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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지금

새벽 2시, 오빠가 '웬수'가 된 사연.

지난해 이맘때쯤의 일입니다.

‘벨레레레레~, 벨레레레레~.’

모두가 곤히 잠든 새벽 2시, 갑자기 울리는 전화 벨소리에 저는 잠에서 깼습니다.(저는 잠 잘 때 깨우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싫어합니다. 잠을 못자면 아주 예민해지는 성격이거든요.)

‘아! 도대체 이 시간에 누구야.’

약간은 짜증난, 그리고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수화기를 들었죠.

“여기 00 지구대인데요. $$씨 네 댁이 맞죠? 지금 $$씨가 술을 많이 마셔서 저희가 보호하고 있으니깐 지금 바로 00지구대로 데리러오세요. 근데 몇 시까지 오실 수 있으세요?”

수화기 너머 들리는 경찰 아저씨의 친절한(?) 목소리에 순간 잠이 확 깨더군요.

경찰 아저씨가 말한 지구대는 우리 집에서 좀 먼 정도가 아닌 꽤 먼 곳에 있었습니다.


같은 시가 아닌 아예 행정구역 자체가 다른 그런 곳이었죠.(예를 들면 경기도와 강원도?) 솔직히 그런 지구대가 있다는 사실도 그 날 처음 알았습니다. ㅠ ㅠ 

 “한 두 시간 정도 걸릴 거 같은데요.”

“네? 두 시간이요? 거기가 어딘데요?”

나의 대답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경찰 아저씨는 급 흥분하셨습니다.

제가 최대한 기어가는 목소리로 “여기 00인데요. 지금 바로 출발해도 그 정도 걸리는데...요”라고 말하자 경찰 아저씨는 한숨을 내쉬더니 아무튼 빨리 오라며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우리 집 사고뭉치 오빠는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한 이후 매년 이맘때쯤 이와 같은 새벽 전화로 연말연시가 시작됐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저의 지구대 위치 지식도 매년 늘어나고 있죠.(이제는 새벽에 전화벨 울리면 나갈 준비하는 것이 자동입니다.) 

힘들게 찾아간 지구대.
이미 지구대 안에는 술에 취한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그 안에서 이 원수가 바닥에 대자로 뻗어서 잠을 자고 있더군요.

 ▲딱 저 포즈였습니다.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걸 사람들이 신고해서 이곳으로 데리고 왔어요. 빨리 이거 작성하고 데리고 가세요.”

경찰 아저씨가 작성하라는 것을 다 작성한 후 저에게 남은 미션은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이 원수를 데리고 집에 가는 일이었습니다.

원수를 깨우기 위해 손바닥에 최대한 힘을 실어 싸대기를 때렸습니다.

일어나지 않더군요.

컵에 물을 받아서 얼굴에 뿌려도 보고 무작정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려고 해도 이 원수가 도저히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참고로 이 원수는 키가 185cm입니다. 이에 반해 저는 아주 한참 작습니다. ㅠ ㅠ) 

“저~ 도저히 일어나지 않아서 그러는데 조금만 있다가 가면 안 될까요?”

“절대 안 됩니다. 어서 데리고 나가세요.”

빨리 나가라고 재촉하는 경찰 아저씨와 완전히 뻗어버린 원수 사이에서 정말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한참을 낑낑거리고 있자, 이래서는 도저히 오늘 안에 보내지 못할 것 같았는지 경찰 아저씨가 오빠를 깨우기 시작했습니다.

“아저씨, 아저씨 그만 일어나세요. 이제 집에 가야죠.”

경찰 아저씨가 큰 소리로 일어나라고 외치고 몸을 흔들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더군요.

결국에는 지구대에서 근무하던 경찰 아저씨들이 모두 붙어서 각자 팔 하나, 다리 하나 붙잡고 그냥 들어서 차 뒷좌석에 밀어 넣었습니다.

차를 끌고 오는데 정말 울고 싶더군요. 정신도 없는 사람을 무작정 데리고 나가라는 경찰 아저씨들이 너무나 야속했습니다. 

당시에는 자꾸만 나가라는 경찰관들이 너무 야속했지만 후에 이 모든 상황들이 경찰관들도 어쩔 수 없는, 주취자 관리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경찰의 업무를 마비시키는 심각한 주취자 문제.


   총계  살인  강도  강간  절도  폭력  공무집행방해  기타
 총범죄  157만8086  979  6033  5946  7만9064  30만2870  1만3654  116만9540
 주취자  35만4866  423  744  2168  4990  10만7875  7840  23만826
 비율  22.5%  43.2%  12.3%  36.5%  6.3%  35.6%  57.4%  19.7%
                             <표2> 범죄별 주취자 비율, 경찰청 통계자료 2009.1.1~8.31 간 (단위: 명)

경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전체 범죄 중 22.5%가 주취자에 의해 발생했고 특히 공무집행방해범죄는 절반이 넘는 57.4%가 주취자에 의해 발생했습니다.

부산경찰청의 경우도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총 신고 54만212건 중 10만6279, 하루 평균 389건이 주취자 사건이라고 하는데요.

지구대에서 주취자 사건 1건당 처리 시간은 2~3시간 소요로 연간 주취자 처리에 약 440억 원의 비용이 소용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큰 문제는 지구대 내 주취자 보호가 주취자의 사망으로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올해만 해도 서울시와 목포시, 마산시 내 지구대에서 주취자를 보호하던 중 호흡곤란, 뇌경색 등으로 주취자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현재 주취자는 의학전문 지식이 전혀 없는 경찰관이 전담으로 보호하고 있는 상황이죠. 이렇다보니 응급상황이 발생할 시 제대로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사망에 이르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는데요. 이는 주취자에 대한 보호,규제,보호시설,사용가능 장구에 관한 법적근거와 관계기관 간 협조, 연계 규정이 미비하기 때문입니다."

부산지방경찰청 생활안전과 정규열 계장은 주취자 보호시설 등 주취자 처리에 대한 제도적 장치의 부재가 결국 응급 상황 발생 시 전문지식이 없는 경찰관 개인의 자의적 판단으로 인한 부적절한 조치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주취자 보호에 대한 지자체와 의료기관, 복지시설, 소방기관, 경찰기관의 협조가 무엇보다 시급한 상황이라고 정규열 계장은 강조했습니다. 

이를 위해 부산지방경찰청은 지난 5월, 주취자 처리 문제점에 대한 개선 모델을 마련해 시범 실시 중인데요.

1) 지구대별 상습 주취 소란자 지정 관리 : 부산청 전체 지구대 상습 주취 소란자 자료를 공유하고 관리 중인 상습 주취 소란자에 대해 정신보건센터 및 알코올 상담센터 상담 알선 및 병원 치료 권유.

2) 치료.보호 대상자 선정 : 상습 주취 소란자 중 의학적 처방이 필요한 사람을 선별해 보호 중 체온저하와 심장마비 등 위험상황을 대비하고 응급상황 발생 시 119구급대와 경찰이 합동으로 부산의료원에 후송.

3) 치료.보호 및 주취 해소 : 부산의료원 응급실에 대상자 인계 후 경찰관이 난동 진정시까지 의료진과 합동 보호. 응급실과 경찰 간 '핫라인' 구축해 응급실 주취자 난동에 적극 대처.

4) 주취 해소 후 조치 : 귀가 또는 본인 희망시 해당 전문의 진료(입원), 치료비 미수금 발생시 의료기관에서 응급의료기금을 통한 대불 청구 또는 노숙자 등 무료진료 비용지급 활용, 정신보건센터.알코올 상담센터 연계 치료 프로그램 참여 유도.

5) 시범실시 점검반 편성 실시과정 관리감독 : 지방청 및 경찰서별 생활안전계장 등 3명으로 편성, 운용.

6)시범실시 매뉴얼 작성 활용.

상습주취 소란자의 생명과 신체 보호를 목적으로 시작한 이번 시범 프로그램은 시범 실시 이후 상습 주취 소란자의 신고와 주취자 인수거부 사례가 감소하는 등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음주로 인한 문제가  개인이 아닌  사회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는 지금, 주취자는 물론 해당기관 인력들에게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취자에 대한 효율적인 관리 시스템이 조속히 마련되야 할 때입니다.

그 전에 '적당히 술 마시기 문화'를 실천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사실은 다들 아시죠? 

혹시, 아직도 술을 적당히 못 마시겠다는 분들은 아래를 참고하세요.

-음주생활백서, '자고 일어나니 옆집' 편
-자살자 10명 중 4명, 자살 직전 이들은?
-음주상태면 가정폭력도 면죄?
-남부러울 것 없어보이던 그녀가 가출한 이유?
                                                               
                                                                                                                       Posted by 포도봉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