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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알렉산더 대왕 석관 & 슬피 우는 여인들=『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200쪽 참고 (구간 359쪽 참고) Alexander Sarcophagus & Mourning Women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알렉산더 대왕의 석관. 말을 물어뜯는 사자, 그 사자와 싸우는 그리스 군인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한 명은 도끼로, 또 한 명은 창으로 사자를 찌르고 있다. 현재 창은 없지만 오른손은 확실히 창을 쥐고 있는 형상이다. 이미 창 끝이 사자의 왼쪽 앞발을 찌른 흉터(붉은 원)가 있고, 사자의 뒷다리를 무는 사냥개의 모습 또한 용맹스럽다. 페르시아군과 맞서 싸우는 알렉산더 대왕의 그리스군. 석관 맨 왼쪽에 있는, 사자 탈을 머리에 쓰고 말을 탄 사람이 알렉산더 대왕이다. 창을 높이 치켜든 채 적을 찌르려 하고 있다. 말은 앞발을 힘껏 들어올려 적을 향하고 있다. 이 석관 면에만 18명의 사람과 6마리의 .. 더보기
10. 귈 자미(테오도시아 성당) & 몽골교회 & 몰라 규라니 자미 =『다시 스는 술탄과 황제』 73, 218, 424쪽 참고 (구간 339, 340쪽 참고) Gül Camii("The Mosque of the Roses") & Church of Saint Mary of the Mongols & Molla Gürani Camii(Vefa Kilise Camii) 물라 규라니 자미 베파 지구에 위치한 물라 규라니 자미. 원래는 교회였으나 정복 이후 메흐메드 2세가 가장 존경하는 스승의 이름을 따서 지은 모스크이다. 물라 규라니 자미의 고풍스런 외양. 2010년 여름과 2012년 봄, 두 차례 방문했는데 이맘(이슬람 성직자)이 바뀌어 있었다. 돔의 내부 모습. 중앙에 있던 모자이크는 사라지고, 아치형 창문에 비잔틴 양식이 남아 있다. 모스크 가까이에 있는 공동 묘지. 비잔틴(기독교)과 오스만(이슬람)이 함께 영면하고 있다. 그러나 황제의 무덤이라고 추정할 만한 묘.. 더보기
34. 열드즈 사라이=『술탄과 황제』 338쪽 참고 열드즈 사라이 입구. 내가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에 파묻히기 위해 자주 이용했던 이슬람역사문화연구소(IRCICA)도 이 안에 있다. 마흐무드 2세 때 착공해 압둘 하미드 2세 때 완공되었다. 마지막 술탄 메흐메드 6세 바흐데딘( 재위 1918~1922년)이 이곳에 머물다 영국 전함을 타고 이스탄불을 빠져나가 이탈리아 산레모에 정착했다가 1926년 별세했다. 1994년에 세워진 열드즈 궁전 박물관. 열드즈 사라이에는 3개의 박물관, 미술관 등이 있으며, 최근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내가 주로 이용한 도서관은 자료와 책자뿐 아니라 아랍어로 된 각종 칼리그라피(Calligraphy ; 서체)를 엄청나게 수집해 보관하고 있었다. 도서관의 두 친절한 사서 덕분에 필요한 자료의 카피와 스캐닝은 물론 식사 대접까.. 더보기
40. 메흐메드 말년의 터번 쓴 초상화=『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436쪽 참고 (구간 320, 337쪽 참고) Portrait of Great Sultan Mehmet II(1480, by Gentile Bellini) 술탄 메흐메드 2세 말년의 초상화. 통풍과 비만으로 합병증에 시달리던 이 시기, 메흐메드는 대중 앞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뚱뚱한 몸과 병색이 짙어야 할 얼굴은 이 인물화 속에는 묘사되어 있지 않다. 시와 음악, 풍류를 즐기기도 했던 그는 이슬람 학자들이 쓰는 모자(터번)를 즐겨 썼다. 그가 들고 있는 꽃은 야생 장미(카네이션?). (이스탄불 톱카프 박물관 소장. 종이에 불투명 도료로 채색. 39x27cm). 내 책의 표지에 활용한 초상화다. 15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작가 코스탄조 다 페라라(Costanzo Da Ferrara)의 청동 작품인 술탄 메흐메드 2세의 .. 더보기
39. 메흐메드 2세의 정복 사업 연표=『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435쪽 참고 (구간 337쪽 참고) 메흐메드의 정복 사업 A Chronological Table ; Conquests of Mehmed Ⅱ#Colin Imber ; 『The Ottoman Empire 1300~1481』에서 발췌(이스탄불) ※무라드 2세 1(1421~1437년) 1421~22년 ; 내전 1422~23년 ; 콘스탄티노플 포위 공격 및 내전 재발 1423년 ; 내전 후유증 1423~24년 ; 테살로니카 포위 및 비잔틴과 조약 1424~25년 ; 아이든(Aydin) 및 멘테세(Mentese) 정복 1425~27년 ; 테살로니카, 왈라키아, 세르비아와 전쟁 1426~28년 ; 베네치아 외교의 실패 1427~29년 ; 골루바트(Golubats) 함락, 차닉(Canik)과 제르미얀(Germiyan) 정복 1429~30년 ; 테살로니카.. 더보기
38. 겔리볼루 요새와 차낙칼레 요새 & 에디르네 유적=『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406쪽 참고 (구간 333쪽 참고) Gelibolu Fortress, Çanakkale Fortress & the Remains of Edirne 16시 53분을 지나가고 있는 차낙칼레의 시계탑. 큰바늘이 1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면 나는 반사적으로 1453년을 떠올렸을 것이다. 차낙칼레 항구. 맞은편에 겔리볼루(유럽) 쪽 다르다넬스 해협의 끝이 보인다. 나는 이 항구에서 배를 타고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 겔리볼루로 갔다. 술탄 메흐메드 2세의 귀환 여정을 답사하기 위해서였다. 다르다넬스 해협을 지나면서 스마트폰에 담은 겔리볼루 요새. 겔리볼루(유럽)와 차낙칼레(아시아)는 이 해협을 사이에 두고 양쪽 해안에 요새를 구축해 놓았다. 다르다넬스 해협 한가운데에서 바라본 차낙칼레 요새. 보스포러스 해협보다는 폭이 넓지만 이런 전략적 요충지에 요새.. 더보기
5. 뱀 기둥, 뱀 머리, 관련 이슬람 그림=『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68쪽 참고 (구간 320쪽 참고) Snake Pillar, Head of Snake, and Other Islamic Paintings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몸통과 분리돼 나간 청동 뱀 머리 상. 1847년 아야 소피아 보수 공사를 하던 도중 발견되어 이곳으로 옮겨졌다. 나머지 두 마리의 뱀 머리는 행방불명이다. 히포드롬에 있던 뱀기둥의 본래 모습. 페르시아 군대를 무찌른 그리스 도시 국가들이 세운 승전 기념비 중 일부였다. 세 마리의 뱀이 뒤엉켜 밧줄을 꼬듯 한 몸을 이루며 기어올라가 머리로 커다란 청동 잔을 떠받들고 있다. 지금은 몸체만 남고 머리 부분은 사라졌다. 프랑스 작가 쥘 르나르가 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뱀, 너무 길다"(全文)가 연상되는 작품이다. 아야 소피아 박물관에 소장된, 뱀 머리 기.. 더보기
6. 금이 간 술탄의 검=『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68쪽 참고 (구간 319쪽 참고) A Cracked Sword of Sultan 바다코끼리의 송곳니(상아)와 황금으로 장식된 술탄 메흐메드 2세의 장검(126.5cm, 이스탄불 톱카프 궁전 박물관 소장). 칼등에 금이 간 자국(동그라미 표시)이 선명해 히포드롬에 있는 델피의 뱀 기둥을 지나다가 술탄이 이 검을 빼들어 청동 뱀을 향해 휘둘렀다는 속설이 생각났다. 더보기
35. 술탄의 에디르네 내각회의 연설문 전문=『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332, 382쪽 참고 (구간 290, 407쪽 참고) 술탄의 에디르네 내각회의 연설문(1453년 1월)Sultan's Speech at Edirne Cabinet Meeting ※이 글은 술탄 메흐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 공격을 결심하고 에디르네 디반(내각회의)에서 그의 중신과 지휘관들에게 한 연설문이다. 도시 정복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념을 논리적‧예시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터키어판 『Istanbul’un Fetih Gűnlűǧű(이스탄불 정복 일지)』에 부록으로 실린 전문을 일부만 생략하고 옮긴다. 오, 나의 명장들과 충신들이여! 그대들이 주인인 이 나라 이 땅을 조상들이 수많은 전쟁과 위협으로부터 수호하여 물려주었음은 상기시킬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대들 중 노장들은 이 전투들에 직접 참전도 하였을 터이고, 젊은이들은 전하여 듣고 배웠을 것이다. 이.. 더보기
34. 부콜레온 황궁=『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312, 366쪽 참고 (구간 272쪽 참고) The Palace of Boukoleon 부콜레온 황궁 터. 어떤 조각가, 어떤 화가가 빚어낸 풍경이기에 이토록 아름답고 운치 있을까. 이 도시에서는 피사체 모두가 예술 작품이다. 오랜 세월 비와 눈과 바람과 햇살이 합작해 빚어낸 작품 앞에 서면 카메라 셔터가 바빠진다. 본래의 황궁은 첫 번째 언덕 위에 있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확장되어 바닷가로까지 나오게 된다. 마르마라 바다 앞까지 지어진 황궁은 여름 별장, 황실 연회장, 예식장 등으로 사용되었다. 서기 1000년(바실리우스 2세 황제 시대)엔 바로 이 앞바다에서 그리스 화탄 발사 시연회도 가졌다. 내 책에 화탄 제작소를 부콜레온 황궁 뒤편 으슥한 곳으로 설정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현재 남아 있는 부콜레온 궁터는 이것밖에 없..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