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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제헌절 기념식 직후 <국가원로 개헌 대토론회>가 열렸습니다. 비공개로 진행되었지만,

KBS1에서 녹화하여 17일 오후 3시에 방송했기 때문에 보신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토론 발제를 제가 맡게 되었는데, 참고가 될까 하여 발제문을 아래에 올립니다.

개헌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계속되길 바랍니다.


[사진출처] 노컷뉴스


[국가원로 개헌 대토론회 발제문]




새로운 개헌의 과제와 지향점



                                                                       김형오 (전 국회의장)


  제헌절을 맞아 헌법의 존엄성과 시대 여망에 부응하는 개헌의 전기를 마련해준 정세균 국회의장께 감사드린다. 


  현행 헌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권력의 집중"과 (행위와 결과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대통령을 중심한 행정부가 국회•법원에 비해 과도한 권한을 가진데 반해, 권력을 상호 견제하거나 대통령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시스템은 발달하지 못했다. 이긴 자가 모든 것을 갖는 ‘all or nothing’ 게임에서 패배한 야당이나 과격파 기득권층은 조직적•저항적 반대 투쟁과 전투적 권력 교체를 추구하게 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다수 국민은 정치 참여에서 소외되고,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혐오•불신 풍조가 조성됐으며, 한국 사회의 갈등 구조를 심화시켰다.

  한국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은 먼저 삼권 분립 원칙에 맞지 않는다.

1)자기가 집행할 법률을 자기가 만들어 국회에 제출할 수 있고,
2) 자기가 쓸 국가 예산을 자기가 편성하여 국회는 심의만 하도록 하고,
3) 자기 공무원에 대한 감찰을 자기가 직접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미국 대통령은 생각할 수도 없는 막강한 권한들이다.

  또한 현행 헌법은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대법관•헌법재판관 등의 임명에 대통령이 직접 간여할 수 있다. 삼권분립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더구나 국민 생활과 직결되고 국가 권력의 핵심 집행 기관인 검찰•경찰•국세청•국정원•공정거래위•방송통신위 등의 장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힘든 구조이다.

  장기 집권 방지와 평화적 정권 교체는 현행 헌법의 장점이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견제장치가 제도화 정교화되지 못함으로서  지도자의 공인 의식, 책임감, 제도와 공론에 의한 권력 행사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이 무뎌지게 되는 약점을 안게 됨. 

  결국 당선된 대통령은 집권 초기에는 제왕적 권한을 휘두르다가, 중반기에 들어서면 극심한 대립에 시달리고, 종반기에는 힘없는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해, 결국은 민망한 모습으로 청와대를 떠나야 했다. 누구 하나 예외가 없었다. 국민에 대한 헌신과 봉사보다는 누려야 할 권력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로 당선된 대통령은 막강한 헌법적 권한과 5년 단임이라는 시간적 제약, 그 딜레마에 빠져 새로운 업적 쌓기와 전임자 업적 지우기를 반복함으로써 여러 부작용이 발생한다. 전 정부에서 하던 중장기 사업은 신정부 출범과 더불어 사라지고, 주무부서는 통폐합되고, 책임자와 담당 공무원은 한직으로 밀려나게 된다.
공무원은 의욕을 잃고 정부는 단기성과에 집착하다 보니 국가 경쟁력은 떨어지고, 중장기 비전을 잃어버린 나라가 되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과 권한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모든 권력 주체들에게 엄정한 책임이 부과되어야 한다. 그 길만이 대통령도 나라도 국민도 사는 길이다.

  대통령의 권력을 줄이려면
1) 대통령과 총리가 권한을 나누는 이원정부제 또는 분권형 대통령제나,
2) 미국과 같은 순수 대통령제를 채택해야 한다.
3)어떤 경우든 국회의 권한은 강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 권한의 일부 또는 상당 부분이 국회로 넘어오거나 국회의 견제 장치가 더욱 강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강한 상태에서, 국회의 권한이 강화되는 것에 국민이 선뜻 동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의원내각제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1)국회는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 하며, 2)새로 마련할 개헌안에는 국회와 국회의원에 대한 책임성을 명시하고 강화해야 할 것이다.

  한편 이원정부제를 하잔다면서 대통령은 외치, 총리는 내치를 전담한다는 발상은 효율적이지도 못하며 결코 성공할 수 없다. 협치에 의한 권력 균점과 야합에 의한 권력 나눠먹기는 다른 것이며, 이런 안이하고 무책임한 발상은 이원정부제 자체의 탄력을 잃게 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세종시에 국회 분원을 두겠다는 발상도 임시 미봉책이다. 표풀리즘에 의해  탄생한 세종시에 국회 분원을 두자는 것은 누구도 결과에 책임은 지지 않고 생색만 내겠다는 또다른 포퓰리즘적 발상이다. 개헌을 통해 국회를 완전히 세종시로 옮기지 않는 한 국정의 비효율성은 심각히 증대되고, 국가 경쟁력은 더욱 떨어질 것이다.

  일방 독선 아집 무책임의 정치에서 대화 협치 공존과 책임 정치로 변해야 한다.
개헌이 그 시발점이다.  ♠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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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한국박물관 국제학술대회 기조발표문>




대한민국 문화 국격과 박물관의 역할


-개인적 경험을 중심으로 한 단상과 소견-



 

김형오 | 부산대 석좌교수, 전 국회의장

 

박물관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인류의 지혜 창고입니다. 초고밀도 압축 파일입니다. 박물관에 가면 나는 타임머신을 탄 듯 시공간을 넘나들며 역사 문화 예술 기행을 하곤 합니다. 박물관에서는 시간이 왜 그리도 빨리 흐르는지요. 타이베이 고궁(故宮) 박물관에서 이제 본격적 관람을 할까 했더니 동행한 해설자가 벌써 약속한 두 시간이 지났다 해서 나머지는 혼자 관람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난해 여름에 본 신안 해저 유물전도 그랬습니다. 652년 동안 바다 밑에 잠들어 있던 24000여 점의 유물을 제대로 보기엔 하루해가 턱없이 짧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나라 때 빚은 백자 접시의 단풍 든 나뭇잎 그림에 적힌 당()나라 궁녀의 오언절구(五言絶句) 1·2(·)구가 담담히 폐부를 찔렀습니다. “유수하태급(流水何太急) 심궁진일한(深宮盡日閑); 흐르는 물은 어찌 저리도 급한가. 깊은 궁궐은 종일토록 한가한데


오늘의 기조 발표는 박물관을 사랑하고 즐겨 찾는 한 인문학도의 개인적 경험을 중심으로 한 단상이나 소견, 제안 정도로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흐르는 한 조각 나뭇잎이 큰 강을 어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발견되지 않은 또 다른 접시에 분명히 쓰여 있을 그 궁녀의 시처럼, 내가 띄워 보내는 이 은근한 붉은 잎이 여러분의 폭넓은 가슴에 잘 도달되기를 바랍니다. [3·4(·); “은근사홍엽(慇懃謝紅葉) 호거도인간(好去到人間)”]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이란 말이 있습니다. 적과 흑으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스탕달이 피렌체에 있는 산타크로체 성당(Basilica of Santa Croce)에서 미술품을 보다가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황홀경을 경험한 데서 비롯된 용어입니다. 뛰어난 예술 작품 앞에서 압도당하고 마는 현상이라 합니다.


20091, 이스탄불에서 아야소피아 박물관을 처음 방문한 순간, 나 역시 강렬한 스탕달 신드롬을 겪어야 했습니다. 1500년 전, 기중기도 컴퓨터도 상상할 수 없던 시대에 하늘 높이 매달린 거대하고도 아름다운 돔은 전율 그 자체였습니다. 화려하고 정교한 모자이크, 기하학적이면서도 웅장 유려한 대리석 벽과 기둥들, 건물의 배치며 장식품 하나하나가 모두 감탄을 자아내는 걸작이었습니다. 게다가 거기에 깃든 역사적 숨결과 체온을 대하고 나면 감동은 증폭됩니다. 스탕달도 만약 이 건물을 보았더라면 또 다시 무릎에 힘이 빠지는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요. 하기야 이 건물의 건립자인 유스티니아누스 황제(Iustinianus the Great, 재위 527~565)도 성당 봉헌식 날 감격에 겨워 솔로몬, 내가 당신을 이겼노라!”(“Solomon, I Have Outdone Thee!”)라고 외쳤다니, 그 순간만큼은 황제 역시도 스탕달 신드롬에 사로잡혀 있었나 봅니다. 수백 번 지진을 겪고도 고전적 위용을 자랑하는 아야소피아는 현대 건축가들에게까지 불가사의로 남아 있습니다.


이 건물은 기독교 성당(Hagia Sophia)에서 이슬람 모스크(Ayasofya), 다시 박물관(Ayasofya Müzesi)으로 변신을 거듭했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침략과 수난의 역사를 보듬으며 평화와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 서양과 동양, 콘스탄티노플과 이스탄불, 과거와 현재가 별다른 충돌 없이 한 건물 안에서 화해와 공존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 뒤로 수없이 이 박물관을 찾았고, 최고의 전문가로부터 깊이 있는 설명을 들으며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아야소피아에 대한 강연 요청이 올 만큼 지식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외국에 나가면 나는 일부러 짬을 내어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예술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 문학관 등을 찾곤 합니다. 2년 전 이맘때는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초청 강연을 하러 보스턴에 갔습니다. 마음이 설렜습니다. 전직 국회의장으로서 한국 정치에 관한 강연도 나로선 뜻 깊은 일이었지만, 나를 설레게 한 것은 보스턴 미술관(Boston Museum of Fine Arts)이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고갱(P. Gauguin)의 그림을 본다는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거기 머문 사흘 동안 날마다 미술관을 찾아가 고갱 그림 앞에서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누구인가, 어디로 가는가>(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를 되뇌며 작품과 끝없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는 관장의 배려로 <모나리자>(Mona Lisa)를 바로 코앞에서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모나리자를 가까이에서 보려고 몰려 있는 수많은 관람객들에게 미안하여 선뜻 나서지 못하자 그들은 오히려 얼른 관장 안내에 따르라고 웃으며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같은 해에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이 일본 덴리대(天理大) 도서관에서 잠시 빌려와 전시했던 안견(安堅)<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를 보러 갔던 생각이 나더군요. 장사진(長蛇陣)을 이룬 관람객들 틈에서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옆방에서 상설 전시 중인 진본 같은 사본을 충분한 설명을 들으며 조용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국제회의를 박물관에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주변에 종종 전파해 왔는데 실제로 201011월 서울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의 첫 공식 행사가 바로 이곳,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습니다. 각국 정상과 국제기구 수장들은 빗살무늬토기,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 등 찬란한 문화유산을 감상하며 리셉션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같은 시각 각국의 퍼스트레이디들은 서울 용산 리움미술관에 모여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다음 날엔 창덕궁과 한국가구박물관 등에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체험했습니다. 이런 장면들은 매스컴을 통해 지구촌 곳곳으로 중계되었습니다. 이처럼 세련되고 품격 높은 문화 마케팅이 또 어디 있을까요. 외국을 공식 방문하는 귀빈이라면 그 나라 주요 박물관은 반드시 들르는 문화 외교의 관행을 정립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박물관은 가장 머물고 싶은 곳입니다. 심사가 번잡할 때도 그곳에만 가면 안정감을 되찾고 세상을 포용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이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국보 78, 83)을 전시할 때면 반드시 만나러 갑니다. 그윽한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는 아집과 이기심에 젖은 내 마음을 고요히 들여다보는 것 같습니다. 무아지경의 심연(深淵) 가까이 갔다가 돌아 나오면 편안해진 마음이 얼굴에 나타나는 곳, 그곳이 바로 박물관이 아닐까요.


그렇다고 박물관과 관련해 아름다운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벌써 20여 년 전 일입니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이었던 옛 중앙청을 허무는 문제로 세상이 시끄러웠습니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건물이었기 때문에 부수어 버린다는 거였습니다. 나는 내가 소속한 당의 대통령이 내건 핵심 정책에 정면으로 반대하다가 정치적인 어려움도 겪었지만, 지금도 그 소신만큼은 변함이 없습니다. 건물은 사라져도 역사는 남는 법, 과거의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한다 해서 일제 침략의 역사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멕시코시티의 아즈텍 신전은 처참하게 부서지고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Catedral Metropolitana)이 들어섰습니다. 반면에 앞서 말한 아야소피아 박물관은 유목 전통의 정복자가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크게 활용했습니다. 두 문명, 두 종교가 공존합니다. 어느 쪽이 더 문명적인가요. 때로는 숨기고 싶은 치부나 깊게 파인 상처까지도 보듬고 가는 것이 참된 역사이며 올바른 태도라고 믿습니다. 역사란 영욕과 명암이 있기 마련이며, 그것은 또한 미래를 비추어 주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부끄러워할 역사는 있을지 몰라도 대체할 역사란 없습니다. 경복궁 복원을 위해서라면 중앙청 건물은 자리를 옮겨서라도 보존해야 옳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공포한 곳을, 정부 수립 장소를, 불과 5(1945~1950)사이에 일본 제국기(미 군정기·북한 인공기·한국 태극기가 차례로 펄럭였던 세계사적 격동의 현장을 영원히 잃어버렸습니다. 민주주의를 외치다 피 흘린 자국도, 전쟁과 독재의 총탄 흔적도, 군부 집권의 방패가 되었던 탱크 자취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총독부보다는 대한민국 중앙청으로 훨씬 오래 있었지만 일제의 잔재라고 부숴 버리면서 한국 근대사도 함께 지우려 했던 것입니다.


박물관은 감동과 창조적 상상력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전쟁을 오스만과 비잔티움, 두 제국 군주의 리더십에 초점을 맞춰 조명한 술탄과 황제(The Sultan & the Emperor)의 초판과 개정판을 쓸 때도 이스탄불에 있는 박물관들은 나에게 깊은 울림과 강렬한 영감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그곳 군사 박물관에서 마주친, 560년 전의 낡고 볼품없는 쇠사슬 몇 줄이 이 책의 주인공 술탄 메흐메드 2세를 내 머릿속에서 부활시켰습니다. 쇠사슬 방책에 가로막혀 항구 진입에 실패한 술탄은 배를 끌고 산을 넘는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항구와 도성을 점령하고 드디어 세계사의 물길을 바꾸었습니다. 역사의 현장 역시, 살아 숨 쉬는 박물관입니다. 나는 당시의 피어린 전투 상황을 엮어내려고 유네스코 헤리티지인 테오도시우스 황제 때 건립한 장대한 삼중 성벽(Theodosius Triple Walls)30번 넘게 찾아갔습니다. 하루 온종일 성벽 안과 밖, 아래와 위를 뒤적인 적도 있습니다. 그 바보 같은 열정이 내 책의 성공 요인 중 하나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기록과 수집은 인간(Homo Sapiens)의 욕구요 본능인 것 같습니다. 기원전 288년에 수집 가능한 당대의 모든 문서 자료 수십 만 점을 보관했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양피지(Pergamena) 대량 생산 기술을 개발한 페르가몬 도서관, 대단한 애서가였던 에페스의 켈수스와 그의 아들에 의해 만들어진 도서관. 비록 도서는 사라졌지만 남아 있는 유물과 잔해 속에서 고대인의 높은 정신문화를 느끼게 됩니다. 박물관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함께 호흡하고 또 미래로 나아가는 방향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908년 창경궁 안에 설립된 제실박물관을 효시로 친다면, 우리나라 박물관의 역사는 110년에 못 미칩니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박물관의 존재 가치에 눈을 뜬 개화 사상가들이 있었습니다. 박영효는 건백서(建白書)(1888)에서 조선의 자주독립과 부국강병책 중 하나로 박물관 설립을 주장했습니다. 서유견문(西遊見聞)(1895)을 쓴 유길준은 박물관을 일컬어 천하 각국의 고금물산을 그 대소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전부 수집하여 사람의 견문과 지식을 넓히기 위해 설치한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지금의 박물관 개념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탁월한 통찰입니다.


각설하고, 1991년부터 실시된 지방자치 제도는 수많은 박물관 탄생의 산파 역할을 했습니다. 강원도 영월은 박물관의 고장입니다. 사진, 곤충, 음향, 지리, , 화석, 다구(茶具), 도자(陶瓷), 민속악기, 민화, 불화(佛畫), 종교미술, 인도미술, 아프리카미술, 현대미술, 김삿갓문학, 동굴생태. 그야말로 호명하기도 숨찬 박물관들의 박물관’(?)이 바로 영월입니다. 게다가 단종의 귀양지인 청령포(淸泠浦), 그가 묻힌 장릉(莊陵) 등 역사의 애절한 현장 박물관도 있습니다. 인구 5만여 명당 한 개의 박물관(2015년 기준 전국 982-미술관 202개 포함)을 보유한 대한민국에서, 주민 수가 고작 4만 남짓인 작은 고을이 무려 26(20173월 기준)의 박물관을 갖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입니다. 이 다채로운 박물관들의 매력에 힘입어 지난해 여름휴가 만족도 조사에서 전국 종합 1위를 차지한 영월은 박람회 및 포럼 개최 등을 통해 국제적인 박물관 특구로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장 시절, 국정감사 기간을 틈타 국토 기행의 일환으로 영월을 다녀온 나는 아끼던 사진기 두 대를 동강사진박물관에 기증했고, 당시 군수로부터 내 이름을 붙여 상설 전시하겠다는 감사 편지를 받았습니다.


내가 20년간 국회의원으로 일한 부산 영도는 신석기인들이 거주하던 패총(貝塚, 조개무지) 지역으로, 이곳에 살던 민가를 이전하고 전시관과 부지를 확보했습니다. 그 바로 옆에 아시아 최초로(세계 최초인지도 모릅니다) 해양박물관을 힘들여 지었습니다. 조개잡이 하던 아득한 선조의 땅에 대양 개척의 의지와 여망을 담아 보았습니다.

나에게 박물관은 배움터이기도 합니다. 잃어버린 공중 도시, 잉카 최후의 요새인 페루 마추픽추(Machu Picchu)는 돌 하나, 집 한 칸, 길 한 쪽, 밭 한 뙈기가 예사롭게 설계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왜 2400m의 이 황량한 고원에 살았을까요? , 도피, 치료, 영생, 은신, 휴양, 개간(開墾) 등등의 단어들과 함께, 현대 과학자들이 풀어야 할 인간 존재의 근원에 접근하는 열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얼핏 해보았습니다.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마야(Maya) 피라미드는 이집트의 기자(Giza) 피라미드를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시대와 지역 등 모든 것을 달리하는 두 문명 사이에서 이질성을 뛰어넘는 동질성을 발견하고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유카탄 반도에 있는 마야 문명의 상징 치첸이트사(Chichén Itzá)를 방문했을 때는 공원 박물관장이 한국계여서 놀랍고 반가웠습니다. 다름 아닌 애니깽’(Anniquin / Henequen; 용설란의 일종) 농장에서 노예처럼 일하던 이민자들의 후예였던 거지요. 어려운 형편임에도 한글학교를 운영하고 독립운동 비자금까지 쾌척했던 그들의 의로운 삶, 그 증표들을 메리다(Mérida)제물포 거리옆에 그들이 손수 세운 조촐하지만 위대한 박물관에서 직접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웠습니다.


카이로 국립 박물관과 룩소르(Luxor:al-uqṣur) ‘왕들의 계곡에서 본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를 통해서는 뜻하지 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영생을 추구하며 엄청난 피라미드를 건설하던 파라오들도 결국은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그때 그의 심장은 마트(Ma'at; 정의와 진리의 여신)의 깃털처럼 가벼워야 했습니다. ‘깃털보다 가벼운 심장이라는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를 푼 순간, 나는 정치 현장을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술탄과 황제라는 작품을 그 빈 마음에 심혈을 기울여 채울 수 있었습니다.


박물관에 갈 때마다 나는 이 귀중한 문화유산을 후세에 남기고 전한 선인들께 감사하게 됩니다. 전주에 있는 경기전(慶基殿), 그 안에 복원한 전주사고(全州史庫)를 보면서도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유일하게 화를 면한, 역사적 의미와 가치가 매우 큰 사고입니다. 전주사고가 없었더라면 조선의 역사가 이토록 생생하게 존재했을까요. 태조 어진(御眞)과 몇 백 권에 이르는 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가마에 싣고 내장산으로 가 깎아지른 절벽 위 암굴에 모셔 놓고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다가 다시 그것을 싣고 강화도로, 묘향산으로 옮긴 선비들의 지극 정성과 피나는 노력이 없었더라면 전주사고본도 왜적에 의해 소실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 뒤로도 갖은 우여곡절을 겪지만 그때마다 실록을 지키려는 눈물겨운 안간힘 끝에 기적처럼 후세까지 전해져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재 이 조선왕조실록은 서울대 규장각(奎章閣)에 보관 중입니다. 나는 지금 서울대 규장각 운영위원으로 있습니다만, 처음 참여 요청이 왔을 때는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전란 중에도 실록을 지켜낸 선조들의 간절한 몸짓을 생각하며 작은 힘이나마 보태려고 수락했습니다.


20159, 한국의 대표적인 근대화가 전혁림 화백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을 그분의 그림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경기도 이영미술관에서 개최할 때 그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90세가 넘어서도 작품 활동을 하신 노화백께 100세 축하 기념전은 내가 모시겠다고 했는데 96세에 그만 돌아가셨습니다. 약속도 지킬 겸 거장의 작품 세계를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였습니다. 오늘도 저 하늘에서 통영 바다를 그림으로 노래하고 계실 그분께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합니다.


돌이켜보면 20년 의정 활동을 하면서 나는 우리 문화유산을 알리고 되찾는 일에 나름대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국회의장 시절에는 공관에 8폭 병풍을 그대로 복사한 <화성능행도>(華城陵行圖)를 걸어 놓고 외국 손님을 맞을 때마다 자랑하곤 했습니다. 200811월 프랑스를 공식 방문했을 때는 그 나라 상하원 의장을 잇달아 만나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약탈해 간 외규장각 도서들의 반환을 강도 높게 요청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 양국 대통령간의 합의(201011, G20 정상회의)가 이루어지고 이듬해 5, 마침내 297권의 의궤 반환이 완료됩니다. 빼앗긴 지 145년 만의 귀환입니다. 5년 주기로 갱신해야 하는 대여 형식이긴 하지만, 프랑스 국내 사정과 우리의 실리를 적절한 선에서 절충해 얻어낸 외교적 성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 박물관(Asian Art Museum of San Francisco)은 좀 실망했습니다. 아시아 밖에 있는 세계 최대의 아시아 작품 전시관은 시청과 마주보는 시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한국인 기증자 이종문 기념홀이라는 커다란 명문(銘文)이 자랑스럽게 나를 맞이했지만, 막상 전시된 한국 유물은 바로 옆의 일본이나 중국관에 비해 많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관장으로부터 현대 작품도 전시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귀국하자마자, 친분 있는 도예장(陶藝匠)에게 특별히 의뢰해 만든 커다란 달항아리를 보냈습니다. 박물관으로부터 고맙다는 공식 접수 편지를 받았지만 샌프란시스코로 시집보낸 달항아리를 아직 만나러 가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습니다.


나는 국회의장 재임 중에 외국 정상이나 고위 인사로부터 받은 기념품과 선물 170여 점을 모두 국회에 기증했습니다. 11대부터 17대까지 전임 의장들의 기증품 합계보다 더 많은 숫자입니다. 퇴임을 앞두고 이 기념품들을 한 자리에 모아 국회에서 특별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다양하고 폭 넓은 의회 정상 외교의 모습을 국민에게 상징적으로 알리면서, 이 기증품들이 또 하나의 국회 관광 상품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별도로 코스타리카 전·현직 국회의장으로부터 선물 받은 그 나라 관련 서적 188권도 국회 도서관에 기증했습니다.


문화유산을 떠올릴 때마다 가장 답답하고 안타깝고 가슴 아픈 것은 반구대 암각화 문제입니다. 지금 이 순간도 암각화는 지독한 물고문을 당하며 훼손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고래잡이를 한 증표인 작살 박힌 고래, 새끼를 등에 업은 어미 고래를 비롯해 여러 모습을 한 인간과 각종 동식물들이 흔적이 옅어지고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국회의장 시절에만도 두 차례 현장 답사를 다녀와 그 심각성을 백방으로 알리고 물에서 빨리 건져낼 대책 마련을 외쳤지만 공염불이 되고 말 상황입니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선사시대의 기념비적 문화유산인 이 암각화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과연 우리가 문화를 논할 자격이 있을까요.


최악의 실수라는 오명을 남긴 공주 무령왕릉 발굴처럼 졸속으로 해서도, 경주 천마총의 <천마도>(天馬圖)처럼 보존을 허술히 해서도 안 됩니다. 반구대 박물관에 전시된 모형도의 실물은 지금도 대곡천 사연댐 물밑에 잠겨 숨조차 쉬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문화재 보호에 관한 두 가지 날카로운 대립에 직면합니다. 첫째는 문화재는 물론 그 주변 일대에 어떠한 손상이나 변경도 가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주의적 입장이고, 둘째는 시대와 주변 환경에 따라 적절한 변경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입니다. 각자가 자기주장만 하고 있는 사이에 반구대 암각화는 서서히 질식당하며 처참한 형태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훌륭한 문화유산을 남긴 조상에게도, 제대로 물려받지 못할 우리 후손에게도 면목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역사에 죄를 짓고 있는 건 아닌가요.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했기에 반으로 잘린 자식의 시체를 갖기보다는 산 채로 남에게 주는 편을 택했던 솔로몬의 재판법정에 선 생모의 심정으로, 문화재위원과 관계자 여러분들의 대승적 결단을 촉구합니다.


평생을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백범 김구 선생께서는 일찍이 문화 국가 건설을 주창하셨습니다. 선생은 1947년에 발표한 나의 소원이란 글을 통해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를 이렇게 정의하셨습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백범 선생께서는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인 70년 전 이미 문화 국가를 꿈꾸고 설계하셨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예지가 빛나는 선각자다운 면모입니까. 그때보다 훨씬 나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 우리지만 문화를 제대로 지키고 발전시키고 계승해 나간다고 할 수 있을지, 그 무엇보다도 정성을 다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습니다.


박물관은 나라의 얼굴입니다. 브랜드이며 국격입니다. 인류의 공통 자산이고 문명의 발자취입니다. 앞으로 인류가 걸어갈 길도 이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박물관과 문화 정책, 그 새로운 가치와 방향을 모색하고 탐구하는 뜻깊은 토론의 장이 되기를 바라며 박물관 애호가로서의 순정한 편력기, 소박한 소견을 이쯤에서 마칠까 합니다. 귀담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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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굴에서 살아남는 법




김 형 오 장로, 전 국회의장



  2001년 가을, 나는 250만 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당선 직후 시작된 나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1년 만의 판결이었다. 국회의원이 선거법을 어겨 1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으면 의원직을 잃는다. 1심(부산지방법원) 판결이긴 하지만 이대로라면 국회의원직을 ‘두 번 반’이나 박탈당할 수 있는, 정치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죄명은 ‘허위사실유포죄’였다. 상대방의 일탈 행위를 지적하며 공명선거하자는 지구당(내 이름이 아님)의 호소문이 허위 사실에 해당한다는 검사의 황당한 주장을 판사가 받아들인 것이다. 일단 이 죄가 인정되면 500만 원 이상의 벌금이나 징역형을 받는 무서운 조항이다. 판사는 나의 ‘범죄가 가벼워서’ 반감(半減)해준 거라 했다. ‘가볍다’면서 의원직을 상실할 중형을 때린 그 판결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공명선거 정착을 위해 만든 법이 정치 탄압의 도구로 악용된 것이다.  처음 나는 내가 고발당했다는 말을 듣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적반하장(賊反荷杖), 주객전도(主客顚倒)란 말을 떠올리며 평소처럼 활동했다. 그 당시 나는 참 힘든 선거를 했다. 상대방의 모함 때문에 머리까지 삭발하며 결백을 호소했다. 선거 사무실은 24시간 감시받고 도청 당했다. 선거 기간 중에는 항상 미행이 붙었다.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는 노골적으로 나를 비난하고 깍아내렸다. 권력의 위협과 금력의 유혹을 못 이긴 핵심 당원과 운동원들이 탈당하거나 자취를 감추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래도 돈 없고 힘없는 야당 의원인 나를 유권자들은 눈물로 지켜주었다. 

  그런 내가 당선되자마자 기소되고 1심에서 국회의원직을 내놔야 할 정도의 형량을 선고받다니! 그날부터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삭일 수가 없었다. 세상의 정의와 신의 섭리마저 부정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회한이 밀려왔다. 내 정치 인생은 이것으로 끝나는가. ‘연속 3선 의원을 배출하지 않는다’는 우리 지역(부산 영도)의 징크스가 적중한 것인가…. 

  의기소침해 있던 어느 날, 밤중에 나는 소스라치며 일어났다. 비몽사몽간에 “1, 2, 3, 0” 하는 소리가 나더니 사라졌다. 시계 바늘은 새벽 1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참을 망연히 상념에 잠겼다. “아, 내 정치 인생이 12월 30일로 끝난다는 뜻인가.” 그래 놓고 보니 1, 2, 3, 0이 아니라 1, 2, 3, 1이라고 했던 것도 같았다. 머릿속이 멍해지며 혼돈스러웠다. 잠은 이미 멀리 달아나 있었다. 

  불현듯 머리맡의 성경이 생각났다. 곁에 두고도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읽지 않은 성경이었다. 나는 어떤 계시라도 받은 사람처럼 미친듯이 1230페이지를 들췄다. <에스겔>이 끝나고 <다니엘>이 시작된다. 그래, 바로 이거였다! 사자굴에서도 살아난 다니엘이 아니던가! 여기에 내가 붙잡을 뭔가가 있을 것이다! 나는 <다니엘>을 읽으며 밤을 새우기로 작정했다. 꿈 이야기가 지나고 6장 사자굴에서 건져진 다니엘을 읽었지만 영감이 오지 않았다. 집중력이 흐려지고 눈꺼풀이 무거워질 즈음 헐! 10장 19절에 이르러 갑자기 정신이 맑아졌다.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이르되, 주께서 나를 강건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 

  바로 이것이다! 두려워하는 내 마음을 아시고 나를 붙잡아주시려고 성령께서 내게 임하셨구나! 나는 얼른 일어나 찬물에 세수를 하고는 그 부분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새벽 5시. 머리가 맑아지면서 빛이 그토록 환할 수가 없었다. 첫머리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 바로 나란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나니 너무나 감사했다.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얼마나 감사할 줄 모르고 교만한 인생을 살았는지를 한순간에 깨우쳤다. 무릎을 꿇었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했다. 나의 교만과 아둔함을 통절히 반성했다. 이 불쌍하고 어리석은 자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려고 나를 일깨우셨구나. 하나님 아버지,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날 이후 다니엘 10장 19절을 입에 달고 다녔다.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운동할 때도, 식사할 때도, 화장실에서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내 입을 잠시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웅얼웅얼하는 소리에 뭐냐고 간혹 누가 물으면 미소를 머금고 조용히 일러준다. 당신도 나처럼 하면 복 받을 거라고. 

  성경의 은사를 접하고 나니 모든 것이 달라졌다. 세상을 사랑하고 긍정하며 남을 이해하는 눈과 마음이 생겼다. 정치적 미사여구와 입술로만 움직이던 찬사가 가슴으로부터 흘러나왔다. 미워하던 사람들에 대한 증오의 감정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건성으로 다니던 교회도 진리와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성소로 자리잡아갔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내 심장으로 전달되었다. 나를 하나님께 인도한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이 새삼 번지기 시작했다. 이런 시련이 없었다면 성경 말씀이 이토록 가슴을 때리는 은총으로 나를 적시게 할 수 있겠는가! 하도 읊조리다보니 나름대로 해석까지 하게 되었다. 왜 ‘두려워 말라’가 처음 나오며, ‘강건하라’가 마지막에 나오면서 두 번 연속 거듭되는지를. 한 자 한 획이 그냥 쓰여진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되니 성경에 대한 경외감마저 들었다. 

  이런 연유로 다니엘 10장 19절의 짧은 말씀이 내 심령에 안식을 주고 평생 내 가슴 한가운데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 후 재판은 2심에서 선고유예,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어 다시 고법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4년 국회의원 임기 중 3년 반을 끈 사건이었다.  참고로    
   그 당시 우리 당(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 중 26명이 여당이나 무소속으로 옮겨
   가거나, 또는 유죄를 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다. 나는 당을 떠나지 않았고 재판에
   서도 끝내 승리했다.





<원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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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69호 2017년 04월 (2017-04-17)




웃으며 떠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김형오(외교67-71) 부산대 석좌교수, 전 국회의장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수감으로 한 시대가 저물었다. 촛불은 아래로부터 타올랐고 태극기는 바람을 가르려 했지만 불길을 막지 못했다. 공익과 공공성, 그리고 법에 의한 지배가 민주주의의 기본가치임을 일깨웠다.


기존 제도에 대한 뼈아픈 성찰, 타성에 젖은 관행과의 과감한 작별, 국민 공감의 새 정치를 시대가 요구한다. 5월 9일, 대통령 선거가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제대로 검증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고, 민심과 여론은 대체로 가늠된다. 진용은 짜여졌고 윤곽도 드러났다. 정책이나 이슈보다는 이미지 대결, 조직과 세력 대결로 부딪치다 립 서비스로 끝나고 말 선거다. 이번에도 어떤 대통령을 뽑느냐가 아니라 누가 되느냐에 관심이 모아질 듯하다. 준비 안 된 대통령에게 맡길 만큼 여유롭지도, 한가하지도 않은 나라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또 간절한 소망은 이번에 당선될 대통령만큼은 마지막 날 청와대를 떠날 때, 제발 웃으며 떠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직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대통령이 너나없이 불행하게 떠났다. 쫓겨나거나, 시해 또는 자살로 생을 마치거나, 본인 아니면 자식·형제가 감옥에 가야 했다. 퇴임 후엔 어떤 공적 활동도 없다. 청와대가 한국 현대사, 그 비극의 현장이 되고 말았다. 다음 대통령은 자신의 행운을 기뻐하기보다 불운을 걱정해야 할 것 같다. 그만큼 앞길이 어둡고 험난하다.


우선 전임자 문제로 여진이 심상찮다. 임기 내내 촛불과 태극기가 충돌하고, 각양각색 시위와 요구가 분출할지도 모른다. 경제 사정은 어느 때보다 좋지 않고, 안보는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 자국 중심의 실리주의와 패권 논리가 한반도를 압박하고 한국의 위상을 위축시킨다. 리더십은 실종되고, 정치권은 진영 논리와 기득권에 매몰돼 있다. 포용과 통합은커녕 갈등·분열·대립 구도가 깊어져만 간다. 무엇보다 여소야대 국회다. 협조보다는 비협조가, 양보나 타협보다는 선명성과 원칙론이 지배하기 십상이다. 그것이 차기 지방 선거(2018년 6월)와 국회의원 선거(2020년 4월)에서 이기는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비민주적 정당 운영과 책임 못 질 ‘표퓰리즘’이 기승을 부리고 자성보다는 비난, 자책보다는 남 탓으로 돌리는 버릇도 여전할 것이다. 다음 3년이 대략 그렇게 흘러갈 듯싶다. 그러니 다음 대통령도 밝게 손 흔들며 청와대를 떠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 대통령의 웃는 얼굴 자체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나라의 명운이 그의 운명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청와대를 웃으며 나올까? 득표율만큼의 지지율이라도 받고 떠날 수는 없는 걸까? 역대 대통령의 실패를 현장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에 몇 마디 적는다.


대통령 임기는 짧다(어쩌면 이번엔 3년으로 끝날 수도 있다). 첫 1년은 전 정부에서 만든 예산을 조정하고 새 진용 짜느라 소진하고, 후반 1~2년은 레임덕(권력 누수)에 빠진다. 일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2~3년이다. 도중에 세월호나 메르스 같은 악재를 만나면 제대로 한 일도 없이 임기가 끝나고 만다. 그러니 첫째로 욕심을 부리지 말라!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음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매년 국정 목표와 우선순위를 바꾼 박 대통령의 과욕과 무능이 스스로를 구속 사태로까지 몰고 오지 않았는가. 헌법상 한국 대통령은 권한이 막강하다. 개헌을 통해 권한을 줄이겠다는 당초 약속은 지키지 않고, 오히려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다 망신살이 뻗친 것이 한국 대통령의 역사다. 임기 3년차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수족이라 믿었던 검찰이 등을 돌리고, 끽소리 못하던 공무원은 딴생각을 한다. 측근 비리가 새어나오는 것도 이때다. 언론은 대통령 약점 캐기에 바쁘고, ‘민의의 전당’은 민의도 국정도 표류시킨 채 ‘차기 후보 옹립을 위한 각축장’으로 전락한다. 기회를 엿보던 사람들이 때를 놓칠세라 ‘정의의 사도’인 양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대통령에게 시비를 건다. 성공하면 ‘왕관’이요, 실패해도 ‘투사’로 남는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러진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추락은 국가 공신력과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새 대통령은 이번에야말로 개헌을 통해 권한과 책임을 분산하라! 그래야 대통령도 살고, 국민도 나라도 살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은 부지런해야 한다!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토론과 회의, 독서와 숙고, 확인과 경청, 타협과 설득에 바쳐라! 고독한 결단과 무한 책임은 무덤까지 따라간다. 상대방과 반대파의 주장을 경청할 때 설득의 여지가 생기는 법이다. 전임 대통령들이 실패한 이유는 자기 논리, 나만의 동굴에 갇혀 편한 사람, ‘예스맨’만 만났기 때문이다. 청와대라는 ‘교만의 늪’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대통령이 게으르면 나라 전체가 태만해진다. 득표율만큼의 지지율이라도 받고 떠나는 대통령이 되란 의미는 자기 지지자들(만)을 위한 정치를 하란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당선을 위해,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뛰었던가. 그 정신, 그 자세로 임해야 지지율을 지킬 수 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내 진영, 내 지지자 중심의 정책과 인사를 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내 편의 양보를 받아내는 지혜와 용기를 먼저 발휘해야 상대방, 반대파가 비로소 마음을 움직인다. 끈질긴 대화와 설득은 대통령의 필수 조건이다. 그리하여 내가 아닌 남들이 “최선을 다했다”고 인정해줄 때 그는 진정 청와대를 웃으며 떠나게 될 것이다. 어떤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인가를 매순간 생각하며 행동하라! 그러면 길은 쉽게, 또렷이 보일 것이다. ♤



<서울대학교 총동창회신문> 동문칼럼 원문 바로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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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3 긴급 시국 대토론회 기념사]




“‘대통령다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유력 대통령 후보들에게 보내는 글-





김형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장, 전 국회의장)



  “삿된 마음(邪心)이 생길 때마다 먼저 자기를 자책하지 않고는 감히 다른 사람의 그릇됨을 탓하지 못했다.” 1945년 12월 2일, 그리던 고국 땅을 디딘 지 며칠 후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던 백범 김구 선생께서 환호하는 청년들을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 특히 정치 지도자들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경구가 아닌가 싶습니다.


<탄핵의 교훈을 되새기자>
  헌재가 만장일치로 대통령 탄핵을 인용했습니다.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과 정경 유착, 권력의 사유화를 엄단함으로써 권력의 제도화, 공공성에 대한 우리의 의식을 아프게 일깨웠습니다. 잘못된 정치를 헌법이 다스림으로써 한편으론 부끄럽고, 또 한편으론 자랑스럽게도 법치 국가의 준엄성과 정치의 질적 변화를 강력하게 요구한 것입니다.


 <대선은 질서 있고 투명·공정해야>
  흩트려 놓기는 쉬워도 수습은 어렵습니다. 대통령이 되는 것, 당선 자체가 목표라면 당선 후는 이번보다 더 힘든 대통령이 될 수 있습니다. 나라 사정은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번 대선은 어느 때보다도 엄정․엄격․엄중해야 하고, 24시간 비상 체제로 관리해야 합니다. 대통령 후보라면 그 무엇보다도 ‘삿된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진출처 http://v.media.daum.net/v/20170323145416355?f=o



 <어떤 대통령을 세워야 하나>
  선거일이 5월 9일, 50일도 남지 않았습니다. 후보를 검증할 시간이 매우 부족합니다. 자칫 지지자 모임, 당원 중심의 조직 투표로 이번 대선이 끝날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철저한 능력과 도덕성 검증을 통한 국민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가 중요합니다.

  후보들은 일부 국민이 아닌 전 국민, 즉 5천만 국민, 7백만 해외 동포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합니다. 편 가름하지 말고 상대방을 가슴으로 싸안는 대통령이어야 합니다. 그도 나도, 반대파도 찬성파도 같은 나라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모두가 남북통일을 얘기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국민 통합이 남북통일보다 시급합니다. 선거를 치를 때마다 국론 분열과 갈등은 심화되었습니다. 지금은 임계점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남남갈등도 치유 못하면서 어찌 통일 대통령이 되겠단 말입니까.
  이번 대선은 누가 되든 여소야대 대통령입니다. 반대파와 견제 세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국회와 정당은 물론이고, 여러 단체․집단과의 소통․협의․협조가 필수적입니다. 이른바 ‘국정을 발목 잡는 세력들’과의 힘겨운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은 인내와 설득 그리고 정당성뿐입니다. 어느 쪽이 진정성과 절박성을 더 가졌는지는 국민이 판단할 것입니다. 어찌 보면 지난날의 대통령들이 정치하기 한결 수월했을지도 모릅니다.
  나라 안팎에 산적한 이 숱한 난관․난제를 돌파할 자신감과 세계관을 갖춘 지도자여야 합니다.
  ‘먹고사는 문제’는 대통령과 정부가 감당해야 할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핵심은 바로 경제와 안보, 문화와 자유입니다. 경제를 살리지 못하면 백약이 무효입니다. 나라 경제가 어느 때보다도 좋지 않습니다. 계층 갈등은 심각합니다. 공평히 떡을 나누어야 하고, 또 나눌 떡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정경 유착의 고리는 단호히 끊되, 기업의 숨통을 조여서는 안 됩니다. 투자 의욕을 살려 기업도 자본가도 이 땅을 떠나지 않게 해야 노동자가 살고 나라가 부강해집니다.
  무엇보다 국가 안보는 국민 생존과 직결됩니다. 외부의 위협과 압박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야 합니다. 흐리멍덩, 우물쭈물하다가는 대통령도 정부도 국민도 낭패를 당합니다. 안보만큼은 가장 단호하고 지혜로워야 하며 국민 공감대가 필수적입니다.
  문화가 피어나고 자유의 공기를 마시는 나라가 튼튼하고 좋은 나라입니다. 실패한 정권들은 문화를 지도하고 장악하려 했습니다. 충만한 자유 속에서 문화는 살찌고 행복은 커가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자유를 지키고 문화를 창출하기 위해 피 흘리고 책임을 다했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만큼 대외 의존도가 심하고 국제 정치에 깊이 영향을 받으면서도, 세계를 모르는 지도자가 많은 나라도 드물 것입니다. 이제는 어느 나라도 우리를 그냥 지켜 주지 않습니다. 최근 몇몇 나라에서 별난 지도자를 보지만 우리는 그들만큼 대내외적 여건이 한가하지 않습니다. 따라 하다가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세상을 알고 세계와 소통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라의 비전을 명확히 하라>
  5년 단임제 헌법의 폐해로 우리는 중장기 비전과 계획을 잃어 버렸습니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정권 교체 이상의 정책 교체가 일어납니다. 관련 공무원이 하루아침에 한직으로 밀려납니다. 이는 국가 경쟁력의 상실과 저하로 이어집니다. 세종시 문제의 심각성은 국가적 위기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나라의 중장기 계획은 계속되도록 국가 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공무원․공직자들이 사명감과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나라가 됩니다.


<거국 쇄신 정부를 구성하라>
  대통령은 ‘신의 사도’가 아닙니다. 상대적 다수표를 얻어 뽑힌 사람일 뿐입니다. 능력도 고만고만합니다. 아무도 그에게 “눈 감고 마구 휘두르는 「정의의 칼」”을 주지 않았습니다. 임기 동안 반대파(표 주지 않은 국민)를 얼마나 안심시키고 포용하느냐로 성공과 실패가 갈립니다.
  진영 논리, 기득권 안주에서 과감히 탈피하십시오. 내 사람만 쓰는 ‘회전문 인사’가 아니라, ‘쓰면 내 사람’입니다. 핵심 측근과 캠프 출신 인사의 기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능력 위주의 과감한 인재 발굴을 하십시오. 국회 인사 청문회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진 것이 아닙니다. 한 인간이 1400대의 컴퓨터를 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밥에 그 나물’인 인사로는 안 됩니다. 붕어빵 기계로는 아무리 돌려도 똑같은 붕어빵만 나옵니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인재를 등용해야 겨우 이 어려운 시기를 넘어갈 수 있습니다.
  임기 안에 많은 업적을 내겠다는 욕심은 금물입니다. 일을 잔뜩 벌였다가 마무리를 맺지 못한 역대 대통령들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바랍니다.
  검찰과 경찰, 국세청과 감사원 등 이른바 힘 센 기관들은 독립성․중립성․객관성을 확립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권위적 리더십의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민주적 리더십으로 바꿔야 합니다. ‘만기친람’은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습니다. 확실한 위임과 결과에 대한 책임으로 국정을 이끌어야 합니다. 부처별로 독립 인사권을 보장하십시오.
  대통령은 청와대 밖에 집무실을 따로 마련하고, 현장과 실상도 확인해야 합니다. 토론다운 토론을 하는 국무 회의, 수석비서관 회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개헌으로 정치의 비극을 막자>
  개헌 일정(로드맵)을 확실히 밝히십시오. 늦어도 2018년 6월 전국 동시 지방 선거 때는 국민 투표로 개헌이 확정, 발효되어야 합니다. 국정 농단 탄핵 사태를 겪고도 현행 헌법으로 5년을 또 가겠다는 것은 역사의 퇴보요, 불행한 대통령을 만드는 길입니다. 현행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 행사에 대한 미련 때문에 개헌에 소극적이라는 소문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며, 모든 후보들은 빨리 그 허황된 꿈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국민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이번 대선일에 ‘내년 6월 이전에 개헌한다’는 개헌안을 국민 투표에 부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합니다. 2020년 4월에 치러질 21대 총선에서 대통령 선거를 함께 할지 등은 국민 합의로 정하면 됩니다.


<결국은 국민이다>
  급작스런 대선 국면의 전개는 준비 안 된 대통령, 준비 안 된 정권을 탄생시킬 수 있습니다. 국민의 갈등은 더 노골화되고 편 가름은 더 심화될 수 있습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 경제 사정과 대외 압력을 생각하면 대한민국이 여기서 끝날 수도 있다는 끔찍한 생각마저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희망은 있습니다. 아니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탄핵 사건도 그 원동력은 국민의 열정․분노․정의감․애국심이었습니다. 우리 국민은 살아 있습니다. 눈에는 불이 있고 가슴에는 피가 끓습니다. 다시는 국민의 여망을 배신하는 정치를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며 성숙한 시민 의식을 전 세계에 보여 주었습니다. 바야흐로 빅데이터․인공지능 시대, 초연결 사회입니다. 굴뚝산업 시대의 논리와 권위주의적 행태, 전체주의적 정책과 결별해야 합니다. 다양하고 자유로운 창조적 집단 지성이 측근 밀실 정치를 밀어내고 대통령을 양지로 이끌 것입니다. 진영논리와 기득권에서 벗어나면 살 길이 보입니다.
  “양반도 깨어라! 상놈도 깨어라!”던 백범 선생의 절규가 가슴을 때립니다. 무엇보다 ‘그들만의 잔치’가 되지 않도록 독점과 독선, ‘선민의식’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부터 깨어야 합니다. 핵심 측근들도 깨어야 합니다. 오늘의 이 호소는 그들을 위해 바치는 쓴 약입니다. 마시지 않으면 국민이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인보다 훨씬 앞서 깨어 있는 국민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21세기적 사회 문화 환경은 정확하면서도 빠른 행동을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신 분들의 충정어린 제언과 토론에 기대를 걸어 봅니다.
  감사합니다. ♠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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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극복과 국민통합을 위한 시국대토론회


2017년 3월 23일 오후 1시
백범김구기념관 대회의실



  이번 주 3월 23일(목) 오후1시에 한국정치학회와 한국경제학회 주관으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긴급 시국대토론회>가 열립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외교, 안보 전 국면에서 위기 상황을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국가적 위기"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모두 위기라고 말하지만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너무나 미미한 형편입니다. 위기를 변화와 혁신의 기회로 삼아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기대합니다. 여러분들의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저는 토론회 기념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래 초청장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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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bookworm)님으로부터 다시 답장이 왔습니다. 정말 놀라운 분이었습니다. 제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분으로서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이었습니다. 가뜩이나 우울한 이때 이런 훌륭한 국민이 계시다는 것만으로 한국의 건강성을 알게 되고, 우리 국민의 저력을 믿게 되었습니다. 보내주신 답글은 여러분과 함께 공유하고 싶을 정도로 알차고 정감이 물씬 풍기는 내용이지만 사생활에 관한 부분도 있어 아쉽지만 공개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이분에게 기쁜 마음으로 저의 책을 보내드립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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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ookworm 2017.03.11 17: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bookworm입니다. 책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
    며칠이 지났는데 이렇게 늦게 감사의 인사 드리게 되어 죄송한 말씀 올립니다. 도서관에 반납 후 다시 생각나거나 더 확인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도 어쩔 수 없어 답답한 적이 있었는데 책을 손에 들고 너무 행복했답니다. 소중하게 오랫동안 잘 간직하겠습니다.
    같이 보내주신 월간 조선의 인터뷰 기사도 전문을 검색해 찾아보았답니다. 도와준 학생들의 이름까지 일일이 챙기신 점, 개정판을 내기로 마음먹었는데 기존의 책을 계속 판매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신 점 등이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한 사람의 인격과 인품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 감동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정치 현안에 대해서도 말씀하시는 모든 것에 진실된 울림이 느껴집니다. 이미 일선에서 은퇴하셨으니 이런 표현을 쓰기에는 적절치 않을지 몰라도, 저에게 처음으로 존경하는 정치인이 생겼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늘 건승하시고, 앞으로도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2. 삶의느낌표 2017.03.12 1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식과 몰상식, 정상과 비정상, 염치와 파렴치의 경계가 무너져 그 의미조차 공허해진 세상. 그래도 이런 아름다운 커뮤니케이션이 있어 살아볼 만한 가치를 다시금 새겨 봅니다.

가까운 지인이 얼마 전 우연히 제 책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관련 글을 읽게 됐다며 보내줬습니다. 블로그에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감상문을 올린 것인데, 초판과 개정판을 비교해 가며 열심히 읽은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더구나 작가로서 평가받은 것 같아 마음이 기뻤습니다. 그래서 저도 답글로 감사와 기쁨을 표현했습니다. 아래 내용을 올립니다. 




몇년 전, 단 한권의 책만을 위한 커다란 전면광고를 보았습니다. 수많은 유명인사들의 찬사로 장식된 그 책은 누가 이렇게 심심하고도 임팩트 없는 제목을 꼴랑 지어놨을까, 싶었던 <술탄과 황제>, 그리고 저자는 놀랍게도 전 국회의장 김형오였습니다. 학자도 아닌 사람이 이렇게나 대단한 평가를 받는 책을 써냈다고? 이슬람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었지만 도대체 어느 부분부터 손대야 할지 몰라 엄두를 못내고 있었던 저는, 그 책에 관심이 가긴 했지만 그냥 시간이 흘러버렸죠.


두달 전, 또다시 전면광고를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벌써 그새 4년이 지났고, 그냥 개정판 정도가 아니라 다시 써서 제목까지 달리한 책을 내놓았네요. 와, 다시 쓰다니....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이 쓰면 썼지 기존의 것을 뒤엎어 다시 쓰다니. 분량이 적은 것도 아니고 그 지난한 고통의 과정을 어찌했을까. 존경스럽기도 했고, 이번에는 꼭 읽어야지 싶어 도서관에 구입 신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해 기존의 <술탄과 황제>도 같이 빌려왔지요.


"1453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됨으로써 비잔티움 제국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오스만 제국이 세워졌다. 세계사의 한 장이 접히고 새로운 장이 펼쳐졌다. 이 글은 동서 문명의 교차로인 이스탄불에서 종군기자가 된 심경으로 써 내려간 54일간의 격전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전쟁의 주역이었던 오스만의 술탄과 비잔티움의 황제, 두 제국의 리더십에 대한 치열한 탐구이다"


책의 앞 페이지에 이렇게 씌어진 글을 시작으로 저자의 말, 초판 서문, 추천의 글, 일러두기 등등이 이어진 후 책은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갑니다.


개정판에 부치는 저자의 말을 보면 초판부터가 굉장한 난산이었습니다. 2년동안 자료조사를 했고 그 후의 2년동안 구상과 집필에 매달렸습니다. 호평에 책은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고 여기저기서 강연 요청이 쇄도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진한 점이 눈이 띄었습니다. 38쇄를 마지막으로 찍고 출판사에 더는 찍지 말아달라고 요청했지요. 전면 재개정을 한다면서 계속 판매한다면 양심에 꺼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금방 될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또 1년 8개월이 걸렸습니다. 


전문연구가도 아닌데, 정말 대단한 노력으로 책을 써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말미에는 다양한 부록이 있고 수백권의 참고문헌은 물론 통번역에 도움을 준 사람들, 자료수집, 안내를 담당한 사람들 이름까지 수록해놓았습니다. 그리고 도움을 준 대학생, 대학원생들의 이름도 빼놓지 않은 것은 학생들을 착취하며 그들의 업적을 가로채는 수많은 교수들의 관행에 비추어 볼때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개정판에서는 그 이름들이 빠졌는데, 일일이 언급을 못해 미안하다는 말이 후기에 있네요. 아마 분량이 너무 늘어나서 그런 것 같습니다.  


책은 가독성이 떨어진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쉽게쉽게 읽어내려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각주가 있는데 일반적인 내용이 아니라 하나의 또다른 스토리를, 혹은 역사적 사건들을 설명하는 것들이라 글씨는 작아도 내용은 한두페이지를 훌쩍 넘는 것들이었습니다. 책 말미의 1000개가 넘는 각주들도 하나씩 꼼꼼히 챙겨보는 독서습관을 가진 저로서는 너무 긴 각주를 읽어야 하는 바람에 흐름이 자꾸 끊겨 그리 달갑지는 않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저자를 이해했습니다. 각주의 내용을 본문에 다 담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설명하지 않고 지나가자니 이해의 깊이나 폭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책 뒤편의 부록이 130 페이지가 넘습니다. 


전투장면 묘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수천 수만의 전쟁, 전투를 겪었겠지만 이렇게나 자세히 묘사한 작품을 접해본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직접 겪어본 적이 없는, 그리고 비극의 땅 시리아나 아프리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저에겐 전쟁이란 과거의 일이고 감이 오지 않는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54일간의 전투를 손에 잡힐 듯이, 바로 옆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히 묘사합니다. 이처럼 긴 분량의 전쟁 묘사로는 얼핏 생각나기로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서 '워털루 전투'라고 명명된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총 5권 중 몇번째 권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책의 3분의 1 가까이 차지하는 무시무시한 분량, 그리고 무시무시하게 지루한 부분이었지요. 감동도 없이 억지로 고문받듯이 읽어내야 했던. 하지만 단언컨대 빅토르 위고보다 김형오가 이 부분에서는 훨씬 뛰어납니다!!


교과서에서 단순한 몇마디로 서술되었던 서로마 제국의 멸망, 그리고 한참 뒤 동로마 제국의 멸망. 그것은 단지 활자로 인쇄되어 아무 의미없던, 무색무취의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1123년을 지속해온 동로마 제국의 의미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그 땅을 정복해야먄 했던 젊은 술탄의 의지와 집념은 저를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황제의 최후에 대해 전설처럼 내려오는 여러 이야기도, 그렇게 신화처럼 변해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제 가슴을 슬프게 두드렸습니다.


개정판에는 빠져있지만 초판에는 책을 쓰기 위해  다섯번째로 이스탄불을 방문해 47일간 체류하던 중의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귀국전 역사적인 장소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여러 감상들을 적은 기록인데, 막판에는 저도 저자의 감정을 따라 울컥,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수백년 전 이 자리에 있었던 치열한 생명들, 그리고 고뇌들, 잊혀진 순간들, 천년왕국의 멸망, 그 자리를 찾은 이방인, 끊기지 않은 인연, 그래도 흘러가는 삶... 등등의 여러 복합적인 느낌들 때문에요. 


책을 반 정도 읽다가 반납을 하고 장기여행을 다녀온 뒤 다시 이 책을 집어야 했습니다. 그 때문에 각주도 다시 읽어야 하는 부분이 있었고, 이미 읽은 부록을 또 읽어야 하기도 했죠. 그래서인지 책이 더 깊이 이해되고 마음에 많이 남는 기분입니다. 언젠가 나만의 서재가 생기면 소장할 책... 목록에 또 하나 추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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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worm님 안녕하세요.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저자 김형오입니다.

 

제 책의 초판과 개정판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 주시고, 과분한 찬사까지 해주시니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대개 정치인이 쓴 책이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이 많은데 정치인이 아닌 작가로 대해주어 감사합니다. 책을 쓰느라 소진한 시간과 체력이 헛되지 않았고, 난산의 고통을 보람과 행복으로 보상받은 기분입니다.

 

전투 장면 묘사는 특히 공을 들인 부분인데, 극찬을 해주시니 성취감을 맛봅니다. 다만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와 견준 대목에선 약간 쑥스럽더군요.

 

독일의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는 "두 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한 번 읽을 가치도 없다"고 했습니다. 제 책이 님에게 두 번 읽을 가치, 소장 가치를 지닌 책으로 인정 받은 것 같아 뿌듯합니다. 게다가 개정판과 초판을 대조하듯 읽으셨다니, 책에 대한 님의 열정과 관심이 경이롭기만 합니다.

 

각주와 부록 못지 않게 QR코드에도 정성을 쏟았습니다. 사실은 제가 이 분야 지식이 짧아서 이것저것 조사하다가 버리기 아까운 것들을 정리하면 독자의 이해를 넓히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접속하면 다양한 현장 사진, 관련 자료들과 함께 책에 담지 못한 좀 더 깊이 있는 정보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bookworm의 책 세상'. 님의 블로그를 일별한 소감은 한마디로 '책벌레'란 닉네임에 걸맞다는 거였습니다. "책과 영화 이야기가 가득한 세상"을 꿈꾸는 님의 아름다운 소망과 해박한 식견이 읽혀졌습니다.

 

님이 읽고 본 책과 영화에 대한 600여 편의 리뷰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고, 또 누군가에게는 그 책과 영화를 접해 보고 싶은 마음을 갖게 했을 것 같습니다. 출판 편집자라면 님의 섬세한 필치와 문장력에 반해 작가로의 변신을 권유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bookworm님의 서재에 싱그러운 봄의 향기가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제 블로그는 www.hyongo.com

이메일 주소는 khospeaker@daum.net입니다.

님의 주소(성함)를 메일로 보내 주시면 제가 사인한 개정판 책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다시금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김형오 드림





[bookworm의 책세상]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바로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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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나무그늘아래 2017.03.08 0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자와 작가의 아름다운 대화입니다. 소통이 단절된 시대라서 더욱 멋지고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을 4월도 멀지 않았습니다. 잔인하고 또 찬란하겠지요.

지난 해 말 한국정치학회와 인터뷰한 내용이 <한국정치학회 소식>에 실렸습니다. 한 해 4번 발행하는 한정된 지면의 회지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제 인터뷰를 실어 준 한국정치학회에 감사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이미지를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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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0일 오전 10시 국립서울현충원에서 <故 강영훈 국무총리 묘비 제막식>이 있었습니다.

청농(靑儂)이란 아호에 걸맞게 하늘도 푸르고 땅도 살찐 화창한 가을날, 유족분들과 평소 강영훈 총리님을 존경하던 지인 몇 분들이 이곳에 모여 조촐하지만 경건한 제막식을 가졌습니다.

묘비에 적힌 몇 줄로 존경과 사모의 마음을 어찌 담아낼 수 있겠습니까. 평생을 나라 위한 충정으로 무실역행(務實力行)하시며 세상일에는 심모원려(深謀遠慮)의 지혜를 주시며, 스스로에겐 절차탁마(切磋琢磨)의 모범을 보이신 분을 어찌 몇 마디로 표현해 낼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저 모자란 재주와 능력으로 몇날 며칠 고민 끝에 지어바쳤습니다. 총리님의 그 크신 업덕(業德)에 비할 데 저의 글귀는 못내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저에게 이런 귀한 영광을 주신 유족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과 총리님께 무한한 존경심을 다시 한번 드리는 바입니다.


강영훈 총리님은 제 인생의 스승이십니다. 그처럼 청렴하고 훌륭하신 분이 절 아껴주시고 조언해 주셨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 총리님과 함께 했던  행복하고 영광스런 시간을 영원히 간직할 것입니다. 


제막식이 끝나고 강 총리님을 닮아 훌륭하게 성장한 두 아드님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사진에서 오른쪽이 큰 아들 강성룡 변호사, 왼쪽이 작은 아들 강효영 변호사입니다.


오늘 이후 제가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습니다. 다음에 제 손자들과 함께 와서 인사 드리겠습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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