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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헤드라인

<대통령께 간곡히 호소합니다> 국군 통수권자로서 백선엽 장군을 조문해 주십시오

국군 통수권자로서 백선엽 장군을 조문해 주십시오

 

장마빗속에 두 인물이 하루 차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청 앞과 광화문 광장의 시민 분향소는 불과 몇 백 미터 거리였지만, 거기 모인 사람들의 간격은 너무나 멀어 보였습니다. 저는 10일에 박원순 시장, 12일엔 백선엽 장군 영안실을 찾았습니다. 박 시장 빈소에서 인생의 허망함을 느꼈다면, 백 장군 영안실에서는 나라의 어제와 오늘을 생각하며 역시 우울하였습니다.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주역인 백선엽 장군은 6.25 전쟁 때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입니다. 그를 비롯한 용감무쌍한 우리 국군이 없었더라면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지도에서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아마 대통령께서도 이 땅에 태어나지도 못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전·현직 주한미군사령관을 비롯한 많은 외국 인사들이 조문을 와 "국가의 보물"이라 칭송하며 고인을 애도하고 기렸습니다. 빈소를 찾은 해리스 미국대사는 늘 몸에 지니고 다닌다며 무릎을 꿇은 대사가 휠체어에 앉은 장군의 손을 맞잡고 있는 사진을 꺼내 들었다 합니다. 자국도 아닌 타국의 전쟁 영웅을 추앙하는 그의 태도가 우리를 뭉클하게, 또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우방 여러나라도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여 정중한 조문을 보내왔습니다.

 

대통령님, 진영논리와 정파적 편가르기에 찌든 나라를 물려주려고야 않으시겠지요. 해묵은 친일 논란은 지금 또 '우리''남남'으로 갈라놓는 정치도구가 되고 있지만, 포탄과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쏘라"며 백 장군이 솔선수범한 구국의 충정과 빛나는 전공(戰功)은 세계가 인정한 리더십입니다. 비서실장을 대신 보내 영전에 꽃 한 송이를 바치는 모습이 뭔가 아쉽고 부족해 보인 것은 비단 저만의 생각일까요? 간절히 바라건대 대통령께서 직접 빈소를 찾아 고인에게 예를 갖추어 주십시오. 그것이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 또 국군 통수권자로서 마땅한 도리이고 의무입니다. 나라의 품격이기도 합니다. 그래야 군인들도 사기가 살고, 그래야 국민들도 국가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될 것입니다. 구국의 영웅을 이렇게 소홀히 보내는 나라가 우리 말고 또 있을까요.

 

육군장이 아닌 국가장, 대전이 아닌 서울현충원에 모시자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무엇보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는 6.25 때 숨진 12만 전우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루 남았습니다. 발인이 내일 아침 7시입니다. 영결식에 참석해 백선엽 장군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거수경례로 배웅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모습을 꼭 보고 싶습니다. 그것이 상식입니다. 우리가 소중히 지켜가야 할 나라의 존재 가치에 대한 예의입니다. 속으로 울고 있는 수천만 국민의 눈물을 닦는 일입니다. 그러면 백선엽 장군님도 좀 더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지 않을까요. 찢기고 갈린 국민 통합,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대통령께서 꼭 하셔야 할 일입니다.

이 하루, 짧지만 긴 역사의 시간입니다.

 

714일 아침, 전 국회의장 김형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