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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실록(제도개선등)/그건 이렇습니다

민주당 강운태 국회의원이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보내는 두번째 서한


김형오 선배님, “언론악법 재협상만이 의회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길입니다”


김형오 선배님,

사상 처음으로 국회에서 치러진 국장을 뒷받침하시느라 노고가 많으셨지요?


그래도, 국민들의 스승과도 같았던 김대중 대통령님을 국회로 모신 것은 썩 잘된 결정이었고, 대한민국 국회의장으로써 잘 판단하신 것입니다.


이제 대통령님은 떠나셨지만, 마지막 가시면서까지 남·북간에 막힌 물꼬를 터주시고, 가해자들의 발걸음이 빈소에 이어져 “용서와 화해, 관용과 화합”의 가치가 얼마나 절실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새삼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 분의 삶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면서 오늘, 현충원 국립묘지에서 안장식을 마치고 나오다가, 문뜩 선배님이 떠올랐습니다.


갈등과 파탄으로 잔뜩 헝클어진 대한민국 국회의 ‘화해의 실타래’를 풀 사람이 바로 김형오 국회의장님이라는 생각에서 입니다.


김 선배님,

지난 7.22 방송법 파동이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아마도, 휴가고 뭐고 여름철 내내 심사가 편치 못하셨겠지요? 


저도 한 달 내내 기분이 좋질 않았습니다. 특히 지난 7.20 선배님께 “직권상정을 해서는 안된다”는 저 나름대로의 충언을 보낸 이후 “그래도 국민 70%이상이 반대하는데 이번만은 직권상정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저의 예측이 어김없이 빗나갔으니, 이래저래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8월의 땡볕을 마다하지 않고 거리로 나가 “김형오 의장 사퇴하라”는 주장을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물론 ”언론악법은 원천무효다“는 주장과 함께 말입니다.


김 선배님,

이제 민주당이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장외투쟁을 접고 원내로 들어오기를 희망합니까, 아니면 장외투쟁을 계속하든 말든 방관하실 요량입니까?


김대중 대통령님의 서거정국에서 모처럼 불기 시작한 화해의 불씨를 살려 나가실 생각입니까, 아니면 냉혹한 현실의 풍파 속에 파묻혀 곧 수그러들도록 나둘 것입니까?


얼마 전 원로 정치인 한 분을 뵈었더니 지금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방송법을 놓고 치킨게임을 하고 있는데, 민주당이 다소 유리한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국회의장이라는 사람은 뭐하는지 모르겠다”고 탄식하셨습니다.


민주당이 유리하다는 치킨게임에 대해서 선배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동의하십니까?


7.22 국회 현장의 증거물과 법리적인 해석을 살펴보면,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4개 법률안 모두가 원천무효이고, 또 그렇게 되는 것이 의회민주주의와 사법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김 선배님,

저는 새삼 법리논쟁을 하자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뒤늦게 직권상정의 부당성을 따지자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다시 충언을 드리는 것은 국회 정상화의 마지막 열쇄를 선배님이 쥐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것은 헌법재판소의 사법적 심판결과를 기다리지 말고, 언론악법에 대한 협상을 원점에서부터 다시하자는 것입니다. 선배님께서 국회의장으로써 문제의 법안 처리과정에 하자가 있었음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재협상을 주관하시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최소한의 기본전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첫째는 정부에서 새로운 법이 확정될 때까지 문제의 법 집행을 유보해야 할 것이고, 둘째는 이번에는 여·야 합의로 처리한다는 분명한 원칙을 천명하고 재협상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파산상태에 있는 대한민국 국회의 위상을 그나마 회복하고 여·야 모두가 상처를 덜 받는 것은 이길 밖에 없다고 믿습니다. 또, 이 길이 국회를 정상화 시켜야 할 국회의장으로써 현 시점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정도라고 믿습니다. 


물론, 선배님 입장에서 재협상 안을 들고 나서기가 쉽지 않겠지요. 그러나 그저 침묵 속에 세월을 기다리는 것 보다는 그나마 직권상정으로 얼룩진 과오를 씻어내는 유일한 방법일 것입니다.


정부의 태도가 변수이겠지만, 입법부의 수장으로써 국회를 구하고 나라를 살린다는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나아가면 반드시 길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빈소와 영결식장을 국회로 제안해서 많은 국민들의 공감을 얻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더 늦으면 기회가 없습니다. 지금이 바로 결단의 시점입니다. 


지난 7.20 보낸 충언처럼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길 바라면서, 선배님의 결단을 기대합니다.


늦 여름철 건강 유의하십시오.


               2009년   8월   23일 밤


                국회의원   강  운  태 올림


민주당 강운태 의원님께,


김형오입니다. 

제 홈페이지에 올려주신 편지글 잘 읽었습니다.

무엇보다 강 의원님의 마음 속 열정이 듬뿍 느껴지는 글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편지로나마 이렇게 소통을 청해주신 점에 감사드립니다.


강 의원님 말씀대로 강의원님은 제 대학 1년 후배이시지요.

화려한 경력만큼이나 지혜롭고 꿈이 큰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륜과 통찰력을 두루 갖춘 훌륭한 정치인으로도 널리 알려진 강의원님을 저도 늘 많은 기대를 갖고 바라보고 성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깊은 관계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좋은 관계였던 것만은 확실합니다. 물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요. 앞으로도 내내 그러하리라 믿습니다.


강 의원님이 저의 홈페이지에 올리신 글의 요지는 ‘미디어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릴 게 아니라, 미디어법 협상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자’ 인 것으로 이해됩니다. 편지에서 여러 번 언급하신 것을 보니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강 의원이 가진 그런 생각을 저는 이해는 합니다.

그러나 강 의원님의 생각이 저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제가 왜 미디어법을 직권상정할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불가피한 결단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것보다 미디어법 처리일인 지난 7월 22일 제가 발표한 성명서를 참고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인터넷으로 소통을 청했기에 저 또한 인터넷 주소를 첨부해서 링크하겠습니다. 찬찬히 읽어보시면 제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 직권상정 관련 성명 (7,22일 게시글)

http://www.kho.or.kr/cafebbs/view.html?gid=main&bid=record&pid=28450&page=1


위의 글보다 며칠 전에 올린 또 다른 글도 있습니다.

제 진심을 느낄 수 있는 글이라 생각해서 링크합니다.


▶“네 잎 클로버 찾는답시고 화단 다 망친다” (7,19일 게시글)


http://www.kho.or.kr/cafebbs/view.html?gid=main&bid=record&pid=28266&page=1



위에 링크한 두 개의 글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저는 국회의장으로서 공명정대한 입장에서 최대한의 중재노력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더 이상의 답변은 자칫 또 다른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을 것 같아 제 답변은 위에서 링크한 글로써 갈음할까 합니다.


지금의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제 미디어법 문제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맡기고, 더 크고 밝은 미래를 위해 여야가 힘을 합쳐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를 여야가 국회의사당 안에서 어떻게 실현해내느냐를 고민할 때가 아니겠습니까?


이제 통 크고 지혜로운 정치를 국민 앞에 보여줄 때도 되었습니다.

우리 정치인들은 여야를 떠나 그래야만 하고,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9월 정기국회 때 좋은 얼굴로 만나뵙기를 희망합니다.


다시 한번 인터넷 편지글로 소통을 청하신 점에 감사드립니다.


                                       2009년 8월 25일 김형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