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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헤드라인

국민 약탈 정권

윤석열은 대선출마 기자회견에서 국민을 약탈하는 정권의 연장을 막기 위해 모든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약탈 정권’, 일부 언론에서 제목으로 쓸 만큼 이 한마디는 정권을 비판하는 쪽에서는 통쾌하기 그지없고 반대파는 부글부글 끓게 만들 것이다.

윤석열의 정치 선언, 그의 전면 등장으로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앞으로 9개월간 이 땅에는 무수한 언어의 총칼이 난무하고 창과 방패가 맞부딪히게 될 것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만 벌써 20명 가까이 된다. 이들 간에 앞으로 합종연행과 이합집산이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이루어질 것이다.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한마디 한 단어라도 언론과 국민의 눈에 띄려고 온갖 재주를 다 동원할 것이다. 그 가운데서 ‘약탈 정권’은 가장 자극적이고 쉽게 잊히지 않을 단어일 것 같다. 적어도 지금까지 나온 말 중에서는 그렇다.

약탈이란 무엇인가. 누가 누구를 약탈했고 또 하고 있다는 뜻인가. 이 말이 누구에게 향하고 있는지 모르는 국민과 유권자는 없을 것이다. 약탈하면 먼저 우리가 당한 역사적 아픔이 생각난다. 우리는 역대 중국 왕조에 조공을 바쳐야만 했고 몽골과 청나라의 가혹한 약탈과 일제의 수탈 등을 당해 왔다. 그러나 세계사적으로 보면 티무르만큼 잔인무도한 약탈 정권은 없었을 것이다. 약탈 정권의 특징은 첫째, 철저한 적아(敵我) 구분이다. 내 편에 대해서는 생사고락을 함께 할 만큼 철두철미하게 보살피되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약탈의 대상으로 삼는다. 둘째, 목적 쟁취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종교적 광신까지 겹치게 되면 상대는 타도 대상이지 타협이나 공존 대상이 아닌 만큼 “정의 실현”이라는 명분으로 절차나 과정 따위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셋째, 소수의 지배자가 다수를 지배하고 장악하기에 자기 생존을 위해 가혹한 정치는 필수적이고 내부 부패와 균열은 불가피하다. 약탈 정권이 오래가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사를 조망하면 티무르(TIMUR, Tamerlane 또는 Tamerlan)만큼 약탈 정권의 전형에 속하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그는 칭기즈칸 이후 200년 만에 혜성처럼 나타나 전 중앙아시아를 휩쓸고 지배했다. “말(馬) 위에서 내리지 않는 사람”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평생 전장(戰場)을 누볐고, 권좌에 오른 후 수십 년 동안 단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 그의 말발굽 아래 떨어지면 도시는 철저히 파괴되고 주민들은 모두 학살되거나 노예로 끌려갔다. 재물·재산은 완전히 약탈당하고 그 나머지는 불살랐다. 이런 지독하고도 완전한 파괴·살인·방화·약탈을 자행한 자는 인류역사상 유례가 없다.

Timur(1336.4.9~1405.2.18), 소련의 학자 미하일 게라시모프가 티무르의 두개골을 토대로 복원한 흉상(사진출처:위키피디아)

그는 다스리고 확장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죽이고 빼앗기 위해서 전쟁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본보기를 보인답시고 수만 개의 해골로 높이 수십 미터에 이르는 탑을 쌓기도 했다. 인심을 쓴다는 게 고작 항복하는 나라의 도시에 대해서만 엄청난 세금을 부과하고 과도한 전리품을 챙겼다. 목숨을 살려주는 대가라는 것이다. 수탈과 폭정에 반발하여 저항하거나 독립전쟁을 일으키면 다시 와서 더욱 가혹하게 짓밟고 또 약탈물을 챙겨갔다. 때로는 약탈의 핑계를 얻고자 저항을 유도하기도 했다. 약탈물은 금은보석과 진귀한 품목들, 말과 소·양 등 가축이었다. 여자와 소년은 노예로 삼았고 기술자 장인들은 특별대우를 받았지만 이들 역시 고향에 있지 못하고 끌려갔다. 케시와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한 티무르의 근거지는 부(富)가 넘치고 활력이 솟았다. 행사 때마다 금가루가 뿌려지고 잔치는 하루 이틀에 끝나지를 않았다. 싸웠다 하면 이기고, 돌아오면 전리품이 넘쳐났다. 전사자와 유족은 특별대우를 받았다. 내부반란이나 불만의 기미가 보이면 반역 행위로 간주해 즉각 처단했다. 때문에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수 없었고 티무르의 혜택으로 잘 먹고 잘살게 되었으니 지배력은 갈수록 탄탄해졌다. 마침내 전 중앙아시아가 그의 영역이 되었으며 모스크바, 이란, 바그다드, 북인도, 터키 중부까지 그의 말발굽 아래 짓밟히게 되고 말았다.

그는 모순덩어리다. 알라신을 높이 받들고 이슬람교를 확장하기 위해 전쟁을 한다면서 그가 짓밟은 대부분의 지역은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의 땅이었다. 알라의 이름으로 이슬람교도들을 죽였다. 물론 죽은 자들은 이단이거나 이슬람을 잘못 믿었다는 죄명이 씌워졌다. 조지아나 아르메니아 같은 기독교 국가나 인도의 힌두교도들도 희생되었지만, 이는 그에게 짓밟힌 나라 중 소수에 불과하다. 그는 평화를 위한다며 전쟁을 했고, 신의 이름으로 산 사람을 불태우고 매장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오직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한 그의 부족들과 그에게 충성하는 군대를 살찌우기 위해 다른 모든 나라와 사람들을 약탈·수탈·살인·방화의 대상으로 삼았다. 최고 통치자와 그 지지자들만을 위한 정의와 평화, 복지가 구현되는 잘못된 유산이 21세기 현대에도 남아있는 나라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슬람을 전면에 내세운 이 살인마 영웅을 당시 철저한 기독교국인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칭송했다는 점이다. 이유는 단 하나, 유럽의 최대 위협 세력인 오스만 튀르크의 공격으로 바람 앞의 등불 같던 비잔티움을 구해주었기 때문이다. 티무르가 기독교 국가인 비잔티움을 살리기 위해 같은 이슬람 세력인 오스만과 싸워 이긴 것은 결코 아니지만, 결과는 그런 모양새가 되었다. 기독교 국가에서는 그래서 이 살인마를 영웅으로 취급했다.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인 크리스토퍼 말로는 티무르대왕(Tamburlaine the Great)의 극작으로 공전의 히트를 했고, 헨델은 그의 걸작 오페라 타메를라노(Tamerlano)로 공연하기도 했다.) 적의 적은 친구라 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역사는 자기 편의대로 왜곡되기도 하지만 진실은 결코 오래 감추어지지 않는 법이다.


헨델 오페라 "타메를라노" CD 이미지(사진출처:YES24)

또 하나 티무르는 그가 평생의 명분으로 삼은 칭기즈칸 제국의 부활을 위해 전쟁을 한다면서, 그리고 몽골을 멸망시킨 명(明: 키타이) 나라를 쳐서 칭기즈칸과 몽골의 복수를 하겠다고 하면서도 그 반대 방향인 서쪽 남쪽의 여러 나라와 지역으로 가서 전쟁하고 약탈했다. 그러다가 죽기 전에 대업을 이루겠다는 각오가 돌연 발동했는지 아니면 판단력이 흐려졌는지 그는 한겨울에 20만 대군을 모아 톈산산맥(天山山脈)을 넘으려고 했다. 병마(兵馬)가 혹독한 추위에 스러졌다. 결국 그는 중국 땅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산맥의 자락인 군영에서 최후를 맞는다. 그는 중국과의 전쟁이 얼마나 힘들고 위험한 짓인 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부하와 신하들에게는 명분용으로 ‘키타이 정벌’을 말하면서 계속해서 실리를 챙겼다. 이 과정에서 반대 세력을 억압하고 초토화시킴으로 그들(만)의 부를 축적해 나갔으니 통치술도 뛰어났다. 어쩌면 그는 중국 정복이 무모한 짓인 줄 알기에 무모하게 작전하려고 했는지 모른다. 결국 전 중앙아시아를 전율케 했던 그는 찬바람 속에 숨을 거두고 그의 제국은 그의 죽음과 함께 분열되고 만다.

윤석열이 말하는 "약탈 정권"이 결코 티무르제국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약탈 정권은 위의 예를 든 특징처럼 결코 정의롭지도 행복하지도 못하다. 다수 국민을 적으로 몰고 자기만 옳다고 여기며 갈라치기 하는데 어찌 잘 될 수 있겠으며 오래갈 수 있겠는가. 586들이 권력의 요소요소를 장악해서 이 나라 사회가 많이 뒤틀어졌다. 나라가 정상(正常)을 회복하는 일이 시급하다. 대선 시즌을 맞아 우리 국민과 지도자들이 각성하여 시대착오적이며 약탈적인 정치를 뿌리뽑고 나라가 올바르게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꿈꾸어본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