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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을 바꿀 때가 왔다 (1부)

 

 

 

 

김형오 전 국회의장 (부산대 석좌교수)

 

 

 

우리 정치의 좌표는 어디인가

 

동심의 세계에서 말문을 떼볼까 합니다. 초등 6학년용 학습지에 나와 있는 퀴즈입니다.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나 대립을 조정하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활동을 (빈칸) 라고 합니다.” 빈칸에 알맞은 말을 쓰는 퀴즈입니다. 물론 답은 정치겠죠.

 

그럼 갈등이나 대립이 생기는 까닭은? 첫 번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의견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사람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6학년 아이들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정치가 있다고 학습하는 내용입니다.

우리 정치 현실은 어떻습니까? 아이들이 배우는 정치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갈등 조장, 대립 첨예, 문제 쌓기... 갈 곳 잃은 정치, 표류하는 국회... 우리 정치 무엇을 바꾸고 어떻게 변해야 할까요?

 

우리는 문명사적 대전환기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알파고 쇼크가 얼마 전 일 같은데, 인공지능(AI)은 이미 우리의 일상에 침투해 있습니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하고 변화의 속도와 규모를 가늠하기 힘든 새로운 차원의 문명, 4차 산업혁명은 세계경제질서의 재편을 예고합니다. 전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생존경쟁에 돌입해 있습니다.

 

국제질서 또한 격동기 속에 있습니다. 무엇보다 북핵을 둘러싼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남북·북미 간 대화가 급행열차를 타고 질주하면서 중국, 일본, 러시아도 숨 가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이 남북관계를 주목하면서 한반도는 새로운 안보환경의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이러한 세계적 격변기와 시대적 도전에 대응해 대한민국은 어떻게 응전할 것인가는 대한민국 미래를 좌우하는, 우리 정치가 풀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입니다. 이 중차대한 시기에 우리 정치의 좌표는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고대 그리스 7현인 중 한 사람인 솔론(Sόlōn, BC 638~558)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자 합니다. BC 6세기 당시 아테네는 경제적 번영을 누렸으나,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었습니다. 소수 귀족에게 부가 편중되고 농민들은 과도한 부채 때문에 점차 노예로 전락하게 됩니다. 오늘날 양극화, 중산층 붕괴의 우리 상황과 비슷합니다. 사회적 불만은 커져가고, 아테네는 붕괴의 기로에 있었습니다. 이 위기에 솔론은 아르콘(집정관)으로 선임되었고 극심한 빈부 격차로 빚어진 사회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솔론의 개혁을 단행합니다.

 

솔론은 귀족과 평민 간 어느 쪽 편에도 서지 않고 균형적·합리적 개혁정책을 추진하지만 불이익을 받은 쪽의 극렬 반대로 양쪽 모두로부터 지지를 잃게 됩니다(부자는 부채탕감 및 노예해방에 따른 손실, 농민은 토지 재분배를 하지 않았다는 실망에 따른 극단적 불만 표출). 결국 자의반 타의반으로 10년간 유랑생활을 합니다. 솔론 없는 아테네는 당쟁이 격화되고 집정관 없는 무정부 상태(anarchy 시대)를 거쳐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참주정(독재)을 후에 겪습니다.

아테네의 솔론, 중국의 공자 같은 현인이 실패하는 것은 확고한 지지기반이 없었고 내 편을 확실히 챙기지 않고 인기정책을 쓰지 않은 까닭입니다.

현자도 풀지 못하는 정치를 저 같은 범인(凡人)이 해결할 수야 있겠습니까마는, 다만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말함으로써 양쪽 모두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솔론 같은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또 상처에 소금 뿌리고 관에 못 박는 짓을 하지 않나 싶어 씁쓸한 마음 가눌 길 없습니다만 여러분과 저의 아픔이 눈물이 되고 그 눈물이 새로운 탄생을 위한 자양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하겠습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19일 서강대에서 열린 ‘대한민국의 보수,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보수정당의 혁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확연히 기울어진 정치판, 민심은 단호했다

 

이번 선거는 예상했던 대로 집권당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1995년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진 이래 역대급 압승입니다. 미니 총선으로 불린 국회의원 재보선도, 당적 없는 교육감 선거마저 진보 쪽의 완승입니다. 집권당의 완벽한 승리입니다. 청와대와 여권은 정책 추진과 집행에 더욱 탄력이 붙었고 야당은 존립의 위기에 내몰렸습니다. 이번 선거는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었지만 국민은 야당에 대한 심판으로 대답했습니다. 야권이 분열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과는 큰 차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먼저 여당은 우리 정치사에서 가장 못난 야당을 상대로 한 승리라 그리 즐거워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여당의 승리요인을 꼽으라면 첫째가 무능한 야당 덕이고, 둘째는 문 대통령의 인기며, 셋째는 북미회담 등 남북한 평화 무드 때문입니다.

힘이 더 세진만큼 국정 운영에 대한 부담과 책임도 동시에 커진 것입니다. 독선과 독주의 유혹만 물리친다면 역대급 정권으로 평가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국민만 바라보겠다.”는 겸손한 담화를 발표한 그 정신과 자세를 잃어버린다면 민심은 부지불식간에 돌아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울어진 정치판은 문재인 정부의 2~3년 차 집권기반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은 분명합니다. 선거 약발이 보통 1년은 갑니다. 금년 내년이 문재인 정권 최고의 해가 될 것입니다. 이때를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이 기간 안에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전쟁위기를 해소하고, 평화정착의 틀을 만든다면 문 정권은 내후년 총선도 그 후의 정권 재창출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만해선 안 됩니다. 정권의 실패는 바로 자만에서 비롯됩니다. 특히 집권 3~4년 차가 위험합니다. 대통령의 실패 원인을 집권세력 내부에서 찾아보면 대통령 개인 능력의 한계, 집권당의 분열, 공무원의 반발입니다.

힘 있는 대통령의 독선·독주, 차기 대권을 둘러싼 집권당의 계파 갈등, 임기 중후반 공무원의 눈치 보기와 일손 놓기를 피해갈 수 있는 정권은 없었습니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문재인 정권은 예외가 되길 바랍니다.

 

반면 보수야당은 생존과 몰락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전국정당으로써의 위세는커녕 전통적인 텃밭마저 뿌리째 흔들리며 지역정당으로 전락했습니다. 이제는 존립기반 자체를 걱정해야 할 형편입니다. 인과응보이고 자업자득입니다.

그러나 더 걱정스러운 것은 책임지고 물러나야 할 사람들만 잔뜩 있고, 난국을 짊어지고 헤쳐 나갈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국민은커녕 몸 바쳐 일해 왔던 당원들이 선뜻 받아들일지 의문입니다. 실망을 넘어서는 분노의 목소리가 당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연달아 배출한 과거의 영화가 무색하리만치 인물난에 허우적대는 대단히 초라한 행색입니다. 수권 능력은 차치하고 내부의 지도력 부재를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가가 관건입니다.

 

결론적으로 작년 대통령 탄핵과 대선, 그리고 이번 지방선거로 정치판은 한쪽으로 확실하게 기울어졌습니다. 왜 이러한 쏠림현상이 발생했습니까? 현 대통령과 집권당의 높은 지지율, 보수정권의 무능과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 정치적 기저효과, 모두 그럴듯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된 요인은 보수정당의 자승자박입니다. 새로운 인물을 키우지 못한 죄, 권력의 사유화에 침묵한 죄, 계파이익 챙기느라 국민 전체 이익을 돌보지 않은 죄, 야당이 된 후에는 집권여당에 제대로 싸우지도 대응하지도 대안 제시도 못한 죄, 교만과 오만, 막말과 품격 없는 행동으로 국민을 짜증나게 한 죄, 반성하지 않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죄, 희망과 비전 제시를 등한시한 죄 등등은 민심의 법정에서 심판을 받기에는 충분한 죄목입니다.

 

비극의 정치는 청산하고, 통합의 정치를 모색할 때

 

지난 10년간 한국 정치는 비극의 연속이었습니다. 직전 세 명의 대통령 중 한 분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두 분은 구속되었습니다. 우리 국민은 비극의 정치, 비정상의 정치사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보수-진보 양 진영이 번갈아 정권을 잡으며 정치개혁정치보복의 널뛰기를 되풀이하면서 비극의 정치를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언제 종식될지 지금으로선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대한민국은 무역경제 대국, 문화·스포츠 강국으로 국제사회에서 위세를 떨치는데 정치는 여전히 후진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1993년 문민정부 등장 이후 3차례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김대중·노무현의 민주화 진보세력이 10, 이명박·박근혜의 산업화 보수세력이 9, 그리고 문재인 민주화 진보세력의 재집권이 그렇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우리 정치가 뭔가 바뀌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리 긍정적이지는 못합니다. 산업화와 민주화, 양대 정치세력은 권력을 잡기만 하면 내부결속을 강화하고 상대진영 허물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도 이러한 악순환의 조짐이 보입니다. 통합의 깃발을 들고 출발해 출범 1년이 지났건만 아직까지 해묵은 청산에 국정의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민주화와 산업화 두 세력은 한국 정치를 발전시킨 순기능도 발휘했습니다. 하지만 고질적이고 만성적인 갈등과 극단 대립은 국민 삶의 질과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데 걸림돌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당리당략, 일방통행, 진영논리, 편가르기, 상대세력 손보기 등 양 세력이 1987년 이후 30여 년간 보여준 우리 정치의 일그러진 자화상입니다.

오죽하면 정권만 잡으면 과거청산이 국정 1순위가 되고, 야당은 투쟁과 저항으로 날을 세워야겠습니까? 산업화·민주화 세력이 적대 관계입니까? 선배들이 그렇게 가르쳤습니까? 산업화·민주화를 위해 땀 흘리고 피를 쏟았던 선배들께 부끄럽지 않은가요?! 진정 양 세력에게서 통합의 리더십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것입니까? 그간 정치판이 쌓아온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우리 정치판을 바꿀 생산적 정치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정신은 이어가되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하는 통합적 정치 리더십, 바로 그 정치판 말입니다.

 

먼저 집권세력에게 주문하고 싶습니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이 안고 있는 숙명이 있습니다. 문재인 정권은 41% 지지로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70%대의 굳건한 지지율을 올리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높은 지지율이 1년 이상 지속되고 있습니다. 당분간 지속될 것 같습니다. 역대 없는 일입니다. 그만큼 서민과 대중, 국민 밀착형 정치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무엇인가 이루어야 합니다. 문 정부가 해야 할 당면과제는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이정표를 제시해야 합니다. 가장 높은 지지율에 있을 때 미래비전을 제시하여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랍니다.

 

현재의 인기에 취하여 당면 현안만 챙기다 보면 곧 임기 중반을 맞이하고 그때부터는 급한 내리막길로 달리게 됩니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의 종착역이 얼마나 쓸쓸했는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실패한 전임 대통령들을 답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일방독주, 코드인사, 측근비리, 포퓰리즘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민생을 꼼꼼히 살피고 경기(景氣)를 안정화하려는 정책을 펴야합니다. 그래야 집권 중·후반기에 치러지는 21대 총선과 그 이후가 보장됩니다.

특히 경제가 중요합니다. 세계경제 호황기에 유독 한국만이 침체를 거듭해서야 되겠습니까. 경제는 그야말로 경국제세(經國濟世: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구함)입니다. 세금으로 메우는 정책이 성공한 경우는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경제가 잘못되면 인기도 지지도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낡은 경제관념에서 벗어나 새롭게 경제를 챙기는 대통령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비극의 정치는 이 정권에서 끝내야 합니다. 국민통합의 정신을 살려 야당과 부단히 대화하고, 반대 입장에도 귀 기울이고 국정에 일정 부분 반영해야 합니다.

이 정부가 대한민국 정치의 정상복원을 위해서 무언가 업적을 남겼다는 칭찬을 듣기 바랍니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시대에서 생긴 이념적·감정적 적대관계를 청산해야 합니다. 힘 있는 집권세력이 먼저 손을 내밀고 국민 대통합의 단초를 제공해야 합니다. 높은 지지율과 남북 평화 무드는 통합의 정치와 미래 지향적 나라로 행복하게 성장·발전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혁 논쟁보다 앞서는 것들

 

<국가 안보는 왜 위협 받는가>

 

그동안 한국의 보수는 안보성장을 주도했습니다. 가난했고 냉전의 골이 깊은 시절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웠고 국가안보를 최우선적 가치로 북한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우리 사회를 지켜냈습니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이 두 차례나 이뤄졌고 역사상 최초로 북미 정상이 만났습니다. 영구적 남북평화와 비핵화가 목전에 다다른 듯 국민적 기대감은 높고 국제사회도 한반도 정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잠시 곁길로 빠져 이번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해서 고대 그리스 장군이자 정치가인 테미스토클레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klēs, BC524~459)는 페르시아 전쟁 중 살라미스 해전에서 압도적인 페르시아 해군을 격파한 전쟁영웅입니다.

 

페르시아 전쟁 대승 후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 방위를 위해 성벽 건축공사를 주도합니다. 이에 육군강국 스파르타는 당연히 항의합니다. 즉각적인 공사 중지를 강력히 요구합니다. 아테네는 사절단 파견을 통해 회답하겠다는 약속을 하지요.

직후 테미스토클레스는 홀로 스파르타로 출발하며 신신당부합니다. “전력을 다해 성벽을 완성해라. 완성하기 전까지 다른 사절단은 출발하지 마라.” 스파르타에 도착한 테미스토클레스는 공식 사절단이 도착하기 전까지 일체의 회담에 응하지 않겠다며 버팁니다. 스스로 인질을 자처한 것입니다.

결국 성벽건설이 완료됐다는 보고를 받고서야 스파르타에 입장을 설명합니다. (성벽은 완성됐고 그리스 전체의 이익이 될 것이다. 스파르타는 불쾌했지만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건된 성벽은 육군이 약한 아테네로서는 최상의 전략 무기이자 체제유지의 보루가 됩니다. 이후 27년간 계속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승자인 스파르타도 패자인 아테네도 지칠 대로 지쳐 테바이와 그 후의 마케도니아에게 모두 멸망하고 맙니다. 저는 테미스토클레스의 시간끌기와 전략적 사고가 이번 북미정상회담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껏 북한은 우리에게 군사적 주적이었고, 그 개념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동족 간 전쟁의 상흔을 직접 경험한 세대들이 여전히 살고 있고, 지금도 625전쟁의 참상을 학생들은 배우고 있습니다.

 

전쟁의 경험, 분단의 특수성은 안보를 중시한 보수 세력에게 유리한 정치적 토양을 제공했고, 심지어 반공의 국시는 철권통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정치적 격변기에는 북한 위협론등 북한 변수가 부각되곤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수는 안보장사꾼이다, 선거 때면 안보위기를 조성해 국민을 현혹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입니다. 나중에는 북풍이 역풍으로 작용하여 보수정당 패배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한편 미국으로부터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일각에서 분출되고 있고, 북미정상회담 후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발언했습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든든한 우산 안에서 성장과 번영을 갈구했던 한국 보수는 어리둥절합니다. 주한미군 철수 논란에 전전긍긍하고, 한미군사훈련은 중단해선 안 된다고 반박합니다.

그토록 강조한 안보를 위해 한국 보수정권은 무엇을 했나요? 예산투입과 제도개선은 충분했습니까? 북한의 군사적 위협 따위엔 무덤덤해도 될 만큼 국방력을 갖췄습니까? 만성화된 방산비리, 중복투자로 인한 혈세 낭비, 군대 내 인권과 복지에 대한 무관심, 군 사기 양양, 전문가 양성, 전략·전술개발은 제대로 했나요? 나아가 사회 지도층과 그 자녀들의 병역의무 회피 의혹... 표리부동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국력에 비례하는 군사력·국방력을 이룩하지는 못할망정 적어도 북한의 침략위협을 분쇄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키우는 것은 보수정권의 의무였습니다. 본인이나 자식은 군대에 가지 않는 고위공직자, 정치인이 유독 보수 정치인과 그 정권에서 많다는 따끔한 지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제라도 자식 군대 보내기는 물론 군사력과 군인 사기 양양을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합니다.

군사력은 평화를 보장하는 확실한 수단입니다. 동시에 북한에 보다 적극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우월한 쪽이 겁먹은 듯이 주춤거리니 약한 쪽이 큰소리치고 깔보는 것입니다. 현 정권을 비롯한 이른바 진보진영처럼 의 입장에서 접근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대등하고 당당하고 공생공존의 입장에서 꾸준히 성심껏 접촉하자는 것입니다. 남북평화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면 우리가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자주국방과 남북평화공존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보수의 근본 입장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통일로 가는 길입니다.

 

<치안과 안전은 왜 불안한가>

 

치안과 안전 역시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국가가 치안을 확립하고 나의 생명과 재산, 안전을 지켜주기 때문에 국민은 세금을 내고 나라의 명령에 불편하지만 따르는 것입니다. 보수정당일수록 국민 생활 안전 확보를 위해 더 힘을 쏟는 것이 선진국의 역사·문화적 전통이며 오늘날도 통상적인 일입니다.

한국 보수정당이 집권할 때나 야당일 때나 치안을 확립하고 국민의 생명안전을 지켰다고 높은 점수를 줄 국민은 드물 것입니다. 오히려 제대로 챙기지 못해 지지층에게 실망감을 안기고 피해자들은 등을 돌리지 않았나요? 세월호 침몰에 쩔쩔매다가 정권 위기를 맞고, 강화해야 할 해경을 오히려 해체하는 일이 보수정권의 모습이 아니었던가요?

과격 시위로 몸살을 앓고, 경찰관이 얻어맞고, 주민은 불안에 떨고, ‘몰카도촬은 성행하고, 우범지역과 조폭은 늘고, 환경·위생·보건문제는 생명을 위협하는데 보수정당·정치인이 발 벗고 나섰다는, 맨몸으로 막아냈다는, 문제 해결을 위해 올인한다는 그런 소리·소문을 제발 듣고 싶습니다.

<성장의 뒤안길은 왜 어두운가>

 

한강의 기적은 국제사회에서도 칭송받는 한국 보수정권의 공적입니다. 그러나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이 성장신화 이면에는 분배의 그늘이 늘 있어왔습니다. 고도성장기 경제적 낙수효과를 기대했던 분배의 바람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고 저성장기로 접어들면서 오히려 양극화의 심화로 되돌아왔습니다.

양극화가 참여정부에서 점차 커졌다는 일각의 비판도 한국 보수에게 면죄부를 주지 못합니다. 이후 들어선 보수정권은 - 세계경제의 침체에도 그 원인이 있겠지만 성과우선주의에 매몰돼 4대강·자원외교의 치적 쌓기, ‘증세 없는 복지등 일방통행에 머물다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4대강, 자원외교 등에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왜 국민의 외면을 받았는지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보수정권은 성장과 분배의 양립 가능한 함수관계를 푸는 성공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현 문재인 정부가 제시하는 최저임금 인상, 정규직 확대, 근로시간 단축 등 대표적인 경제정책은 성장과 분배의 고차원 방정식을 해결하는 해법일까요? 그리스 경제의 몰락에서 보듯 복지 포퓰리즘은 눈앞의 달콤한 과실은 될지언정, 결국 브레이크 없는 파국열차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가시적·시혜적 대책이 나라 경제를 일으키고 국민을 잘 살고 행복하게 한 일은 어느 경우에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야권은 어떤 대안과 대책을 제시했습니까? 당장의 서민 대중의 표 때문에 할 말도 못할 뿐만 아니라 어정쩡한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부패·무능한 보수의 민낯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정치권 속설이 있습니다. 실제 우리 정치에서 보수는 유능하지만 부정부패가 발목을 잡고, 진보는 도덕적이고 개혁적이나 경험 미숙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유능=보수’, ‘깨끗=진보’, 이 공식도 이젠 공감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재벌개혁’, ‘기업 손보기가 유행어처럼 횡행하는데 노동개혁이란 단어는 실종된 듯합니다. 기업은 정부와 노조의 눈치를 보고 투자를 기피합니다. 세계경제는 호황기를 구가하고 미국·일본 등은 기업유치·투자가 늘고 생산성이 향상되고 실업률이 줄어드는데 우리나라는 고용절벽, 청년실업, 취업난에 허덕입니다. 미래 대책은 무엇인가요?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원전(原電)은 폐쇄하고, 반도체 호황기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정부와 국회가 서로 뒤질세라 규제·제한·허가·감독권을 남발하는 규제 천국에서 과연 활력있는 경제가 되며 미래 성장 동력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이럴 때 보수정당·정치인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요.

민주주의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과중한 사교육으로 주부·학생의 신음소리가 높습니다. 이른바 진보진영이 교육 평준화와 무상급식으로 환호를 살 때도 보수는 눈치 보기만 했습니다. ·우정권에 관계없이 공교육은 무너지고 사교육은 성장하며 학원불패의 신화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념 이전에 나라와 국민이 중요합니다.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켜왔다고 자부하는 보수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 덤벼들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스스로 표를 까먹어 가며 보수 운운하는 게으르고 무능한 가짜 보수에게 표를 줄 국민은 없습니다. 급속한 산업화의 진전으로 도시 서민의 가계는 주름살이 지고 농어촌의 빈집은 늘고 있습니다. 전체 가구 수보다도 주택이 많은데도 집 없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1천만에 달하는 도시 서민에게 내 집 마련의 희망을 선사하고, 내 집 앞에 구급차·소방차가 언제든 오갈 수 있도록 골목길을 넓히는 일은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닙니다. 굳이 따진다면 개혁 보수가 해야 할 일입니다. 골목길을 넓히고 내 집 마련의 꿈을 마련해주는 예산은 현재의 일시적·소모적 시혜비용, 임금살포 예산으로도 감당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런 기본적·구체적 대안조차 제시 못하는 보수에게 서민은 표를 주지 않습니다. 나라와 국민 전체의 삶을 따뜻한 눈으로, 인정 어린 마음으로 본다면 해답은 쉽고 분명히 제시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판을 짜야할 때

 

지난 9년간의 보수정권은 무능의 민낯을 보여줬습니다. 성난 민심의 촛불로 시작했고 결국 촛불에 의해 정권의 문을 닫았습니다. 지난 대선 이후 보수당의 행보 또한 무능함의 연장전에 불과했습니다. 자기희생과 책임이라는 보수 정신은 오간 데 없고 기승전 무능이 한국 보수정당의 현실입니다. 백척간두, 사면초가 상태에서 과연 보수정당이 재기할 수 있겠습니까? 과거 영국 자유당과 같은 몰락의 길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반면 진보정권이라고 해서 보수정권과 처지가 다를까요? 개혁성, 도덕성을 내세워 자신만만하게 인선한 고위급 인사들이 줄줄이 낙마했습니다. 그 후 문제 인사들이 계속 기용되는 것은 야당이 제대로 싸우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싸움은 주먹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해야 하는데 야당은 무엇으로 싸웠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합니다. 출범 후 1기 내각을 완성하는데 195일이나 걸렸습니다. 역대 최장 기간입니다. 인사 참사의 책임을 져야할 청와대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여권 차기 유력 대선주자는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정치권을 떠났습니다. 잇따른 미투폭로는 진보세력의 도덕성에 물음표를 던집니다.

현 정권이 야당시절 세차게 비난했던 부조리, 도덕적 불감증이 그대로 답습되고 있습니다. ‘내로남불의 전형입니다. 한국의 진보가 진보적입니까? 개혁적입니까? 그래도 보수정당보다는 낫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과거 보수냐 진보냐를 구분했던 이념적 선명성은 박물관에 보관해야 할 구시대적 유물입니다. 이념의 간판을 내리고, ‘흑묘백묘실사구시, 상생과 공존의 간판을 올려야 합니다. 정권유지, 선거승리에 집착하는 정치판이 계속되는 한 제2IMF가 오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시대적 변화와 국민적 여망을 제도에 반영하는 새로운 정치질서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현재·과거의 집권층 모두 낡은 진보·낡은 보수의 틀을 던져야 합니다. 이념과 형식, 전통에 구애받지 않는 신인류들이 등장했습니다. 정치판을 바꿀 때입니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습니다. (2부에서 계속)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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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특별좌담




"정치판을 바꿀 때가 왔다" 주제로 

김형오 전 의장 50분 기조 강연이 있습니다.


김광두 교수, 송복 교수, 김병주 교주의 원로의 제언 

각 당 국회의원, 원론인 등의 토론이 잇따릅니다.


일 시 : 6. 19(화) 13:45 ~ 18:00

장 소 : 서강대 남덕우 기념관 101호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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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소리 2018.06.19 19: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넌 조용히 재야에 묻혀지내지 설레발처서 욕을 처먹고 그러냐? 너두 지금 얘들의 선배로서 자유롭지 않음을 유념하고 나대지말고 그냥 여생을 보내라.. 잘 생각해봐. 넌 어땠는지

   지난 금요일(4월 13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제99주년 임시정부수립 기념식 및 임시정부선열 추념식이 거행되었습니다. 김구 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은 나라의 주권이 뺏긴 상황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에 임시정부를 설립하여 독립을 위한 길을 모색하며 투쟁했습니다. 세계 어떤 민족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자랑스런 역사입니다. 행사 이모저모를 사진으로 올립니다. 

  김구 선생께서 일생을 바쳐 헌신한 임시정부가 내년이면 수립 100주년이 됩니다. 선조들의 애국·애족 정신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전해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진 제공 : 뉴스1


사진제공 : 국가보훈처


사진제공 : 조선일보


사진제공 : 한겨레


사진제공 : 김구기념관



사진제공 : 김구기념관


사진제공 : 김구기념관


사진제공 : 김구기념관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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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이용하여 오랜만에 대구와 부산을 다녀왔습니다. 거기서 찍은 사진 몇 장을 올립니다.




17일에는 대구 계명대에서 후마나 특강을 듣고 작년에 기념식수한 백송에 물을 주고 왔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변함없이 서 있는 이 나무처럼, 한결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진 왼쪽부터 이희수 교수, 백상기 고문(6.25 참전용사), 본인, 에르씬 에르친 터키대사, 민남규 한.터키 친선협회장, 조윤수 전 터키대사, 조현국 사장, 오연석 친선협회 부회장




18일에는 부산 UN 기념공원에 갔습니다. 한국-터키 친선협회 인사들과 함께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터키군 묘역에 참배를 했습니다. 한국과 터키가 형제국으로서 우의를 계속 다져나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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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고향 모교인 고성초등학교에 2016년부터 장학금을 조금 보내고 있습니다.

금년 장학생들이 보낸 감사편지가 오늘 도착하여 작년 장학생들이 보낸 편지와

같이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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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즉위 하신지 600년이 되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세종만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과학 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지대한 업적을 남기신 이가 있을까요. 애민 사상에 입각한 한글 창제라는 위대한 업적은 두고두고 우리 후손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자랑거리입니다. 국방력을 강화하고 국경을 개척하여 국토를 확장하였습니다. 


세종만큼 위대한 인물이 50년에 한명씩만 나왔다면 12명의 위대한 지도자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게는 안되는 것같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앞으로 많은 훌륭한 위정자가 나오리라는 기대감도 들게 합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을 잘 이끌 지도자라면 반드시 세종대왕께서 몸소 실천하셨던 경청의 자세와 포용의 리더십을 갖춰야 할것입니다. 



뜻깊은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이 되는 2018년을 맞아 세종의 리더십으로 대한민국이 거듭 태어나고 발전하기를 기원해봅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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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이돈규 2018.02.07 0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종대왕 같은 천재가 아니라 세종대왕처럼 합리적 생각을 하는 지도자가
    대우 받고 활약할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죠.
    당쟁과 사대주의 열강의 침략과 간자들의 혼란속에
    이 땅엔 애국심과 학술적 열정이 조롱당하고
    결집하고 고도화하지 못하니
    국제경쟁에 이겨낼 산업화나 정치 세력화에 실패하고 있읍니다.

    그것이 국가의 능력이죠.
    작고 자원도 부족한 나라.

    그래서 핑계대고 일신의 영달과 이익을 위해 이기적인 매국 반역자들이
    넘쳐나는 나라.

    법하나도 바로 못세우는 부패하고 비겁한 나랏꼴이 한심합니다.
    언어과학 훈민정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계승 발전시키는 과학자 한명도 없다는게
    한심한 이 땅의 현실입니다.

한국 정치, 나라를 지킬 수 있나

 

 

 

김 형 오

 

 

1. ‘상식에 관하여

   “한국 정치, 나라를 지킬 수 있나.”라는 제목을 받고 세 가지 주제가 떠올랐습니다. 한국 정치’, ‘국가 위기’, 그리고 나라는 누가 어떻게 지키는가입니다. 제 논조도 이 세 가지가 중점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제목이 주는 준엄함과 간절함, 그 무게감이 압도적이어서 능력에 부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래서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또 말하려 합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을 놓치지 않는 방법인 까닭이기도 합니다.

영국 식민지로부터 미국이 독립하는 것은 상식이다.”

   미국 독립의 선각자인 토머스 페인이 1776110일에 출간한 상식(Common Sense)46쪽짜리 소책자(팸플릿)지만 나오자마자 선풍적 인기와 지적 폭풍을 일으키며 석 달 만에 10만 부를 돌파했습니다. 당시 식민지 미국 인구가 300만에 못 미치고 문맹률도 높았던 걸 감안하면 굉장한 파급력입니다. 반년 뒤인 74일에 발표된 미국의 독립선언문에도 상식의 주장이 반영됩니다. 작은 책 한 권이 혁명의 사상적 밑불 역할을 한 것입니다.

   한때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졸저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는 개정판까지 포함해도 그 정도가 되지 않습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사건을 다룬 이 책은 나라도 망할 수 있다는 것이 주 관심사 중 하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원한 제국은 없습니다. 국가도 인간처럼 생명이 유한하고, 흥망성쇠가 작용합니다.

저는 오늘 제가 품어온 질문을 여러분에게 던지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비잔티움처럼 멸망할 것인가, 오스만 터키처럼 융기할 것인가?!”

20세기 들어 새로 등장한 국가가 100여 개나 됩니다. 남북한도 여기에 들어갑니다. 반면에 이 기간 동안 지도상에서 사라진 나라도 수십 개국에 이릅니다. 대한민국도 영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멀지 않은 과거에 나라를 잃었던 경험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명운이 다해가는 나라를 보며, 청년 김구도 고민이 깊었습니다. 1895년 어느 날, 일생의 스승 고능선으로부터 이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다. 망해도 더럽게 망한다.”는 말을 듣고서입니다. 20세 청년 김구는 망하는 나라를 망하지 않게 할 수는 없나? 적어도 신성하게 망하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고뇌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웁니다. 오늘 이 순간도 나라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영혼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토머스 페인의 어법을 빌리자면, “한국 정치가 대한민국을 망하지 않게 하고 국가를 지켜야 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러나 요즘 이 상식이 더 이상 상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염려와 불안감이 고개를 들어 저 역시 잠을 못 이루고 있습니다.

   “한국 정치, 나라를 지킬 수 있나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치나 정치인이 나라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역사에서 그랬고, 이대로 가면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럼 이 나라는 도대체 누가 어떻게 지켜야 하는 걸까요.

  



2-1. 회고와 2018년 벽두

   저는 지난 20155, 미국 스탠포드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동시 초청을 받아 특강을 했습니다.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 선거, 그렇게 3년 연속 치러지는 전국 규모의 선거를 과연 우리 정치와 국민이 감당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불안을 담은 강연이었습니다. 그 걱정은 좀 더 긴박하게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지난해 3월 대통령 탄핵 이후 우리는 나라 안팎으로 숨 가쁜 질주를 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그대로인데, 17일 후면 평창 동계올림픽이 개막합니다. 급전과 반전이 거듭되는 변화 속에서 한국 정치는 예측 불허의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탄핵은 국내 요인이었지만 북핵과 평창은 동북아, 나아가서는 세계 평화와 연계된 문제입니다. 지난 40여 일간 뉴욕타임스는 북한과 한반도 문제를 하루걸러 크게 다루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빈도는 점점 더 높아질 것입니다.

   한반도에 평화 대신 전쟁을 원하는 국민이 있을까요? 그 평화는 어떻게 해야 유지될 수 있을까요? 한국 정치가 알아야 할 명백한 사실은 우리끼리만으로는, ‘우리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  가 배운 정치학 어디에도 힘없는 나라가 힘센 나라를 지배한 경우가 없었으며제가 본 역사책 어디에도 무력·군사력이 약한 나라가 자기보다 강한 나라를 침략한 예는 없었습니다. 평화는 입으로 말로 또는 협정으로는 절대 지켜지지 않습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지킬 힘부터 길러야 합니다. 노력과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2-2. 절대적(본질적) 모순 : “일본 제국주의와 중국 인민 간의 모순

   대학원 석사 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마오쩌둥(毛澤東)의 저작물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당시는 국가보안법은 물론 반공법까지 살아 있었는데 일부는 용감하게 복사도 했습니다.

   그 마오쩌둥은 모순론(1937)-신민주주의론(1940)-연합정부론(1945)으로 자신의 이론을 체계화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모순, 타협 불가능한 모순 외에는 모두 포용과 타협이 가능하다는 모순론은 마오() 사상, 통일전선 이론의 핵심입니다. 마오쩌둥의 주장은 중국 지식인·청년·대학생들의 열광 속에서 농민·노동자는 물론 자영업자소상공인중소기업 등등 중국 인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중국 통일의 길이 되었습니다.

   지금 한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무엇이 절대적 모순일까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외교안보만큼 대한민국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헌법 전문에 있는 것처럼 우리들과 우리들의 후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확보하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이 상식이 되어야 합니다. 북한 핵은 가장 중요한 변수입니다. 남북한 간의 절대적 모순입니다. 북한 핵을 그냥 두고도 한반도에 평화가 유지될 수 있겠으며 국민이 행복할 수 있을까요?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은 어떠한 경우에도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어떠한 경우에도 북한 핵을 용납할 수 없다고 합니다. ·미간에 말 폭탄이 오고가는 사이에 북한과 김정은은 세계적 관심사로 등장한 반면 한국의 위치와 존재감은 약해지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의 입장과 노선도 불분명합니다. 평창올림픽은 평화 구축을 위한 전기가 될 수 있을까요?

 

2-3.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자료에서 보다시피 한국은 그렇게 만만한 나라가 아닙니다(도표). 올해 처음으로 3만 불 소득을 달성하여 세계 7번째로 ‘30-50 클럽’(연소득 3만 달러, 인구 5천만 명 이상) 대열에 들게 됩니다. 무역은 1조 달러를 넘는 세계 12번째 대국입니다. 국가 경쟁력도, 민주주의 지수도 조금씩 내려가지만 세계적 수준에서는 여전히 높습니다. 문제는 행복 지수가 낮은 편이며, 특히 갈등 지수가 높다는 것입니다. 이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한국의 정치 신뢰도, 노동 유연성 등에서 오는 문제와 직결됩니다. 소득 수준이 올라갈수록 행복 지수는 떨어지는 한국. 무언가 고쳐야 할 것과 나아가야 할 방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3-1. 새로운 대통령, 새로운 변화

   문재인 정부는 벚꽃 대선으로 조기 등판했습니다. “이게 나라냐고 외친, 국정 농단에 대한 국민의 심판, ‘촛불이 만든 대통령입니다.

   출범 이후 8개월이 지났지만 문재인 정부 지지율은 여전히 70%대의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당선 당시 득표율(41.08%)의 두 배에 근접한 수치입니다. 전임 대통령과 그 정권으로부터 말미암은 반대급부반사이익이 큽니다. 대통령 지지층이 단단하고 반대파인 야당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것도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발표되는 여론과 체감 여론은 다르다고 믿는 이들이 상당수 존재합니다. 적극적 지지층은 본인 의사를 공세적으로 표출하지만, 무관심하거나 반대하는 이들은 침묵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여론 조사의 맹점이기도 합니다.

또 한 가지, 여론 조사 무응답층에게는 심리적 공포도 일정 부분 작용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경찰이 촛불 집회 후원자는 제외하고, 태극기 집회 후원자 2만 명의 계좌 추적에 나섰다는 보도가 그런 합리적 의심을 부추깁니다. 사실이라면 촛불은 무죄, 태극기는 유죄인 건가요?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합니다. 정부는 일부 국민의 지지율에 대한 의심, 그리고 불이익(차별)에 대한 두려움에도 유념해야 합니다.

   여론은 뜬구름과 같습니다. 특히 한국 정치는 변화무쌍합니다. 봄바람이 언제 폭풍우를 몰고 올지 모릅니다. 소수든 다수든 일부 국민이 의혹과 두려움을 갖는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3-2. 적폐 청산과 국민 통합

   역대 모든 새 정부는 국민 통합의 깃발을 달고 출범했습니다. 그와 함께 묵은 때를 벗기고 쓰레기를 치우는 작업도 시작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적폐 청산이라 명명했습니다. 이전의 다른 정부들도 이름은 달랐지만 비슷한 성격으로 과거와의 결별작업을 했습니다. ‘역사 바로 세우기’, ‘과거사정리위원회’, ‘4대강 조사등 모든 정부가 예외는 없었고, 그때마다 사정(査正)의 칼날이 도구로 사용되곤 했습니다. 집안 청소나 벽지를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5년마다 아예 리모델링을 합니다.

   상대적으로 국민 통합을 위한 노력에는 소홀했습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통합인가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얻지 못함으로써 통합보다는 분열로 가고, 정책의 연속성은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단임제의 가장 큰 폐단 중 하나가 바로 중·장기 정책이 사라지고 나라가 미래 비전을 잃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3-3. 적폐 청산에 대하여

   ‘적폐 청산은 새해 들어서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적폐란 무엇인가요? 적폐라 써놓고 한 쪽에선 정치 개혁이라 읽고, 다른 쪽에선 정치 보복이라고 읽는 걸까요? 모 방송(TV 조선)이 지난 15100명을 상대로 질문한 결과, 적폐 청산을 정치 개혁으로 여기는 이가 58, 정치 보복으로 받아들이는 이가 42명이었습니다. 여론을 그대로 반영한 조사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 적폐 청산의 절차나 방식 그리고 공정성에 문제점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적폐가 글자 그대로 지난 시대의 잘못된 제도나 관행을 뜻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청산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제도 개혁보다는 인적 청산의 수단으로 사용되면 곤란합니다.

   적폐 청산은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일방통행으로 몰아붙인다면 훗날 새로운 적폐의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 있습니다. 한국 정치사가 그래 왔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반면교사 삼아 정치 개혁과 국정 혁신의 동력으로 작동하려면 목표와 목적이 미래지향적이어야 합니다. 속도와 범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였으면 합니다.

 

3-4. 청와대가 주도하는 정치

   당청은 국정을 이끌어가는 삼각 축입니다. 지금 청와대와 정부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은 찰떡궁합, 완벽 공조 상태인가요? 설마하니 과거와 같은 거수기, 투명 인간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정부가 잘 안 보인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수모에 가까운 신고식을 치른 장관들이 국정 수행의 중심에서조차 비켜 서 있다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여당도, 국회도 그 존재가 희미합니다. 국가 비전은 무엇인지,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만듭니다. ‘비선 실세 그룹의 존재를 의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제천 화재를 예로 들어볼까요? “유리창을 깨뜨려라!” 이 기본 상식은 현장에서 외면당했습니다. 화마와 유독 가스에 휩싸인 2층에 갇힌 사람들의 절규가 휴대폰으로 비명처럼 전달됐는데도 말입니다. “세월호 때와 무엇이 달라졌느냐?”라는 유족들의 울부짖음에 정부는 무어라 답할 수 있을까요? 세월호 침몰과 제천 화재 모두 유리()만 일찍 깼더라도 대폭 줄일 수 있었던 참사입니다. 사고만 나면 규제·금지와 관련자 처벌, 매뉴얼 갱신으로 끝나고 맙니다. 그 혹독한 비극을 겪고도 우리는 경험훈련·판단력을 제고시킬 현장 전문가를 대우하지도 양성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소방관은 화재 현장에서, 장관은 국정 현장에서 최고 책임자입니다. 참모 기능과 집행 기능이 혼선을 빚고 있는 건 아닐까요? 각자가 자기 위치에서 책임감을 갖고 임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정부에서 눈치 보지 않고 국민 편에 서서 책임 있게 일하는 곳은 어느 부처인가요?

 

3-5. 무엇이 문제인가

   최근 정부가 손대는 정책이 좀 꼬이고 있습니다. 손발이 맞지 않는지, 전문성과 경험 부족인지도 모릅니다. 하늘 높이 치솟는 강남 부동산과 떨어지는 다른 지역 아파트, 전국 5만 개 유치원·어린이집의 방과 후 영어 수업을 시킬 것인지 말 것인지, 가상화폐거래소를 문 닫을 것인지 아닌지, 수능 개혁을 할지 말지 등등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정권을 탄생시킨 지지자들의 이해관계와 밀접한 사안들입니다. 정부가 힘주어 말하는 양극화 현상을 오히려 부채질할 수도 있는 요소입니다.

   미리 말하지만 여기서 실패하면 정부는 상당히 곤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정부 능력의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정부를 위해 팁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책을 집행할 때 한쪽 면만 보고 계획을 수립하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또 성급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됩니다. 앞에 예로 든 일들과 올림픽 남북 단일 팀 협상이나 전임 대통령에 대한 분노언급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획기적인 처방일수록 예상 못한 부작용이 생기고 반발이 커집니다. 개선과 보완이, 준비 안 된 개혁과 혁신보다 낫습니다. 준비된 개혁이라도 숨겨 놓은 다른 의도가 드러나면 시끄러워집니다.

   정직한 개혁이란 먼저 제 살을 깎아내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런 점을 아직까지 이 정부가 보여주지 못해 아쉽습니다. ‘내로남불이니 포퓰리즘성 선심 정책이란 말을 너무 자주 들어서는 안 됩니다. 일부 충성파들이 우리는 깨끗하다고 견강부회를 하면 세상인심을 잃게 됩니다. 권력을 가진 자는 겸손해야 합니다. 자기 허물을 먼저 돌아본 후 남을 보는 것이 김구 선생의 좌우명이자 생활 태도였습니다. 그런 자세로 임한 분은 존경을 받게 마련입니다. 상대도 비판자도 모두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4. 야당은 어디에 있나?

   야당 역시 존재감을 잃은 무기력한 모습입니다. 지금처럼 지방 선거를 몇 개월 앞둔 20142,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민주당이 야당 역할을 못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결과는 대안 없는 무조건 반대’(50.6%), ‘뚜렷한 정책과 비전 부재’(32.0%), ‘계파 갈등’(16.2%) 순이었습니다. 민주당의 혁신 과제로는 민생 중심의 정책 강화’(41.5%)에 대한 주문이 가장 높았던 반면 진보 정체성 강화’(9.9%), 중도 노선 강화‘(6.5%)는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4년이 지난 지금, 1 야당이 된 자유한국당을 대상으로 똑같은 여론 조사를 한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그 결과는 4년 전과 큰 차이가 없을 거라고 봅니다.

   국민이 원하는 제1 야당의 모습은 2014년 민주당에게 그랬듯이 무조건 반대만 하지 말고 서로 단합해 뚜렷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고 민생 중심의 정책을 강화하라는 주문일 것입니다. 싸울 때는 치열하게 싸우되, 협조할 때는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이 책임 있는 야당의 모습입니다.

   국정감사는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 대정부 감시 기능이며, 통상 야당이 물 만난 고기처럼 행동하는 야당을 위한 무대였습니다. 그러나 야당은 이 중요한 국정감사를 보이콧했습니다. 그뿐인가요? 개헌 문제에서 “6월 선거 때 동시 투표 반대만 할 뿐 내용도 방향도 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석 수 34위 당은 통합의 진통이 워낙 커서 그런지 기대감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은 변화를, 새 모습을 원하지만 바뀌는 건 없습니다. 지난 대선 후보들의 조기 등판도 여기에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DJ1992년 대선 패배(1218) 후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에 머물다가(6개월) 귀국해 27개월 만에 정계 복귀를 선언(1995718)합니다. 그는 결국 4수 끝에 대통령(19971218)의 꿈을 이룹니다.

   문재인은 2012년 대선에 패배(1219)하고 22개월 만(201528)에 당대표(새정치민주연합)로 정치에 복귀합니다. 그러고는 또 23개월이 지나(201759) 대선의 승자가 됩니다.

   이회창은 97년 대선 패배 후 8개월 만에 당 총재로 복귀, 대선에 두 번 더 도전하지만 실패합니다.

   단순 비교하긴 그렇지만 휴지기가 길었던 두 사람은 청와대의 주인이 되고, 상대적으로 짧았던 한 사람은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대선에서 지고도 휴식이나 재충전의 기간도 없이 곧바로 정치의 전면에 나선 지금의 야당 지도부(홍준표안철수유승민)의 정치적 미래는 어떻게 진행될까요?

 

5. 국회는 왜 일을 안 하는가?

   ‘최악의 국회란 오명 아래 막을 내린 19대 국회의 법안 가결률은 16%였습니다. 그럼 지금은 나아졌을까요? 유감스럽게도 20대 국회의 오늘 현재(2018123) 법안 가결률은 10.04%입니다. 이대로라면 20대 국회는 역대 최저 가결률을 기록한 불임 국회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다만 주요국들과 비교해보면 우리 국회만 유독 법안 처리를 안 하는 국회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도표). 그런데 왜 우리 국회는 일하지 않는 국회라는 오명을 덮어쓰고 있을까요?

   한국 국회의원은 학력경력 등 이력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합니다. ·차관, 법원장, 검찰총장, 대학총장, 시민단체 및 노동계 대표, 스타급 문화예술인. 세계 어느 나라도 우리처럼 스펙이 화려한 의원들로 구성된 의회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훌륭한 분들이 모인 국회가 우리 국민들 눈에는 왜 봉숭아학당처럼 비쳐질까요? 욕먹는 하마가 돼버렸을까요? 신뢰도나 도덕성 조사를 하면 왜 매번 꼴찌를 차지하는 걸까요?

   앞서 여의도 국회가 일을 안 한다고 했습니다만, 사실 우리 국회의원들처럼 바쁜 직업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어느 초선 의원은 국회에 와서 두 번 놀랐다.”고 하더군요. “국회의원들이 이렇게 바쁘다는 사실에 놀랐고, 이처럼 바쁘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데 더 놀랐다.”는 거였습니다.

   맞습니다, 국회의원들의 일상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분주합니다. 그 배우자들 역시 지역구 등등에서 봉사 활동하느라 쉴 틈이 없습니다. 문제는 바쁨 그 자체가 아니라 무엇으로 바쁘냐 하는 것입니다. 경조사, 각종 행사, 조기 축구, 각종 놀이 대회, 먹거리 잔치, 시장터와 사적 모임. 어떤 날은 저녁을 세 번 먹기도 합니다. 새벽같이 집을 나가 자정이 넘어서야 들어옵니다. 유권자인 지역구민에게 코빼기를 보여야 하니까요.

   그러다보니 전문가나 관련 단체와의 대화·토론, 각종 조사 활동, 민원 청취, 내부 토론 등 직무 관련 활동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형식적인 대정부 질문 제도와 상임위 운영, 청문회 활동 등 내부적으로 뜯어 고쳐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왜 수십 명의 국무위원들을 출석시키고도 본 회의장은 썰렁할까요? 진지하고 경청할 만한 질의 답변이라면 국회의원들이 그렇게 자리를 비울 수가 없겠지요.

   국회의원의 마음가짐과 자세가 변해야겠지만, 제도적으로도 뜯어고쳐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상시 국회의 제도화가 시급합니다. 국회 문을 늘 열어두고 토의토론대화해야 합니다. “국회를 국회답게!!” 국회가 국회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때 국민의 시각도 달라질 것입니다.

 

 

6. 정당 개혁 없이는 국회 개혁도 없다

   우리 헌법에 분명히 정당은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요? 우리 정당의 당론은 밀실이나 막후에서, 또는 청와대나 소수 실세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물론 의원 총회라는 형식적·절차적 과정을 밟기는 합니다. 개개인이 독립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지만 당론이 정해지면 자유 투표(크로스보팅)는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찬밥 신세가 되거나 자칫 정치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국회 발언도 당론을 대변하는 수준입니다. 당론 정치에서 벗어날 때 한국 정치는 살아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 정당에는 없고 한국 정당에만 있는 게 뭔 줄 아십니까? 당대표최고위원사무총장대변인 등 각종 직책과 자리들입니다. 또 국고로 보조되는 정치 자금 등입니다. 선진 민주주의가 제도화된 어느 나라도 국민의 세금으로 정당을 운영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우리 정당들이 자활 정당, 자치 정당, 민의 반영 정당이 되지 못하는 것은 가만히 있어도 먹여 살리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미국 정당은 그대로인데 한국 정당은 수시로 바꾸는 게 있습니다. 바로 당명(黨名)입니다. 200년 역사를 가진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한 번도 이름을 바꾼 적이 없는데 한국 정당은 일만 터지면 이름부터 고칩니다. 그러나 간판만 바뀌었을 뿐 내용은 달라진 게 없습니다. 맛이며 가격이며 주방장이며 서비스며 아무 것도 달라진 것 없이 간판만 바꿔 단 짜장면 집처럼 말입니다. 그런 식당에 손님이 오겠습니까? 그런 정당에 유권자들의 표심이 모이겠습니까? 겉이 아닌 속을 바꾸고 뜯어고치는 정당 개혁 없이는 국회 개혁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7. “국회 특권을 없애라!”

   세비 감축, 의원 정수 축소, 비례대표 확대, 면책특권 폐지 등은 국회 개혁을 논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지만 이는 정답이 아닙니다. 법률안을 많이 제출하고 모범적으로 출석하는 의원은 시민단체로부터 상을 받겠지만 이것이 근원적 해결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국민은 휴회·정회·싸움·거짓이 없는 국회를 원합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국회가 있었습니다. 바로 제헌 의회입니다. 1365일 중 320일 문을 열고 휴일도 반납한 채 밤늦게까지 국정에 매진했던, 트럭을 타고 집단 출퇴근을 했던 이들을 본받아 제헌 의회 정신으로 돌아갈 때 국회에 대한 국민의 믿음은 살아날 것입니다. 그것이 대한민국 국회가 사는 길이기도 합니다.

   국정을 국민의 편에 서서 매섭게 추궁하려면, 스스로 처신을 똑바로 해야 합니다. 있으나 마나 한 국회 윤리위원회의 권한과 위상을 바로세우고 제대로 작동시켜야 합니다. 우리 국회의 윤리 규정집은 2쪽에 불과한 반면, 미국 국회는 윤리 매뉴얼만 450쪽에 이릅니다.(국회의원 윤리강령(19912) 5개 조문, 윤리실천규범(20173월 개정) 15개 조문)

   먼저 독립성과 중립성을 강화한 윤리위원회로 개편해야 합니다. 국회의원을 배제한 공평무사한 인사로 윤리위를 구성하고, 윤리위의 결정에 대해서는 의원들이 시비를 걸거나 수정할 수 없도록 제도화해야 합니다. 윤리위만 미국처럼 제 기능을 한다면 우리 국회 모습이 확 달라질 것입니다.


8. 북핵과 평창 사이에서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급선회한 북한의 태도 변화는 우선 반갑고 희망적이지만, 그럴수록 냉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북한의 평창 참가가 아니라 북한의 비핵화입니다. 대화는 비핵화로 가기 위한 수단일 따름입니다. 문 대통령도 지난(110) 기자회견에서 분명히 이같이 지적했습니다. 정초(15) 문 대통령과 트럼프의 통화 이후 미국이 발표문에 적시했듯이, 한국은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점은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의 목표는 분명해 보입니다. 강화되는 국제적 제재와 압박에서 탈출구를 찾으려 할 것입니다. 미 동맹 약화와 핵미사일 완성을 위한 시간 벌기가 필요하겠지요. 김정은은 남북 대화와 평창 참가를 미국의 군사 옵션과 중국의 원유 중단을 피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려 할 것입니다.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웠던 문재인 대통령은 일단 시험 운전의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갈 길은 험하고 멉니다. 운전석엔 앉았지만 내비게이션은 없습니다. 행선지가 제각각인 서너 명의 까다로운 승객을 싣고 가는 격입니다. 그 중엔 취객처럼 막무가내인 사람, 차의 주인 행세를 하려는 사람, 무임승차를 넘어 강도로 돌변하려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장벽과 충돌하거나 낭떠러지를 만나 추락할는지도 모릅니다. 목적지까지 안전 운행이 결코 쉽지 않은 운전석인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도 우리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불변의 명제는 오직 하나입니다. 그것은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9. ·중 관계와 사드(THAAD)

  철 지난 유행가 가사가 생각납니다. 중국 앞에만 서면 한국은 왜 작아지는 걸까요?

201593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과 나란히 천안문 성루에 오르면서 한·중 밀월 시대가 시작되는가 했습니다. 그러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갈등을 겪으며 헛되이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201712월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은 홀대 방문이 아니었느냐를 두고 말들이 많았습니다.

   사드와 관련한 중국 정부의 노골적 경제 보복과 모욕적 언사에 속 시원한 대응을 못하는 우리 정부를 보면서 울화가 치미는 국민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주권 국가입니다. 조공국이 아닙니다.

   문재인 정부는 사드 갈등을 봉합하려다 비싼 대가를 치렀습니다. 바로 ‘3(No), 4(Yes)’ 정책입니다. 3(20171031)은 사드 추가 배치, 미국 MD 체제, ··일 군사 동맹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4(20171214)는 한반도 전쟁 불가, 비핵화 원칙, 대화 해결, 남북 관계 개선 원칙에 양 정상이 동의했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미국 입장에서 보면 3No3Yes나 마찬가지입니다. 4Yes 또한 한국은 얻은 것이 없고 중국의 종래 입장을 지지해준 것으로 비칩니다. 미국 입장에서 보자면 트럼프의 시큰둥한 반응 글쎄’, ‘두고 보자(watch and see)’입니다. 미국의 군사 옵션 카드가 힘을 잃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요즘 중국발 미세 먼지로 우리의 눈입이 몹시 불편합니다. 환자가 속출하고 마스크가 동이 납니다. 미세 먼지 저감 대책을 지난 한·중 정상회담에서 왜 정식 의제로 채택하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대북 원유 수출 중단 문제를 필두로 한·중 간에는 우리나라가 할 말이 참 많습니다. 우리 외교, 빨리 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10. 적을 양쪽에 만들지 말라

  졸저 술탄과 황제에서 메흐메드 2세의 증조부인 천둥·번개처럼 재빠르다는 바예지드1세의 철칙은 적을 양쪽에 두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도 한순간의 방심으로 티무르에게 참패를 겪게 됩니다. 국가 존망의 위기로까지 몰리게 됩니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한일간에 벌어진 갈등은 외교적 미숙성을 고스란히 노출시켰습니다. 시기·형식·내용 모두 부적절했습니다. ·일 관계는 멀어지고, 우방으로부터는 신뢰를 잃고, 중국은 한국을 더욱 우습게 보고, 북한은 기회를 노리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잘못 건드린 대표적 외교 사례가 될 듯합니다.

   현안을 해결하고 갈등을 푸는 것이 정치입니다. 마음의 상처까지 치유하려면 정치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그 사안에 접근해야 합니다.

   한일간의 어려운 역사 문화적 외교 현안을 처리하는 데 있어 전 정권은 사람의 마음, 곧 국민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현 정권은 국민의 마음을 사려다가 일본의 불신과 불편한 감정을 건드렸습니다. 전 정권은 협상을 너무 서둘렀고, 현 정권은 공약과 국민을 지나치게 의식했습니다.

   졸저 얘기를 한 번만 더 언급하겠습니다. 주인공 메흐메드 2세는 콘스탄티노플 정복을 위해 총력을 기울입니다. 콘스탄티노플의 우방국·지원국에 대해서는 기존의 평화 협정을 준수하겠다고 알라신을 두고 맹세합니다. 잠재적 적에게는 기대 이상의 좋은 조건을 제공하여 환심을 삽니다. 이웃 국가들에 대해서도 선린 외교를 강화하고 정략결혼도 서슴지 않습니다. 자기의 동맹국·조공국에 대해서는 무기와 군대로 직접 참전을 강제합니다. 콘스탄티노플로 가는 보급로를 철저히 차단하고, 위반하는 배는 무차별 격침시킵니다. 콘스탄티노플을 완전히 고립시킨 후 총공격을 개시합니다. 초대형 대포를 만들어 성벽을 쏘아댑니다. 이 대포 기술자는 거액으로 포섭한 기독교 국가 출신입니다. 게다가 배를 끌고 산을 넘는 기상천외한 작전으로 항구를 점령하고 세계사를 바꿉니다. 2년간의 준비 끝에 천년 도성을 무너뜨린 그는 오스만 터키 600년 역사상 유일무이한 정복자’, ‘정복 왕 술탄이란 칭송을 듣습니다. 승리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의 나이 21세 때입니다. 북한의 김정은은 그보다 열 살 넘게 더 먹었습니다. 우리는 상대를 너무 모르고, 상대의 선의만 믿고, 대비책은 강구하지 않은 채 스스로를 고립시키려 하지는 않는지요.

   국제 관계는 국내 정치보다 더 냉정하고 계산적입니다. 국익을 우선하고 실리를 고려해야 합니다. 우방과는 진정성을 갖고 신뢰를 쌓아가야 합니다. 이번 위안부 문제의 재제기로 한일 관계는 더욱 꼬이고 불편해졌습니다. 평창올림픽 참가 뒤에 숨은 북한의 의도를 꿰뚫어 보는 정부가 되어야 합니다. 국내 정치용으로 외교 문제를 이용한다는 의심을 받게 되면 국제무대에서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게 됩니다.


11. 원전(原電)이 무슨 죄냐?

   외교에는 발표할 것과 발표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위안부 외교 문서 공개, 대통령 비서실장의 UAE(아랍에미리트연합) 몰래 방문이 그렇습니다. 미봉책으로는 의혹을 잠재울 수 없습니다.

   국회의장 시절이던 2009년 정초저는 상임위 경험을 살려 UAE로 날아가 모하메드 왕세제와 원자력 발전소 건설 문제를 협의했습니다한국의 원자력은 최고의 기술력을 가졌으며가장 안전하고 가장 값싸고 가장 빠른 시일 안에 지을 수 있고 지은 후에도 가장 경제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노하우가 축적돼 있음을 설득력 있게 설명했습니다열 달 쯤 후 한국 대통령(MB)과 모하메드 왕세자는 아랍에미리트에 한국형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기로 정식 합의했습니다.

   완벽하게 안전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 40년간 한국의 수많은 원자력 발전소 중 단 한 곳도 방사능 유출 문제로 심각한 사고가 났거나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경우는 없습니다이런 원전이 무슨 죄가 있나요? 풍력태양력LNG 등으로는 원전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비용은 더 들고, 환경 파괴는 더 심하고, 전기의 질과 양은 떨어집니다.

   원자력 발전소 몇 개 있다고 당장 핵무기를 만들 수는 없지만, 원전이 있어야 북한도 우리를 무시하지 못합니다그동안 쌓아놓은 원자력 기술마저 무용지물로 만든다면 우리는 그 용도가 무궁무진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대열에서도 낙오될 것입니다세계는 치열한 경쟁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우리는 우리의 특장점마저 땅에 파묻으려 한다면 그런 나라의 미래가 밝고 희망찰까요? 내 식구에겐 안 먹이는 음식을 파는 식당엔 아무도 밥을 먹으러 오지 않을 것입니다.


12. 국민 통합으로 가는 길

   덩샤오핑(鄧小平)과 넬슨 만델라는 최고 권좌에 오르기 전 탄압과 핍박을 가장 많이 받은 20세기 정치인이 아닐까요? 이들은 구악과 적폐 세력에 대해 당연히 예상되던 처벌과 보복 대신 용서와 화해, 헌신과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수백 년간의 인종 차별 역사를 극복한 남아공과, 세계적 위력을 떨치는 중국의 굴기는 두 사람을 빼고는 설명이 안 될 것입니다.

   칭기즈칸은 어머니의 약탈혼에 의해 자신이 태어났고, 아내마저 약탈당해 남의 씨(장남 주치)를 안고 돌아옵니다. 그러나 그는 에 오르자마자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는 대신 부족의 오랜 전통인 약탈혼을 금지시킵니다. 자신을 비롯한 승자들, 가진 자들이 먼저 삼가고 양보하는 금도(襟度)를 보입니다. 어떤 경우든 전문가기능공지식인은 우대·포용하는 정책으로 제국의 영토를 넓혀 나갔습니다.

   한국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 되어야 할 공무원들은 정권 교체 때마다 눈치를 봅니다. 관료 사회가 침체되고 소극적 자세로 돼버린 가장 큰 원인은 나라의 공복인 이들을 정권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정치 때문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과 제지공들은 쇄환사들의 귀환 종용에도 불구하고 조선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조선에서 푸대접 받던 그들을 일본은 사무라이 급으로 우대해 기술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습니다. 실리콘 밸리에선 인도 기술자들이 미국 첨단 산업을 이끌고 있습니다. 기업인도 그들을 우대해주는 나라에 투자를 합니다. 최근 들어 한국 투자 환경이 갈수록 나빠집니다. 외국인의 투자는 말할 것도 없고 국내 기업인에 의한 투자마저 줄어드는 이유를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큰 방향부터 먼저 잡아야 합니다. 자유와 창의가 살아 숨 쉬며 기회 균등과 능력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13. 한국 헌정사는 대통령 수난사

   역대 대통령들의 말로(末路)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온 국민의 박수를 받으며 퇴임한 대통령이 헌정사 70년을 통틀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은 우리 정치의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하버드 대학의 새뮤얼 헌팅턴 교수는 20세기 이후 등장한 나라로서 평화적 정권 교체를 두 번 이상 성공한 대표적 민주주의 국가로 한국을 꼽았습니다. 그러나 그 대통령들은 본인이나 형제·자식이 감옥살이를 했고,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전 정권과 현 정권 간의 암투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반복됩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제왕적 대통령으로 출발해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하고 마는 1987년 헌법 체제와 결별해야 합니다. 개헌으로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는 길만이 제도적으로는 거의 유일한 해법입니다. 그러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현직 대통령의 열린 마음, 포용의 리더십입니다. 그러나 역대 어느 대통령도 실천을 못했고, 결과적으로 자신들도 불행을 맞았습니다.

 

14. “무엇이 중헌디?”

   이쯤에서 다시 마오쩌둥의 근본적 모순론을 상기시키려 합니다. “절대적 모순(근본적 모순) 외에는 모두 부차적·종속적 모순이다.”(1937, 모순론)

영화 <곡성>(2016)에서 소녀가 아버지에게 울부짖었던 명대사가 정곡을 찌릅니다. “무엇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 최상위에 두어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요?

북한 핵과 미사일, 사드(THAAD), 위안부, FTA 등 난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밀려오고 있습니다평창 올림픽으로 해빙의 기운이 감돌기도 합니다. 그러나 올림픽 이후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역사를 잠깐 뒤돌아볼까 합니다. 광해군은 명나라와 신흥 청나라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실리 외교를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국내 정치에 실패하고, 민심마저 잃어 권좌에서 축출당합니다. 뒤를 이은 인조와 중신들은 친명 반청으로 기치를 분명히 세웠습니다. 재야 유림의 지지도 받았지만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삼전도의 항복 비문은 오늘도 우리 가슴을 서늘하게 적십니다. 국내 지지 기반이 없는 외교는 성공할 수 없고, 명분만으로는 나라를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아프게 일깨워줍니다.

   임진왜란과 6·25 한국전쟁은 우리가 얼마나 상대를 몰랐으며 전쟁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었나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6·25 때 미국과 유엔군이 없었다면, 아니 그들이 조금만 늦게 왔다면 대한민국은 그때 사라졌을 나라입니다. 우리의 방심과 소홀과 무지가 자초한 세기적 비극이었습니다.

   우리는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랜 휴전 상태를 지속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이 휴전 기간을 통해 우리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북한을 압도하게 되었습니다. 눈물 어린 노력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군사력과 외교·안보 면에서는 오히려 뒤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결정적 한 방을 쥐고 있습니다. 그래서 큰소리를 칩니다.

   우리가 북한에 약한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은 정치의 책임이 가장 큽니다. 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사탕발림과 분홍빛 정책을 내세웠습니다. 미국만 믿고 동맹 조약 위에서 잠자다 보니 핵과 미사일 앞에서 생존을 위협 받게 됐습니다. 아직도 잠에서 덜 깬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여전히 걱정스럽습니다. 누군들 평화를 원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북한의 말만 믿고 대비를 하지 않는다면 기울어진 운동장은 완전히 엎어지고 말 것입니다.

   625 때는 목숨 던져 나라를 지키겠다는 애국민과 피 끓는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이마저도 부족합니다. 북한이 전쟁불사를 들먹일 때마다 우리는 유약한 모습을 보이고, 이런 한국의 저자세에 재미를 들인 북한은 강도를 점점 더 높여 왔습니다. 이러다가는 호랑이를 만난 떡장수 할머니처럼 야금야금 다 내주고 종국에는 목숨마저 날리게 됩니다. 체임벌린 영국 수상이 히틀러의 요구를 수용하는 뮌헨협정을 맺고 런던에 돌아오자 그는 평화의 사도로 환영 받았습니다. 그러나 1년도 안 되어 2차 대전이 발발합니다. 섣부른 유화 정책이 세계대전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전력(全力)을 쏟아야 합니다. 전문가 그룹을 육성보호하고 군의 사기를 드높여야 합니다. 나라가 있어야 국회도 있고 여야도 있는 것입니다. 힘겹게 쌓아온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한 터전을 내 손으로 지키겠다는 절절한 각오만이 대한민국을 지킵니다.

   먼저 대통령이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진정한 소통, 국민 통합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무엇이 중요한가요?

 

15. 정부는 안전자유행복의 파수꾼. 이것이 상식이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습니다.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이 헌법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안전·자유·행복입니다. 그 외에는 부차적·종속적입니다. 이것을 확보하고 수호하기 위하여 정치가 있고, 정부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상식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행복은 자유에 있고자유는 용기에서 나온다.”(페리클레스 추도사, 투퀴디데스 243)라고 설파했습니다. 이보다 조금 앞선 헤로도토스도 그들 페르시아 사람들은 명령에 의해 싸웠지만, 우리 그리스인들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그리고 승리했다.”(헤로도토스, 역사)라고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지켜주지 못하는 정부는 바꿔버려야 한다.”는 것이 미국 독립선언서의 핵심 주장입니다.

   이렇게 2,500년 전부터 인간은 안전과 자유와 행복 추구를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위임 받은 대통령과 국회와 정부가 이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라의 주인인 국민은 안전이 확보된 나라, 자유가 숨 쉬는 나라,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당당히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국민이 나서야 나라를 지킵니다.

   대한민국이 더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기 위하여 헌법 정신의 핵심인 안전·자유·행복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제 강연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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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이돈규 2018.02.07 08: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민이 공감하는 상식..
    그 기본이 법이고
    애국심에 기반한 국가 행정 정책입니다.

    행정 정책에 애국심이 없고 지역 이기주의로 부패야합합니다.
    그래서 한국의 국민은 혼란스럽고 단결하지 못합니다.
    꼭 국가를 위해 해야할 일이 안보입니다.
    고작 군대가서 비인간적인 학대와 노예같은 굴욕적 근무에 내몰리는 것 뿐입니다.

    국민에게 자존심도 자부심도 없읍니다.
    그래서 노예처럼 굴종하고 눈치만 봅니다.

[2018-01-11 동아일보]



제7회 化汀 국가대전략 월례강좌  김형오 前국회의장 초청

한국정치, 나라를 지킬 수 있나’



23일 개최… 11일부터 참가신청


제7회 화정 월례강좌 신청하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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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9 한국핵정책학회 추계학술대회 격려사>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김형오 전 국회의장



친애하는 한국핵정책학회 회장 및 회원, 그리고 내외 귀빈 여러분!

지금 한반도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으로 625 전쟁 이래 최대 안보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 절박한 시기에 한국핵정책학회가 기로에 선 한국, 핵 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마련했습니다. 최고 전문가들의 기탄없는 토론과 진단 그리고 명쾌한 처방을 기대합니다.


    사진제공 : 파이낸셜 타임즈


전문가도 아닌 저는 오늘 아침, 왜 이 자리에 서게 된 걸까요? 먼저 제 이력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그 의구심을 해소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오랜 기간 정치권에 몸 담았고, 대한민국 의전 서열 두 번째인 국회의장을 역임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떼어 어느 정당, 어느 정파에도 소속돼 있지 않습니다.


20년 남짓한 국회의원 생활 초반 10여 년 동안 저는 과학기술정보통신 분야에서 활동했습니다. 정치외교학도였던 저는 왜 전공과는 거리가 먼 이 분야에 종사한 걸까요? 대한민국을 살릴 미래의 먹거리이자 성장 동력은 정보통신과 과학기술 분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 상임위에서 2년 정도 활동하다가 다른 상임위로 옮기는 것이 당시 국회의 관례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관례에 구애받지 않았습니다. 줄곧 과학기술 그리고 정보통신 분야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 덕분일까요. 이 분야에 문외한이던 저는 매년 국정감사 우수 위원으로 선정됐고, 몇 가지 자부할 만한 업적도 쌓았습니다.


국회의장 시절, 저는 상임위 경험을 살려 아랍에미리트(UAE)로 날아가 그곳의 실질적 통치자인 모하메드 왕세자와 원자력 발전소 건설 문제를 협의했습니다. 한국의 원자력은 최고의 기술력을 가졌으며, 가장 안전하고 가장 값싸고 가장 빠른 시일 안에 지을 수 있고 지은 후에도 가장 경쟁력 있고 경제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돼 있음을 설득력 있게 설명했습니다. 모하메드 왕세자는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제가 그를 만난 후 1년도 안 되어 한국 대통령과 모하메드 왕세자는 아랍에미리트에 한국형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기로 정식 합의했습니다. 석유 부국 UAE가 사막을 옥토로 만들기 위한 장기 비전하에 우리 기술로 만든 원자력발전소의 완전 가동을 이제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저는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적어도 한 곳 이상의 원자력 발전소를 직접 방문해 현장을 익히고 관계자들과 솔직한 대화를 나누며 그들을 격려했습니다. 그러나 10여 년 전 위도 방폐장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할 때 저는 곤욕을 치렀습니다. 당시 여당의 실세 정치인들과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정치 생명을 걸고 위도 중저준위 방폐장 설치를 반대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환경 보호를 내세운 시민단체는 물론 다수의 군민들도 격렬한 반대 시위를 하고 있을 때입니다. 야당 의원인 저도 곤경에 처한 정부를 수수방관하거나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위도 방폐장 설치를 공개적으로 지지했습니다. 그 결과 며칠간 제 의원회관 사무실은 마비 상태였고, 저는 감당하기 힘든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 중저준위 방폐장이 많은 인센티브를 받고 경주에 설치키로 한 것은 너무나 잘 아실 것입니다.


저는 위도 방폐장 문제가 불거지기 2년 전쯤 스웨덴의 방폐장을 직접 시찰한 적이 있습니다. 마침 여름철이라 안내자나 저나 모두 반팔 차림으로 가운조차 걸치지 않고 암벽 동굴 속에서 한 시간을 시원하게 보내다 나왔습니다. 동행한 스웨덴 대사와 제 아내 역시 간편복이었습니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쓰다 버린 장갑장화옷가지마스크 등을 압축해 기밀용기에 담아 보관하는 곳이 위험하다 못해 금방 방사능에 오염된다면 우리 부부는 벌써 이 세상에 없어야 할 것입니다.

 

친애하는 참석자 여러분!

제 고향은 우리나라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가장 밀집한 부산입니다. 집안 어른친척조카친구들이 두루 살고 있습니다. 부산울산경주는 500만 명의 인구 밀집 지역이며, 산업·문화·역사의 중심지입니다.


완벽하게 안전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원자력 발전소에 사고가 난다면 큰 문제지만, 지난 40년간 한국의 수많은 원자력 발전소 중 단 한 곳도 방사능 유출 문제로 심각한 사고가 났거나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경우는 없습니다. 기차 사고, 비행기 사고, 빌딩 화재도 발생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집니다. 사고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하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의무이자 숙명입니다. 사고가 두렵고 필연적이라면 비행기와 기차도 세워야 하고, 대형 빌딩은 출입을 금지시켜야 합니다. 또 원전의 안전이 문제라면 서해를 공유하고 있는 중국의 원전에 대해 짓지 말라고 강력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 우리와 서해바다를 마주하는 중국은 원전 35기가 가동 중이며, 2030년까지 무려 100기를 더 지어 원전 세계 최강국이 되겠다고 합니다. 이원전은 거의 대부분 한국 서해 바다와 맞닿는 중국연안에 위치합니다. 바람은 언제나 중국 쪽에서 불어오고 조류도 큰 영향을 받습니다. 한국만 원전을 안 짓는다고 피해가 안 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수십 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쌓아올린 원자력 발전 최첨단국 한국의 위상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가당치도 않은 논리가 유령처럼 떠돌고 있습니다. 선동과 감정과 허구로 짜인 각본에 놀아나는 대한민국이라면 부끄러워 고개를 들기가 힘듭니다. 나라의 미래와 경쟁력과 비전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정책이 이대로 추진된다면 한국의 미래가 얼마나 어둡게 될지, 또 한국의 추락이 어느 나라를 더욱 이롭게 할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자리를 함께 해주신 여러분!

우리는 요즘 정말 불안합니다.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습니다. 원자력 발전소 사고 우려 때문이 아닙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때문입니다. 북한 김정은과 미국 트럼프 간의 말 폭탄이 언제 한국으로 방향을 틀지 알 수 없습니다. 양쪽은 핵을 가지고 서로를 겨누는데, 우리는 핵도 없고 비핵화가 기본 정책입니다. 싸우지 말자고, 사이좋게 지내자고 평화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저는 정치외교학을 수십 년간 공부하고 현장에서 정치를 해온 사람입니다. 또 역사를 좋아합니다. 제가 아는 정치학 어디에도 힘없는 나라가 힘센 나라를 끌고 간 경우가 없었으며, 제가 본 역사책 어디에도 힘없는 나라가 자기보다 강한 나라를 침략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전쟁과 싸움은 상대가 만만하고 깨뜨릴 수 있다고 판단할 때 생기는 것이지 지려고 싸우는 경우는 없는 법입니다. 평화가 말로써 지켜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평화를 지키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노력과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행복은 자유에 있고, 자유는 용기에서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2500년 전의 정치인도 자유를 지킬 용기를 시민들에게 요구했습니다. 또 페리클레스보다 조금 앞선,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는 그의 책 역사에서 페르시아 사람들은 명령에 의해 싸웠지만 그리스 사람들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고 말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자유를 향유하기 위하여 어떤 대가를 지불할 용기나 용의가 있는가요? 자유는 공짜로 숨 쉬는 공기 같은 건가요? 아니,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가 지켜주는 것인가요?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그 반대도 얼마든지 성립하는 냉혹한 국제정치를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핵은 보수와 진보의 논리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핵을 스스로 만들든지, 핵을 가진 것과 같은 조건이나 위치를 만들든지, 아니면 상대가 핵을 못 가지게 하고 못 쓰도록 해야 합니다.


원자력 발전소 몇 개 있다고 결코 핵무기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쌓아놓은 원자력 기술마저 무용지물로 만든다면 우리는 원자탄은 물론 그 용도가 무궁무진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대열에서도 낙오될 것입니다. 이는 북한이 원자탄을 만들었다고 해서 더욱 고도의 기술과 노력이 요구되는 원자력 발전소를 제대로 짓거나 운영할 수 없는 이치와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는 치열한 경쟁시대에 접어 들었는데 우리는 우리의 특장점마저 땅에 파묻어려 합니다.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1000년 제국 비잔티움이 멸망하고 그 자리에 오스만 튀르크가 새로이 융성하는 역사적 사건에 빠져 있었고 이것을 책으로 냈습니다. 독자와 평단으로부터 과분한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 분명한 한 가지는, 나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생명이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흥할 때는 흥하는 이유가 있고 망할 때는 망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 시점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고 어떤 모습으로 죽어야 하는가를 수없이 되뇌이며 많은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았다고 역사 앞에 말할 수 있을까!

요즘 참 잠이 오지 않습니다.

여러분 힘내십시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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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헌기 2017.09.30 1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이지, 이 건 애들 장난도 아니고... 너무 명명백백한 사안이기에 철회하는 걸로 짐작합니다만, 가만히 있으면결코 거두어들이지 않을 것이기에 힘을 모아야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반대 서명했습니다. 좋은 성과 거두고잘 다녀오세요.

  2. 나라가 2017.10.03 0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친건지 아님 북한만 중한건지
    40년넘게 투자해서 일귀낸 기술력을
    지손으로 박살내겠다는
    한심한 정부 어느나라 정부인지 한심하네요.
    진짜 쑈나하고 앉았으니

  3. BlogIcon 이돈규 2018.02.07 0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한민국 국민은 자유를 향유하기 위하여 어떤 댓가를 지불할 용의가 있는가?
    그리고 그 댓가가 전문적이고 정당하다는 믿음은 있는가?
    그런 변별력이 없는 한국인은 참 불행하고 불안합니다.


‘백범의 길’을 따라 걸은 1박 2일


 

- 김 형 오 -


출간을 준비 중인 ‘백범의 길, 조국의 산하를 걷다’(가제) 집필진과 함께 마곡사(麻谷寺)를 찾았다. 충청남도 공주시 태화산 기슭에 자리한 마곡사는 치하포 의거(1896년)로 수감되었던 백범 김구(白凡 金九, 1876~1949년) 선생이 1898년에 탈옥한 후 반 년 정도 원종(圓宗)이라는 법명(法名)으로 승려 생활을 하며 머물렀던 곳이다. 우리가 마곡사에 간 날은 마침 김구 선생이 태어난 날(8월 29일)이기도 해서 감회가 새로웠다. 『백범일지』에서 마곡사를 찾아가는 장면은 가장 아름다운 문장이라고 평소 생각해왔다. 특히 “한 걸음씩 한 걸음씩, 혼탁한 세계에서 청량한 세계로, 지옥에서 극락으로, 세간(世間)에서 걸음을 옮겨 출세간(出世間)의 길을 간다.”는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어느 종교인이나 철학자의 심정을 보는 듯했다.

김구 선생이 속세를 떠나 마곡사에 들어갈 당시의 심경을 떠올리며, 우리도 복잡하고 바쁜 도심을 떠나 김구 선생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마곡사에 도착하자 주지인 원경(圓鏡) 스님이 직접 나와 맞아주셨다. 선생(원종)이 머물렀던 절의 주지가 법명이 비슷하여 더욱 호감이 간다. 스님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후 마곡사 템플스테이 지도법사인 일양(溢洋) 스님의 안내로 마곡사 순례를 시작했다. 넘칠 일(溢)자와 바다 양(洋)자를 쓰신다는 일양 스님. 바다가 넘친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 사찰 안에서 장난삼아 ‘쓰나미’라고 불린다는 말로 자신을 소개했다.

스님의 안내로 처음 만난 것은 대광보전(大光寶殿) 앞에 자리하고 있는 오층석탑이었다. 라마교의 양식으로 만들어졌다는데, 그래서인지 이전에 봐왔던 석탑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첫 인상은 조금 이상하게 생겼다는 느낌도 들었다. 고려 초기의 석탑 양식에 상부는 라마교 형식을 그대로 닮은 구리로 된 조형물을 올렸다. 풍마동(風磨銅)이라는 원나라 제품이라 한다. 티베트·네팔 등지에서 보던 스투파 형식의 구리 불탑의 축소판을 보는 느낌이다. 탑 주변에는 아직도 붉고 노란 꽃이 한 꽃송이에 피어 있는 화초들이 우리를 반긴다. 꽃 모양이 왕관을 닮았다 하여 ‘금관화’라는데 외래종이다. 

         금관화 둘레와 오층석탑, 심검당과 대광보전                고려석탑과 원나라 양식이 결합된 오층석탑과

                                                                                 상부의 풍마동


                             금 관 화                        대광보전 현판 : 표암 강세황의 낙관이 뚜렷하다

오층석탑을 본 후 대광보전으로 향했다. 대웅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본전(本殿)이다.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없어진 것을 순조 13년(1813년)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 1713~1791년)의 현판이 도드라진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특이한 점이 눈에 띈다. 불상이 불전의 가운데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지 않고, 왼쪽에서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곳에 모셔진 불상은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인데, 해가 뜨는 동쪽을 바라보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반 관람객은 놓치기 쉽다며 스님이 직접 불상 뒤로 안내한다. 앞의 불상 크기의 커다란 관음보살상이 지그시 내려다본다. 앞에는 진리와 빛을 상징하는 비로자나 불상, 바로 뒤에는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 그림, 절묘한 배치가 아닐 수 없다.

           대광보전 안의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비로자나불               관음보살 그림


법당 불상 앞바닥에는 앉은 뱅이가 걸을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며 짰다고 하는 삿자리(갈대 또는 나무를 깎아 엮어 만든 자리)가 인조 카펫 아래 덮여 있다. 물론 앉은 뱅이는 삿자리를 완성한 후 걸어 나갔다고 한다.

대광보전 전면 기둥에 있는 주련(柱聯)*에 눈길이 간다. 백범이 환국 후 마곡사를 다시 찾았을 때(1946년) 찍은 사진을 보면 색칠을 다시 한 듯 주련 글씨가 선명했지만, 지금은 색이 완전히 바래서 고아(古雅)한 느낌을 준다. 돌아 나오니 친절하게도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잘 설명된 안내판이 있다.

淨極光通達(정극광통달) 청정함이 극에 이르면 광명이 걸림 없으니
寂照含虛空(적조함허공) 온 허공을 머금고 고요히 비출 뿐이라.
却來觀世間(각래관세간) 물러나와 세상일을 돌아보면
猶如夢中事(유여몽중사) 모두가 마치 꿈속의 일과 같네.
雖見諸根動(수견제근동) 비록 육근(눈, 귀, 코, 혀, 몸, 뜻)이 유혹을 만날지라도
要以一機抽(요이일기추) 한 마음을 지킴으로써 단번에 뽑아버릴지어다.

* 주련 : 사찰이나 서원 또는 한옥의 기둥이나 바람벽 따위에 장식으로 세로로 써 붙이는 글씨. 기둥에 시구(詩句)를 연하여 걸었다는 뜻에서 주련이라 부른다. 주련은 불교사, 서예사, 미술사적으로 가치를 지닌 하나의 독립된 문화유산이다. 사찰에서는 주로 부처님의 말씀 또는 고승들의 오도송이나 열반송을 주련으로 써 붙인다.

이 중 “물러나와 세상일을 돌아보면(却來觀世間) 모두가 마치 꿈속의 일과 같네(猶如夢中事)”라는 구절은 첫머리에 백범이 마곡사를 찾을 때 “세간에서 출세간으로 간다”는 표현과 겹친다. 마곡사를 떠난 지 수십 년이 되어서도 백범은 주렴 구절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대광보전은 안팎으로 구성과 장식이 풍부하고 건축 수법이 독특한 건물로 조선 후기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대광보전에서 나와 계단을 따라 뒤편으로 올라가 대웅보전(大雄寶殿)으로 향했다. 마곡사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밖에서 바라본 대웅보전은 이층짜리 건물이었지만, 내부로 들어가자 천장이 높은 단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독특한 형태였다. 천장 가운데 유리창을 내어 법당 안으로 자연 채광이 되도록 했다. 바로 그 부분이 밖에서 볼 때 1층과 2층을 구획 짓는다. 이곳에는 석가모니(釋迦牟尼) 불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藥師如來)와 아미타불(阿彌陀佛)이 나란히 자리하고, 지붕을 받치는 네 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다. 일양 스님이 “이 중 한 나무 기둥을 잡고 시계 방향으로 세 바퀴를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면서 우리 일행에게도 한 번 해보라고 권유한다. 수많은 참배객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인지 기둥에는 윤기가 흐른다. 후불탱화로 영산회상도(유형문화재 제191호)가 봉안되어 있다. 마곡사 옛 스님의 솜씨라는데 그림의 크기도 수준도 보통이 아니다. 내 생각을 말하라면 대웅보전은 마곡사의 건물 중 가장 뛰어난 건축물이다. 16세기 말 축조되었다고 한다. 현판은 신라 명필 김생(金生, 771~?)의 글씨라는데 증명할 길은 없다.

대웅보전 주련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古佛未生前(고불미생전) 옛 부처님 나시기 전에
凝然一相圓(응연일상원) 의젓한 동그라미 하나
釋迦猶未會(석가유미회) 석가도 알지 못한다 했으니
迦葉豈能傳(가섭기능전) 어찌 가섭이 전하리.
本來非皂白(본래비조백) 본래 검지도 희지도 않으니  
無短亦無長(무단역무장) 짧지도 또한 길지도 않도다.

대웅보전 주련

                      마곡사 대웅보전                              대웅보전 내부의 높은 천장을 바라보는 일행

마곡사의 중심 불전인 대광보전과 대웅보전을 본 후, 백범당(白凡堂)으로 향했다. 김구 선생이 마곡사에 있을 당시 생활했던 공간은 원래 심검당(尋劍堂)이었으나, 선생을 기려 호를 따 백범당으로 별도 배치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사진과 친필 휘호 ‘행복(幸福)’, ‘양심건국(良心建國)’ 등이 걸려 있고, 옆에는 김구 선생이 광복 이후 1946년 다시 마곡사를 찾았을 때 심었다는 향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백 범 당                                          백범 김구 선생이 심은 향나무

심검당은 현재 오층석탑의 오른편, 대광보전 가기 전에 있다. ‘ㄷ’자형 건물인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정면 건물로만 보인다. 마곡사에 여러 건물들이 새로 들어서서 측면 건물은 잘 보이지 않는다. 모퉁이 어느 방에 백범이 기거했을 것이다. 영·정조 시대의 명필 송하 조윤형(松下 曺允亨, 1725~1799년)의 심검당(尋劍堂) 글씨가 오른쪽에,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년)의 마곡사(麻谷寺) 글씨는 왼쪽에 나란히 걸려 있다. 해강의 ‘마곡사’ 글씨가 이 절의 로고인 듯 여기저기 해강의 글씨로 표지를 해두었다. 해강의 글씨는 드물게도 대나무 그림이 배경을 이룬다. 삼일만세운동 때 명월관(明月館) 주인(?)인 죽농 안순환(竹儂 安淳煥, 1871~1942년)의 그림이다. 교수들과 함께 가니 의외의 사실들도 많이 알게 된다. 김구 연구 전문가들로서 한문과 한국 근현대사에 해박하여, 나 같은 사람의 수준을 올려 주기에 딱 좋은 여정이 되었다.

‘칼’은 백범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인가. ‘칼’을 씻고자 찾아온 그를 ‘칼을 찾는 집(尋劍堂)’이 맞이한다. 물질의 칼이 아닌 마음의 칼을 찾으라는 뜻이리라. 심검당 글씨는 마음을 씻을 칼을 찾는 이의 마음을 칼같이 차갑게 하는 듯하다. 옆의 부드러운 마곡사 글씨와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마곡사 편액                                                    심검당 편액

백범당부터 김구 선생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백범 명상길이 시작된다. 마곡천(麻谷川)을 따라 걷다가 만난 곳은 김구 선생이 승려가 되기 위해 머리를 깎았다는 삭발터. 젊은 나이에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과 고초를 다 겪은 그였지만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백범일지』에서도 “머리털과 같이 눈물이 뚝 떨어졌다”며 당시의 심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마 곡 천                                               백범 김구선생 삭발터 

마곡천을 건너 산행을 시작했다. 산 속의 아름다운 숲길을 따라 도착한 곳은 마곡에서 가장 지기(地氣)가 강하다는 군왕대(君王垈)였다. 우리는 지기를 느껴보기 위해 땅을 향해 손바닥을 펼쳤다. 강한 기운 덕분일까? 땅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조선의 7대 왕 세조(世祖, 1417~1468년)도 이곳에 올라 “내가 비록 한 나라의 왕이지만, 만세불망지지(萬世不亡之地)인 이곳과는 비교할 수가 없구나”라며 한탄했다고 전해진다. 김구 선생도 이곳에 올라 땅의 기운을 느끼며, 조국과 우리 민족의 힘을 되찾고자 하는 의지를 다잡지 않았을까?

                     군왕대로 올라가는 길                                군왕대의 지기를 느껴보았다.

군왕대를 뒤로 하고 마애불(磨崖佛)이 있다는 백련암(白蓮庵)으로 향했다. 백련암으로 가던 길에 영산전(靈山殿)과 매화당(梅花堂)에 들렀다. 영산전에도 군왕대와 마찬가지로 세조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생육신(生六臣)의  한명인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1435~1493)이 계유정난(癸酉靖難) 소식을 듣고 마곡사에 은거할 때의 일이다. 세조는 김시습을 만나기 위해 마곡사로 행차했으나, 김시습은 미리 알고 마곡사를 떠난다. 세조는 이를 안타까워하며 타고 온 가마를 두고 돌아갔다고 전해진다. 이 때 사용했던 가마는 현재 마곡사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영산전에는 세조의 친필 현판이 걸려있다.

영산전의 옆에는 매화당(梅花堂)이 자리하고 있다. 백범일지에 따르면 김구 선생이 마곡사에서 처음 도착한 곳이 바로 매화당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스님들의 선방(禪房)이지만 한때 호신술로 유명했던 매화당 권법의 발상지가 바로 여기라고 한다.

                              영 산 전                                            세조의 친필 영산전 현판

영산전 주련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空生大覺中(공생대각중) 허공이 큰 깨달음 속에서 생겨난 것이
如海一漚發(여해일구발) 마치 바다에서 물거품이 하나 일어나는 듯하니
有漏微塵國(유루미진국) 티끌같이 수없는 중생의 세계도
皆依空所生(개의공소생) 모두 허공을 의지하여 생겨났도다
漚滅空本無(구멸공본무) 물거품이 소멸하듯 허공도 본래 없거늘
況復諸三有(황부제삼유) 하물며 다시 삼제가 있을 수 있을까?

영산전 주련

백련암을 찾아 가는 도중에 “백범이 머물렀다.”는 표지판이 눈에 띈다. 백련암에는 백범의 흔적은 없고 바로 뒤의 마애불만 보았다. 안내자도 설명도 없어 조성연도조차 불확실한 수수한 마애불은 말없이 우리를 내려다 볼 뿐이다. 내려오는 길은 가팔랐다. 웬일인가 싶었더니 스님이 가리킨다. “저 송림(松林) 좀 보세요. 주지 스님이 이리로 올라가라 했는데 우리는 내려갑니다.” 과연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하다. 자랑할 만한 숲이요, 공기의 질이 다른 것 같다.

                              백 련 암                                                 백련암 마애불 앞에서

마곡사 순례를 마친 후, 마곡사 주지 원경스님과 차담을 잠시 나누었다. 원경스님으로부터 김구 선생에게 있어 마곡사, 마곡사에 있어 김구 선생의 의미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차담 후, 오늘의 답사를 정리하고 ‘백범의 길’ 집필에 대한 방향을 정하기 위한 회의를 본격적으로 가졌다. 앞으로의 답사와 조사 방향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고, 특히 아직 우리가 찾지 못했거나 알지 못했던 자료 수집에 전 국민이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김형오 협회장과 원경스님                                     원경스님과의 차담

첫날의 모든 일정을 마친 후, 각자의 방사로 돌아가 개인시간을 가졌다. 밤 10시,태화산(泰華山)의 맑은 공기와 선선한 바람이 방 안을 감돌고, 마곡사의 은은한 범종 소리가 귓전에 남는다. 일정을 함께 한 교수 한 분이 말했다. “이렇게 빠듯한 일정을 자로 잰 듯이 지키면서 마음 편히 온종일 보내 본 행사는 근래 처음이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전국에 뿌려진 백범의 발자취를 더듬는 이 쉽지 않은 일이 결코 어려울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때보다 편안한 기분으로 잠이 들 수 있었다.

                                                        범종루의 동정각
 

[1부 마침.]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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