시 28분경 북한 경비정이 우리 고속정에 대해 소형기관포로 선제 공격을 한 것이 시발점이었습니다.
우리 해군의 즉각적인 대응으로 남북한 함정이 각각 10척씩 대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결과, 우리 해군은 사망자 없이 경미한 피해를 입은 채 완승을 거뒀습니다.
반면, 북한 해군은 경비정 1척 침몰, 5척 대파의 피해을 입고 패주했답니니다.

▲ 제 1 연평해전 전승비를 보면, 함정의 선두로 적선을 공격하는 '밀어내기 작전'이 떠오릅니다.

▲ 당시 북한의 기습공격에 대항해 남한 해군이 밀어내기 공격으로 응수하는 장면이 자세히 묘사됐네요.

1차 연평해전 밀어내기 작전을 치르면서 드러난 에피소드 2가지를 전합니다.

[에피소드 하나]
교전이 일어나고 우리 해군의 밀어내기 작전에 당황한 북한 해군은 
배에 있는 모든 물건을 집어들어서 던졌다고 하네요.
심지어는 무 같은 채소도 날아다녔다고 하니, 그들 입장에서는 꽤나 다급했던가 봅니다.

[에피소드 둘]
우리 해군이 북한 해군을 상대로 밀어내기 작전을 하던 남한 배가 들이받다가
북한 배에 꽂히는 일이 있었는데, 반대편에서 들이받아서 간신히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  제 2 연평해전 추모비 앞에서~

제 1 연평해전 전승비를 둘러본 의장님과 우리 일행은 제 2 연평해전 전적비를 향했습니다.

▲ 제 2 연평해전 전적비

햇살을 마주하며 밝게 서있던 제 1 연평해전 추모비와는 달리
그늘 져 어둡게 서 있는 제 2 연평해전 전적비를 보니 슬픔이 앞을 가립니다.
아무래도 당시의 비극이 떠올랐기 때문이겠죠?

이 자리에 참석한 일행 모두 한층 숙연해진 듯, 의장님의 헌화식이 거행되는 동안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습니다.

▲ 의장님을 포함한 모두가 제 2차 연평해전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을 위해 묵념했습니다.

헌화식이 끝나자 2차 연평해전에 대한 설명이 계속됐습니다.

제 2차 연평해전은 1차 연평해전 이후, 약 3년만에 벌어진 전투였습니다.
제 1차 연평해전 도발 목적에 1차 연평해전 대패로 인한 보복의 성격이 더해졌다고 합니다.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때에 비보를 듣게 되었지만
월드컵의 들뜬 분위기에 이 참사가 묻혀 버렸죠.
월드컵 그 기쁨에 도취되어 깊이 헤아리지 못한 저 자신부터 부끄럽습니다.

지난 2002년 6월 29일 10시 25분경에 시작된 전투는 31분간 이어졌습니다.
비록 북한이 경비정 1척을 대파했고 30여명의 사상자 발생했지만
우리 해군도 이 전투에서 전사 6명, 부상 18명의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이토록 아군의 타격이 컸던 원인은 북한의 악의적인 기습 선제공격에 치명타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기습이 워낙 치밀한 계획 하에 집중포화로 이뤄졌기에 우리 해군이 대항하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즉각적인 대응이 이어지며 북한의 도발도 결국에는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 의장님께서는 유가족에 대한 보상에 대해 궁금해 하시며, 보다 나은 처우가 이어지길 바라셨습니다.

2함대 측의 설명에 따르면 제 2 연평해전에서 전사한 영웅들의 이름을 따서
윤영하함, 조천형함, 한상국함이 각각 만들어졌는데,
이 중 윤영하함은 실전배치 됐으며, 조천형함, 한상국함은 지난 9월 23일 진수됐습니다.

이후 황도현-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의 이름을 딴 군함들도 건조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서해를 지킨 영웅이 다시 영해 수호의 선봉에 선다는 마음에 감개무량하네요.

그럼 다음 이동지로 가보실까요?

▲ 저 배가 무엇인지는 곧 밝혀집니다. 개봉박두~



# 역사의 현장~ 참수리357호에 승선하다~

이곳은 바로 제 2 연평해전의 산증인인 참수리357호 고속정 앞입니다.
이 고속정은 우리의 영웅과 함께 끝까지 함께 했죠.

참수리357호는 침몰된 것으로 알고 계신 분들이 있는데요.
실제로 전투 중 침몰된 것이 아니라 인양하는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입어 물 속으로 가라앉은 거라고 합니다.
북한군의 기습 집중포화에 우리 해군이 항전한 흔적들을 참수리357호는 말 없이 전하고 있습니다.

참수리357호의 상처를 통해
당시의 처절했던, 그리고 참혹했던 순간으로 잠시 돌아가보겠습니다.

▲ 바로 이 배가 제 2차 연평해전의 산증인인 참수리357호 고속정입니다.

▲ 참수리 357호의 옆면입니다. 빨간 페인트로 칠해진 곳은 모두 총탄, 포탄 자국들입니다. 어휴~

▲ 당시 故 조천형 중사가 임무를 수행했던 21포(20mm 발칸)입니다. 총포탄 자국들이 선명하네요.
(지금은 전면에 유리가 씌워져 있지만 당시에는 집중포화를 맞고 남아있는 유리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 헉~ 구멍이~ 엄청 크네요. 당시의 순간을 떠올리니 끔찍하네요.

▲ 여기는 조타실로 故 한상국 중사가 임무를 수행하던 곳입니다. 온통 붉은 자국 투성이군요. 
(쇳덩이들도 이렇게 뚫리는데 전면 유리는 오죽했을까 싶네요.)

▲ 참수리 357호 내부 옆면인데요. 배 안이 이 지경이었으니~ 그저 할 말이 없습니다.

▲ 이 구멍 좀 보세요.

▲ 확대해 보니 이렇습니다. 헉~!!!

총포가 군함을 관통한 자국들을 볼 때마다 당시가 얼마나 살 떨리고 긴박한 순간이었는지 느껴집니다.


# 마지막 코스~ 다시 태어난 우리의 영웅~

이제 우리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바로 윤영하함이었습니다.
제 2 연평해전에서 전사한 참수리 357호 정장 故 윤영하 소령의 이름을 따서 만든 유도탄 고속함입니다.

고성능 레이더, 스텔스 기능을 갖추고 있고, 전자전에도 대비가 가능할 정도로 첨단 장비가 즐비하다네요.
또한 76mm포, 40mm포, 4기의 유도탄을 탑재했습니다.

▲ 제 2 연평해전 전적비에서 찍은 윤영하함의 모습입니다.

▲"윤영하함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눈에 띄네요.

▲ 의장님과 우리 일행을 맞기 위해 해군 병사들이 도열해 있는 모습입니다.

▲ 윤영하함 내부에서 밖을 살펴본 광경입니다.

▲ 의장님께서 윤영하함에 오르신 뒤, 방명록에 무슨 말씀을 쓰고 계셨을까요? 가까이 다가가 보겠습니다.

▲ "그대의 눈물, 겨레의 혼불되다." 국회의장...


윤영하함에 오르신 의장님께서는 제 2 연평해전 헌화식 이후
당시의 아픔을 잊지 못하시고 
방명록에 이렇게 적으셨습니다.

"그대의 눈물, 겨레의 혼불되다." 

실로 국민 모두가 공감할 소감이라 생각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제 1~2 연평해전은 잊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인이면 잊어서는 안 될 기억입니다.
나라를 지켜온 여러분들, 당신들이 있기에 우리도 있습니다.

더불어 남북한의 젊은이들이 더 이상 피 흘리는 일이 없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끝으로 제 2 연평해전에서 전사한 참수리 357호의 영웅들.

정장 故 윤영하 소령
조타장 故 한상국 중사
병기사 故 조천형 중사
병기사 故 황도현 중사
내연사 故 서후원 중사
의무병 故 박동혁 병장

우리의 안녕에는 당신이 있었음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Posted by 칸타타
                                              (국회의장 비서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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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국회의장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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