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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실록(제도개선등)/그건 이렇습니다

내가 언제 밀실에 숨어 야합을 주도했는가?

중앙일보 기사와 논평에 대한 반론 ③

“객관성과 균형감각은 어디로 갔는가”

   

김형오

 

내가 언제 밀실에 숨어 야합을 주도했는가?

 

9월 2일자 중앙일보에는 3개 면, 4꼭지에 걸쳐 내 이름이 등장합니다. 취재 일기, 박용석 만평, 사설, ‘노재현의 시시각각’이란 칼럼을 통해서입니다. 한 사람이 하루에 이렇게 화려하게(?) 등장하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도 고맙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 달아오릅니다. 아무리 괘씸죄에 걸렸기로서니 이렇게까지 심하게 매도당해야 하는 건가요?

‣ 2면의 취재 일기는 제목부터가
“‘국민 성희롱 주역’ 김형오․황우여․김진표”입니다. 셋이서 막후에 숨어 주도적으로 국민을 성희롱했다는 얘깁니다. 비공개 회의의 진짜 주역은 도외시한 채 신문사의 방침에 어긋난다 하여 애꿎은 나를 교묘하게 집중적으로 부각시켰습니다.

‣ 내용 또한 주관적이고 감정적입니다.
 

“본회의장에 빗장을 굳게 쳐놓은 채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강 의원 변호에 열을 올렸고, 한나라당이 앞장서 강 의원 제명안을 부결시켰다. 거추장스러운 기자들과 방청객들을 내보냈으니 마음 놓고 할 말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한 것이다. 그래도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정확히 모를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한마디로 오산이었다. 본회의장 안에서 벌어진 일은 민주당 박지원 의원, 민노당 이정희 대표 등이 거의 실시간으로 트위터를 통해 중계하고 있었다. 김 전 의장의 ‘강용석 변론’ 등은 그렇게 해서 외부에 자세히 알려졌고, 트위터리안들은 이 사건을 ‘국회가 국민을 성희롱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이 기사가 나오기 전날 나는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된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저는 마치 밀실에 숨어 은밀한 목소리로 궤변과 부적절한 비유를 동원해 제 식구를 감싼 파렴치범처럼 매도되었습니다. …제 양심에 떳떳하지 못한 일이었다면 애초에 나서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본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될 줄도 몰랐습니다. 그 바람에 제 발언 중 일부만이 앞뒤 맥락도 없이 전해져 왜곡된 해석을 낳았습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본회의가 시작되기 전 제 발언의 전문을 보도자료 형식으로 언론에 돌릴 걸 그랬습니다.

취재 일기를 쓴 기자가 내 메일을 읽고도 저런 기사를 썼다면 정말로 유감스럽습니다. 기사가 나온 시점은 이미 나의 전문이 공개된 뒤였으니까요. 나는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되는 줄도 몰랐고, 내 발언 내용을 숨기려 한 적도 없음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실제로 나는 당연히 공개일 거라 생각하고 방청석 일각의 야유와 소란을 각오한 채 본회의장에 갔었습니다. 다른 의원들도 공개회의인 줄 알고 있었고, 내 보좌진 역시 국회 방송을 켜 놓고 있었지만 아무 것도 보고 듣지 못했습니다. 모든 국민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강 의원을 변호하기로 마음먹었지만 19대 총선 불출마 문제를 고민하느라 원고를 가다듬고 정리할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연설하러 발언대로 나가기 직전에 비공개 회의임을 동료 의원들과 동시에 알게 되었고, 발언 제한 시간에 쫓겨 준비해 온 원고 그대로를 빠른 속도로 읽어나갔습니다. 오죽했으면 황우여 원내대표에게 “왜 회의를 비공개로 해서 내가 밀실 야합을 주도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느냐”고 항의했겠습니까? 원내대표는 미안했던지 자기도 몰랐다며 발뺌을 했습니다. 만약 공개된 회의였더라면 이보다는 오해와 왜곡 그리고 비난이 덜했을 겁니다.

그런데도 취재 일기는 마치 내가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국회의장의 지시에 손발을 맞춰 기자와 방청객을 내보낸 채 은밀하게 밀실에서 제명안 부결을 주도한 것처럼 각색돼 있습니다. 본회의장 빗장도 마치 내가 친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었습니다. 기사는 진실을 추구하고,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사실을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트위터 중계 역시 형평성을 잃었습니다. 한 쪽 눈은 감고 한 쪽 눈만 뜬 채 보고 싶은 것만 보았다면 나의 억측일까요? 이 모두가 비공개로 인한 부작용이었고, 그래서 전문 공개를 결정했던 겁니다.

9월 2일자, 중앙일보 만평

‣ 중앙일보 9월 2일자 33면 만평에는 쓰러진 강용석 의원에게 내가 다가가 손을 내미는 장면을 그려 놓았습니다. 누가 봐도 성경 속 예화를 희화화한 만평입니다. “이 의원에게 누가 돌을…”이란 말풍선도 달려 있습니다. 할 말이 없지 않지만 ‘표현의 자유’란 측면에서 웃고 넘어가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