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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에윱 모스크 내부와 묘지 옆 츠나르=『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205쪽 참고 (구간 174, 323, 336쪽 참고) Eyüp Sultan Mosque and Çınar("plane tree") 술탄 등극식이 치러졌던 에윱 자미의 대리석. 이곳에서 신임 술탄은 제국 창건자인 오스만 가지의 장검을 허리에 차는 의식을 치른 다음 이스탄불 황궁으로 가서 취임식을 가졌다. 에윱이 묻힌 자리에 그 표식으로 심었던 츠나르(플라타너스의 한 종류). 히잡을 머리에 쓴 여인들이 안내 표지판을 읽거나 그 앞에서 기도를 드리다가 갔다. 550년 전 술탄이 심었던 본래 나무의 새끼지만 벌써 고목이 되어 역사적 정취를 더해준다. 에윱 자미를 배경으로 친절한 해설을 해준 셀라하틴 씨와 한 컷. 셀라하틴 씨는 무에진(모스크 첨탑 위에서 육성으로 예배 시간을 알리는 사람)이다. 아잔(예배 시간을 알리는 행위)을 낭송하는 사람 답게 낭랑한 목소리로 .. 더보기
16. 당시 콘스탄티노플 지도들=『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119, 201쪽 참고 (구간 171, 403쪽 참고) Antique maps of Constantinople 출처 : Liber insularum Archipelagi(1824), 파리 프랑스국립도서관 소장 피렌체의 지도 제작자 크리스토포로 부온델몬티(Cristoforo Buondelmonti, 1386-1430)에 의해 1422년 제작된 지도. 1453년 정복되기 이전의 모습을 그린 가장 오래되고 유일한 지도이다. 아래 소개하는 그림 3편도 모두 그가 그린 것이며(일부 그림은 추정), 지도 모양은 전부 비슷하다. 지도의 오른쪽은 아시아 방향이다. 지도 상단은 제노바 직할령 갈라타 지역(페라)이며 그 가운데 갈라타 타워가 높이 보인다. 하단에는 콘스탄티노플 도시 성벽과 해자 등을 세밀하게 그려넣었다. 보스포러스 해협 아시아 쪽 연안에 자리잡은 크즈 쿨레시(.. 더보기
22. 보스포러스 해협의 풍광 & 돌고래=『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189쪽 참고 (구간 159쪽 참고) Scenery of Bosphorus Straits & Dolphins 두 조각난 타일에 돋을새김으로 묘사돼 있는 보스포러스 해협의 돌고래. 이즈니크(옛 니케아) 박물관 소장. 얼마나 돌고래가 흔했으면 호수 도시인 이즈니크의 박물관에까지 그 형상이 전시돼 있을까. 비잔티움의 초기 동전에도 돌고래의 모습이 새겨진 주화가 드물지 않았다. 아야 소피아 박물관 남동쪽 콘치의 버트레스를 장식하고 있는 대리석에 새긴 돌고래들. 네 마리의 돌고래가 바다 위로 뛰어오르며 재롱을 부리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보스포러스 해협의 정경. 햇살 맑고 바람 잔잔한 날이면 돌고래들이 떼를 이루어 파도와 장난치며 재롱을 떨던 이 바다가 정복 전쟁 당시에는 핏빛으로 물들었었다. 지금은 평온하고 아늑한 모습이다.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더보기
21. 바다 속으로 뛰어든 술탄=『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189쪽 (구간 159쪽 참고) The Sultan Riding on Horseback into the Sea of Bosphorus 격전이 치러지고 있는 바다로 뛰어든 술탄. 이 한 장의 그림이 술탄 메흐메드 2세의 화급하고 직선적인 성격을 단적으로 대변한다. 술탄은 수적으로 절대 우세한 자신의 함대가 고작 네 척뿐인 적의 배들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자 더는 참지 못하고 직접 싸움에 가담이라도 할 것처럼 바다로 뛰어들어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가며 해전을 진두지휘했다. 원근법을 배제하고 그린 이슬람 세밀화. 화가가 달라도 화풍이 같아 누구 작품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무표정한 얼굴들도 쌍둥이 형제들처럼 닮은꼴이다. 백마를 탄 술탄은 활과 화살로 무장한 채 바다로 뛰어들고 그 뒤를 술탄의 정예 부대인 예니체리들이 따른다. 왼쪽 바람.. 더보기
19. 고트의 기둥=『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185쪽 참고 (구간 155쪽 참고) Column of the Goths 고트의 기둥. 해발 50미터 지점에 위치한 15미터 높이의 화강암 기둥이다. 지대가 높아 골든 혼 해역과 인근 바다를 넓은 시야로 바라볼 수 있다. 게다가 우거진 숲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 적에게 노출되지 않으면서 해상 전투를 관전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인 것 같아 이곳을 황제의 관전 지점으로 추리했다. 코린트식 기둥머리로 장식되어 있는 고트의 기둥 상단부. 14세기 전반에 집필 활동을 한 비잔틴 역사가 니케포루스 그레고라스(대표 저술 ; )는 고트의 기둥 위에 한때 비잔티움의 시조인 메가라인 비자스의 동상이 있었다고 기록해 놓았다. 더보기
18. 큐축 아야 소피아 자미(성 세르기우스와 바쿠스 교회)=『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184쪽 참고 (구간 155쪽 참고) Küçük Ayasofya Camii (Little Hagia Sophia Mosque : Church of the Saints Sergius and Bacchus) 성 세르기우스와 바쿠스 교회(Saints Sergius & Bacchus)의 표지판. 마르마라 해변 쪽에 있는 교회(지금은 모스크)로서 하기아 소피아(아야 소피아)를 닮았다 하여 '작은 아야 소피아'라고도 불린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테오도라 황후가 함께 축조했다. 자미로 변신한 성 세르기우스와 바쿠스 교회. 바에지드 2세 시대인 1503년 입구를 덧대어 이슬람식으로 개조하고 미너렛(첨탑)도 세웠다. 존 프릴리에 따르면, 평면도상으로는 매우 울퉁불퉁한 직사각형 안에 역시 울퉁불퉁한 팔각형이 비스듬이 내접된 형태의 건축물이었다고 한다. 돔 .. 더보기
12. 이미지로 보는 금각만 방재 사슬=『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99, 129, 418쪽 (구간 81, 107, 399쪽 참고) The Iron Chain of the Golden Horn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있는 쇠사슬 그림. 원근감을 무시하고 그린 그림이다. 굵은 방어 철책도 실제 모양보다 단순화시켰다. 금각만을 사이에 두고 왼쪽은 콘스탄티노플, 오른쪽은 갈라타(제노바인들의 자치 구역) 지역이다. 군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1453년 당시 금각만 입구를 가로막고 있던 방어용 쇠사슬. 현재 남아 있는 쇠밧줄은 모두 185~190미터 정도이며, 이것들은 이스탄불 4개 박물관에서 나누어 보관하고 있다. 쇠밧줄을 박아 고정시켰던 성벽. 유게니우스 성문 근처 켄테나리오스 성탑과 갈라타 성채 카스텔리온이 양쪽 끝 연결 지점이었다. 1891년 하기아 이레네 교회에서 발견된 금각만 방재 쇠사슬. 이 교회는 쇠밧줄이 가장 처음 발견된 곳이다. 더보기
15. 우르반의 대포와 크리토불로스의 설명 & 사진=『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113, 123, 129쪽 (구간 102, 106쪽 참고) Orban(Urban)'s Cannon & Kritovoulos 우르반의 대포는 전쟁의 승패를 가른 핵심 요인이었다. 가장 큰 거포는 포신 길이만도 8미터가 넘고, 돌포탄의 무게는 600kg을 초과했다. 전쟁의 참여자이자 목격자였던 크리토불로스는 우르반의 대포에 대한 설명을 장문의 기록으로 남겼다. 발췌해 옮겨 보면…. "대포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철과 여러 재료들이 필요해 막대한 자금이 동원되어야 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볍고 깨끗하게 정제된 흙을 모아 모양이 잘 만들어지도록 며칠 동안 저은 뒤 이 흙을 잘게 찢은 린넨 천, 삼 등 여러 가지 재료들과 섞었다.… 대포의 중심부가 모형은 마치 직사각형 파이프 모양으로 제작되었다. 앞쪽 절반은 돌포환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원형이었다. 칼집처럼 안쪽을 .. 더보기
17. 테오도시우스의 성벽=『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121, 366쪽 참고 (구간 99, 312, 384쪽 참고) Walls of Theodosius 테오도시우스의 성벽은 내 책 에 QR코드를 도입하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이었다. 책의 본문에도 군데군데 등장하고, 성벽 복원도(개정판 에필로그 화보, 구간 101쪽)도 수록하고, 부록(개정판 366~367쪽, 구간 384~398쪽)에도 여러 지면을 할애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무엇보다도 삼중 성벽의 그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캡션과 함께 성벽과 성문의 이모저모를 담은 사진들을 제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전달 방법으로는 QR코드 만한 도구가 없으리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스탄불에 머무는 동안 내가 가장 자주 찾고, 또 긴 시간을 답사한 곳이 바로 이 성벽이었다. 나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이.. 더보기
13. 루멜리 히사르=『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99, 195, 411쪽 참고 (구간 81쪽 참고) Rumelihisarı : Roumeli Hissar Castle 정복 전쟁의 전초 기지 역할을 했던 루멜리 히사르(유럽의 성)는 1452년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가장 협소한 유럽 쪽 해안에 지어졌다. 맞은편 아시아 쪽에는 1397년에 세워진 아나돌루 히사르가 있어 양쪽 해안에서 지나가는 선박들의 목을 조르는 형국이었다. 이 성채가 완성됨으로써 흑해 지역 기독교 국가들이 비잔틴 제국을 지원할 수 있는 해로가 봉쇄되어 콘스탄티노플은 고립무원의 처지가 된다. 경사지에 축조된 루멜리 히사르는 양쪽 끝 언덕 위에 성탑이 각각 하나씩 있고, 바닷가에 위치한 세 번째 성탑에는 바다로 통하는 성문을 지키는 망루가 있다. 성벽의 전체 길이는 250미터, 폭은 가장 넓은 부분이 125미터이다. 북쪽 성탑은 사루자 파샤, .. 더보기