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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지금

'아마존의 눈물'보다 독립다큐가 나은 까닭


한국독립영화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던 <워낭소리>를 연출한 이충열 감독은 TV로 중계된 한 시상식 무대에서 세상을 향해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방송국 사장님들, 제작비 현실화시켜주십시오..그리고 독립PD들에게 저작권을 인정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

순간, 시상식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 얼어붙었다.  자리에 앉아있던 수많은 영화,방송 관계자들의 표정을 카메라가 훑어내고 있었지만, 그들 중 아무도 밝은 표정을 짓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숙연해질 수 밖에 없는 분위기 속에 그렇게 5초 정도의 정적이 흘렀다.

왜?

모두들 공감할 수 밖에 없는 발언을 이충열 감독이 대신해주었으니까...
그의 말이 백번 옳은 말이었으니까....


              ▲ <워낭소리>의 한 장면. 이 영화 덕분에 독립영화는 '팔자에 없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게된다.


그로부터 1년 뒤,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번지 대한민국 국회 입법조사처의 한 세미나실에서는 작지만 큰, 조촐하지만 엄청나게 의미있는 자리가 마련되고 있었다.

이름하여, <국내 독립다큐 제작환경과 실태에 대한 전문가 간담회>. (2010,1,14)


               ▲ "불합리한 법과 약관을 고쳐주세요~" 오른편에 앉은 독립PD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았다.


열악한 환경 속에 '장인정신' 하나만 믿고 작품을 만들고 있는 이른바 '독립PD'들 세 명이 국회를 찾아온 것.

세 명의 독립다큐멘터리 PD들을 이 자리에 초청한 것은 국회 입법조사처의 방송,영화 전문가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충분히 알고 있는 입법조사처 전문가들이 독립PD들의 목소리를 듣고 , 이를 법 개정에 반영하기 위한 자리인 셈이다.


               ▲ 왼쪽부터 이성규 PD, 박봉남 PD, 윤성일 PD. 이들 모두 세계적 명성을 지닌 감독들이다.  

이 중에는 한달 전인 2009년 12월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다큐멘터리 영화제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다큐멘터리 영화제> 대상에 빛나는 박봉남 PD도 포함돼있었다.

그의 말은 분노의 세월을 거쳐 거의 달관의 경지에 다다른 도인(道人)의 경험담으로 다가왔다. 흔히 말하는 공중파 방송국은 왜 이들 독립PD들에게 군림하기만 했을까? 그 점이 궁금했다.

" 워낭소리 덕분에 독립영화, 다큐멘터리가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독립PD들에겐 정말로 고무적인 사건입니다. 이충열 감독은 다른 일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심정은 비슷할 겁니다. 이충열 감독과 마찬가지로 40대중반 동년배들인 우리들은 거의 모두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방송국의 불공정 관행과 차별입니다."


                     ▲ <화씨 911>, <식코>로 유명한 마이클 무어 감독 등 세계적 거장을 물리치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다큐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박봉남 감독.


<아이언 크로우즈 (Iron Crows/ 철 까마귀)>라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방글라데시 치타공에서 2년의 세월을 보낸 박봉남 감독이야말로 발로 뛰는 감독, 몸으로 부딪치는 다큐멘터리스트다. 덕분에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대상을 거머쥐는 결실을 거둘 수 있었다.

            ▲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아이언 크로우즈>. 철 까마귀는 방글라데시 폐선 해체 노동자를 말한다.


이 자리에 참석한 '열혈' 독립PD는 박봉남 감독 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다큐멘터리 <캘커타 스토리>로 널리 알려진 이성규 감독. 이감독은 한국 다큐멘터리의 대형화,자본화에 대한 걱정이 담긴 속내를 풀어놓았다.

" 한국 다큐멘터리가 <아마존의 눈물>,<차마고도>,<북극의 눈물> 등으로 호화롭고 대형화되고 있지만, 아직 세계시장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투자대비 효과로 봤을 때 너무도 미미한 수준입니다. 예를 들어 20억 가까이 투입된 <차마고도>는 세계시장 판매액이 2억원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독립다큐멘터리의 투자대비 효과는 공중파 다큐멘터리보다 열배 스무배 높습니다. "  


               ▲ <캘커타 스토리>의 몇몇 장면들. 서구적 시각과 방송국의 시각을 버려야
                         좋은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진다고 독립PD들은 입을 모았다.


이성규 감독은 또 방송국에 소속되지 않고 일하는 독립PD들의 애환을 거침없이 풀어냈다.

"워낭소리의 이충열 감독이 2억원 넘게 돈을 들여 만든 다큐멘터리를 들고 방송국을 찾아갔더니, 최대 8천만원까지 줄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 식이라면 투입된 3년이란 시간은 제외하더라도, 1억 2천만원이 손해아닙니까? 그래서 이충열 감독은 자신의 다큐멘터리를 방송국이 아닌 영화관에서 방영할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지만, 방송국의 불공정 관행이 <워낭소리> 탄생의 주역인 셈이지요..."
  

               ▲ 이성규 감독. 이감독은 지방에서 카레전문점을 운영하며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


<누들로드/KBS>, <한반도의 공룡/EBS>, <아마존의 눈물/MBC>,<차마고도/KBS> 등이 잘 만들어진 작품이긴 하지만, 방송국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지다보니 그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목소리.

"캐릭터가 살아있는 다큐멘터리는 현행 공중파방송국 시스템에서는 절대로 만들어지기 힘듭니다. 그건 이상하게도 오직 독립PD들의 근성과 헝그리 정신에서만 탄생하나 봅니다. 또 하나, 서구적 시각에 물든 마음가짐으로는 좋은 작품이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


               ▲ <아이언 크로우즈>의 한 장면. 폐선 해체 작업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은 '열악하다'라는
                    한마디로는 다 표현하기가 힘들다고.....


               ▲ 이승준 감독의 <신의 아이들>. 인도의 어린이들을 서구적 시각이 아닌 관점에서 그려내
                  호평을 받은 작품. <신의 아이들>같은 작품은 독립피디들의 전문성이 빚어낸 쾌거라는 것.


이날 간담회에서 쏟아져나온 독립PD들의 생생한 목소리는 국회 입법조사처 관계자들의 검토를 거쳐, 해당 상임위,의원,국회의장 등에게 전달된 후 법제화 과정을 밟게 될 예정이다.



               ▲ 국회 입법조사처, 국회 홈페이지 민원코너, 의원실, 국회의장실 등에 연락하면,
                  전문가집단의 세세한 조언 및 문제 해결을 경험할 수 있다. 물론 , 법제화를 통해서.....


국회가 이들 독립PD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독립PD들의 건승을 기원한다. 

아울러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독립PD들의 땀방울에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posted by 백가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