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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실록(제도개선등)/그건 이렇습니다

‘국회가 국민 성희롱했다’?

중앙일보 기사와 논평에 대한 반론 ④

“객관성과 균형감각은 어디로 갔는가” 

김형오

 

‘국회가 국민 성희롱했다’?


‣ 무슨 황당한 일이 그리도 많은지 중앙일보 9월 2일자 34면 사설 제목에도 ‘황당’이란 단어가 또 들어가 있습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의 황당한 비유”

9월 2일자, 중앙일보 사설 제목


대체 무엇이 황당한 비유라는 걸까 했더니, 역시나 성경 구절을 인용한 부분입니다. 사설은 그 구절을 이렇게 해석하고 논평합니다.

“인간의 구원에 관한 종교적 메시지이지 ‘모두 흠이 있으니 모두가 그냥 넘어가자’는 뜻은 아니다. …의원들의 윤리 기준을 강화하는 데 앞장서야 할 전직 국회의장이 아무 거리낌 없이 황당한 비유나 하고, 이런 비유에 ‘잘했어’라고 동조하는 일부 의원들, 우리 국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정말 ‘아무 거리낌 없이 황당한 비유’를 한 걸까요?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일일 겁니다. 그러나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맹세컨대 심사숙고를 거듭한 끝에 그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황당하단 말인가요?


예수는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 죽이던 당시 유대 관습을 못 하도록 말렸습니다. 회개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했을 뿐 죄 자체를 불인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 역시도 강용석 의원의 죄를 인정하지 않거나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이미 당 내외의 징계를 받았고 사법적 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의원직 제명만은 말자고 호소했을 뿐입니다. 의사당 안에서의 폭력과 폭언, 기물 파손 등 헌정 질서를 위협한 불법적 행태에 대해서는 변변하게 책임도 묻지 않던 국회가 사적인 술자리에서의 실수를 가지고 한 치의 용서도 없이 정치적 사형 선고를 한다면 그 또한 형평성을 잃은 행위 아닐까요?

그리고 내 발언 어디에 ‘모두 흠이 있으니 모두가 그냥 넘어가자’라는 내용이 있나요? 나는 결단코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습니다. 면죄부를 준 적도 없고 줄 수도 없습니다. 다만 그런 자리를 빌려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돌아보고 자성과 참회의 시간을 갖자는 게 나의 바람이었습니다.

‣ 9월 1일자 중앙일보 1면 헤드라인은
“국회가 국민 성희롱했다”였습니다. 눈길을 확 끄는 자극적인 제목입니다. 센세이셔널리즘으로 독자에게 접근하는 타블로이드 신문도 아니지 않습니까?

국회가 언제 어떻게 국민을 성희롱했는지요? 그렇다면 김형오는 성희롱의 주범인가요?

만약 법원이 이 사건을 두고 중앙일보의 잣대에 못 미치는 판결을 내린다면 중앙일보는 ‘법원이 국민 성희롱했다’라고 제목을 뽑을 건가요?

국회가 거꾸로 ‘제목 자체가 국회에 대한 중앙일보의 성희롱’이라고 항변한다면 받아들일 건가요?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1면에 이렇게까지 제목을 뽑아야 했나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 맨 앞에 언급했던 중앙일보 2일자 34면 칼럼(노재현의 시시각각)은 나를 엉뚱하게도 ‘메기’로 둔갑시켜 놓았습니다. 그것도 ‘나쁜 메기’로….
“미꾸라지보다 나쁜 ‘메기’”가 칼럼 제목입니다.

강용석은 미꾸라지, 김형오는 메기? 좋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런 맹점이 있습니다. 미꾸라지와 메기는 천적 관계입니다. 그런 메기가 미꾸라지를 감싼다는 거냐고 독자들이 혼란스러워할 것 같지 않나요?

사실 발언 이후 지나친 무리수를 두었다는 주변의 염려를 많이 들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어느 정도 인간적인 온정이 작용한 것은 맞습니다. 강용석 의원에 대한 일말의 도의적 책임감도 없지 않습니다.

나는 국회의장 시절 폭력과 폭언이 난무하는 국회에 토론 문화를 일으키려는 취지로 전국 대학생 토론 대회를 개최키로 했습니다. 처음 하는 일이라 실무자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나는 강 의원으로 하여금 이 일을 실질적으로 맡아 진행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의 지역구(서울 마포 을)에 대학생들이 많이 거주하는데다가, 평소 그가 젊은이들과 활발히 교류하고,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학생회장까지 지내 적임자라고 추천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강 의원은 성공적으로 토론 대회를 치렀고, 뒤를 이어 박희태 국회의장도 강용석 의원에게 계속 진행을 맡겼습니다. 그 토론 대회의 뒤풀이 장소에서 일어난 일인 만큼 나도 인간적으로 마음이 괴롭고 무거웠습니다. 토론 대회도 2회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이로 인해 국회 토론 문화 정착이 또 지체되겠구나, 라는 아쉬움과 함께 말입니다.

‣ 이 칼럼(노재현의 시시각각)은 중간에 이런 발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강용석 제명안 부결 주도한 거물급들, ‘이게 정의이고 공정 사회인가’ 묻는 성희롱 피해 학생들에 뭐라 답할 건가.”

나 역시 이렇게 반문하면서 이 글을 마치렵니다.

“강용석 제명안을 부결시킨 국회를 ‘국민 성희롱범’으로 낙인찍은 중앙일보. 강용석 의원이 제명되어야 죗값이 치러지고, 제명을 안 한다고 해서 잘못된 행위가 올바른 행위로 둔갑하는 것은 아닙니다. 1개월 정직 처리 과정만 맹비난하지 말고(나도 그런 준비가 있었는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 징계조차 하지 않은 여타 행위에 대해서도 매서운 잣대를 들이대 주기 바랍니다. 비공식 석상에서의 사적인 실언에 그토록 가혹했던 만큼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든 공식 석상에서의 불법 행위에도 같은 잣대를 적용하기 바랍니다. 추상 같은 정론직필로 민의의 전당에서 폭력과 폭언, 멱살잡이, 기물 파괴 등으로 헌정사를 어지럽힌 이들을 엄중히 질타해 주십시오. 중앙일보에 밉보이거나 괘씸죄를 저지르면 불이익을 당한다는 말은 혹시 들어 보았나요? 설마 사실은 아니겠지요? 정의와 공정은 균형감각 위에서만 존립하는 것입니다.”

반론을 펴고 해명도 한다고 했지만 일말의 두려움이 스치는 건 무엇 때문일까요? 혹시 또 다른 오해가 있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나의 국회 발언록 일부를 다시 한 번 소개합니다.

그는 참으로 어리석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일생일대의 실언을 했습니다. 뼈아픈 오점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